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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가미 테츠야 공판에 드러난 통일교, 가족, 그리고 절망
현대종교 | 탁지웅 신부 sonar530@hanmail.net
2026년 01월 12일 08시 30분 입력

2025년 가을, 일본에서 벌어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피격 사건 재판은 단순한 정치적 테러나 개인의 범죄를 넘어서는 매우 무겁고 구조적인 질문을 드러냈다. 본지는 지난 호를 통해 11월 5일 나라지방법원에서 열린 제5차 공판까지 소개했다. 이번 호에서는 12월 4일 제14차 공판까지의 모습을 일본 언론의 기사를 바탕으로 재구성하고 앞으로의 전망을 내놓고자 한다.

11월 6일 제6차 공판 이후, 증인과 피고의 증언이 잇따르면서 법정은 ‘살인’이라는 범죄 그 자체보다 훨씬 깊고 복잡한 ‘배경’과 ‘원인’을 따지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 재판은 야마가미 테츠야(山上徹也)라는 한 남자가 총을 들기까지 쌓였던 절망의 기록이었다. 그리고 일본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한 종교, 가족, 경제, 그리고 인간의 고독이라는 상처 전체를 보여 주는 파노라마다. 법정에서 드러난 사실과 그것이 의미하는 현대 일본의 어둠을 살펴본다.

정황 판단으로 전환-제6차 공판 이후

2025년 11월 6일 열린 제6차 공판에서는 검찰 측 증인(과학수사연구원 등)이 법정에 나와 피격에 사용된 수제총의 위력, 속도 실험 결과 등을 보고했다. 단순한 절차형 공판이 아니라 위력, 계획성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를 제시하는 자리였다. 또한 재판부는 기소 사실 확인에만 머무르지 않고 “왜 이런 범행에 이르렀는가”라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검찰과 변호사, 사회와 개인, 종교와 가족 등 여러 축이 서로 얽히는 심리로의 전환이었다.

이 변화는 방청 희망자 증가나 언론의 관심을 넘어, ‘단순한 암살 사건이 아니다’라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상징한다. 법정의 역할이 ‘범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자리’를 넘어 ‘사회가 지닌 상처와 책임을 드러내는 자리’로 바뀌었다. 재판부는 이 시점부터 피고의 성장 환경, 가족 해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과의 관계 등을 중심으로 정황 심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증언-헌금과 가정 파탄

11월 13일 제7차 공판에서는 피고인의 어머니가 처음으로 증인석에 섰다. 그녀는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지금도 그 단체(통일교)를 믿고 있다”, “아들을 위해서라는 생각에 많은 헌금을 해왔다”고 말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피고인의 어머니는 통일교 입교 후 약 1억 엔의 헌금을 바쳤다. 이는 경제적 파탄, 가정의 궁핍, 그리고 일상의 붕괴로 이어졌다. 모든 대가는 ‘헌금’이라는 단어에 응축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증언은 정치, 사회 문제로 거론돼 온 종교 단체의 경제적 압력과 그것이 가정을 어디까지 파괴할 수 있는지를 극도로 현실감 있게 보여 주었다.

이 증언으로 인해 재판은 ‘가해자 가족의 증언’을 정식 증거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과거의 가정 파탄, 그것이 한 사람을 어떻게 몰아붙였는가’라는 문제를 사회가 정면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법정이 문제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피고 측 변호인은 이 증언을 통해 ‘가정이 장기간에 걸쳐 종교적 착취 피해를 입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피고의 절망과 분노를 정상참작의 핵심 요소로 제시했다.

여동생의 증언-어린 시절의 방치와 고립
 

▲일본의 온라인 청원 서명 사이트 ‘change.org’에 올라온 야마가미 테츠야씨의 감형을 요구하는 서명

 

이어진 11월 18일 제8차 공판에서는 피고인의 여동생이 증인으로 나섰다. 그녀는 어머니가 통일교에 몰입하면서 벌어진 실제 가정 붕괴의 모습을 생생하게 진술했다. “어머니는 우리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통일교에 희망을 걸었지만,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증언한 그녀의 말은 담담했지만, 내용은 무거웠다.

경제적 궁핍, 신앙에 몰두한 부모, 방치된 아이들. 이 모든 것이 어린 시절부터 형제들의 마음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상처는 성장한 후에도 치유되지 못한 채 절망과 고립의 토양이 됐다. 또한 최근에는 어머니와 사실상 단절된 채 지내왔음을 밝히며, 피고가 사회적·정서적으로 고립되어 살았던 현실을 뒷받침했다.

이는 피고의 심리 상태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됐고, 재판의 초점이 점차 ‘개인의 범죄’에서 ‘구조적 비극’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 증언으로 재판은 단순한 가정사 수준을 넘어 “종교와 가족, 경제와 아동학대”라는 복합적 문제를 드러냈다.

변호사 증언이 던진 묵직한 질문의 9차 공판

11월 19일 진행된 제9차 공판은 이전 기일과 달리 법정 안에 전국영감상법대책변호사연락회 관계자 2명을 포함한 변호인단 측 증인들이 채택되어 있었다. 증인석에 선 이는 통일교 문제 및 피해자 상담을 전문으로 해온 베테랑 변호사였다.

그는 피고의 범행 동기와 배경을 “단순한 정치적 분노가 아니라 누적된 구조적 폭력의 결과”라고 단언했다. 이어 증인은 “통일교의 가정 파괴 사례를 수십 건 다루어 왔다. 이 사건은 제대로 개입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사건”, “이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방치된 문제의 귀결”이라고 진술했다.

“과연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변호사의 질문은 재판정 안에 긴 침묵을 만들었다. 피고 야마가미는 증언 내내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변호사가 정치권과 종교 단체의 유착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순간 갑자기 고개를 들고 변호사의 진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번 공판이 특히 주목받은 이유는, 증인이 국가의 책임을 공개적으로 제기했기 때문이다. 증인은 “피해자 가족은 수년간 도움을 구해 왔다. 그런데 행정도, 경찰도, 정치권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 실패가 지금 법정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만든 것”이라고 꼬집었다. 공판을 지켜본 방청객들 사이에서는 “이 재판은 야마가미 개인을 넘어서 일본 사회 전체에 대한 질문”이라는 평가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피고인의 첫 증언-“살아 있을 가치가 없었다”
 

▲변호인 측의 질문에 답하는 피고 야마가미 (출처: 「요미우리신문」)

 

11월 20일 제10차 공판에서 피고인은 처음으로 증언대에 섰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가 한 말은 단순한 동기 설명을 넘어 그가 어떤 절망 속으로 몰렸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피고인은 “어머니가 신앙에 빠지고 나서 내 인생은 끝났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45살까지 살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느냐”라는 질문에는 “나는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고 느꼈다”고 답했다.

이 고백은 단순한 복수나 분노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 가치를 상실한 한 남자의 깊은 슬픔이자 절규였다. 단순한 분노가 아닌 ‘소멸 욕구’가 있었음을 명확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이 증언은 종교 피해가 단지 경제 문제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 붕괴, 가족 파탄, 사회적 단절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 준다. 법정은 단순한 범죄 심리를 넘어 한 인간의 인생 붕괴를 바라보는 자리가 됐다.

검찰의 추궁-계획성과 “사회적 메시지”

11월 25일 제11회 공판에서 피고는 또 한 번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는 특히 형의 자살과 함께 아베 전 총리를 겨냥한 이유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형의 죽음을 알았을 때의 심경을 묻자 그는 “충격이었다. 형이 많이 힘들어했지만, 도와주지 못했다”고 짧게 답했다. 그 말에는 가족 전체가 무너진 집 안에서 살아남은 자의 깊은 자책이 묻어 있었다.

또한 아베 전 총리를 표적으로 삼은 이유를 묻자 통일교 관련 단체의 행사에 보낸 영상 메시지를 언급하며 “교단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피고는 애초의 표적은 통일교 간부였고, 아베 전 총리는 그 다음이었다고 증언했다. 통일교 간부가 일본에 오지 않자 대신 아베를 노렸다는 것이다.

이는 이번 사건이 특정 개인에 대한 사적 원한이 아니라 종교 단체, 그리고 사회 전체에 대항하는 “절망과 항의의 상징 행위”였다는 논리다. 이 주장이 배심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그리고 법정에서 드러난 복잡한 감정과 구조적 배경이 양형 판단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12월 2일 제12차 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의 배경이 범행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피고는 피격 전날 피고가 종교 관련 시설에 총기 시험 발사를 했던 사실, 총기를 여러 정 제작했던 이유, 간부를 공격하려면 한 정으로 부족하다고 말한 점 등을 근거로 계획성과 전달하고자 했던 사회적 메시지를 입증하려 했다.

제13차 공판-정치와 종교, 그리고 ‘구조적 분노’가 법정을 흔든 날
 

▲제13차 공판에서 피해자 참여 제도를 통해 검찰 측 관계자로 모습을 드러낸 아베 아키에씨(출처: 「NHK뉴스」)

 

2025년 12월 3일, 나라지방법원에서 열린 제13차 공판은 단순한 형사 절차를 넘어, 일본 사회의 균열과 집단적 질문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순간으로 기록된다. 이날 법정에는 사건 이후 처음으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배우자인 아베 아키에(安倍昭恵)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피해자 참여 제도를 통해 검찰 측 관계자로 참석했으며, 발언은 없었다. 하지만 그 존재 자체가 의미를 지닌다. 법정은 갑작스레 “정치적 살해 사건” 위에 놓인 인간적 상실과 종교적 피해, 국가 권력의 그림자를 한 공간에 끌어들였다.

피고인은 이 재판을 통해 다시 한번 기존의 주장을 반복했다. 과거 통일교로 인해 가족이 경제적·정서적으로 붕괴했고, 자신의 청년기가 파괴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아베 전 총리가 정치권에서 통일교와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인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표적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단순한 개인적 원한을 넘어, 사회 구조에 대한 복수라는 서사를 강조한 것이다.

또한 유족의 등장으로 법정의 무게 중심이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공판의 핵심은 아키에씨의 등장이다.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자체가 발언이 되었다. 피해자의 존재가 법정에 들어오는 순간, 이 사건은 ‘사회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라는 기존의 차원을 넘어서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라는 감정적 층위를 동반하게 된다. 모든 사법 판단은 바로 이 지점에서 흔들린다.

범죄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피해자의 고통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종교적 피해는 범죄의 감경 사유가 될 수 있는가? 배심원(재판원)들이 반드시 마주해야 할 질문이었다.

또한 13차 공판은 하나의 모순을 드러내었다. 사회적 정의와 법적 정의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고를 지지하는 목소리, 특히 젊은 층과 종교 2세 문제를 경험해 온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는 사회가 외면한 피해를 대신 고발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존재한다. 반대로, 피해자 유족과 정치권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이자 법의 파괴”라는 단호한 비판이 이어진다. 이 두 관점의 충돌은 재판이 아니라 일본 사회 그 자체의 균열이다.

제14차 공판-유족에 대한 최초의 직접적 사죄

2025년 12월 4일 제14차 공판에서 피고는 처음으로 피해자 유족에게 사죄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살인은 잘못이었다”고 밝히면서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회가 통일교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것은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은 피고가 자신의 행위를 사회적 사건으로 인식하고, 스스로를 “변화의 계기”로 자리매김하려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로써 재판은 개인의 죄를 넘어서 “사회에 대한 질문”의 장으로 바뀌었다.

재판이 던지는 질문

이번 공판을 통해 드러난 문제는 “한 사이코패스의 암살”이 아니다. ▲종교 단체의 과도한 헌금은 어디까지 개인과 가족을 파괴할 수 있는가 ▲경제적·정신적 압박이 한 청년의 인생을 얼마나 몰아붙일 수 있는가 ▲사회가 이러한 피해를 ‘개인 문제’로 방치할 때의 대가는 무엇인가 ▲법과 윤리, 양형 판단에서 “구조적 피해자”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등 사회를 향한 질문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사건은 일본 사회 전체의 상처를 드러낸다. 피고 한 명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국의 최근 상황-통일교 문제와 정부 대응

한국에서도 같은 종교 단체 문제가 주목받고 있다. 2025년 12월 2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종교 단체의 정치에 대한 “조직적인 개입”을 문제 삼으며, “정교분리 원칙 위반 시 해산 명령 검토”를 지시했다. 이는 일본 재판의 파급력을 인식한 조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종교 단체들은 “종교 탄압”, “신앙의 자유 침해”라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많은 교회와 단체가 “비법인사단”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정부 해산 명령의 실효성과 법적 정당성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서 벌어진 비극과 재판은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도 전체 구조를 되돌아보게 하는 문제다. 종교의 자유와 자유의 남용,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개인 모든 영역에서 재고를 요구하는 질문이다.

공판의 쟁점-정치와 종교, 그리고 구조적 문제

검찰 측은 여전히 계획적인 살인, 공공의 안전 위협, 국가의 중대 범죄라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 변호인단은 정상 참작을 넘어서 ‘사회적 과실’을 판결 과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의 재판에서 드러난 것은 단순히 “종교 단체와 신도”의 문제가 아니다. 종교, 경제, 정치, 개인의 인생 등 많은 것이 얽힌 구조다. 어머니의 헌금은 그녀 나름의 “구원의 희망”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가족 분열, 아동 방치, 빈곤, 정신적 붕괴라는 “보이지 않는 희생”을 낳았다. 이런 구조 안에서 정치인과 종교 단체의 관계는 단순한 윤리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불신, 피해의 연쇄, 고립과 절망, 그리고 최악의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한다. 법정에서 제기된 것은 종교 피해를 “개인 책임”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현실이며, 사회적 책임의 문제이다.

총리를 지낸 인물이 선거 기간 중 총격을 당해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이 사건은, 형의 무게가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변호인 측은 가정 파탄과 종교적 피해를 기반으로 한 감형 논리를 최대한 부각하고 있다. 선고는 2026년 1월 21일이다.

이 재판의 판결은 단순히 한 개인의 형량을 넘어, 일본 사회가 종교적 착취와 가족의 취약성을 어디까지 공적 영역 안에서 판단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지표가 될 것이다. 어떤 결론이 나오든, 일본 사회는 새로운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고 이번 재판은 일본 사회에 장기간의 후폭풍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재판이 남긴 사회적 숙제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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