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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통일교를 만나다 (6)
최재영 목사
2019년 11월 08일 10시 43분 입력

이 글을 작성한 최재영 목사는 북한을 직접 방문해 북한의 통일교 교회와 사업체를 돌아보고, 북한과 통일교의 관계와 사업체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북한에서 통일교를 만나다>를 7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⓵평화자동차 준공식 장면. 우측에서 일곱 번째부터 좌측 방향으로 박상권 사장, 김용순 비서,박보희 회장 등이다 ⓶평화자동차 준공식장을 가득 메운 북측 직원과 근로자들의 모습 ⓷평화자동차 준공식 단상에는 이미 완성한 제1호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고 악단까지 동원해 행사를 지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출처: 최재영 목사)

  

‘평화자동차’

필자는 평양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평화자동차 남포공장을 참관한 적이 있다. 방문했던 시기가 2013년도 봄이었기 때문에 이미 통일교가 북측에 운영권과 지분을 모두 넘긴 뒤였다. 남포항 2㎞ 거리에 있는 ‘청년도로’바로 앞에 위치한 정문 입구에 도착하니 공장 총 책임자인 양정만 지배인이 미리 나와 따뜻하게 영접해 주었고, 그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공장 내부시설을 모두 둘러볼 수 있었다.

▲최재영 목사
NK VISION KOREA 대표

  

그뿐 아니라 양 지배인의 배려로 공장 내부에 있는 그의 집무실을 방문해 사업 현황에 대한 브리핑도 청취하며 여러 가지 질의응답도 할 수 있었다. 이 공장의 총 부지가 무려 33만 평이나 된다고 해서 필자가 놀랐으며 부지 주변이 농지와 야산으로 조성돼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필요하면 부지 확장이 더 가능하다고 했다. 공장 건물은 크게 자동차 종합생산 건물동과 수리와 개조를 담당하는 건물동으로 구분되어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공장 시설들은 규모가 방대했고 기술자들과 노동자들은 매우 여유 있는 모습으로 각자의 맡겨진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공장을 건설하던 초창기에는 7000평이나 되는 공장 내부 설비 등을 갖추기 위해 통일교에서 710억 원 정도를 투입했으며 그 결과 연간 1만 대의 조립 생산이 가능한 시설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행정적으로는 ‘평안남도 남포시 항구동’에 위치해 있으며 건립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33만 평 대지를 지정해 주었다고 한다.

필자가 공장부지 전체를 두루 둘러보니, 공장 정문과 경비실을 비롯해 자동차 생산라인 과정을 담당하는 ‘제1공장(자동차 조립 건물동)’과 함께 정비와 수리를 담당하는 ‘수리정비 공장동’ 외에 ‘변전급수건물’과 ‘연유공급장’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울타리를 따라 ‘자동차연구실’, ‘제관장’, ‘도서실’, ‘보위대’, ‘식당건물’, ‘운수건물’ 등이 즐비하게 있었다. 평화자동차 본사는 남북 양쪽 모두 개설돼 있다고 하는데 남측에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북측에는 ‘평양시 축전동’에 있다고 한다.

원래 ‘평화자동차총회사’는 북 당국으로부터 공장 부지를 제공받은 1997년 2월 27일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해 1998년 1월 7일 출범했으며 2년 만인 2000년 2월 3일 제1단계 착공식을 거행해 2002년 4월 6일, 공장 건설 공사를 모두 마치고 마침내 준공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준공식과 함께 본격적인 자동차 조립 생산 가동에 돌입했는데 당시 남북경협 역사상 제조업 분야로는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잘 알려진 대로 ‘평화자동차사’가 70% 지분을 갖고 북측의 기계공업전문회사인 ‘조선련봉총회사’가 30% 지분을 갖는 남북합영회사로 출범했다.

필자는 남측 통일교와 합작을 했던 북측 파트너 회사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하기 시작했다. 당시 통일교를 담당한 북측 부서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하 아태평화위)였으며 당시 김용순 위원장과 송호경 부위원장이 공장이 세워지고 자동차가 생산되기까지 많은 역할과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현재는 북 ‘해외동포원호위원회’에서 통일교를 전담하는 부서와 현대아산을 담당하는 부서가 별도로 마련돼 있다고 한다. 필자는 북측 파트너였던 조선련봉총회사 리정철 총사장이나 량문범 부총사장과 신경림 총부사장 등이 평소 평화자동차의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를 했는지가 몹시 궁금했다. 그러나 총사장은 잘 안 나타나고 실제로 북측 회사를 대표하는 인물은 신경림 총부사장이라고 했다.

그는 고령이지만 엘리트 출신으로서 매우 개방적이면서도 사상이 투철하고 남측 관계자들과의 대인관계도 매우 좋은 인물이라고 했다. 또한 매우 현명하고 합리적인 경영인이라고 평가해 주었다. 평화자동차 내부시설 공사가 한창이던 2000년도에는 남측 기술자 10여명 정도가 직접 이곳에 상주하며 기술지원을 했으며, 그동안 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숫자가 초창기에는 350명 정도였다.

그 이후 자동차 생산이 한창일 때는 500명 정도가 출근해 일했다고 한다. 대부분 공장 기숙사에 거주하거나 혹은 남포나 평양에 살면서 매일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이었다고 한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행정적인 일을 보는 노동자들 모두가 굉장히 순수하면서도 성실하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공장 자체적으로 청년돌격대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루 노동 시간은 일괄적으로 모두 8시간이며 임금은 자체적인 인센티브가 있으며 대부분 자발적으로 일을 하거나 배우려는 모습들이라서 노사 간의 문제는 아무런 불상사가 없다고 한다.

한 가지 독특한 것은 남측에서 주도했던 회사이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두 북측 인민들이다 보니 매주 금요일에 ‘총화시간’을 갖고 있었다. 남측 보수집단에서는 북 사회 전반에서 시행되고 있는 총화시간을 자기 자신을 비판하는 ‘자아비판’ 시간이거나 이웃과 동료를 고발하는 ‘몰인정한 상호비판’ 시간이라고 왜곡하고 있으나 실상은 현실적으로 매우 필요하고 건전한 모임이다.

이곳 평화자동차 공장의 경우 노동자로서의 자기반성과 발전적인 제안 그리고 공장을 잘 운영하기 위한 아이디어와 노동자들끼리의 화합 등 모두가 다 잘 살기 위한 목적으로 총화시간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필자에게는 매우 바람직한 모임으로 비췄다.

필자가 볼 때 비록 이 공장은 남북 합작회사지만 북의 기간산업을 남측의 통일교가 주도했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의미와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통일교의 대북사업은 통일교와 박경윤 회장이 이끄는 기업이 공동 주주로 참여한 ‘금강산국제그룹’을 통해 벌여왔으나 평화자동차총회사만큼은 박경윤 회장이 일절 관여하지 않고 통일교만의 고유한 대북사업이었다.

그래서 이 평화자동차 출범을 계기로 통일교가 단독으로 북에 여러 대북기업이 진출한 된 계기가 된 것이다. 공장 안의 거대한 벽면에 부착된 게시판에는 자동차생산 연혁이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공장 완공 후에는 이탈리아 피아트사 제품인 2500㏄급 대형차 ‘알파로미오’와 소형차 ‘시에나’를 조립해 생산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 후 평화자동차만의 고유 모델을 생산해 출시한 연혁을 차례대로 기록하고 있었다. 특히 준공식을 앞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환갑인 2002년 2월 16일에 맞춰 제1호 완성차를 내놓는다는 계획이 마침내 성공해 준공식 행사단상에는 제1호 완성차 모델을 올려놓고 행사를 치렀다고 한다.

또한 알파로미오와 시에나가 출시되기 전까지는 일본을 비롯한 제3국에서 중고차를 들여와 수리한 다음 북측 자국민들에게 판매하는 사업을 했다고 한다. 자동차 운전석이 우측에 있는 일제차량을 좌측으로 옮기는 등 여러 가지 수리를 마친 후 고객들에게 판매했으며 일반 차량을 정비해주는 사업을 병행하며 오늘날의 평화자동차로 성장시켰다고 한다.

초창기부터 ‘휘파람’, ‘휘파람2’, ‘뻐꾸기’, ‘뻐꾸기2’, ‘뻐꾸기3’,‘뻐꾸기4WD’, ‘준마’, ‘삼천리’ 등 8개 차종을 생산 및 판매했다. 특히 이탈리아 피아트사의 부품을 수입해 제작한 1600cc 승용차 ‘휘파람’은 지금도 평양 시내에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중국 서광자동차 모델을 들여와 생산한 스포츠 유틸리티SUV 차량 ‘뻐꾸기’도 많이 생산했지 평양 시내에 많이 운행되고 있었다.

그 후 북 고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삼천리’ 미니버스를 비롯해 지금은 트럭까지 생산하고 있었다. 필자가 방문하기 전 해(2012년)는 평화자동차의 총생산량이 1500대 정도였다고 한다.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은 북측에 지분을 양도한 이후 현재 명예회장으로 남아 있고 자동차 생산과 판매 등 모든 운영권과 지분을 북측에 넘겨주어 북측 회사가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체제로 전환되었다.

‘평화자동차 전시장’
 

▲⓵평화자동차 남폼공장을 방문해 정문에서 셀카를 찍고 있는 필자 ⓶남포공장 내부 현황판에는 2002~2010, 2011~2013년까지 생산된 차량종류를 광고하고 있다 ⓷남포공장 내부 종합 안내판 앞에선 필자 ⓸남포공장 내부 자동차 생산라인을 둘러보는 필자 (사진 출처: 최재영 목사)

  

필자가 방문할 당시의 평화자동차 전시장은 통일교가 손을 뗀 직후인데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여전히 잘 운영되고 있었다. 평양시 광복동 대로변에 자리 잡은 이곳 전시장은 오히려 성황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 해 생산되는 평화자동차 1600대가량을 판매하기 위한 고객 유치에 힘쓰고 있는 모습이었으며 일하는 봉사원들 모두가 매우 친절했다.

이곳은 전시장에 비치된 자동차 모델 외에 자동차를 구입하려는 고객들이 미리 타 볼 수 있는 ‘시험운전용 자동차 전시공간’을 비롯해 부품가게와 커피점까지 두루 갖추고 있었다. ‘준마’라는 차량을 제외하면 ‘휘파람’, ‘창전’, ‘쌍마’, ‘삼천리’ 등 각종 승용차와 승합차, 스포츠 유틸리티차량 등 대부분이 수동 5단 변속기 자동차들이었고 소형화물차 ‘뻐꾸기3’ 등 여러 대의 트럭을 포함해 모두 25개 차종이 전시되어 있었다.
 

▲⓵남포공장 총지배인과 함께 자동차 생산라인을 둘러보는 필자 ⓶남포공장 내부 모습. 밴 차량이 조립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⓷남포공장 북측 근로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기술 회의를 하는 모습 ⓸평화자동차 집무실에서 총지배인으로부터 브리핑을 듣는 필자 (사진 출처: 최재영 목사)

  

최신 신차들이 전시된 이곳은 여러 단체나 기관에서 한 번에 10대 이상 주문하기도하고 혹은 한 두 대씩 주문하기도 한다. 때로는 중동이나 러시아에서 해외 근로자로 파견돼 달러를 보유한 본인이나 가족들이 개인적으로 한 대씩 주문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소위 신흥 부유층들도 방문해 원하는 자동차 모델을 서슴없이 구입한다고 한다.

또한 사업상 북에 장기 체류하거나 상시 방문하는 해외동포 사업가들도 차량을 구입하고 있었으나 아무래도 가장 큰 고객층은 국가기관이나 기업소라고 한다. 그다음 고객들은 외국공관인데 현재 북 주재 대사관들과 유럽이나 중국 등 여러 나라의 무역 관계 회사들이 실제로 다양한 자동차 구입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로 인해 요즘은 수요와 공급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북 사회는 자동차가 많지 않은 사회이다 보니 장거리 이동할때나 수하물을 운반할 경우 마땅한 운송 수단이 없어 소형버스인 ‘삼천리’가 가장 많이 팔린다고 한다. 이처럼 평화자동차에서 지난 10년간 만든 다양한 종류의 차량이 현재 북 전역에 운행되고 있는데 예를 들어 ‘현재 자동차가 2만 대 운행된다고 할 경우 다섯 대 중에 한 대는 평화자동차가 만든 차량’이라고 한다.

차량 가격은 미화로 대략 1만~1만 5000달러였으며 이는 남측 차량 가격의 60~70% 정도에 불과한 가격이다. 평화자동차 상업광고도 부쩍 늘었는데 공장이 있는 남포시 지역은 물론 아스팔트로 만든 국도와 대로변 그리고 평양 시내 대로변 등에 평화자동차 광고판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특히 옥외 광고판들도 자주 보는데 광고모델로는 유도영웅 계순희 선수와 ‘휘파람’을 부른 인기가수 전혜영씨가 자동차 이름 ‘휘파람’ 때문에 전속모델로 출연해 인기를 끌고 있었다. 자동차 판매 수익금을 보면 2008년에는 가동 6년 만에 50만 달러의 수익금을 냈고, 2010년에는 5.24 대북조치의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63만 달러, 2011년은 79만 달러, 2012년에는 8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점차 증가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⓵초창기 평화자동차 전시장이 들어설 건물 모습 ⓶평양시내에 자리잡은 평화자동차 전시장 외부(상)와 내부(하) 모습 ⓷평양시내에 주차된 평화자동차 모습 (사진 출처: 최재영 목사)

  

‘평화자동차 부품상점’

평화자동차 부품점은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흥 2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 200평 규모 공간에 각종 자동차 부품들과 액세서리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지난 2007년 4월부터 영업을 시작했다는 이 부품점은 자동차를 꾸미려는 서방세계 마니아들처럼 이곳 평양의 운전자들도 자주 찾아와 구입해 자신의 차량을 개성 있게 꾸미기도 한다.

특히 부품이 필요한 운전자들은 이곳을 직접 찾아와 부품을 구입한 후 자기 손으로 직접 정비나 수리를 한다고 했다. 평양은 남측이나 서방세계처럼 화려한 액세서리를 꾸미고 다니거나 요란스러운 자동차 마니아들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웬만한 액세서리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것으로 보아 북에도 새로운 자동차 문화가 유입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그러나 안타까운 소식 하나는 이곳 ‘평화자동차平(和自動車)’의 부품상점 말고도 평양 시내에 북과 중국이 합작한 이른바 ‘평양자동차(平壤自動車’)라는 이름의 전시장과 부품상점이 영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필자가 확인해보니 ‘평양자동차’가 태동한 배경이 따로 있었다.

통일교 관계자는 평화자동차 그룹이 북에서 자동차 사업을 접은 이유에 대해 “애초부터 우리는 북측에 양도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북측이 자립할 때가 되고 이윤추가가 극대화될 무렵이 되면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해 자연스럽게 양도할 계획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여러 가지 이유를 대지만 자동차 사업을 접은 가장 큰 이유는 통일교 측에서 볼 때 수익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문 총재의 죽음을 기점으로 그동안의 수익성을 평가한 결과 크게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2009년부터 중국의 자동차회사가 북에 진출하면서 평화자동차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은 이유도 있다.

중국이 북에서 자동차 사업을 시작하면서 북 당국자들도 평화자동차 남포공장을 중국 측 회사와 합병을 하든지 아니면 아주 넘기려는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통일교는 그동안 현상 유지만 했을 뿐 평화자동차의 발전과 사세 확장을 위해 더 큰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 당국이 이런 모습을 눈여겨보며 사업 평가를 해왔고 결국 통일교 측에 사업 포기를 권유했던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현재 북은 중국 단둥의 ‘중조변경무역유한공사’와 함께 평양에 자동차 조립공장을 설립했고 2011년부터 ‘평양자동차’라는 상표로 버스와 화물차를 생산하고 있었다. 이에 평양자동차는 2013년 3월에 평양 시내에 대형 전시장을 갖춘 자동차 부품상점도 만들었고 남포가 아닌 평양에 종합자동차 조립 생산 단지도 조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