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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S 탈퇴 전후, '같은' 사진, '다른' 생각
글·사진 최한결(가명)
2026년 03월 30일 08시 42분 입력

 

탈퇴 전 메시아(정명석)가 쓴 글과 그림은 신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말,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글씨체, 그리고 신의 구상을 받아 그려낸 그림이라고 생각해서, 그의 그림이나 사인을 받는 것이 인생 최고의 목표였다.

탈퇴 후 탈퇴하고 보니, 이렇게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 같고, 그림 옆에 쓴 글이나 말씀도 전부 했던 말들, 반복되는 뻔한 말들일 뿐이다.

 

 

탈퇴 전 ‘성지 사역’이란 이름으로 월명동에 가서 일을 하곤 했다. 힘들었지만 보람되고, 이를 통해 복을 받고 ‘의’를 쌓는다고 생각해서 기쁜 마음으로 하려고 노력했다.

탈퇴 후 말 그대로 ‘노동 착취’였다. 돌을 나르는 일은 그야말로 위험한 일인데, 어린 20대 여자아이들이 그 일에 투입되었다. ‘성지 사역’이란 말은 그저 ‘가스라이팅’에 지나지 않았다.

 

 

탈퇴 전 월명동에서 나오는 ‘월명수’가 몸과 영혼을 깨끗이 하고, 고치지 못하는 병도 낫게 한다고 믿었다. 게다가 여자들은 피부도 좋아지고, 예뻐지게 해준다고 믿으면서 소중히 여기며 마시곤 했다.

탈퇴 후 아무것도 아닌 물을 돈 주고 사 먹었다는 것에 화가 나고, 스스로 정말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월명수를 마시기 위해 쓴 돈이 아까울 뿐이다.

 

 

탈퇴 전 주님(정명석)이 앉았던 의자는 길이길이 남을 ‘역사적인 의자’라고 생각했다. 감히 앉을 생각도, 만져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탈퇴 후 그저 ‘성범죄자’가 앉았던 의자일 뿐이다. 저 의자도 참 비싸 보이는데, ‘신도들이 낸 헌금으로 저런 쓸데없는 의 자도 열심히 사들였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탈퇴 전 ‘흰돌교회’는 정조은이 목회하던 곳으로, 그 교회에 다니는 것은 모든 신도의 꿈이었다. 교회 자체도 정말 멋있게 꾸며서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님의 역사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언젠가 꼭 흰돌교회의 신도가 되고 싶었다.

탈퇴 후 ​ 흰돌교회를 다녔더라면 더 많은 헌금을 내고 살았을 것이며, 얼마나 심각한 가스라이팅을 받으며 살았을까 싶다. JMS에서는 헌금을 내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절대 아니다. 나는 다른 지교회를 다녔지만, 수백만 원의 건축 헌금을 냈다.

 

 

탈퇴 전 JMS는 늘 ‘조건’을 세우라고 했다. 기도하고, 금식하고, TV나 휴대폰 등 미디어를 보지 않는 조건을 세우라고 했었다. 그것이 나를 깨끗하게 하고, 홀로 죗값을 치르고 있는 주님(정명석)의 짐을 함께 짊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탈퇴 후 스스로 자신에게 세뇌하도록 만든 시스템에 불과하다. 그리고 저 ‘조건’을 지키지 못하면 자책하게 만들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에 들어가게 만드는 것이다.

 

 

탈퇴 전 주님(정명석)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마치 나 개인에게 주는 편지를 받는 것처럼 기쁘고 행복했다. 주님은 바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우리를 생각하며 편지를 써주신다고 생각하며 감사했다.


탈퇴 후 이 글이 정말 정명석이 쓴 것이 맞는지부터 의심이 든다. 그리고 이 역시 늘 하는 말이 비슷하다. 그래서 당시 탈퇴하기 전에도, 편지글을 받을 때 별 감흥이 없을 때도 있었지만, 억지로 기쁜 척, 감사하고 행복한 척하느라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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