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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40년의 실상 (2)
현대종교 | 임웅기 목사
2024년 06월 25일 10시 11분 입력

3. 신천지 41년의 역사와 권력 체제

1) 두 증인 체제로 시작

장막성전에서 탈퇴한 7천사 중 하나인 솔로몬 백만봉 교주는 1980년 3월 14일 청계산에 떠오르는 해를 멈추게 하면 자신을 믿고, 아니면 다 각자 길로 헤어지자고 주장했으나 허풍으로 끝났다. 그 이후 김대원 장로는 1980년 7월까지 인덕원에서 이만희, 부인 유천순과 함께 생활했다고 증언한다.
 

▲두 증인 홍종효(제공 : 임웅기 목사)

 

그렇다면 이만희 총회장과 홍종효와의 본격적인 관계는 그 이후일 것이다. 『신천지 발전사』를 보면 1980년 10월 27일에 이만희 총회장과 홍종효는 유재열 교주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구치소에 수감된다. 그리고 1981년 2월 2일에 선고유예로 풀려난다.

홍종효는 구치소에서 풀려난 뒤에 다시 유재열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만희 총회장이 보이지 않아 수소문했더니 계룡산 줄기 향적산구 천태산에 있는 구룡정사에 신상훈과 함께 피신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다. 이후 이만희 총회장과 홍종효는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1984년 3월 14일에 안양시 비산동에서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을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때 이만희 총회장은 자신을 구원자라고 주장하지 않았고 사도요한 격 목자라고 했으며 홍종효를 요한계시록 11장의 두 증인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다 홍종효는 신격화하는 이만희에게 불만을 가졌고,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1987년 신천지를 탈퇴한다. 이후에 두 증인 교리는 이만희와 윤요한으로 뒤바뀐다. 그러나 신천지 실상은 현재까지 이만희와 홍종효를 두 증인으로 가르치고 있다.1)

2) 7교육장과 12지파장 체제


박태선 전도관, 과천 장막성전, 백만봉 재창조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며 신천지를 함께 설립했던 홍종효는 이만희 총회장과 신천지를 지지해 주는 중요한 인물이자 동역자이다. 그런데 그의 이탈로 인해 위기를 맞게 된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1장 1절의 ‘지팡이 같은 갈대’를 ‘갈대 같은 지팡이’로 성경 말씀을 변개하고 두 증인 중 하나였던 홍종효가 배도했다고 가르친 것이다.

두 증인 체제라는 실상 교리에 미혹되어 신천지에 들어온 사람들과 함께 이만희 총회장은 여러 권의 도서를 출간하고 지교회를 설립하며 무료성경신학교를 통해 세력을 확장해 나간다.

그리고 1995년 3월 14일 창립일에 요한계시록 4장의 보좌 구성을 완성했다고 하면서 초창기 신천지에 입교한 사람들을 7교육장과 12지파장, 24장로에 임명하고 이들 체제로 운영되는 신천지 조직을 발표한다. 이때 발표한 12지파장 조직을 보면 본부 요한지파는 총무라는 직책을 사용했다.

지금과는 다르게 요한지파장으로 부르지 않았고 다른 지파장과 요한지파 총무는 서열상 동급 위치에 있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7교육장과 12지파장(총무 포함)이 다스리는 체제를 유지하면서 신천지 신도수는 급증하게 된다.

3) 김영록 총무와 가족 중심체제(이전우와 사모)


1984년에 설립된 신천지는 산하 지교회를 세우고 12지파라고 이름을 붙였다. 1986년 광주에 지교회가 생겼고 광주, 전남, 전북을 통합해 베드로지파가 만들어졌다. 지파장은 신천지 요한계시록 6장의 실상을 보면 밀 한 되는 이만희, 보리 석 되는 윤요한, 윤재명, 지재섭, 세 인물 중 전남 담양 출신인 지재섭이 선임되었다.

유일하게 하나님과 예수님이 대화한다는 이만희 총회장 통제하에 신천지 12지파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12지파장은 총회장이 세운 인물이므로 절대 복종을 강조했다.

각 지파 내 수장인 지파장의 권력과 권한은 막강했고 지파 내에서 지파장에게 도전하는 인물이 있다면 결국 그는 신천지에서 퇴출당하게 되었다. 관리와 통제가 잘 이루어지다 보니 출석하는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지역이나 다른 지파로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2000년대 초반 광주, 전남, 전북을 관장하는 지재섭 베드로지파장을 보좌하며 지파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총무 직책에 김영록(본명 김용록)이라는 인물이 임명되었다. 어느 날 김영록이라는 인물이 사라지더니 과천 요한지파에 나타났다. 그리고 총무에 임명되었다.
 

▲이만희와 김용록(제공 : 임웅기 목사)

 

그리고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이만희 총회장 양아들 이전우(근)가 7교육장 중 한 명으로 임명되는 등 김영록, 이전우, 사모 유천순 라인의 권력 체제가 등장했다. 지금까지 12지파장과 동급 또는 그 밑의 직책으로 여겨졌던 총무 직책이 12지파장보다 더 높은 직위가 되어 각 지파에서 올라오는 모든 소식을 보고 받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게 되었다.

총무가 12지파의 현황을 보고받아 이만희 총회장에게 최종 보고하는 이 체제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광주 베드로지파 지재섭 지파장보다 하위 직책에 있었던 김영록 총무가 한순간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가 12지파의 보고를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12지파장의 인사발령이 떨어졌고 약 20년간 베드로지파 수장으로 있었던 지재섭 지파장은 부산 야고보지파 지파장으로 전출을 보낸다. 그리고 부산 안드레지파 이재상 지파장을 베드로지파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베드로지파는 이재상 지파장 체제하에 분열하게 되고 결국 제주 특전대장으로 가있던 지재섭 지파장을 다시 베드로지파장으로 복귀시킨다. 이때 김영록 체제하의 신천지는 베드로지파를 견제하기 위해 전북을 광주·전남과 분리시킨 후 불광지역에 있던 도마지파를 전북 도마지파로 변경하고 이재상을 지파장으로 임명하는 등 지파 조정을 한다.

그러나 신천지 내에서 김영록, 이전우 중심으로 운영되는 신천지 체제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고 내부 다툼이 심했다. 그 불만은 2006년 신현욱 교육장, 권남궤 금천 담임강사, 조현섭 강사의 신천지 탈퇴로 이어졌다.

이 사건으로 지금껏 베일에 싸여있던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의 생활, 여러 일화, 총회 내부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07년 MBC 에서 신천지의 문제점을 최초로 보도함으로 세간의 이목을 받게 되었다. 그 사건 전후로 신천지의 조직 체계를 바꾸고 지파 변동 사건을 일으켰던 김영록이라는 인물은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4) 압구정 신학원 김남희 원장과 측근 체제


신천지 전 교육장 신현욱 목사의 폭로와 2007년 MBC 방송 이후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 가족 중심 체제를 공고화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신천지 내부는 어수선하게 된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김남희 압구정 신학원 원장이다.

 그녀의 증언을 보면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과 첫 대면은 2002년도 신천지 수료식 때 수료 소감을 발표한 이후 식사 자리였다. 압구정 성당을 다닐 당시 압구정동 큰 평수 현대아파트에 살았고 이만희 총회장 측근 강사와 전도사들이 기도와 성경공부 명목으로 자신의 집을 자주 출입했다는 것이다. 2003년부터 압구정 신학원 센터를 운영했는데 이만희 총회장은 자주 압구정 선교센터에 왔고 매일 전화를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자신이 소유한 충남 계룡시 ‘미소지움 아파트’에 이만희 총회장과 원장들과 간 적이 있었다. 이만희 총회장이 책도 쓰고 휴식 차 이곳을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해서 열쇠를 주었는데 어느 날 호출해서 가보니 이만희 총회장 수행비서의 차량에 기사는 보이지 않았고 혼자 있었다고 한다.

▲이만희의 내연녀로 알려진 김남희(제공 : 임웅기 목사)

 

그곳에서 이만희 총회장의 적극적인 구애가 시작되었고 이만희 총회장과 김남희 원장의 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2010년 김남희 원장은 전 남편과 이혼했다. 그리고 모든 공식적인 행사에서 이만희 총회장 바로 옆자리를 유천순 사모 대신 김남희 원장이 독차지했다.

신천지 외부의 눈초리는 이 둘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충남 계룡시 미소지움 아파트, 경기도 가평 별장, 동성서행, 동성남행, 사단법인 만남, 광주 조선대병원, 광주 선한병원, 세브란스 병원에서 척추 수술과 간호하는 모습들이 카메라에 찍혔다.

그 후에도 경기도 가평군 고성리에 있는 평화연수원에 걸린 해와 달 사건, 평화연수원에 생활하는 모습 등이 폭로되었고 이만희 총회장과 김남희 원장의 동거설은 기정사실로 되었다. 의혹을 제기할 때마다 동거설을 극구 부인하던 김남희 원장과 이만희 총회장의 밀월은 2017년에 끝나게 되었다.

그런데 김남희 원장의 탈퇴 사건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고 소문만 무성한 채 일부만 아는 극비리였다. 지금까지 이만희 총회장과 김남희 원장의 밀착 행보는 신천지 41년의 역사속에서 가장 화려하고 그야말로 전성기 시대였다. 이만희 교주를 국내를 넘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평화의 사자’로 알리고 그를 국제적인 인물로 만들어 준 일등공신이 바로 김남희 원장과 그녀의 측근인 압구정 신학원 출신들이었다.

신천지 신도들은 신천지 국제화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고 더불어 신천지 광풍이 전 세계를 점점 휩쓸고 장악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전 세계가 신천지화 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만든 인물이 김남희 원장과 그녀의 측근들이었다.

그런데 김남희 원장이 신천지를 탈퇴했다! 이 소리는 웬 말인가? 충격을 주는 청천벽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신천지는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못하고 김남희 원장도 이때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신천지는 김남희 원장을 설득하며 내부를 조용하게 수습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2019년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가 발생했다. 2월 18일 신천지 대구 다대오지파 소속 31번 확진자를 기점으로 제1차 대유행이 발발했고 그 근원지로 신천지 대구 다대오지파가 지목되었다. 코로나 감염병 유행을 처음 겪은 우리나라 보건당국과 언론은 신천지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신천지를 향해 정부, 언론, 국민, 보건당국은 전면전을 펼쳤다.

신천지를 향한 부정적 시각은 주홍글씨가 되었고 그동안 잠잠했던 김남희 압구정 신학원 원장과 측근들이 잠행을 깨고 나와 폭로하기 시작했다. 2017년 신천지를 완전히 탈퇴한 김남희는 이만희 총회장과의 만남과 동거 생활, 그리고 2012년에 있었던 체전 폐막식 퍼포먼스가 결혼식이었으며 혼인 관련 여러 증거를 추가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이만희 총회장과 법정 다툼을 시작했다. 압구정 신학원 김남희 원장의 행보는 엄청난 파급력을 보이며 내부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신천지 12지파장을 비롯해 신천지 해외 활동을 주도했던 주요 인사들이 원장 김남희 영향 아래 있던 압구정 신학원 출신들로 채워지고 신천지 권력 라인을 대부분 장악했기 때문이다.

김남희 원장의 증언은 이만희 총회장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의 횡령 유죄를 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판결문에 평화의 궁전 매입과 명의 문제와 이만희 총회장과 김남희 원장은 평화연수원에서 동거한 관계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혔다.

한때 신천지 성장의 주축이었던 김남희 원장과 측근들의 탈퇴와 폭로, 신천지에 불어닥친 코로나 대유행은 이만희 총회장을 구속시키고 신천지를 집어삼킬 것 같은 광풍이었으나 아쉽게도 미풍으로 끝나고 말았다.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과 신천지의 목까지 겨누었던 ‘감염병예방법’ 위반 사항에 대해 1심, 2심,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가 나왔다.

신천지는 신도들에게 170억 정도의 법정 비용을 마련시키고 1심 재판에서 무려 43억 1300만 원을 비용으로 사용했다. 돈의 힘이 작용하여 결국, 이만희 총회장과 신천지는 무죄로 풀려나게 된 것이다. 재판 결과의 역풍은 의외로 컸다.

무너질 것 같았던 신천지를 다시 일으켜 세우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에 대한 무한 신뢰를 만들었고 신천지 신도들은 똘똘 뭉쳤으며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인식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김남희 원장의 실수도 큰 몫을 했다. SMV 산악 TV 방송 소유권을 둔 소송에서 신천지가 승리하고 김남희 원장이 패배했다. 이 결과는 한순간에 김남희 원장의 탈퇴와 이만희 총회장과의 동거, 이만희 원장의 횡령 비리를 덮고 말았다.

김남희 원장이 SMV TV 소유권 싸움에서 승리하거나 애초 재판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와 측근들의 폭로는 살아서 신천지 내부를 파괴하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재판에서 진 결과는 이만희 총회장은 피해자, 김남희 원장을 가해자의 위치로 뒤바뀌게 만들었다. 신천지 내부는 김남희 원장에 대해 더 신랄한 비판과 비난을 쏟아내게 되었고 신천지 신도들의 이탈을 막고 결속력을 가져온 것이다.

5) 젊은 권력자 체제


2019년 신천지에서 발생해 국민적 공분을 샀던 코로나 대유행의 참사를 막은 인사를 뽑자면 과천 요한 최동희 지파장, 소재흥 변호사, 요한지파 고동안 총무로 꼽는다. 신천기 41년의 역사 중 코로나 팬데믹 돌풍은 가장 큰 위협이었다. 지금까지 주장해 온 신천지 교리와 실상에서도 없었고 이만희 교주의 구속은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으므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광풍으로 변했다.

최동희 요한지파장은 신천지발 코로나 유행과 위협을 환난으로 규정하고 신천지 밖에서만 있는 줄 알았던 이 환난이 신천지 내부에도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약간의 교리를 변개하면서 경기도, 정부의 고발로 인한 검찰의 수사와 이만희 구속, 언론들의 집중 공세의 대혼돈과 혼란 속에서 신천지 내부를 결속하는 데 이바지했다.

소재흥 변호사와 고동안 요한지파 총무는 검찰이 구속한 이만희를 석방시키고 재판을 준비하는데 고군분투하며 ‘감염병예방법’ 위반에 대해 무죄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1996년 신천기 13년 당시 신천지 총회장·7교육장·12지파장·24장로(제공 : 임웅기 목사)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젊은 두 권력자는 충돌하게 된다. 평소 고동안 총무의 올바르지 못한 행실을 알고 있던 최동희 지파장은 이만희 총회장에게 직보했다고 한다. 이전에 요한지파 이모 청년회장의 문제도 이만희 총회장에게 보고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만희 총회장은 그들을 감싸고 오히려 보고한 최동희 지파장을 책망했다고 한다. 평소에 이만희 총회장과 신천지는 공의공도 한 곳이라고 외쳐왔는데 본인이 경험해보니 거짓이라는 사실을 이제 알았다. 하나님이 보내신 약속의 목자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진실을 분별하지 못했고 오히려 진실을 덮고 거짓된 자의 편을 드는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고 이만희 총회장의 참 실체를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미련 없이 최동희 지파장은 신천지에서 탈퇴했다. 신천지는 공식적으로 그를 제명 처리했고 공식 사유는 당을 짓고 총회장을 대적하며 권세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신천지 교리 변개자라는 꼬리표까지 따라 다니게 되었다.

반면 고동안 총무는 이만희 총회장의 신임을 얻고 총회 총무라는 자리로 승진하게 된다.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 다음의 권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사실 총무라는 직책은 성경이나 신천지 교리에 없다. 일반 사회 직책을 가져와 신천지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신천지 전 총무 고동안(출처 : 유튜브 채널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그러다 보니 12지파장과 비교했을 때 성경적 신비감이 덜하다. 그러나 12지파의 정치와 행정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가 되었다. 이 자리는 누가 얻을 수 있는가? 이만희 총회장 마음에만 들면 누구나 이 자리에 앉게 된다. 이렇게 만든 최초의 인물은 광주 베드로지파 출신 김영록이라는 사실을 앞서 살펴보았다.

그도 이만희 총회장 마음에 들어 총회 총무가 되었고 12지파장보다 더 높은 권한을 가지고 행사했다. 그리고 이만희 총회장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마음에 든 젊은 사람들을 지파장과 강사로 발탁해 세대교체를 했다.

김남희 압구정 신학원 원장 체제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젊은 측근들을 대거 등용해 나이 든 12지파장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장악했다. 고동안도 총무 자리에 오르자, 자신의 영향력을 12지파에 행사했다.

가장 원로이며 실상의 인물인 광주 베드로지파 지재섭 지파장을 제거하고 젊은 이정우를 지파장에 임명하는 강수를 두었다. 그리고 작년에 다른 영이 지재섭 지파장에게 들어가 총회장과 신천지를 비난하고 돌아다니므로 제명하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런 행위는 자신의 체제를 공고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신천지 총무라는 자리는 이만희 총회장을 제외하고 권력의 최정점에 있다. 이만희 총회장의 눈도장을 받은 사람만이 이 자리에 오른다. 신천지 내부에 이만희 총회장이 좋아하는 결과물만 만들어 신임받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신도들이 많다.

그들은 총회 총무, 지파장, 지파 총무, 청년회장 직책을 놓고 서로 경쟁한다. 나이 든 세대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으나, 자기편을 만들기 위해 자기 말을 잘 듣는 사람을 곳곳에 심는 과정에서 또는 상대의 비리와 문제를 폭로하면서 원수가 되고 자기들끼리 충돌하고 있다.

신천지 요한지파 청년회장이었던 유모씨는 이만희 총회장과 독대 자리에서 고동안 총무의 여성 성폭력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이만희 총회장은 고동안 총무를 신임해 버렸다. 여기에 회의를 느끼고 불만을 가진 유모 청년회장은 신천지를 탈퇴했다.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은 어떤 잘못을 해도, 큰 죄를 지어도 감싸고 도는 이만희 총회장의 모습에서 공의공도는 없었다. 그가 말하는 공의공도는 이만희 총회장 자신과 측근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신천지 사람들이 반기를 들었다.

고동안 총무와 그 가족이 신천지 공금을 횡령했다는 폭로가 이어졌고 결국 고동안 총무는 여성 성폭력 문제와 개인 횡령 혐의로 고발을 당했다. 신천지 총회는 공지를 내리고 공금 횡령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공금 횡령은 사실로 드러나 고동안 총무와 그의 가족은 결국 제명처리 되었다.

그리고 최근 요한지파 이기원 지파장이 그 자리에 임명되었다. 여기에 고동안 총무 체제에 임명되었던 베드로지파 이정우 지파장도 해임되고 유모 지파장이 임명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젊은 권심으려는 신천지 내 권력 다툼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지금까지 장막성전의 역사와 신천지 설립 그리고 신천기 41주년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그 속에 나타난 신천지 체제와 리더십을 살펴보았다. 신천기 41년의 역사 속에서 나타난 리더십의 한계는 명백하다.

첫째, 신천지 초기는 실상 인물을 통해 통치하는 체제였다. 맨 처음 신천지는 두 증인 체제로 시작했다. 그러나 1987년도에 그 한계를 드러낸다. 자신을 사도 요한이라고 주장했던 이만희 총회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홍종효보다 더 높고 우월한 존재로 자신을 신격화했기 때문이다.

전도관, 장막성전, 재창조교회에서 평범했던 이만희 총회장이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홍종효는 자신을 신격화하며 신천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이만희 총회장의 모습이 불편했을 것이다.

신천지를 공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공동 소유라고 생각했는데 자신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하려는 이만희 총회장을 보고 점점 불편함을 느꼈으며 홍종효 입장에서는 자신을 이용한다는 마음이 들어 신천지를 탈퇴하게 된 것이다.

그다음 밀 한 되와 보리 석 되 체제였다. 밀 한 되 이만희 총회장이 신천지 신앙과 권력의 정점이 되고 그 밑으로 윤요한 교육장, 윤재명 교육장, 지재섭 지파장이 자리를 잡았다. 신천지에 들어온 사람들은 일반 정통교회에서는 들어 본 적이 없는 두 증인이나 실상의 인물을 접하고서 차별성과 신비로움을 느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성되고 구원과 살아있는 채로 영생을 맛보는 상상 속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지파 총무직으로 있었던 김영록에 의해 이 체제도 무너지게 된다. 그 이후 죽지 않고 영생하는 존재로 못 박았던 이만희, 윤요한, 윤재명, 지재섭 중 윤재명 교육장이 사망을 했다. 지재섭 지파장도 다른 영이 들어갔다는 제명 사유를 들어 신천지에서 출교 처분을 받았다. 윤요한 교육장은 모든 직책을 박탈당한 채 과천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며 신천지를 출석하고 있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둘째, 신천지 실상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통치 체제가 무너지게 된 이유는 김영록 총무가 신천지의 역사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만희 총회장이 구원자, 이긴자, 약속의 목자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고 윤요한, 윤재명, 지재섭이 실상의 인물이 아니며 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정말로 이만희 총회장과 세 명이 하나님이 세운 목자이며 실상의 인물이라고 믿었다면 조직 보고 체계를 바꾸고 그들 위에 군림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영록 총무의 등장은 7교육장과 12지파장 체제를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성경과 신천지 교리에도 없는 총무 직책이 정치와 행정 권력을 장악하고 신천지 교리로 만든 직책인 7교육장과 12지파장, 24장로 위에 서서 군림하므로 신천지는 성경대로 하지 않는, 말씀대로 하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보여주게 된 것이다. 총무 직책은 신천지 조직 기강을 무너뜨리고 권력 다툼을 양산해내는 자리가 된 것이다.

셋째, 여성 권력과 리더십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이단 사이비 집단에서 여성 권력이 작동하고 있는 곳은 현재 통일교(한학자), 하나님의교회(장길자), 만민중앙교회(이수진), 은혜로교회(신옥주) 등이 있다. 기독복음선교회(JMS)는 몰락을 가져왔고 쌍둥이 자매가 세운 올네이션스 목자의 기도원(만국교회)은 수사 대상이다.

한때 신천지도 김남희라는 인물이 등장해 신천지 권력의 정점을 찍었다. 이만희와 김남희 이름을 조합해서 만든 ‘빛과 빛의 만남’, 2012년 신천지 체육대회에 폐막식에서 ‘해와 달’, ‘왕과 왕후’ 퍼포먼스, 2014년 9월 17일 종교대통합만국회의에서 ‘만민의 어머니’라는 카드 섹션을 선보이며 김남희 원장을 이만희 총회장과 같은 위치로 신격화하며 영적 부모라는 자리를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신천지에서 말하는 실상의 인물도 아니고 신천지 초창기 신도가 아니었다. 더욱이 이만희 총회장의 정식 부인은 유천순으로 이미 만천하에 알려졌기 때문에, 이만희 총회장과 김남희 원장이 꿈꾸며 진행했던 신앙적 존재 만들기는 애초 신천지 신도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에 종말을 고한 것이다.

넷째, 신천지 역사가 흐를수록 신천지 권력에 변화가 찾아왔다. 실상의 인물과 신천지 초기 멤버들이 권력을 누렸으나 그들은 늙어 죽거나 신변의 이상으로 신천지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2~3년 안에 완성된다고 주장했던 신천지 역사는 어느덧 41년이 되었다.

41살이 된 것이다. 30대, 40대, 50대 신천지에 들어왔던 사람들은 죽음과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어떤 조직이든 세대는 바뀌게 되어있다. 선배들을 따라 신천지에 헌신했던 젊은 세력들이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도 한계를 보였다.

대통령 중심제가 보여주는 많은 폐단이 있듯이 교주 1인 체제하에 움직이는 이단 사이비의 조직에서 권력 경쟁과 싸움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만희 총회장의 눈도장을 찍고 인정만 받으면 되기 때문에 자신보다 위에 있는 권력자들을 밀어내고 짓밟으며 자신이 그 위로 올라가려고 한다.

김영록, 최동희, 고동안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었고 그 외에도 많은 신천지 지파장, 담임 강사들이 수도 없이 교체되는 모양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신천지 내에서 어떤 인물이 권력의 자리에 앉아도 신천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내부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신천지 41년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그 속에 나타난 통치 체제를 살펴보았다. 한 마디로 이만희 총회장 한 사람을 신격화하는 신천지에서 보여준 권력과 리더십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교주의 영생을 주장하고 그 사람 중심으로 1인 권력 체제를 갖는 이단 사이비 조직은 교주 사망 후 후계자에게 그 권력이 계승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계승되더라도 그 조직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계승자라고 불리든 후계자라고 불리든 그 인물이 교리적으로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그 조직은 점점 약화되며 붕괴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재림주 이단의 계보를 보면 알 수 있다. 다른 조직으로 흡수되거나 신도들에 의해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전도관은 박태선, 장막성전은 유인구와 유재열, 재창조교회는 솔로몬을 신격화했다. 이만희 총회장도 전도관, 장막성전, 재창조교회에 남아 권력을 계승 받았다면 이만큼의 세력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곳에는 이만희 교주를 구원자, 이긴자 등의 신격화하는 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 집단에서 나와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을 만들고 자신을 신격화했기 때문에 지금의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신천지 이만희 교주는 사망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신천지를 뛰쳐나와 새로운 이단 사이비 단체를 만들고 이만희 총회장처럼 되려고 할 것이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자신을 그리스도, 구원자, 보혜사, 이긴자라고 주장하는 어처구니없는 이런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1) 신천지 초기 두 증인으로 가르쳤던 홍종효와 신상훈의 주장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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