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 작게보기
페이스북
어떻게든 탈퇴만 시키면 된다?
윤재덕 전도사
2019년 08월 16일 21시 22분 입력

안녕하세요. 형제자매 여러분 윤 소장입니다. 한 달 만에 다시 인사드리네요. 다들 잘 지내고 계시지요? 일단 저의 근황부터 말씀드 릴게요. 저는 근래 신천지 요한지파장과의 대화를 계속 시도하고 있습니다. 신천지 요한지파장이 ‘하늘팟’이라는 신천지 팟캐스트 방 송에 나와서 제 영상에 대해서 자기 생각을 피력했습니다. 

▲윤재덕 전도사
종말론 사무소 소장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지요. 그러나 그는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을 넘어서, 저에 대한 악의적인 발언을 쏟아냈고, 욕설도 서 슴지 않더군요. 이런 것을 듣는 것은 당사자인 저에게는 무척이나 고역이었습니다. 같이 듣던 제 동료도 자신은 “항마력”(계속 보기 가 뭣한 것들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거나, 포커페이스를 계속 유지하거나 할 수 있는 능력)이 모자란다며 수차례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당사자에게 말입니다. 저 역시 똑같이 갚아주고 싶다는 생각 이제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방법들이 어렵지 않게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로마서 12장을 읽어야 합니다.

로마서 12: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바울은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박해하는 사람을 똑같이 박해하는 것이 공평하지 않나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나를 푸대접하는 신천지 교인에게 똑같은 푸대접으로 갚아줘야 그가 푸대접이 나쁘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까요? 예컨대 신천지 교인인 자녀가 부모 속을 썩인다고 가정해봅시다. 매일 집에는 늦 게 들어오고, 부모 말은 도통 들으려고 하질 않습니다. 그리고 이 에 대한 부모의 자연스러운 반응은 똑같이 상처로 되돌려주는 것이겠지요. 용돈을 끊고, 그러려면 나가살라고 소리칩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좋지 않습니다. 이러는 와중에 아이와 부모의 사이는 더욱 멀어지게 되고, 정작 할 말도 못하는 관계가 되어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소위 “미러링”이라고 부르는 방식입니다. 즉 그가 행했던 대로 똑같이 행해서, 나를 통해 그가 자신을 보도록 나 자신이 그의 악행에 대한 거울이 되어주는 방식입니다.그러나 저는 이 방식이 정말 나쁘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아프게 배웠습니다. 악을 행하고 있는 상대의 거울이 되려는 방식은, 나 역시 악을 행하게 만들어버리고, 이때 승리하는 것은 악 그 자체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복수는 늘 마음을 조급하고 초조하게 만들지요.

그러나 아직도 많은 가정들이 이 “조급한 복수”라는 방법 때문에 힘 겨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은 “어떻게든 탈퇴만 시키면 된다”는 생각으로 인해 정당화됩니다.

어떻게든 탈퇴만 시키면 된다?

여러분, 신천지 교인을 “어떻게든 탈퇴만 시키면 된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당연한 소리를 좀 하겠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이점을 인정하게 되면, 우리는 그 사람이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 록 근거를 제시할 뿐, 그 사람의 결정을 대신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탈퇴시킬 수 없습니다.

그저 스스로 탈퇴할 뿐입니다. 따라서 “탈퇴시키다”라는 말은 마치 “뜨거운 얼음”과도 같습니다. “탈퇴”와 “시킨다”는 말도 결합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더불어 탈퇴 시점 또한 타인이 결정할 수도 없습니다. 신천지 교인 자신만이 자신의 탈퇴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을 망치는 주범인 “조급함”은 내가 타인의 시간을 결정했을 때 발생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어떻게든 탈퇴시키면 된다”에서 “어떻게든”은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할 때 쓰는 말입니다. “어떻게든”이면 안 됩니다. 타인이 바르게 결정할 수 있도록, 올바른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방법이 필요합니다. 신천지 피해자 가족분들을 만나다 보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방법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들을 만납니다. 물론 그 사랑은 진심입니다. 그러나 진심 에는 언제나 적절한 방법을 필요로 합니다.

그 사랑이 진심이라고 해서 어떤 방법을 써도 괜찮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데이트 폭력이 같은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어떻게든 탈퇴시키면 된다”에서 저 “된다”라는 말은 대단히 의심스럽습니다. 어떻게든 탈퇴를 시켜놓으면 도대체 무엇이 “된다”는 것이지요? 신천지 교인은 이미 자신을 둘러싼 인간관계보다 신천지에서의 인간관계가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신천지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자신의 결정으로 말입니다! 그것이 잎사귀들의 속임이었든, 포교를 위한 사탕발림이었든 그것은 나중 문제입니다.

실제로 신천지에 포교되는 사람은 신천지 교인들에 의해 인격적이고 따뜻한 대접을 받습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교리에도 사람들이 설득력을 갖게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탈퇴만 시키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오히려 조급하고 비인격 적인 방식으로 신천지 교인을 대하는 방법 자체가, 신천지 교인이 이미 문제라고 판단한 사안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지는 않나요? 적어도 우리가 신천지보다 더 나은 공동체가 되어줄 수 없다면, 그는 나와 봐야 허탈감만 더할 것입니다.

미안하게 만들기

이런 문제들을 가로지르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물론 간단하다고 해서 실천이 쉬운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우리의 생각과 양심이, 그리고 성경이 지지하는 방법입니다. 바로 바울에게서도, 예수님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바로 그 방법입니다. 저는 이것을 이렇게 부릅니다. “미안하게 만들기”. 우리가 앞에서 봤던 로마서 12장 14절을 떠올려보세요.

자신을 박해하는 자를 축복할 때, 그 박해하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바로 미안함입니다. 그리고 이 미안함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방향을 돌이키는 시작점이 됩니다. 그리고 미안해하는 사람만이 스스로 자신의 결정을 철회할 수 있습 니다. 만일 우리가 신천지 교인이 마음을 돌이키길 바란다면, 그를 미안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나를 푸대접하는 사람을 미안하게 만드 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구약성경 전체의 요약이기도 한 이 방법을 누가복음 6장 31절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이 미안함을 거쳐서 새롭게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미안함으로 나의 삶을 돌이키는 것을, 우리의 전통은 “회개”라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미안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를 죽게 했던 죄인의 삶으로 돌아 가지 않겠다고 결단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이 방식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요구됩니다. 미안하게 만드는 사람이야말로, 신천지 교인들이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제시되어야 하는 마땅한 근거입니다.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이 “미안하게 만들기”는 “미러링”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상대는 나를 통해서 자신과 같은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모습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방식은 상대의 양심과 판단력을 신뢰할 때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 이라는 사실을 신뢰할 때만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저는 요한지파 장의 양심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조롱으로의 되갚음이 아닌, 허심탄회한 대화,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서로의 입장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대화를 요청할 생각입니다.

제가 “미안하게 만들기”를 잘하고 있는지 신천지 탈퇴 매뉴얼 최근 영상들을 지켜봐주시기 바 랍니다. 그리고 형제, 자매 여러분! 함께 신천지 교인들을 미안하 게 만드는 이 총성 없는 전투, 두 글자로 “ㅅㄹ”이라 말하는 메시아 의 삶에 동참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