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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통일교를 만나다 (5)
최재영 목사
2019년 10월 14일 08시 53분 입력

이 글을 작성한 최재영 목사는 북한을 직접 방문해 북한의 통일교 교회와 사업체를 돌아보고, 북한과 통일교의 관계와 사업체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북한에서 통일교를 만나다>를 7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⓵남포의 평화자동차 공장을 방문해 양정만 지배인의 설명을 듣고 있는 필자 ⓶1990년 문선명 총재가 소련의 고르바초프와 만나는 장면(상), 1991년 주석궁에서 김일성 주석과 만찬을 하는 장면(중), 1974년 미국의 닉신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만난 장면(하).⓷문선명 내외가 2005년 7월 피스컵 개막식에 참석한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인사를 나누는 장면(상). 문 총재가 1989년 2월「세계일보」창간 리셉션에서 당시 야당 총재인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한 장면(하) ⓸노무현 대통령이 통일교가 설립한 남포의 평화자동차 공장을 방문해 양정만 지배인의 설명을 듣고 있다(2007.10.4) (사진출처: 최재영 목사)

  

전환기를 보낸 통일교의 대북사업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는 종교이자 기업이고 기업이면서 종교이다. 때로는 이 두 가지가 종교적 사상과 이념 아래 혼합적인 양상을 보이면서 인류사회를 상대로 매우 특이하고 확실한 목표를 추구하는 그룹이다. 통일교에서 세운 ‘국제승공(勝共)연합’이라는 기구는 남북관계가 극단으로 치닫던 1968년 문선명 총재에 의해 창설됐는데 이는 당시 ‘반공(反共)’을 국시로 삼고 북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던 박정희 정권측에서 매우 환영할만한 일로 여겨 양측이 밀착 관계를 형성해 왔으며 통일교는 이를 활용해 반공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국내외에서 포교활동을 해왔다.

▲최재영 목사
NK VISION KOREA 대표

  

때론 보수적인 한국 기독교로부터 이단사이비 종파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반공’이라는 큰 틀 안에서는 극우기독교와 통일교가 서로하나가 되는 웃지 못할 ‘적과의 동침’ 시절도 있었다.당시 보수주의자들은 ‘공산주의를 반대하거나 박멸한다’는 뜻으로 ‘반공’또는 ‘멸공(滅共)’이란 단어를 널리 사용하고 있을 때였는데, 통일교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산주의를 대상으로 이기자’는 뜻의 ‘승공’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와 관련해 통일교 측에서는 “반공과 멸공은 무작정 공산주의를 적대시하는 것이라서 철학적 배경이 약하나 승공은 공산주의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극복하자는 주장인만큼 훨씬 더 논리적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던 통일교가 1990년대 들어 갑자기 활동 방향을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 ‘사랑’, ‘가정행복’ 등으로 전환하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문 총재가 특별히 공을 들인 지역이 바로 북한이었다.

그 후 통일교의 대북사업은 이런 인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의미에서 북을 상대로 경제적 이득사업에만 몰두하기보다는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거나 가교역할에 더 주력해 왔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통일이 현실로 이뤄질 경우를 대비해 교두보를 확보하거나 자신들의 기득권 확충에도 중점을 두었고 동시에 종교적 목적을 실현하려는 취지에서 기업을 통한 대북사업을 벌여왔던 것이 사실이었음을 필자가 밝혔다.
 

이를테면 그동안 대북 통일운동사업과 이윤추구사업을 병행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통일교의 대북 투자 중에 가장 핵심사업은 ‘평화자동차’와 ‘보통강호텔’ 운영이었는데 2012년을 기점으로 통일교 측은 이 두 회사를 북측에모두 양도했다.

그동안 10개에 가까운 현지법인을 북에서 운영해 온 통일교가 두 기업의 운영권과 지분을 관련 절차를 밟아 북 당국에 모두 넘겼는데 이는 평소 문선명 총재의 유지였기에 마침 문 총재의 타계(2012.9.3.)를 기점으로 북에 양도했던 것이다. 이것은 문 총재의 죽음이 양측 관계에 큰 변화를 주었으며 통일교가 새롭게 도약하고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번 회는 필자가 문 총재 타계 직후에 몇 차례 방북해 간간히 참관했던 통일교 기업들에 관한 참관 이야기들로서 지난 25년 동안 추진된 통일교의 대북투자 사업진출과 민간교역 사업들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다. 사실상 대북투자의 선두기업으로 자리매김해 왔던 통일교가 2012년을 기점으로 전환기를 맞이해 2013년부터 새로운 대북사업을 모색하며 제2의 도약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으로 시작된다.

자구책을 마련하며 새로운 대북사업을 모색하고 있는통일교는 현재 평양 시내에 ‘이마트(E-mart)’와 비슷한 형태의 대형 유통사업을 검토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이런 조직적인 유통업에 투자할 경우 통일교가 북한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이전보다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였다.

북에 진출했던 통일교 기업들을 찾아가다

1991년 문선명 총재와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 이후 시작된 양측의 핫라인은최근까지 작동되고 있으며, 1994년 미국 카터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과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주선하며 남북 간의 화해 정국을 이끌어나갈 때도문 총재의 역할이 있었다.

그 후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과 남북정상회담,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과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도 문 총재 측의 핫라인 역할이 일정 부분 작용했는데 이런 밀착 관계는 지금까지 유효하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갑작스럽게 타계하자 문 총재는 남측의 국가보안법을 어기면서까지 자신의 최측근인 박보희 회장을 평양에 조문 사절로 보내는 등북 최고지도자와의 의리를 보여주며 특별한 협력관계임을 보여줬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후에도 북과 밀착 관계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던 문 총재는 2011년 12월 김 위원장이 갑자기 타계하자 후계자인 문형진 통일교세계회장 일행을 조문사절로 보내 금수산태양궁전 빈소와 김일성광장에 마련된 조문소를 방문토록 해 조문하게 하는 등 의리를 지켜왔다.

이처럼남북관계 변화와 상관없이 서로 꾸준한 신뢰 관계를 보여주던 양측은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 일정 중에는 남포에 있는 평화자동차공장을 직접 참관하도록 해 역대 남한 정권과 통일교와의 협력이 지속되고 있음을 과시하기도 했다.

2012년 9월에는 문 총재가 타계하자 이번엔 당시 김정은 제1위원장 이자신 명의의 조화와 조의문을 장성택 부위원장을 통해 평양 조문소로 보냈고 북 최고인민회의는 문 총재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하기까지 했다. 분명한 것은 북측 최고지도부와 통일교 최고지도부와의 관계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 이상으로 매우 깊고 신뢰도가 높다는 것이다. 조그련 측에서도 봉수교회의 젊은 담임목사인 송철민 목사를 조문소에 보내 유족들과 함께 조문객을 맞이할 정도로 통일교의 위상은 북측 조그련을 비롯해 종교계, 정계, 경제계, 통일단체, 언론 등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회는 ‘평양세계평화센터’, ‘정주세계평화공원’과 문선명 총재 생가, 그리고 통일교 교회인 ‘평양가정연합교회’ 등 통일교의 종교 부분 사업을 차례로 다루었다. 이번 회에도 그동안 통일교가 북에서 벌여 놓았던 대북 사업들을 현재 존폐여부와 상관없이 차례로 다루고자 한다.

원래 문 총재와 김 주석과의 협의서 체결 시에 ‘금강산관광개발’, ‘원산항개발’, ‘두만강경제특구개발’도 합의했으나 실행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후 금강산국제그룹을 통해 대북교류에 본격적으로 나선 통일교는 ‘평화자동차’ 공장 신설과 통일교 예배당이 들어선 종교시설물인 ‘세계평화센터’ 설립, ‘금강산 쾌속선 사업’ 등을 단계별로 추진해 왔다. ‘평화자동차’에 딸린 계열사들 중에는 ‘새기술연구소(자동차연구소)’와 ‘평화자동차 전시장’, ‘평화자동차 부품상점’ 그리고 ‘평화연료공급소(주유소)’ 등이 있고 ‘평화항공여행사’를 통해서는 ‘평양골프관광’, ‘아리랑공연관광사업’, ‘정주세계평화공원’과 ‘문선명 총재 생가 순례관광’ 등을 연계해왔다.

또한 ‘평화토건’을 통한 건설사업, ‘보통강호텔’과 ‘안산관호텔’, ‘안산관식당’ 등을 통한 숙박업과 요식업을 연계하고 있었으며 ‘평화무역’을 통해 각종 남북 민간교역을 주도해 왔다.

‘보통강호텔’

필자는 방북 중 여러 차례 보통강호텔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1층 로비에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이 함께 찍 대형 사진 두 개가 각각 걸려 있고 호텔 내부는 대부분 고급스런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로비에 성탄절 트리가 설치돼 있는데 서구사회 트리와 마찬가지로 네온사인과 장식품들이 매우 화려하다.

로비에 있는 ‘은방울 커피점’의 커피는 매우 향긋해 많은 이들이 이용하고 있으며 커피점 옆에는 평양 고려링크사의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어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사용하려는 투숙객들과 해외고객들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호텔 건물 밖을 나가면 호텔과 세계평화센터 중간에 화단이 조성돼 있는데 이곳에 통신기지국의 대형 접시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다.

1973년 완공됐다는 10층 규모의 보통강호텔은 평양 시내 대동강지류인 보통강변에 바로 위치해 있기 때문에 ‘보통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며 사람들에게 특급호텔로 불린다. 행정구역상으로 ‘평양시 평천구역 안산동’에 위치해 있으며 객실 수는 총 163실이다. 1등실(14개), 2등실(56개), 3등실(93개)등 약 170여 개의 다양한 객실을 갖추고 있으며 건축면적은 2만 9805㎡로 알려져 있다.

보통강호텔을 건축할 당시 김일성 주석이 무려 아홉 차례나 건축 현장에 현지 지도를 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건축했으며 일본 요코하마항에서 건축자재들을 운반해 건축했다고 한다.

그동안 통일교의 대북투자 사업은 금강산국제관광총회사를 통해 대부분 이뤄졌으며 이 호텔을 북 당국으로부터 최초로 사들인 회사가 바로 금강산국제관광총회사였다. 그런 이유 때문에 1993년 11월부터 통일교가 이 호텔을 인수해 경영을 맡기 시작한 것이다.

북의 호텔들은 모두 국영인데 반해 이 호텔만큼은 통일교 법인에서 운영한 것이 특색이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통일교의 대북 투자액은 당시 현대그룹에 비교하면 아주 미약했다. 현대그룹이 6억 9000만 불을 투자한 것에 비해 통일교는 7000만 불 수준이었다. 그러나 통일교는 이 보통강호텔을 운영하며 어느 정도 재정이 뒷받침 되었고 곧이어 평화자동차사도 설립할 수 있었다.

보통강호텔은 주로 남측인사와 해외동포들 그리고 외국인 사업가들이 방북 시 주로 머무는 호텔로서 지명도가 높으며 각종 맛있는 산해진미 요리로도 소문이 난 곳이다. 평화자동차처럼 이 호텔도 북측에 양도 절차를 모두 마치고 운영권과 지분을 북측에 넘겨주어 북 자체적으로 운영 중에 있다.
 

▲⓵보통강호텔과 평화센터 중간에 조성된 화단에 설치된 통신기지국 안테나 시설 ⓶보통강호텔 로비에 선 필자 ⓷보통강호텔 1층 로비 모습. 성탄절 시즌을 맞이해 크리스마스트리가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⓸'보통강호텔' 건물 입구 앞에 선 필자 ⓹보통강가에서 바라본 '보통강호텔' 전경 ⓺호숫가를 중심으로 조성된 펜션식 건물인 안산관호텔과 고급식당인 안산관(둥근건물)이 보인다. 멀리 우측에 '보통강호텔'이 희미하게 보인다. ⓻'원형식당'(하)에서 '안산단고기집'으로 이름을 변경한 안산관 (사진 출처: 최재영 목사)

  

‘안산관호텔’과 ‘안산관’

통일교의 대북사업은 체결 이후 오랜 시간 일관성 있게 추진돼 온 것이 그 특징인데 심지어 남북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문민정부 시절에도 평양 시내 보통강호텔 인수와 펜션식의 ‘안산관호텔’ 운영에 착수할 정도였다. 필자가 방문한 안산관호텔은 보통강 강물과는 별도로 그 인근의 아름다운 호숫가에 조성되어 있었으며 둥근 형태의 ‘안산관’이라는 고급식당도 운영하고 있었다.

이 안산관은 국내외 많은 미식가들이 찾고 있었는데 필자도 이곳에서 단고기(개고기) 코스요리를 비롯해 각종 고급음식들을 자주 먹을 기회가 있었다. 그동안 통일교 측은 보통강호텔-안산관호텔-안산관을 하나로 연계해 운영해 왔던 것이며 특히 두 호텔의 투숙객들과 안산관을 찾는 고객들을 위해 일본인 요리사가 일본에서 직접 공수해온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정성껏 음식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평양에 있는 외국 대사관들은 이 보통강호텔과 안산관을 연회장소로 선호했고, 평양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은 이 두 호텔 객실을 장기 임차해 사무실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안산관호텔의 외형은 호숫가 둘레를 따라 마치 펜션주택이 늘어서 있는 구조로 세워진 호텔이라서 위압감 없이 편안한 가정집 같은 느낌을 주었으며, 호텔 객실보다는 야영지의 별장 같은 느낌을 주어 고객들에게 명성을 얻고 있다.

보통강호텔 음식점과 안산관에서는 실내에서 만드는 ‘휘발유조개구이’를 비롯해 각종 다양한 요리들을 제공하고 있어 필자는 지금까지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을 정도다. 또한 안산관호텔 손님들도 보통강호텔 1층에서 운영되고 있는 고려링크를 찾아가 심카드를 구입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어 필자도 평양에 체류하는 동안 이 호텔의 고려링크를 통해인터넷을 활용하기도 했다.

그동안 통일교 측은 호텔 객실과 식당 등에서 발생하는 수익금과 임대료만으로도 웬만한 투자 경비는 회수했고 흑자 경영으로 돌아섰으나, 대북제재조치와 남북관계의 경색 등으로 현재는 현상 유지만 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보통강호텔과 마찬가지로 안산관호텔과 안산관은 북 화폐가 아닌 엔화나유로화, 미화만 받고 있다.

박상권 회장이 2013년 7월에 필자와 잠시 대화를 나눌 때 했던 말에 의하면 앞으로 통일교 측은 안산관의 좌석 수를 늘리고 대규모로 확장해 음식점 사업을 크게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무렵부터 ‘안산관’이 ‘원형식당’이라는 이름으로 바뀌며 새롭게 영업을 개시한 것으로 보아 통일교의 운영권과 관련이 깊어진 것으로 보였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