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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이라도 더 신천지에서 나올 수 있기를 바랄 뿐”
신천지 전 강사 공희숙 인터뷰
현대종교 | 오기선 기자 mblno8@naver.com
2025년 03월 17일 09시 53분 입력

■ 신천지 탈퇴 이후 이만희 사생활 폭로…위력에 의한 간음 고소
■ 교리 변개, 횡령 사건 등 탈퇴 마음먹어
■ 이만희 성범죄 피해자들에 “어렵지만 용기 내주길”

30여 년 동안 몸담았던 신천지를 나왔다. 그리고 총회장 이만희의 사생활을 공개했고, 그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과 특수 협박죄로 고소했다. 경찰서에 오가고, 재판을 준비하는 일은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다. 잊고 싶었던 기억을 꺼내고 흐릿한 기억을 몇 번이나 곱씹으며 또렷하게 생각해 내야 한다는 중압감이 일상을 누른다.

신천지에서는 댓글부대를 동원했는지, 그녀의 행동을 비난하는 댓글이 달린다. 또 한쪽에서는 그 용기를 응원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신천지 전 강사 공희숙 선생은 오늘도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누군가는 자신을 통해 ‘신탈(신천지 탈퇴)’을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강사’는 신천지에서 사용하던 직함이므로 ‘선생’으로 호칭을 사용하려고 한다)

 

▲신천지 강사 출신 탈퇴자 공희숙 선생

 

성경에 대한 호기심

순전히 성경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 교회에 출석은 안 했지만 학교 다닐 때부터 성경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신약성경부터 성경을 읽어도 도무지 뜻을 알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무료성경신학원(현재 센터)을 알게 됐다.

당시 신천지는 무료성경신학원을 하나, 둘 세워가는 초창기였다. 마침 녹번동에 두 번째 신학원이 세워졌고, 홍보 전단지를 받게 됐다. 거리가 가까운 데다가, 무료로 가르쳐 준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 해가 1992년이었다.

바로 이듬해 강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신학원 수강생의 교육을 주로 담당했다. 중간중간 총회 재정부, 출판부 등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사당동에 있는 ‘열린교회’라는 이름의 위장교회 담임으로서의 활동이 신천지에서의 마지막 사명이었다.
 

▲인터뷰 중인 탁지일 교수(본지 이사장 겸 편집장)와 공희숙 선생

 

이만희와의 잘못된 만남

녹번동에서 불광동으로 활동지를 옮겨 강의할 무렵 이만희씨가 강의 중간에 불쑥 들어와 앞에 앉아 강의하는 것을 보고 들었다. 강의를 갓 시작할 시기여서, 긴장과 떨림이 마음을 눌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씨가 돌아가는 길에 공 선생이 강의하는 모습을 보며 매우 흡족해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말이 들렸다.

1990년대 중후 반쯤 목사들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발령을 받았다. 강사 겸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을 때 이씨는 그곳을 자주 찾아왔다. 어느 날은 공 선생을 과천으로 부르기도 했다. 공 선생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훼방을 받지 않고 성경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마음껏 물어볼 수 있을것 같았다. 그러나 그 만남이 생각지도 못했던 성추행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신천지 총회장 이만희씨와 공희숙 선생

 

사정을 알게된 사람들은 그럼 그때 신천지를 나왔어야지 왜 30년 동안 계속 남아있었냐고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이에 대해 공 선생은 “맞는 말”이라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하고 올바른 판단이고 처사였다”고 고백한다. 덧붙여 “그때는 신천지 교리를 진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고 그곳을 떠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며 가라지가 되어 불사름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배웠기 때문에 두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주변에는 믿고 상담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혼자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남들 앞에서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연출하면서 뒤로는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

이후 유튜브 등에 공개된 편지와 같이 이만희는 회유 작업을 진행했지만, 결국은 포기했다. 일은 계속하라는 지시가 있었고 2022년 연말에 탈퇴하기 전까지 신천지 소속으로 남아 있었다.

공 선생은 “당시 저분(이만희)은 목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판단할 문제고, 이 말씀이 맞고 역사가 맞기 때문에 이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면서 “세뇌가 너무 잘되어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만희씨가 공 선생에게 보낸 편지들

 

‘숫자 압박’에 시달리는 신천지 신도들

공 선생은 모략포교 방법을 듣고 기절할 뻔했다고 한다. 신천지 신도라면 누구든 전도해야 하는데, 전도라는 명목으로 거짓말을 일삼고 있었다. 갖가지 방법으로 진행되는 모략포교를 보며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정도가 심해졌다.

각종 거짓말로 포장된 포교방법들이 연구됐다. 일부에서는 성을 이용한 모략포교까지 나타났다. 물론 개인적인 일탈일 뿐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점점 거짓말의 정도가 심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신천지는 구역이든, 부서든 몇 명을 전도했는지 모든 숫자가 취합되고, 그것을 기준으로 등수를 매겼다. 실적이 좋지 않은 신도는 호된 질책에 시달려야 했다. 질책의 강도가 점점 높아졌고 모략포교 뿐만 아니라, 열매를 사고파는 장사가 되어 버리기도 했다.

직장생활 등으로 전도가 어려운 신도가 다른 신도의 활동비를 지원하면서 ‘서로 돕는다’는 순수한 의미로 시작한 일이 신천지 내에 보편화되어 버렸고, 결과적으로 장사가 되어 버렸다. 한 명을 두고 두어 사람이 서로 자신의 열매라고 주장하며 싸움하는 광경도 목격할 수 있었다.

방치되는 신천지 아이들

신도들이 전도 압박에 시달리다 보니, 신천지 신도 부모를 둔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었다. 공 선생이 학생회 일도 맡고 있을 때였다. 평소에는 센터에서 강의하다가 주말에는 학생회를 맡았는데, 아이들을 보며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하고, 친구들과 교제하며 자신들의 꿈을 꾸어야 할 청소년들이 교회에 매여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다. 예배에서도 마땅히 배워야 할 감사와 사랑이 아닌 오직 계시록만 가르치도록 했다.

가정의 상황은 더욱 참담했다. 심방을 다니다 보니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일탈하는 아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부모들이 신천지에 몰입하면서 집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엉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정의 상황이 학교로도 이어져 학교에서도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신천지라는 종교를 제대로 밝힐 수 없는 상황은 아이들을 더욱 위축되게 했다.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마음을 둘 곳 없이 ‘방임’된 상태의 청소년들이 마음에 걸렸다. 14만 4000명을 채우겠다고 가정마저 내팽개치는 신천지 신도 가족의 불행한 열매였다.

이만희 고소에 담긴 공 선생의 마음

공 선생의 마음에 생긴 균열은 결국 신천지를 떠날 수 있는 용기가 됐다. 코로나19 이후 교리가 계속 변경됐고, 내부에서는 다양한 비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성도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해명과 변명을 만들었고, 큰 일이 터질 때마다 이를 막기 위한 세뇌교육이 이어졌다.

그런 시기, ‘신천지는 잘못됐다’는 내용의 문자를 여러 신도에게 돌린 것이 발각되면서 제명 통보를 받게 됐다.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 문자를 보낼 때 이미 근신이나 제명당할 것을 알고 있었고, 사실상 제명이 아니라 스스로 신천지를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만희씨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과 특수 협박죄로 고소한 공 선생

 

제명 당한 후 공 선생은 한 해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만희의 사생활을 공개하고, 그를 경찰에 고소하기에 이른다. 물론 공개하기 힘든 내용이었고, 이후에 감당해야 할 짐도 크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용기를 냈다. 여전히 세뇌되어 있거나, 여러 사정으로 신천지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신도들이 신천지의 실체를 깨닫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만희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만희의 사생활 문제를 법적으로 끌고 간다는 것은 여간 고되고,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다. 또한 이만희의 사생활을 직접 폭로하다보니, 신도들로부터 수많은 비난을 받기도 한다.

‘먼저 꼬리 친 거 아니냐’, ‘공 선생이 횡령을 저질렀다’, ‘강사를 시켜달라고 졸랐다’는 식의 유언비어들이 가슴에 와 꽂혔다. 그리고 신천지 내부에서 그렇게 교육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어려움 속에 기쁜 소식도 들렸다. 공 선생의 이야기를 유튜브 등으로 접한 국내·외의 신도들이 용기를 얻고 탈퇴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종종 들려온다. 공 선생은 “응원하는 사람도, 비난하는 사람도 다 이해한다. 어차피 비난하는 사람들은 맹도들 아니겠는가”라면서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이만희의 이야기를 접하고 ‘신천지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기쁘고 위안을 느낀다”고 전했다.

또한 같은 피해를 겪은 신도들을 향해 “잘못된 판단과 연약함으로 인해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것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회개하는 모습일 것이며 참 하나님을 찾아가는 첫 발걸음 아니겠냐”며 “미약하나 최선을 다해 도와줄 용의가 있으니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용기를 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오픈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공 선생이 제기한 이만희에 대한 고소건은 늦어도 몇 달 내로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공 선생은 결과가 어떻든 한 명이라도 더 신도들이 신천지와 이만희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도록, 그렇게 신천지라는 잘못된 곳이 무너지도록 법적 대응 등 여러 가지 활동을 이어 나간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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