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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통일교를 만나다 (1)
최재영 목사
2019년 05월 22일 10시 59분 입력

이 글을 작성한 최재영 목사는 북한을 직접 방문해 북한의 통일교 교회와 사업체를 돌아보고, 북한과 통일교의 관계와 사업체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북한에서 통일교를 만나다>를 7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최재영 목사
NK VISION KOREA 대표

  


‘통일교’에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간판을 바꾸다

필자는 통일교가 북에 진출 후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며 포교와 선교를 하는지 직접 통일교 관련기관을 참관하며 알아본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우선 대부분의 한국교회와 기성 종교들로부터 줄곧 이단종교로 비판받아온 통일교는 그 공식명칭의 변천사도 굴곡이 많았다. 통일교가 태동된 이후 지금까지 어떻게 공식명칭을 변경해 왔는지 그것을 인지해야 북측에 세워진 통일교에 대한 이해가 쉬울 것으로 생각되어 우선 명칭 연혁부터 알아보고자 한다.

1954년 문선명 총재에 의해 창설된 통일교는 교단명칭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로 출범해 활동해 왔다. 그러다가 1996년 7~8월에 들어서 문 총재가 미국 워싱톤 D.C에서 ‘세계평화가정연합’을 창설했는데 그 이듬해인 1997년 4월 8일 기존의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와 ‘세계평화가정연합’을 하나로 통합해 그 명칭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가정연합)’으로 바꾸고 12년간 공식적으로 사용해 왔다.
 

▲사진 좌측부터 시계 방향으로 통일교 교회가 입주한 '세계평화센터'의 초현대식 건물 모습, 실제로 평화센터는 종교적 목적으로 건축됐다. 북 영토 내에 설립된 통일교 제1호 교회인 '평양가정연합교회' 예배당 내부 모습, 김일성 주석과 문선명 총재와의 첫 만남 장면(1991.11.30~12.7), 통일교 문선명 총재 내외와 기념 촬영하는 김일성 주석(1991.11.30~12.7) (사진 출처: 최재영 목사)

    

그후 2009년 7월 17일부터는 공식적으로 ‘통일교’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사용되다가 2013년 1월 7일 문 총재 사후 그의 부인 한학자 총재가 ‘통일교’라는 공식명칭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을 통합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라는 명칭으로 또 다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서 국내외 모든 통일교 산하의 공식교회들과 교단 간판들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교회’ 혹은‘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본부’로 교체되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울러 명칭이 변경될 때마다 북측에 있는 통일교 기관도 동일하게 변경되었다. 이처럼 통일교가 교단 명칭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바꾼 이유는사회적 의미의 건전한 ‘참된 가정’이 아니라 설립자 문선명 총재와 관계성이있는 가정을 모토로 한다는 뜻이다.

그동안 통일교의 독특한 합동결혼식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진행한 것이며 ‘통일교’란 옛 이름 대신 현재는 ‘가정교회’라는 간판으로 전부 바꿔 달은 것이다. 필자의 이번 방북기에는 북 전역에 500개 정도로 흩어져 있는 조선그리스도교련맹(조그련) 소속의 공식교회인 ‘가정교회(처소교회)’의 명칭과 혼동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통일교 산하의 가정연합교회는 그냥 ‘통일교 교회’라고 지칭할 것이다.

북에 진출한 통일교 포교현장을 가다

필자가 방북 중에 관료들을 통해 우연하게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놀라운 것은 북측에서는 통일교라는 종교를 진짜 정통 기독교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정통 기독교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북측 인민들이나 관리들은 ‘고난의 행군’ 시기와 그 이후 북측이 국가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을 때마다 통일교 측에서 보건, 복지, 식량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었고 통일교가 여러 가지 대북사업을 통해 북경제에 큰 기여를 하며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에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심지어 통일교를 ‘참된 기독교’, ‘고마운 기독교’, ‘행동으로 실천하는 기독교’로 알고 있다. 최근에는 문선명 총재의 뜻에 따라 통일교가 운영하는 ‘평화자동차’ 회사를 북측에 양도하는 바람에 통일교에 대해 더욱 호감도를 갖고 있으며, 차후에는 문 총재의 유지에 따라 ‘보통강호텔’ 마저 북측에 양도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어 그 일이 성사되면 신뢰도는 더 높아질 것이다.
 

▲사진 좌측부터 시계방향 통일교 소유의 '보통강호텔'앞에서 바라본 '세계평화센터'후문 입구, '보통강호텔' 진입로에서 바라본 '세계평화센터' 건물의 좌측 모습, 멀리 류경호텔이 보인다, 통일교 소유의 안산관 식당이 자리잡은 호수에서 '세계평화센터'와 '보통강호텔'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한 필자. 사진에 보이는 모든 지역이 통일교 소유이다. (사진 출처: 최재영 목사)

      

통일교가 북에 뿌리 내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잘 알려진 대로 지금부터 25년 전인 1991년 11~12월 문선명 총재와 김일성 주석의 첫 만남 이후 적극적으로 기업과 종교부분의 사업들이 꾸준히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 결과 북측 당국도 통일교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에서의 각종 배려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필자가 그 모습을 지켜보면 마치 북측과 통일교가 공생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춰지기까지 했다.

필자는 이 글에서 통일교가 북에서 운영하는 기업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종교기관에 더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통일교가 직영 혹은 간접경영(합작경영) 등의 방식으로 경영하는 기업들이라고해도 그 최종 목적이 결국은 종교적 목적 실현을 염두에 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또한 통일교의 대북기업들도 통일교 전체의 근간이되는 문선명 총재의 ‘원리강론’을 통해 실현되는 지상천국의 건설에 있는 것이다.

북에서 운영되는 통일교 기업들은 결국 통일교 교세확장과 포교를 위한 지원세력임을 부인할 수 없으며, 최종 목적은 북 인민들에게 ‘원리강론’ 교리를 가르쳐 신자들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통일교 기업들과 종교를 결코 분리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북에서는 이미 통일교 포교의 전초기지가 굳건히 세워져 있는데 그 첫째가 바로 평양에 세워진 통일교 공식교회당인 ‘평양 가정연합교회’이다. 그뿐아니라 그 예배당이 입주해 있는 초현대식 빌딩인 ‘평양세계평화센터(평화센터)’가 있고 또한 평안북도 정주에 ‘문선명 총재 생가 코스’와 ‘세계평화공원’ 등이 있다.

이 전초기지들은 이미 북 영토 내에서 포교활동을 위한 중추적인 베이스역할을 왕성하게 감당하고 있는 중이다. 알려진 대로 평양 한복판에 세워진 평화센터는 그 규모가 엄청나며 준공식과 더불어 그 건물 3층에 입주한 통일교의 공식교회당이 현판식을 마치고 운영 중에 있다. 또한 이와는 별도로 국내외 통일교 신자들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문 총재 생가와 인근에 조성 중인 ‘정주세계평화공원’이 조성되고 있는데 필자는 이곳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아보도록 할 것이다.

우선 북에서 활동하는 통일교 종교기관들을 다룬 후에 통일교 관련 단체와 기업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가 직접 방문한 곳들은 통일교가 직영하는 대표적인 특급호텔인 ‘보통강호텔’과 1급호텔인 ‘안산관호텔’ 그리고 호텔부설 고급식당인 ‘안산관’이다. 이어서 남포의 ‘평화자동차공장’, 평양시내의 ‘평화자동차 전시장’과 ‘주유소’ 등의 기업들이 현재 어떻게 활동하고있으며 종교적으로는 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할 것은 비록 통일교가 기독교 정통교리와 신학의 측면에서 볼 때는 국내외 기성교회들로부터 이단종파로 비판받는 상황이지만, 남북의 평화통일 조성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 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인될 경우에는 종교적인 측면을 떠나 통일지향적측면에서 올바로 평가받을 것이다.

1. 북 포교의 전초기지, ‘평양세계평화센터’

통일교라는 조직은 설립자인 문선명 총재 내외가 어떤 목적을 두고 지시를 내리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일을 성사시키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특히 북 체제는 기본적으로 그 특성상 남한교회나 서방세계 교회들이 주도해서교회를 지으려고 할 경우 그 동안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통일교가 요구하는 부분들은 북측이 거의 다 수용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돈과 권력과 유능한 인적자원들을 동원한 통일교의 협상 능력은 결국 뜻을 이루는것을 결과를 통해 흔하게 볼 수 있다. 통일교는 특급호텔인 보통강호텔을 확보하고, 인근에 고급 펜션식의 안산관 호텔과 안산관 식당 그리고 아름다운호수를 끼고 있는 엄청난 인근 부지를 확보해 사용 중에 있을 뿐 아니라 보통강호텔 바로 코앞에 통일교의 전초기지라고 할 수 있는 ‘평양세계평화센터’를 10년에 걸쳐 건설한 것이다.

통일교 산하 ‘평화그룹’은 지금부터 10여 년 전인 2007년 8월 5일, 행정구역상으로 ‘평양시 평촌구역 안산동’ 9,075평 부지에 건평 4,659㎡(1,409평), 연건평 9,062㎡(2,741평), 지하 1층, 지상 5층의 총 6층 규모의 평화센터를 준공했다. 1층에는 회의장과 연회장 겸용의 다목적 홀을 갖췄고 3층에는 대규모 통일교 예배당이 입주해 있다.

그 밖에도 강의실과 회의실, 숙박시설을 골고루 갖춘 복합문화 컨벤션센터의 형식을 띤 건물이지만, 결국 평화센터라는 이름의 통일교 교회당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이날 준공식 행사를 기해 통일교 본부측에서는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평양 가정연합교회를 봉헌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까지 했다.

▲사진 좌측부터 남측 평화토건에서 시공한 '세계평화센터' 공사 당시 모습. 10년간 공사에서 완공했다(1997.7-2007.8), 남측 통일교 신도 15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세계평화센터' 준공식 장면(2007.8.5), '세계평화센터' 준공식에서 환영식 연설을 하는 박상권 이사장 (사진 출처: 최재영 목사)

  

평화센터가 설립된 구체적인 과정을 보면 통일교측이 북측의 ‘아태평화위원회’에 최초로 건축을 제안해 계약을 성사시킨 후 1997년 7월에 착공을 시작해 10년 만인 2007년 8월에 완공했다. 그러나 착공 이후에는 뜻하지 않게 김일성 주석 조문 파동 여파와 남북관계의 경색,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공사가 10년간 지연된 것이다.

나는 “남측의 건축기술로 이런 건물을 짓는 것인데 길게 걸려봐야 1 내지 2년이면 완공할텐데 무슨 이유로 10년이나 걸렸을까?”하고 곰곰히 생각해 봤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당시 평화센터 박상권 이사장이 준공식 후 식사 자리에서 “세계평화센터는10년을 맞이한 오늘을 고비로 본격적인 남북간의 사회, 문화, 학술 교류시대를 여는 산실이 될 것입니다”라고 언급했듯이 공사가 진행되는 10년 동안 말못할 어려움과 고충이 있었음을 짐작케 했다.

이 평화센터의 완공은 당시 대북사업에 전력하고 있던 평화자동차 그룹의 집념과 의지의 결실이다. 평화자동차 그룹은 평양 인근 남포에서 자동차조립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평화자동차가 이 평화센터를 발주한 것으로 되어 있어 평화자동차 대표가 평화센터의 이사장을 맡게 된 것이다. 이 평화센터를 완공하면 자신들이 운영하는 보통강호텔-안산관호텔-안산관 등을 하나로 연계해 운영하려던 계획이었고 실제로 현재까지 그렇게 하고 있다.

초현대식 국제 컨벤션센터로 건축된 평화센터의 건물 내부는 800석 규모의 대형 연회장을 두 개나 갖추고 있으며 각종 회의실, 강의실, 연회장, 동시통역실, 숙박시설 등을 구비했다. 남북의 각 기관과 시민단체가 평양에서 문화, 학술, 종교 교류 행사를 개최할 때 누구든지 이용하도록 지원한다는 취지이며 아울러 통일교 측에서 남북의 가교 역할을 하거나 남북관계를 주도하겠다는 의도였던 것이다.

또한 평화센터 내부의 각종 시설들은 이산가족 상봉시 북측 화상 상봉 장소로도 제공되며 세계적인 과학자 등을 초빙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거나 평양시민들을 위한 외국어 교육이나 컴퓨터 교육장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건물 활용 계획 이면에는 통일교 원리강론을 전파하고 포교하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있는 것이다.

필자가 보통강호텔 부근을 지나면서 직접 보니 고급유리로 지어진 초현대식 건물이라서 도대체 이 멋진 건물을 어떤 회사에서 건축했는가를 알아보니 바로 통일교 계열 건설회사인 주식회사 ‘평화토건’이었다. 평화자동차 회사계열의 대북 건설회사로써 2000년 1월 설립해서 주택, 토목, 플랜트, 공항,항만 시설 등의 건설을 담당해왔는데 자신들의 순수 기술과 인력으로 평화센터를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는 남측 기술자들이 평양에 가서 직접 건설한 최초의 복합 건물이며 동시에 남측 법인이 북측 영토에서 건물을 완공한 후 운영권까지 맡게 된 것으로서 남북 교류 역사상 처음 있는 사례로 기록되었다. 10년 전 평화센터 준공식에 참석한 인원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은 남측통일교에서 활약 중인 평신도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준공식 일정에 맞춰 2007년 8월 4~7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방북했는데 참석자들의 분포도를보면 경상도에서 원동주(세계평화대사협의회 및 세계일보 조사위원) 거제시협의회장이 참석했고, 전라도에서는 서성종 무안군 평화통일가정당 중앙위원 등이었다.

이처럼 전국에서 모범적으로 활동하는 통일교 산하 「세계일보」의 전국 조사위원들과 세계평화대사협의회 회장단, 통일교에서 창당한 ‘평화통일가정당’ 당원 등총 100여 명 이상이 함께 방북단을 꾸려 참석한 것이다. 한편 방북단이 평양에 도착한 4일은 준공식 전날이었는데 이날 밤 보통강호텔 대연회장에서 통일교 주최 환영만찬이 있었고 북측에서는 리종혁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참석했다. 오전 10시에 열린 준공식은 남측을 포함해 모두 150여 명이 참석했으며 박상권 평화센터 이사장이 환영 연설을 했고 북측에서는 전날 만찬에 참석했던 리종혁이 다시 와서 축하 연설을 했다.

준공식 행사를 마치고 남측 방문단 전원은 오후 시간을 이용해 왕복 다섯 시간소요되는 문선명 총재의 생가가 있는 평북 정주를 다녀오기도 했다. 특히 이날 준공식을 마치고 지하 1층부터 꼭대기 5층까지 건물 전체를 둘러보는 순서를 가졌는데 남측 대표단이 3층에 올라가보니 3층 전체가 대규모 예배당으로 꾸며져 있고 교회입구에는 ‘평양가정연합교회’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제단에는 통일교 심볼 마크가 새겨진 설교 강대상이 놓여있는 등 기존 국내외 통일교 교회당 내부와 동일했다고 한다.

북에 상주하는 통일교 관련 신자들만이 알 수 있도록 제1호 통일교 교회당이 이곳에 은밀하게 세워진 것이다. 또한 건물 5층에 올라가보니 고급 주상복합형 펜트 하우스를 연상시키는 숙소들과 부속실 등이 호화롭게 구비되어 있어 구경하는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 할 정도라고 입을 모았다.

건물의 겉모양은 전체적으로 종합문화센터의 성격이지만 알고 보면 이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통일교 교회당이었던것이다. 특히 북측 당국은 건물명칭이야 무엇이든 사실상 통일교의 예배당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엄청난 건물을 허락하기까지 꽤나 많은 고심을 했을 것으로 보이며, 이는 북 최고 지도자의 승인과 통일교의 전방위 로비가 없다면불가능한 일이다.

돌아보면 1991년에 성사된 문 총재와 김 주석의 절묘한 외나무다리 만남이, ‘세계평화센터’ 준공을 통해 결실을 맺었고 결국 그 건물 3층에 통일교회당을 세우면서 대북 포교는 본격화된 것이다. 일평생 ‘반공(反共)’과 ‘승공(勝共)’으로 일관하며 통일교를 이끌던 문선명 총재가 1990년부터 갑자기 ‘친공(親共)’과 ‘연공(連共)’으로 급선회하는 걸 보니 ‘극과 극은 통하며,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실감났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