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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 진리교 지하철 사린 사건 21년 후
탁지웅 신부 sonar530@hanmail.net
2016년 05월 25일 19시 13분 입력
▲ 지난 3월 20일 가스미가세키역에서 진행된 사린 사건 추도식 (출처: 니혼텔레비젼 갈무리)

옴 진리교가 일으킨 지하철 사린 사건 21주년 추도모임이 지난 3월 20일 도쿄 메트로 가스미가세키역(도쿄도 치요다구)에서 열렸다. 21년 전 사건이 일어난 가스미가세키역에서 역무원 21명이 묵도를 했다. 오오타 가스미가세키 역장은 “고객의 귀중한 생명을 지킨 선배님들의 행동을 계승하여 경비경계를 해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동역에서는 당시 직원 2명이 사망했다. 아베 신조 총리도 방문해 헌화대에 백합꽃을 바쳤다. 아베는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결코 사린 사건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비열하기 짝이 없는 이러한 사건을 다시 일으켜서는 안 된다. 이러한 신념으로 테러를 미연에 방지하는 대책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 역무원이었던 남편을 잃은 다카하시 시즈에씨 (출처: 니혼텔레비젼 갈무리)

역무원이었던 남편을 잃은 다카하시 시즈에씨는 헌화대에 꽃을 바치며 “21년이 지났다고 해도 여기에 오면 어제 일처럼 사건 당일이 기억난다. 역시 슬픔과 분노는 그 날 그대로다. 그리고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도 옴 진리교 신도들이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 지난 3월 13일에 열린 “사린 사건 유족들 심포지엄 ‘사형’을 말하다” 모임 (출처: 니혼텔레비젼 갈무리)

지하철 사린 사건 피해자 모임이 ‘사형’이란 주제로 3월 13일 도쿄 도내에서 열렸다. 곧 현실이 될 옴 진리교의 전 대표 아사하라에 대한 사형 집행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 저널리스트 에가와 쇼우코씨가 발표하고, 오가와 유우지 변호사는 사형제 폐지를 호소했다. 그리고 피해자 모임의 대표 간사 타카하시 시즈씨는 “결론이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건을 모르는 젊은 사람도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모임에서는 피해자와 유족의 의견을 모은 다카하시 시즈에씨의 영상이 상영되었다. 영상은 “사형을 집행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사형수는 21년이 지난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그것을 듣지 않은 채 사형을 집행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의문으로부터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카하시씨는 지난 1월 피해자와 유족 등 총 88명과 인터뷰를 하고 모든 영상을 기록했다. 타카하시씨는 “가능하다면 사형수를 만나 직접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라고 모두에게 질문하였다고 한다. 출근길에 피해를 당한 이토우 사카에씨는 “한 가지만 묻고 싶다. 왜 이런 사건을 일으켰는지 묻고 싶다”고 하였다. 한편 동생이 큰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아사카와 카즈오씨는 “사형수와 대면하는 것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싫다. 얼굴도 보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많은 피해자들은 빨리 사형을 집행하도록 요구했지만 종신형의 도입에는 찬반이 엇갈렸다. 아사카와씨는 공판에서 아사하라가 아닌 사형수들의 사형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피해를 당한 것과 같이 또 다른 살인에 동조하는 기분이 들 것”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인터뷰를 마친 다카하시씨는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며 “상당히 어려운 주제라고 느낀다”고 밝혔다.

▲ 위령패 (니혼텔레비젼 갈무리)

사형수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 61세)는 1984년 옴 진리교의 전신인 ‘옴의 모임’이라는 요가 서클을 시작으로 아사하라의 ‘공중부양’이 오컬트계 잡지에 소개된 후부터 종교색을 더해갔다. 1987년 ‘옴 진리교’가 탄생하며, 아사하라는 스스로 해탈 초능력을 지닌 영적 지도자라며 젊은이를 중심으로 신도 수를 늘렸다. 1989년에 정식 종교 단체로 등록하며 무리한 포교로 문제를 일으켰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사카모토 츠츠미(坂本堤) 변호사는 옴 진리교에 대해 종교법인 인가 취소 등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준비했다. 이에 아사하라는 “교단 발전의 걸림돌이 된다”며 신자들에게 살인을 명령했고, 1989년 11월 6명의 신자들이 사카모토 변호사 일가를 살해했다. 시신은 각각 다른 곳에 묻혀 범행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1995년 지하철 사린 사건 이후 시신이 발견되고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1990년에는 진리당을 결성해 중의원 선거에 아사하라를 포함한 25명이 출마하였다. TV나 신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여러 차례 출연하여 지명도를 높여 갔지만 전원 낙선하면서 공탁금도 몰수되고 옴 진리교를 탈퇴하는 신도들이 속출했다. 옴 진리교는 “아마겟돈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옴 진리교가 없으면 살아날 수가 없다”며 위기감을 부추겼다.

▲ 1995년 3월 20일 당시 사건 영상 (출처: 니혼텔레비젼 갈무리)

그런 가운데 아사하라는 일본을 전복시키기 위해 사린을 제조하는 등 여러 사건을 일으킨다. 1993년부터 시작된 사린을 이용한 범행은 모두 미수에 그쳤다. 하지만 1994년 6월에 사린이 뿌려져 8명이 숨지고 약 660명이 중경상을 입은 마츠모토 사린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이렇게 궁지에 몰린 옴 진리교는 위와 같이 큰 사건을 일으키며 옴 진리교에 대해 비판적인 인물들에 대한 살인을 계획하고 급기야 1995년 3월 20일 오전 8시경 지하철 사린 사건을 일으켰다.

도쿄의 도심을 달리는 마루노우치선, 히비야선, 치요다선의 지하철에 맹독성 신경가스인 사린을 뿌려 13명이 숨지고 약 630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린은 무색무취이고 독성은 청산가리의 약 500배이다. 1988년에 일어난 이란 - 이라크 전쟁에서 사담후세인 정권이 독가스 등의 화학기를 사용했다고 하지만 대도시 주민들에게 화학 무기가 사용된 것은 처음이었다. 범행을 일으킨 건 옴 진리교였다. 사린 사건으로 192명이 기소되었고 13명은 사형이 확정되었다. 이 가운데 지하철 사건으로 사형이 확정된 것은 아사하라를 비롯한 1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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