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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 이후 남북해빙기 통일교 전망
조민기 기자 5b2f90@naver.com
2018년 05월 14일 15시 20분 입력


■ ‘반공(反共)’ 외치던 통일교, 냉전 붕괴 이후 북한과 ‘화친(和親)’
■ 통일교 북한 진출, 종교적 목적 실현 염두에 둔 하나의 과정
■ 문선명 사망 후 북한 내 수익성 떨어지는 사업 정리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계기로 남북관계에 청신호가 켜졌다. 남북 고위급회담이 진행되었고 정상회담 날짜를 합의했다. 나아가 평양에선 합동 공연이 진행됐다. 북핵 문제로 얼어붙었던 한반도의 관계가 해빙기(解氷期)를 맞은 셈이다. 이 시기에 발맞춰, 각종 통일 관련 사업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세간은 90년대 초기부터 통일 사업에 공들여온 통일교(창시자 문선명,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호전되는 남북관계 속 통일교는 어떤 행보를 펼칠까?


통일교가 바라보는 북한


통일교 교리서 『원리강론』에 따르면, 통일교는 한국전쟁을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이라 주장한다. 나아가 공산주의의 최전선에 위치한 북한이 ‘카인의 세력’이며 ‘사탄의 세력’으로 해석한다. 통일교에 있어 북한은 점령해야 할 하나의 큰 산이다. 실제로 문선명은 1983년 12월에 열린 ‘전국 승공 궐기 대회’에서 “세계와 한민족의 결의!”라는 제하의 강연을 통해, “통일 운동의 최종 목적”이 “공산주의를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일소하고 참된 자유와 평화와 번영의 세계를 이룩하려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반공(反共)’을 넘어 ‘승공(勝共)’을 외치며 북한과 적대적인 관계를 이어왔다.

그러나 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남북 관계가 호전을 보이자, 통일교는 1987년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창설자 문선명 · 한학자)’을 갑작스럽게 조직한다. 뿐만 아니라 문선명씨는 1991년 11월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첫 만남을 가졌다. 이를 계기로 문씨는 김일성 주석을 ‘형님’으로 모시며 북한에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남북교류합의서에 서명하면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했다. 김일성은 평안북도 정주군에 위치한 문선명 생가를 보존시킬 것을 지시했고, 이곳은 오늘날 통일교의 북한 성지인 ‘정주세계평화공원’의 개발로 이어졌다. 통일교의 태도 변화에 탁지일 교수(본지 편집장 겸 이사장)는, “통일교의 북한 진출은 통일교의 종교적 목적 실현을 염두에 둔 하나의 과정이며 ‘포교 형식의 변화’이지 결코 ‘교리 내용의 변화’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북한 내 통일교 현황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박상권 사장
(출처: 「뉴시스」)


승공을 위한 전략을 바꾼 통일교는 문선명 평양 방문을 시작해 적극적으로 북한에 진출했다. 탁 교수에 따르면, 통일교의 북한 진출은 그 규모와 내용 면에서 남한의 그 어떤 단체들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실제로 통일교는 박상권 사장을 앞세워 평화자동차 공장과 보통강호텔 사업을 흑자 운영했고, 세계평화센터 등을 세우며 대북사업을 펼쳤다. 뿐만 아니라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문선명의 7남 문형진씨가 조문을 위해 방북했다. 박상권 사장은 김정일의 2주기 추도식에 참가하면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김정은 위원장 역시 2012년 9월 7일, 사망한 문선명씨에게 ‘조국 통일상’을 수여했고, 문선명 사망 1주년 추모식에 맞춰 추모사를 전달하며 보답했다. 북한의 입장에선 사업을 통한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아우’를 자처하며 신의(信義)를 지키는 통일교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문선명 사망 후, 북한 내 독점적이고 안정적으로 진출해 오던 통일교에 변화가 있었다. 현 통일교 총재 한학자는 북한 내 통일교 사업을 재정비했다. 특히 통일교가 남 · 북 경제협력사업자 승인을 받아 운영했던 평화자동차 사업을 2013년 기준 북한에 운영권을 넘겼다. 남 · 북 공동사업이란 상징성이 있었지만 저조한 수익성을 이겨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교의 대북 진출과 관련해 문선명이 종교적 명분을 내세웠다면, 한학자 체제는 경제적 이윤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해석된다.

남북 해빙기와 통일교

▲2011년 김정일 북방위원장의
빈소를 찾은 문형진씨 (출처: 「뉴시스」)


통일교와 북한의 깊은 유대관계를 상징하던 평화자동차 사업이 정리되었지만, 그렇다고 통일교와 북한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짜여진 각본대로 진행되었을 뿐이었다. 북한은 2012년 12월 18일 박상권 사장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했다. 김정은 체제에 들어 외국 국적자에게 명예시민증을 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있다. 박 사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평화자동차와 보통강호텔 운영권을 북한에 넘기는 대신 단독 사업으로 유통업에 진출할 계획이며, 명예시민증은 이를 위한 북한의 배려라고 전했다. 박 사장은 “북한이 명예시민증을 준 것은 지금까지 내가 그들에게 보여준 신뢰를 인정한 것이며, 적극적으로 북한에서 사업하라고 승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현재 박 사장이 준비한다던 새로운 사업이 현실화되어 소개된 것이 없다. 한학자 역시 2015년 5월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방북) 시기를 보고 있어요”라며 북한과의 관계에 고삐를 당길 것처럼 밝혔지만 감감무소식이다. 통일교 산하 단체인 천주평화연합 월시 의장 역시 올해 초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한반도의 평화 정착에 도움이 된다면 평양에서 서밋(정상회담)을 개최할 용의도 있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활동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남북해빙기를 맞은 현재, 통일교는 북한과의 깊은 관계를 보여줄 만한 사업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통일교의 주최로 “2017 한반도 평화통일 세계대회”를 열었고,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이 “제3차 남북정상회담 기념 한반도 평화통일 PEACE ROAD” 행사를 진행했지만 각각 한학자 알리기와 정기행사에 불과했다.

 

한학자가 통일교의 관제탑으로 올라선 이후 북한과의 돈독한 관계를 가늠할만한 사업을 보여준 게 없다. 문선명이 살아 있을 때만큼 북한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통일교가 북한을 접어두고 교세를 이어갈 수도 있지 않으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통일교 왕국을 한반도에 건설하는 것을 핵심 교리로 삼아왔던 터라 북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단들에겐 어렵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긴 하나, 입맛과 상황에 맞게 교리를 변개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통일교와 북한의 커넥션은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