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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가미 피고 첫 공판
종교적 피해 그리고 법과 사회가 마주한 질문
현대종교 | 탁지웅 신부 sonar530@hanmail.net
2025년 12월 08일 09시 15분 입력

2022년 7월 8일, 나라시에서 선거 연설 중이던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저격, 살인하고, 총도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야마가미 테츠야(山上徹也)의 첫 공판이 열렸다. 2025년 10월 28일 나라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은 일본 국내외 언론 취재진으로 붐볐다. 이날 재판에 방청을 희망한 시민은 727명이었지만 방청석은 32석 밖에 없어 22.7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그만큼 관심이 높다는 방증이다. 

▲첫 공판을 앞두고 방청권 추첨을 기다리며 줄을 선 사람들 (출처:「요미우리 신문」)

나라지방법원, 첫 공판의 풍경

 

야마가미씨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채, 침착한 듯 무표정한 얼굴로 살인 및 총도법 위반 혐의에 대해 범행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재판의 초점은 ‘사실인정’이 아닌 ‘왜 범죄를 저질렀는가?’ 즉 동기와 책임능력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다. 첫 공판에서 검찰은 CCTV 영상과 현장 사진 등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했는데 피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화면을 지켜보았다. 배심원 재판으로 진행되는 이번 사건에서 시각 자료는 설득력 있는 증거로 작용할 전망이다.

 

언론은 이날 재판에 관해 세 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보도했다. ▲피고가 모든 사실을 인정한 점 ▲검찰과 변호인이 향후 어떤 법적 쟁점으로 맞설 것인가▲종교적 학대’라는 특수한 배경이 양형에 반영될 가능성이다.

▲검찰의 모두진술을 듣고 있는 야마가미 피고(우) (출처:「요미우리신문」)

검찰과 변호인의 입장 - ‘계획적 범행’과 ‘종교적 피해’의 경계

 

검찰은 피고가 치밀한 계획 아래 범행을 준비했고 사회적 충격이 막대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사제 총기 제작과 사용, 범행 동기 등에 대한 구체적 진술 등을 근거로 엄정한 형을 요구했다. 검찰 측은 “피고의 모친이 통일교에 빠져들게 된 불우한 삶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불우한 상황이라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도 많다”고 주장했다. 범행 당시 40대 사회인이었던 야마가미의 경우 크게 감형할 사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울러 전직 총리가 대낮에 사제총으로 피살된 사건은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매우 중대한 결과와 사회적 반향을 가져왔다”고 강조하며 피고의 성장 배경을 양형 참작 사유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피고가 범죄사실을 전면 인정한 점을 전제로, 모친의 통일교 신앙과 고액 헌금으로 인한 가정 파탄, 그로 인한 정신적, 경제적 절망이 범행의 배경이 됐다고 맞받아쳤다. 이를 종교적 학대로 규정한 변호인단은 피고의 내면적 동기와 환경을 감안한 정상참작을 호소했다. 또한 범행에 사용된 사제총에 대해서도 총검법에서 규정된 ‘포’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그에 맞는 양형이 선고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변호인단은 ‘발사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변론했다. 일본법에서 발사죄가 인정되면 최고 무기징역을 받을 수 있다. 변호인 측은 이에 무기 등 제조법 위반죄에 대해서도 무죄를 주장했다.

 

야마가미의 모친은 그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에 입교했다. 남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사망 보험금과 자택을 팔아 얻은 자금 등 약 1억 엔을 헌금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 과정에서 가정이 붕괴되고 파산했지만, 모친은 신앙을 계속 이어갔다. 야마가미씨는 대학 진학까지 포기해야 했다. 이에 대해 야마가미씨는 수사 과정에서 “헌금 때문에 생활이 파탄 났다. 어머니의 헌금을 원망하던 형이 자살한 것을 계기로 가정연합 최고 간부를 살해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으며, “화염병을 만들어 한학자를 노렸지만 실패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통일교와 깊은 관련이 있던 아베 전 총리를 노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3시간 넘게 진행된 야마가미 재판은 오후 5시 15분 정도에 끝났다. 이와 같은 양측의 입장 차이는 “법이 개인의 고통과 사회적 구조적 문제를 어디까지 포용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향후 재판 일정과 핵심 쟁점

 

다수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전체 심리는 약 19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증인신문에서는 현장 목격자, 경찰 관계자, 피해자 측 증인을 비롯한 피고의 모친, 여동생, 영감상법대책변호사연락회 회원, 종교학자, 정신감정을 의뢰한 의사가 나설 예정이다. 2026년 1월 21일경으로 선고가 예정된 가운데 예상 향후 쟁점은 다음과 같다.

 

① 가족 증언의 법적 평가: 모친의 종교 생활이 피고의 범행에 영향을 미쳤는가? 

② 정신감정: 피고의 책임능력 유무와 감정 결과의 반영 범위 

③ 동기의 법적 의미: ‘종교적 피해에 대한 복수심’이 감형 사유로인정될 수 있는가? 

④ 총기 사용의 법적 구성: 사제 총기와 격발이 형법상 ‘발사죄’에해당하는가?

 

제2차 공판은 10월 29일 오후 1시 10분, 나라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이날 피고 야마가미는 안경을 쓰고 재판정에 들어섰다. 검찰 측은 피고의 트위터(현재 X)와 검색 기록을 증거로 제시했다. 2022년 6월 트위터에서 통일교의 행사에 “참가할 수 있을까?”라는 메시지를 보냈던 사실과 사건 5일 전 “자민당 선거 유세 일정”을 검색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컴퓨터에는 ‘총’, ‘총격’에 관한 검색 기록이 남아 있었다. 2022년 4월 ‘밀조(허가없이 몰래 만드는) 총’, ‘수제 권총 만드는 법’, ‘산탄총 속도’ 등을 검색했고 사건 4일 전인 7월 4일 ‘권총’, ‘한 손으로’, ‘자세’ 등을 찾아본 것으로 확인됐다.

 

제3차 공판은 10월 30일에 열렸다. 이날 재판에서는 증인신문이 이어졌다. 이날 첫 번째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은 사건 직후 피고를 제압한 나라현경의 경찰관이었다. 그는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회상하며, 제압된 피고가 “(아베 전 총리가) 맞았나?”라고 말한 사실을 증언했다.

 

증인은 당시 나라현경 나라서 소속 경찰로, 참의원 선거 유세를 위해 방문한 아베 전 총리의 경호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쾅”하는 폭발음이 들렸고, 돌아보니 차도 중앙에 피고가 서 있었으며 그 주변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제압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피고에게 돌진했다. 피고는 양손에 사제총을 들고 있었고 첫 발사 후 3초 만에 두 번째로 방아쇠를 당겼다. 직후 증인은 피고의 다리를 잡고 넘어뜨려 다른 경찰관들과함께 제압했다.

 

피고는 저항하지 않았지만, 인도를 향해 이동하는 중 “(아베 전 총리가) 맞았나”라고 중얼거리며 그의 상태를 신경 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경찰관 증인 신문 후 이어진 검찰 측의 증거조사에서는 사건에 사용된 사제총이 법정에 제출됐으며, 검사가 그 총을 들어 재판원들에게 보여줬다. 

 

제4차 공판은 11월 4일 열렸다. 이날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한 남성 경찰관은 탄환의 궤도를 조사한 인물로, 피고가 쏜 탄환이 아베 전 총리 근처에 있던 관계자의 머리를 스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증언했다. 이 경찰관은 탄도 분석 결과를 설명하며 “상황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이 피탄될 가능성도 컸다”고 말했다. 검찰 측은 증거조사에서 아베 전 총리의 몸속에서 발견된 탄환 1발을 재판원들에게 제시했다. 또 수사보고서 등을 근거로, 현장 주변의 깃발이나 선거 선전차에서 여러 개의 탄흔이 발견된 사실과 아베 전 총리가 착용하고 있던 국회의원 배지가 총격으로 파손된 사실도 밝혔다.

 

제5차 공판은 11월 5일 열렸다. 이날 피고의 자택을 수색한 경찰관이 증인으로 출석해 자택에서 사제총 6정, 탄피, 레이저 스코프 외에도 용기에 가득 담긴 화약이 발견되었다고 증언했다. 경찰관은 “폭탄인 줄 알았다”며 “테러리스트의 아지트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또한 실내에서는 살인에 관한 여러 서적과 자민당의 팸플릿도 발견되었다고 증언했다.

 

▲공판을 앞두고 경찰들이 주위를 경비하고 있는 나라지방법원(일본기독교단 홈페이지)

한국에서의 한학자 총재 구속과 교단 수사

 

한편, 2025년 9월 한국에서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에 대한 특별검찰수사가 급진전하며, 한학자 총재가 구속됐다. 교단 지도부와 정치권의 유착, 자금 유용 및 불법 로비 의혹 등이었다. 이로써 통일교는 단순한 종교단체를 넘어 정치·경제적 권력과 얽혀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로 평가된다. 

 

한국의 수사로 교단 지도층의 법적 책임이 본격화되자, 일본 내 피해자 단체와 언론은 피해자 구제 및 자금 흐름 해명의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이와같은 한국 수사 결과는 일본 내 여론과 정책에도 적지 않은 파급을 미치고 있다. 한국의 구속 보도가 일본 정치권과 교단 관계를 다시 환기시켰으며, 투명한 조사결과 공개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또한 한국 수사 자료가 일본의 피해자 구제 및 해산 명령 근거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으며, 헌금 반환 운동이 구체화 되고, 일본 피해자들이 법적 대응을 강화하면서 피해자 구제 대책 마련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고등학교 시절 야마가미 테츠야씨

재판이 던지는 물음 - 사회가 직면한 ‘종교와 책임’

 

야마가미의 재판은 ▲개인의 복수심과 절망이 어떻게 폭력으로 변하게 되었는가? ▲또한 종교문제로 인해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제적 고통과 사회적 고립이 어떻게 범죄의 배경이 되었는가? ▲종교단체는 과도한 헌금과 강제적 신앙 행위 등 자신들의 반사회적 범죄에 의해 피해 입은 사람들에게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통일교와 정치권과의 관계가 재조명되면서, 향후 정치자금 규제, 종교법인 투명성 강화 등의 제도개선이 요구되고 있는데 정치와 종교는 어디까지 분리되어야 하는가? 등 단순한 흉악사건의 처리를 넘어, 현대 일본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거울로 작용하고 있다.

 

앞으로 예정된 모친의 증언과 정신감정 결과, 그리고 통일교 해산과 관련된 심리의 최종 판단은 이 사건을 ‘한 개인의 범죄’에서 ‘사회 전체의 성찰’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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