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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병역거부 논란
조민기 기자 5b2f90@naver.com
2018년 09월 05일 16시 07분 입력

 

 

 

■ 전쟁의 위협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 받아들일 수 없는 국가
■ 국가별 안보 상황 차치한 채 종교적 신념만 내세워 대체복무 요청
■ 국가 차원의 대체복무 받아들일 수 없어 수감 택하는 여호와의 증인

헌법재판소(헌재)가 지난 6월 28일 대체복무제가 없는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한다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 판단했다. 헌재는 2019년 말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5조를 개정할 것을 촉구했다. 헌재의 판결에 그간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며 수감생활을 택해왔던 여호와의 증인 측은 환영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종교를 운운하며 병역을 기피하려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며 공분을 표출했다.

사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해외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주목받아 왔다. 적정선의 타협점을 찾아 대체복무를 시행하는 국가가 있는 반면, 끝까지 완강한 입장을 취하는 국가도 있다. 본지는 여호와의 증인이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놓고 국가를 상대로 마찰을 일으켰던 사례들을 분석해 한국이 맞이하게 될 양심적 병역거부에 의한 대체복무를 전망해보았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국가별 속사정

징병제를 실시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나 대체복무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북한을 포함해 중국, 이란, 이라크 등 48개국 뿐이다. 많은 나라가 헌법이나 법률 또는 사법 및 관행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양심적 병역거부나 대체복무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들이 시대적 흐름을 무시한 채 완강한 입장을 고수하는 건 아니다.

가령 ‘싱가포르’의 경우 상대적으로 국토가 작아 이웃 나라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중국, 필리핀 등이 침공해올 경우 대비할 방안이 없다는 두려움이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이란과 대치 중이다. ‘터키’는 인근 국가들의 잦은 분쟁으로 전쟁의 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 없이 징병제를 유지하는 국가 대부분이 환경적 요인과 언제 발발할지 모를 전쟁을 우려하는 등의 속사정이 있었다. 물론 각종 위기를 감수하면서까지 대체복무를 인정하는 국가도 있었다. 그러나 이 역시 각 국가의 상황과 국민적 정서가 적절하게 맞춰졌기에 가능했다.

인권 보호 앞세워 대체복무 촉구

▲UN연합기


여호와의 증인은 국가별 안보 상황은 차치한 채, 양심적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데 있어 보호받지 못한다며 피해자를 자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를 상대로 ‘UN 인권 권고사항’과,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을 앞세워 본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실제로 여호와의 증인은 UN 회원국인 터키 측에, “UN 자유권 규약 위원회는 시민적 ·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제18조에 암시되어 있듯이, 양심에 근거해서 병역을 거부할 권리가 ‘사상 · 양심 · 종교의 자유에 기본적으로 포함되는 권리’라고 밝혔습니다”라는 내용과 함께 군 복무 면제를 요청했다. 뿐만 아니라 터키가 유럽 평의회 회원국인 점을 노리고, “터키 는 유럽 평의회 회원국이며 유럽 인권 협약 을 자국법의 일부로 채택했기 때문에, 유럽 표준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터키 정부가 그렇게 하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이 나라에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 외에도 여호와의 증인은, UN 회원국 중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아 수감자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 ▲싱가포르 ▲투르크메니스탄 ▲에리트레아 등의 국가도 계속해서 꼬집고 있다.


 대체복무 마련했더니 ··· 국가적 차원은 거부

중동에 위치한 아르메니아는 여호와의 증인의 지속적인 탄원으로 2000년 이후 군 안에서 비전투 복무를 하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수감생활을 택했다. 군 당국의 감독을 받지 않는 민간 대체복무가 아니기 때문에 본인들의 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위와 유사한 사건은 키르기스스탄에도 있었다.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2009년 대체복무를 인정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대체복무 통제권을 군 당국이 가지고 있어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거부했다. 이후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두 국가가 제시한 대체복무를 본인들 입맛에 맞게 개정하기 위해 법적 공방을 이어갔다.

여호와의 증인 홈페이지에 따르면, 결국 아르메니아는 2013년 민간 대체복무에 관한 법을 개정하여 이행했다. 키르기스스탄 역시 2013년 대법원으로부터 “양심에 따라 군 복무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민간 성격의 대체복무를 허용하도록 법률을 개정하라”는 지시를 받게 되었다.

헌재의 판결에 따라 한국은 빠르면 2020년부터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될 전망이다. 그러나 대체복무와 관련된 사항을 국방부가 통제할 가능성이 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에겐 어떠한 제안도 달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호와의 증인 한국지부 역시 “대체복무와 관련한 국제 인권원칙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항이 군과 무관한 정부 부처나 기관이 관할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의사를 확고히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향토예비군 편성 여부 문제까지 남아 있어, 한국의 대체복무제도 도입 역시 산 넘어 산일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