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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베데스다의 그들에게
윤재덕 전도사
2019년 04월 24일 11시 21분 입력

1. 우리의 2월, 그리고 3월

메시아 안에서 형제, 자매된 여러분! 안녕하세요. 종말론사무소의 윤재덕 소장입니다. 지난 달은 어떠셨나요? 대화할 수 없는 상대에게 먼저 말을 건네고,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을 사랑하고자 애쓴 한 달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신천지 덕분에 우리가 사랑으로 무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요. 사탄이 던진 시련이, 우리에게는 사랑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윤재덕 전도사
종말론사무소 소장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과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비로소 깨닫고 있어요. 사랑 없이는 그 어떤 방법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눈물 뿌려가며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허용하시는지 원망스럽다가도,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하나님 말고는 의지할 데 없는 그분의 아들, 딸임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2월이 그러했습니다. “종말론사무소”는 사랑의 방법으로 인간관계의 문제를 대면하려는분들을 돕기 위해 만든 기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 블로그를참조해주세요. jaeduggi.tistory.com) 그리고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건전한 종말론은 지구의 끝장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의 악의 끝장’을 다룹니다. 그리고 그 악이란 사람이 아니라 사탄이고,그 사탄은 우리 속에서부터 우리를 사랑하지 못하도록 만들지요.

그러니 우리 속에서부터 악을 끊어내고, 우리 곁에 있는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메시아 예수로부터 시작된 위대한 시간에 동참하는 방식, 곧 종말을 살아가는 방식이라 하겠습니다. 우리의 3월속에서 악이 질식 당하기를, 사랑이 승리하기를! 아멘!

오늘은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 드리려고 합니다.

2. 벌거벗은 그들

먼저는 동화 이야기입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다들 아실거예요. 임금님은 재단사의 거짓말에 속아 자신이 마치 대단한 것을 차려입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임금의 행차를 보는 군중들도 속으로는 이상하다고 생각해도, 겉으로는 말도 못 하고서 우물쭈물합니다. 그러다가 그 동화의 결말은 착각을 깨뜨리는 어린아이의 외침이었지요! 마치 계시와도 같은 그 아이의 외침은 허영에 눈이 어두워져 수치를 영광이라 착각했던 임금과, 그 주위에서 갈채를 보냈던 군중들의 어리석음을 백일하에 드러내 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벌거벗은 자들의 행진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거짓말쟁이 재단사에게 속아 스스로가 영광스러운 제사장이 될것이라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 재단사는 정말 크게 단죄를 받게 될것입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입지 않았지만, 자신들이 제사장이 될사 람이라며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입지 않았지만, 자신들이 세계를 호령하게 될 사람이라고 큰 소리를 칩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입지 않았지만, 가족들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한 번에 역전시킬 수 있는 영웅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되기 위한 조건은, “성경이약속한 목자”라고 주장하는 이만희씨의 말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옷일진대, 성경은 그런 옷은 없다고 말해줍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신약교회가 곧 제사장임을 천명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 6절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본문의 “삼으신”과 “아멘”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은 다른 신약의 편지들과 마찬가지로 회람서신입니다. 교회들이 돌려보았던 편지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받아 보았던 신약교회야말로 예수님께서 이미 제사장으로 삼은 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임명이 이미 이뤄졌고, 또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요한은 하나님께 영광과 능력을 돌리며 감사하며 “아멘”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신천지 교인들은 “영적 이스라엘”인 신약교회가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며, 자신들을 “영적 새 이스라엘”이라 주장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야말로 제사장이 “될” 사람들이라 주장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제사장이 아니지요.

3. 베데스다에 누워있는 그들에게

그리고 그 20만 명이나 되는 벌거벗은 사람들이 한 곳을 보며 누워있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이만희씨가 죽지 않을 것이며, 결국 그가 신인합일을 가져올 것이라는 착각이 그들 시선의 소실점입니다. 그 소실점을 베데스다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마치 베데스다 연못에 들어가기를 서로 경쟁하는 병든 사람들처럼 그들도 제사장이 되기 위해 지파별 경쟁이 가열차게 벌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병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이란, 자신이 결국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허영과 지옥에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이 점철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벌거벗음을 모르기에, 다른 가능성을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이만희 선생님 말씀대로 배우고, 시험 보고, 전도해야 한다며 자신의 삶을 기꺼이 신천지를 위해 바치는 것이 자신들만이 누리는 영광이라 생각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시선 밖에서 한 사람이 달려옵니다. 베데스다 병자에게 찾아왔던 그 사람 말입니다. 여러분 누구인지 아시지요? 그사람의 방법이 곧 우리의 방법입니다. 낱낱이 쓰여있지 않아도, 우리는 상상만으로 그 사람의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벌거벗은 이들에게 모멸감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손에는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줄 옷가지를 들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방법대로 하는 사람이야말로, 그 벌거벗은 사람들이 그토록 되고 싶어 하는 제사장일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을 바라는 사람들 앞에 진짜 제사장이 나타났을 때, 그때 그들은 자신의벌거벗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