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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에 빠진 동생, 자해시도도 불사(不辭)
장진영(가명) mrmad@hdjongkyo.co.kr
2017년 07월 28일 09시 45분 입력

어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의 일이다. 일주일 정도 입원을 하시게 되어 어머니 곁에서 간호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동생과 내가 번갈아가며 어머니 곁에 머무르기로 했다. 교대하면서 마주칠 때마다 동생은 무언가에 쫓기는 듯 많이 초조해 보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병실에 아예 찾아오지 않았다. 사실 그 전부터 이상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집에 꼬박꼬박 오던 동생은 학교를 핑계로 집에 오지 않았고, 자취방에 가족들은 절대 찾아오지 못하게 했다. 평일에는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집에 가끔이라도 오는 날이면 죽은 듯이 잠만 잤다. 하지만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요즘 대학생활을 열심히 하는구나 정도의 생각만 들었다.

동생이 신천지에 빠졌다는 소식은 어머니가 퇴원하시고 며칠 뒤에 알게 되었다. 동생과 같이 신천지 생활을 하다가 빠져나온 아이에게 전해 들었다. 이미 3년도 넘었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동생을 너무나 예뻐하시던 아버지는 그날부터 눈에 띄게 수척해지셨다. 아버지는 동생에게 절대 말하지도 말고 티도 내지 말라고 하셨다. 늘 부드럽게 말씀하시던 아버지가 그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건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아직 몸이 회복되지 못한 어머니는 뒤늦게 동생 소식을 듣고 주저앉아 펑펑 우셨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그렇게 우는 모습을 처음 보는 나는 당황스러웠다. 두 분 다 도대체 왜 그러시지? 사이비 종교에 대해 무지했다. 신천지도 그저 개신교에서 나온 비슷한 종교라고 생각했던 나는 뭐 그리 무섭다고 저러시는 걸까 의아했다. 너무 힘들어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에 ‘그곳이 사람을 죽이는 곳은 아닐 테니 그냥 맘 편하게 보내면 안되겠느냐’라는 말까지 했다. 종교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뭐 그리 다를까, 언뜻 봐서 괜찮은 곳이면 보내는 게 서로를 위해 낫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CBS에서 방영된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 한 편만 봐달라고 부탁하셨다. 귀찮았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에, 유튜브에서 찾아보았다. 한 편만 봤을 뿐인데 영상 속 학생의 행동을 보니 기가 막혔다. 그곳에 빠지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오로지 신천지만을 위해서 바치는 것이었다. 그것을 막으면 가족과도 절연한다. 학업도 포기한다. 다단계처럼 작전을 짜서 전도만 하고 다닌다. 눈물이 났다. 동생이 그런 곳에 들어간 것이다. 부모님이 왜 그리 힘들어하셨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다른 피해자 가족들도 만났다. 그분들의 딸도 신천지에 빠졌는데, 평소에 똑똑하고 행실도 좋았으며 서울에 있는 유명한 대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하지만 신천지에 빠지고서는 달라졌다고 말했다. 몇 달 전 한 친구가 길거리에서 사이비 종교에 전도하려는 사람을 만났다고 했었다. 친구들은 그런 것은 바보들이나 빠지는 거라고 이야기했고, 나는 그 말에 동의하듯 웃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누구나 빠질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마음이 힘든 사람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이 쉽게 빠져드는 개미지옥 같은 곳이었다.
 

신천지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면서 우리 가족은 많이 바빠졌다. 우선 동생과 신천지를 분리시켜야 했다. 신천지와 동생이 접촉하지 않게 하려고 한동안 동생과 함께 지낼 거처를 마련했다. 신천지인들은 신도들을 뺏기지 않기 위해 과격한 행동도 불사한다고 들었기에 걱정이 많이 되었다. 많은 인원이 집으로 찾아와서 난동을 부린다고도 했다. 그래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충돌을 대비해 운동을 시작했고, 끊임없이 대비 방안을 강구했다. 한 달여 뒤 우리 가족은 추석 연휴에 맞추어 다 같이 산속 펜션에 들어갔다. 가게 되는 것까지도 쉽지 않았다. 동생을 설득하는 것이 무엇보다 힘들고 어려웠다. 이전과는 다르게 사나운 동생의 모습은 처음보아서 많이 무섭기도 했다. 동생은 신천지에서 알려준 메뉴얼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신천지에서 빼내려 할때 하라고 배웠던 과격한 행동들을 하나하나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 중에서 가장 무서웠던 순간은 자해시도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크게 상처를 내면 가족들은 구급대를 부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빠져나가기 수월하다고 신천지에서 가르쳤다고 했다. 동생의 자해시도 이후 우리 가족은 과일도 제대로 까먹지 못했다. 아버지와 나는 면도기를 숨겼다. 수염은 점점 길어갔고, 제대로 잠도 잘 수 없었다. 하루에 움직이는 양이 극히 적어 밥도 입에 들어가지 않았고, 살은 점점 빠지기 시작했다. 날마다 동생과 신천지 교리와의 사투로 보냈다. 동생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하기 위해 틈날 때마다 성경을 읽었다.

동생과 대화 중에 놀라운 사실을 들었다. 동생이 나를 신천지로 전도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었다는 것이다. 우연히 만난 줄 알았던 사람들이 전부 신천지인이었다. 동생에게 내 정보를 받아 나에게 접근했다. 여러 가지 일들로 힘들어 하고 있을 때 동생이 데려갔던 카페에서 만났던 상담사도 신천지인이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충격을 받았다. 나를 만났던 사람 중에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신천지인이었다니, 문만 덜컹거려도 놀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혹시나 신천지인들이 찾아오지 않았을까’, ‘내 동생을 데려가면 어떡하지’ 하루하루를 불안 속에서 기도로 견뎠다. 20여 일 간의 산 속 생활 끝에 동생은 신천지가 잘못된 곳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심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었고, 많은 분들이 기도로 후원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펜션에 있던 그날, 지난 3년의 세월을 후회하며 눈물 흘리던 동생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이후 동생과 우리 가족은 신천지 피해 가족을 돕기 위해 애쓰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