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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결과가 있는데도 왜 탈퇴하지 않을까?
탈퇴자들의 증언, 법의 심판을 보면서도 탈퇴 못하는 이유
현대종교 | 이재원 전 지파장
2025년 09월 18일 09시 00분 입력

신천지의 문제점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탈퇴자들의 신앙고백과 증언, 그리고 법의 심판은 신천지가 분명히 잘못됐다는 점을 짚어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을 접하면서도 탈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믿음의 함정, 인지부조화

속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한다. 심리학적 용어로 인지부조화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내린 결론이나 선택이 옳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눈앞에 등장하면 선택의 실수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일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진실을 밀어낸다.

그렇게 자기 합리화의 대안을 찾게 된다. ‘다 조작된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신앙과 정체성을 지키려 한다. 진실이 아니라도 불편한 진실보다 편한 거짓을 택하는 심리. 인지부조화의 표본이 된 것이다.

세뇌와 정체성의 동화

신천지를 종교로 봤을 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삶 전체를 점령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세뇌당한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다 알아보고 성경적으로 검증한 후 선택한 신앙이라고 말한다. 새벽기도, 진성신 글 공부, 부서모임, 포교활동, 센터청강 등으로 참 바쁜 신천지 생활이다. 종교활동이 습관처럼 반복되고 바쁜 일상이 되면 그 과정에서 점점 스스로 판단하고 내린 결정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주입된 사고방식에 길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이만희 총회장은 잠시도 사명자들과 신도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신도들을 편하게 하는 것은 출결 제외, 근신, 제명이나 이탈뿐이다. 바쁜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신앙과 자아가 완전히 일치된다. 더 이상 종교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 이유, 자아의 중심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신천지가, 이만희가 잘못되었다는 소리를 듣는 일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 전체가 부정당하는 일과 마찬가지가 된다. 떠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가족, 친구를 잃는다는 공포

이러한 종교를 신앙이라 믿으며 오랫동안 그 안에 속해 있다 보면 가족, 친구, 연인, 결혼, 사업 등 삶의 모든 인간관계가 신천지 안에서 구성된다. 신천지인 끼리 결혼해야 한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됐다. 신도들은 교회 안에서 결혼하고 같은 교회 사람과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일한다.

모든 것이 신천지 안에서 돌아가는 구조가 된다. 그런 상황에서 조직을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를 옮기거나 종교를 바꾸는 결정이 아니다. 그건 부모와 의절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항상 함께했던 친구들과 단절되는 일이 될 수 있다.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와 서로 원수가 되거나, 이혼하거나, 집에서 쫓겨나는 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신천지가 틀렸다는 것은 알지만. 막상 나가면 나는 갈 곳이 없다. 그 사람들 없이는 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이곳에 왔는데 다시 어디로 가란 말이냐?’ 이런 생각은 탈퇴를 결심할 때 발생하는 필연적 구조다. 내 아내도 나보다 먼저 탈퇴를 결심했을 때 ‘나랑 이혼할거냐?’고 물었다. 내가 신천지를 버렸을 때 남편도, 가족도 나를 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크다.

개인 입장에서는 믿음을 잃는 것보다 사람을 잃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세상에 배운 것도 없이 이곳에 와서 열심을 다해 포교, 봉사하며 구역장, 임원, 부서장, 강사, 지파장까지 되었는데 이곳을 나가면 어디에서 이런 대접을 받고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나가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두려움, 신천지에서 외운 왜곡된 성경지식 외에는 아는 게 없고, 그 어떤 경력도, 자격증도, 인맥도 없이 나이만 먹었는데 어디가서 새출발을 하고 이만한 지위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 내가 신천지를 나가면 내 결혼식에 올 사람이 5명도 안될 것 같고 내 자녀의 결혼식에 초청할 사람이 한 손에 꼽아도 남을 정도일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온다.

관계 단절의 공포, 특히 여성들이나 나이든 사명자에게 더 심하다. 가족과 친구들을 잃는다는 공포는 상상 이상의 족쇄다.

고난의 이긴자 서사와 세상불신의 구조

신천지 내에서 이만희는 단순한 종교지도자가 아니다. 고난받는 메시아처럼 인식된다. 순교의 프레임이다. ‘감옥에 갔으니 거짓된 진실이 드러났구나’가 아니라 사단이 마지막으로 우리를 시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예수님도 억울하게 고소당했고, 이로 인해 고난 당하는 것이 성경에 예언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5장이 말하는 ‘옥에 갇히는 때’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프레임에갇혀있다. 교주의 민낯을 오히려 예언적 성취로 받아들이고 현실을 외면하며 더욱 교주에게 충성을 하게 되는 구조다. 세상은 모두 거짓이라는 믿음 위에 이러한 메시아의 고난이나 순교서사가 만들어진다.

신천지에서 가르치는 세상은 마귀 소속 바벨론이며 만국이 미혹되었고 언론도 정치도 법관도 사단의 도구이다. 우리를 비방하는 유튜브는 선악과이며 신천지를 떠나면 생명책에서 삭제되고 인생은 무너지며 하나님은 이곳에만 계신다. 이렇게 인식되기 시작하면 신천지를 비방하는 모든 방송이나 법의 결정은 악의적 편집, 선악과, 조작된 허구가 된다.

피해자나 탈퇴자의 말은 조작된 이야기며 신천지를 훼방하기 위한 사단의 역사이다. 법원의 판결조차 사단의, 세상의 핍박이니 인정할 수 없고 나중에 백보좌심판 때 내가 법관들을 심판하겠다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핍박(?)이 심화될수록 외부세계를 불신하고 자신들의 안전지대인 신천지 안으로 더 들어가려 한다. 교주는 신격화된다. 반대로 세상은 악마화되고 신도들은 고립된다. 이것이 사이비의 가장 전형적인 통제방식이다. 그러면서 거리 청소, 헌혈, 자원봉사 등의 이름으로 마치 세상에게 인정받는 모범적인 조직이라는 인식을 심어 더욱더 자신들의 세계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든다.

안 떠나는 것이 아니라 떠날 수 없는 구조에 가둬버린다. 오랜 시간 주입된 믿음, 삶 전체를 지배하는 종교시스템, 인생의 기반이 그 안에 있을 때 진실을 받아들이면 곧 모든 것을 일거에 잃게 된다. 그래서 진실이 눈앞에 있어도 그 진실을 외면하는 쪽을 택하게 된다. 이것이 인간의 심리이며 아직도 신천지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실상이다.

비웃고 욕하고 조롱하는 것으로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그들을 고립시키고 더 결속시킬 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진실을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실과 함께 ‘너는 나올 수 있어’, ‘밖에도 삶이 있다’는 희망의 문을 열어줘야 한다.

내가 있는 집에만 해가 비치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고 나가면 더 따뜻하고 넓은 햇살의 정원이 있음을 지속해서 알려주면 된다. 진실을 계속 말할 때 그들 중 누군가는 아주 천천히 다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생각은 한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출발점이 된다.

차가운 물에 열을 가하더라도 99도까지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100도가 되는 순간 끓기 시작하듯 우리의 따뜻한 관심과 인내가 저들이 나올 수 있는 길이 된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저들은 저급한 길을 가더라도 우리는 품격있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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