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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그 갈등의 역사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18년 09월 07일 15시 05분 입력

 

▲탁지원 소장 
  본지 발행인

  

여호와의 증인은 이미 오래전 이 땅에 발을 디디면서부터 사회적 갈등이 야기됐다. 1980년도에 십 수년간 여호와의 증인에서 간부로 일했던 최백용씨가 폭로한 여호와의 증인 비판 문건을 보면 ‘병역을 거부하고 교도소에 가라’, ‘수혈을 거부하고 생명을 포기하라!’, ‘때로는 부모와 가정도 버려라’, ‘때로는 결혼과 학교도 그만두라’, ‘때로는 직업과 재산도 버려라’등의 상식적이지 못한 일들을 증언했는데 본지 역시 관련 보도를 꾸준히 진행해왔다.

  

최씨의 양심선언에 따르면 여호와의 증인은 교리를 의심하거나 그들의 지침을 어기면 추방이 가능하기도 한데 양심선언 전 10여 년 동안만 하더라도 160만 명이 추방됐다고 한다. 이는 그 당시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의 70%에 해당되는 수치다. 이탈자들은 여호와의 증인의 사회 갈등 부분에 대해 한 번 그들의 마수에 걸리게 되면 벗어나기가 힘들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가정을 파괴하고 친척과 이웃과 사회를 등지고 조국마저 배반하고 오로지 워치타워 왕국 통치제(여호와의 증인의 최고 간부진)에만 맹종하는 광신자로 세뇌되어 결국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일생을 희생하며 사는 영적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다.

  

세상이 곧 멸망되고 여호와의 증인만이 살아남아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는 속임수에 많은 이들이 학교, 직장도 포기하고 국가 정부는 마귀의 조직이라 하여 병역의 의무를 기피하고, 수혈하면 안 된다 하여 사랑하는 이들이 숨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고, 부모의 생신, 회갑 날을 사단의 날이라 해서 음식도 같이 먹지 않고 부모에게 절도하지 않으며, 우리 전통의 미풍양속과 천륜마저 끊어놓기도 했다. 결혼할 자유마저 없이 일평생 잘못된 종교에 빠져 그들에게 온갖 충성 다하다가 교리에 의문을 제기했다 하여 제명, 추방되는 종교가 과연 건강한 종교라 할 수 있을까.


원주 여호와의 증인 방화 사건

1992년 10월 3일 원주에 위치한 여호와의 증인 왕국 회관에 방화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여호와의 증인에 몰입해 가정을 등한시하는 아내에게 분노해 만취 상태에서 판단력을 잃고 건물에 방화한 원언식씨였다. 본지는 그간 사건의 본질이 방화사건에 있기보다는 여호와의 증인이 반사회적, 반종교적 행태를 서슴지 않고 있음에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동기야 어떻든 간에 원씨가 저지른 범행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후 그는 희생자들과 유가족에 대해 깊이 뉘우치고 참회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내린 사형 확정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속죄를 위해 안구 장기와 사후 의학실습용으로 시신 기증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고 탁 소장이 방화자인 원씨의 구명운동에 힘쓰다가 1994년 소천했는데 이 사건을 통해 원씨는 사이비 종교의 실체를 무섭게 실감하면서 기독교로 개종해 교도소 안에서 전도 활동을 하며 지내고 있다.


수혈거부 사망 사건

1977년 부산, 김경숙양(12)이 수혈을 하지 못해 죽어 가는데도 여호와의 증인 쪽에서는 수혈을 거부할 것을 요구하여 결국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1980년 서울대병원에서는 김정심씨(23)가 수혈거부로 사망했고, 그 외에도 원로가수였던 백년설씨가 1980년 미국에서 수혈거부로 사망했다. 2010년에도 두 달 된 영아가 수혈거부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물론 부모가 아이를 살리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했다고는 하나 수혈 거부가 사망의 가장 큰 문제였다. 여호와의 증인의 광신적 교육에 따른 수혈거부 등의 피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진주 등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 건립 반대

경남 진주시 내동면 독산리에 신축된 남강휴먼빌. 916세대가 입주할 수 있는 이곳은 도심에서 벗어나 전원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경관 좋은 곳으로 지난 2010년부터 입주가 시작됐다. 입주 직후 옆 공터에 150평 규모의 건물이 건축되기 시작했다. 입주민들은 아파트 주변에 학원 등의 건물이 들어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곳은 여호와의 증인 집회처소인 왕국회관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주민들은 긴급히 주민회의를 소집했고,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20명이 구성돼, 건립 저지를 위한 대처 활동에 나섰다. 처음에 비대위는 “남강휴먼빌 비대위”란 명칭을 사용했지만, 내동면 주민들과 함께 해결해야 할 사안임을 직시, “내동면 비대위”로 이름을 개칭, 조직을 개편했다.

비대위는 진주경찰서에 왕국회관 건립 반대를 위한 집회를 신고했고, 지속적으로 왕국회관 건립반대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진주시 기독교인은 5% 안팎이며, 내동면에도 기독교인은 소수다. 그럼에도 왕국회관 건립 반대를 위해 비기독교인들까지 하나가 돼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 단체의 위험성을 직시했고, 그들의 공간을 지키고자 투쟁 현장에 뛰어들었다. 정부 체제를 인정하지 않고, 병역 및 집총거부, 국기 경례 거부 등 반국가적인 행위를 일삼는 여호와의 증인에게 보란 듯이 태극기를 걸고 집회를 개최했다. 왕국회관 건설현장 앞 국유지에 태극기를 꽂고 “태극기 광장”을 조성, 주민들의 강력한 투쟁 의지를 비쳤다. 이외에도 2016년에는 경남 남해 난양마을에서 지역 주민들과의 마찰이 있었고, 2017년도에는 이천 가산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이천시청 앞 광장서 학교 앞 종교시설 건립 철회를 요구하며 집회를 벌이는 등 지금까지 여호와의 증인 왕국회관 건립으로 인해 지역 주민들과의 마찰이 있어왔다.

해외 아동 성추행 사건과 러시아 퇴출 사건

 

여호와의 증인은 다른 이단과는 달리 겉으로만 볼 때 전도에만 열심을 다하는 단체 같아 보이기에 그 실체를 알기가 쉽지 않다. 또한 그 단체의 비리가 드러날 때마다 “아름다운 숲 전체를 보지 못하고, 그 안에 있는 단지 몇 마리의 벌레들을 보고 호들갑을 떠는 것”이라며 방어적 발언을 해왔다. 그러나 그간 영국과 호주, 미국에서는 여호와의 증인 회중 인사들의 과거 아동 성추행 등의 사건이 밝혀져 조직 내에서와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호주 같은 경우는 여호와의 증인이 1000여 건의 아동 성적 학대 사실을 60년 이상 은폐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작년 4월 러시아 대법원은 평화주의를 표방하는 이 종교 단체를 “극단주의 그룹”으로 규정하고, 모든 활동을 금지시켰다. ‘여호와의 증인’을 테러리스트와 같은 범주에 넣었으며, ‘극단적인 종교집단’이라는 판결을 받아 폐쇄 및 제재 조치를 받은 것이다.


이상의 일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그간 여호와의 증인 관련해서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는데도 그것들은 무시한 채 인권의 잣대로만 양심적 병역거부 등의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아쉬움을 넘어 매우 답답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좀 더 면밀한 확인과 검증을 요하는 이유는 세월호 사건 등을 통해서 보았듯이 이단과 사이비 문제는 종교 문제로만 끝나지 않고 국가와 사회적인 대참사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