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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의 심리분석 (2)
변상규 교수 mrmad@hdjongkyo.co.kr
2016년 07월 29일 21시 20분 입력

▲ 변상규 교수
서울 총신대학교 외래교수
코스타 강사
변상규 대상관계연구소 소장

교주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병리적 성격의 중요한 특성은 바로 자기애적 인격장애라 할 수 있다. 이 인격장애는 어떤 특성이 있을까? 여러 자료들을 살펴볼 수 있겠지만 구체적으로는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을 들 수 있다. 이 자료는 정신질환에 관해 진단할 수 있도록 고안된 관련 기준들을 총칭하는 정신질환 분류법이다. 이를 바탕으로 교주의 심리를 분석해보면 맨 먼저 등장할 수 있는 주제로 자기애적 인격장애라는 항목을 들 수 있다. 그 내용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자.

1. 자기애적 인격장애를 가진 자들의 특성
첫째로 굉장히 자기중심적이다. 과대적이고 과시적인 요소가 있다. 늘 자기자랑, 자기성취에 대한 자랑이 심하며 정서적인 변동 역시 심하다(일종의 조울증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너무 기쁠 때는 자기감정에 심취한다. 이런 멘트를 날리면서 말이다. “아! 이렇게 기쁜 것을 다른 사람은 전혀 모를 거야” 그러다 맥없이 꺼진다. 마치 바람 빠진 애드벌룬 같이 말이다.

둘째로 굉장한 환상(Vision으로 둔갑된)을 가지고 산다. 이들은 항상 무한한 성공, 영리함, 자기의 재능이나 지능, 외모에 대한 욕심과 야망과 환상이 있다. 이것이 극단적으로 나가면 종교적 형태까지 띠게 된다.

셋째로 자신은 특별한 존재이기에 특권층과 교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넷째로 타인으로부터 과도한 찬사를 요구한다. 고로 이 심리적 병은 청중 없이는 못 사는 병(病)으로 알려져 있다. 여자의 경우 말 한마디를 해도 자연스럽게 하기보다는 예쁘고 재주 있게 한다. 그런 말 뒤에 숨은 감정은 “내가 얼마나 예쁜 줄 알고 있어요? 나 좀 봐주세요. 나를 칭찬해주고 찬사와 감탄으로 봐 주세요”이다.

다섯째로 대인관계가 착취적, 조종적이다. 사람을 이용하려 든다. 그에게 타인은 자기의 필요에 의해 봉사하는 환상에 불과하다. 타인을 고유한 존재 즉 「Being」으로 보지 못한다. 이를테면 사이비종교의 교주나 독재적인 지도자들은 교인들이나 국민들을 자신과 같은 인격이요 개별화된 존재로 보지 않고, 철저하게 위장된 자기의 영광과 과대주의를 위해 존재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그러니 착취적인 특성이 반드시 드러나게 되게 되는 것이다.

여섯째로 공감(Empathy)능력의 결핍이다. 이것은 자기애적 성격을 지닌 사람들의 결정적 특징이다. 이들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능력이 근본적으로 결핍되어 있다.

일곱째로 질투와 질시가 강하다. 좋은 것을 보면 마구 짓밟고 파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정서적으로는 자기(Self)가 파편화(破片化)되고 해체되는 느낌을 갖는다.

여덟 번째로 꿈을 꾸면 무한히 깊은 심연으로 떨어지는 꿈을 꾸곤 한다. 커다란 그 무엇인가에 압도당하는 꿈을 꾸기도 하며 꿈속에서 자신은 매우 왜소하게 나타난다.

아홉째로 정서가 막연하고 산만한 형태로 마냥 힘이 들고 무기력해지며 감정적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정체성에 대한 막연함과 공허감이 있다. 이런 무력감, 공허에 대한 도피형태가 ‘중독’으로 나타난다(알코올, 마약, 게임, 성-Sex, 종교 중독같은). 중독에는 언제나 짜릿한 쾌감이 동반된다.

열 번째로 자신의 의견이나 목적이 좌절될 때는 분노보다 격노(Rage)반응을 나타낸다.

이 중에서 5가지 이상의 증세가 반복된다면 그 사람은 자기애적 상처를 넘어 자기애적 인격장애의 특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마 독자들 중에는 “어? 이거 내 이야기인데”라고 당황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들 모두가 어느 정도 자기애적인 특성을 갖고 있기에 몇 가지 이런 증상이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교주가 되는 사람들의 성격, 즉 교주적인 사람들의 성격에 이상의 특성들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런 증세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그야말로 교주들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증세들 중 자기애적 인격장애의 핵심적인 특징 5가지를 뽑아 상세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굉장히 자기중심적이다. 과대적이고 과시적인 요소가 있다. 늘 자기자랑, 자기성취에 대한 자랑이 심하다. 정서적인 변동이 심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으로 태어나고 자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차 세상에 나를 맞추려 하지 나에게 세상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대인관계를 통해 예의와 관계를 배우며 성숙해 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발달 특성이다. 그런데 자기애적 인격장애자는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감보다 자기 기분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들에게는 자기 기분이 하나님이다. 교주적인 사람은 늘 자신감에 넘쳐있는 듯 보인다. 그에게 좌절이나 패배감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일반적으로 카리스마가 있다고 하지만 카리스마라는 말을 그런 사람에게 적용할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카리스마는 그리스어로 은사, 재능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카리스마에서의 카리스는 “기쁨”이라는 뜻이다. 즉 자신이 무슨 일을 할 때에 기쁨이 넘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요 은사라는 말이다. 기쁨이라는 말도 누군가 말했듯 “기(氣)가 뿜어져 나오는 것”에서 기인된 말이라고 한다. 만들어낸 말이라 해도 그럴듯하다. 피겨 스케이팅하면 김연아 선수가 떠오른다. 그녀에게 국 · 영 · 수 공부만 시켰다면 지금 같은 세계적 스타가 될 수 있었을까? 그녀에게 음악이나 미술, 체조를 시켰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를 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자기애적인 사람들은 때로 카리스마 있게 보이지만, 사실은 나르시시즘 즉 자아도취에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을 지나치게 확신하면 신념이나 자존감이 약한 사람들은 자아도취에 확고하게 빠진 사람들 주변에 몰려든다. 마치 여름에 불을 켜면 등 주위에 불나방들이 달려드는 것과 같이 말이다. 추종자들은 귀가 얇은 사람들이다. 세상말로 줏대가 없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들은 리더가 되기에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람들 위에 자기애적 인격장애 보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 왜 자기애적 인격장애자는 그렇게 과대적이며 과시적일까? 정말 자랑할 것이 많아서일까? 그렇지 않다. 이런 분야를 자세하게 연구한 사람이 바로 자기 심리학자로 알려진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이다. 코헛은 우리 정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자기(self)의 출현과 발달에 대해 세심하게 연구한 학자이다.

코헛에 의하면 모든 아기들은 누구나 건강한 자존감(self esteem)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태어나지만 이런 가능성을 촉진해주는 환경을 만나야 한다고 본다. 유아에게 그런 환경을 제시해주는 사람은 당연히 엄마일 것이다. 그러나 엄마도 우울한 엄마, 방임하는 엄마, 이상한 엄마들이 많기에 엄마라는 표현보다 자기 대상(self object)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자기 대상이란 쉽게 말해 내 마음 같은 대상이다. 아기가 “응애 응애”하고 울면 엄마가 다가와 아기의 필요를 적절하게 채워준다. 그런 경험을 한 번 두 번 반복할수록 아기의 마음 안에는 “엄마가 나와 같다. 내 마음 같다”라고 느끼게 된다.

코헛에 의하면 이 시기에 아기는 엄마를 마치 거울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고 한다. 엄마가 거울이다! 내가 웃으면 엄마도 웃고, 내가 울면 엄마도 운다. 그런데 이런 반영과 거울 경험이 갑자기 깨어지거나 부재하거나 충분히 만족하지 않으면 아기는 자신이 체험한 경험을 과대하게 부풀리게 된다. 이를 과대자기(grandiose self)라 부른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은 모성체험을 하기에 어느 정도의 과대자기가 있을 수 있지만, 불행하게도 너무 이른 시기에 엄마라는 거울이 깨어져 반영경험이 결핍된 채 성장하는 이들도 많다. 어찌 보면 과대자기도 연약한 자기가 살아남기 위한 방어기제라 볼 수 있다. 사실 이런 방어기제를 아기가 만들어낸다는 자체가 슬픈 일이다. 쉽게 말해 유아기는 긴장할 것 없이 생명 그 자체를 즐기며 자신의 본능을 즐길 필요가 있는데, 어떤 아기들은 너무 이른 시기에 긴장하며(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이 부재하거나 보호가 부재할 적에) 왜곡된 과대자기를 발달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가해자는 피해자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 역시 세상의 모든 가해자들이 사실은 피해자로 시작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타고난 리더십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과대자기를 세상을 복되게 하는 꿈으로 바꿔 놓는다. 그들에게는 어린 시절 분명 좋은 대상이 있었을 것이다. 거울같이 자신을 반영해주고 실수할 적에 다시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하고 용기를 준 대상 말이다.

그러나 보스들 특히 자기애적 성격을 가진 교주적 성격의 사람들은 그런 대상이 부재하였다는 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대신 그들이 모델로 삼는 자들은 하나같이 힘 있고 통제하고 조종하며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누군가’이다. 결국은 모델링이다. 과대자기가 가득한 사람은 자라면서 대화적인 사람보다 힘 있는 자, 타협보다 주먹을 앞세우는 자, 과정보다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자들을 모델로 삼게 된다. 그런 모델이 자신의 허약한 자기감(self sense)을 고양(高揚)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질될수록 이런 사람들은 자기 안의 열등감을 전혀 인정할 수 없는 인격이 된다. 그럴수록 투사(projection)가 심해진다. 남 탓 말이다.

분석심리학자 칼 융의 이론대로 말하자면 그림자(shadow) 인격이 강해지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 주변의 사람을 인격이 아닌 수단과 도구로 바라본다. 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그런 도구 말이다. 정리하면 상처로 시작된 자기(self)는 결국 왜곡된 자기상(self image)을 만든다. 자 여기에 거울이 두 종류가 있다고 하자. 온전한 거울과 깨어진 거울. 그들의 내면에는 깨어진 거울이 들어 있다. 이렇게 깨어진 거울로 자기 얼굴을 비춰보면 그야말로 일그러진 괴물의 얼굴만 보여 진다. 그렇게 교주적인 성격의 사람들은 출발부터 괴물의 모습으로 자라게 되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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