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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신교 교주 조유산 생가를 찾아서
김정수 기자 rlawjdtn@hanmail.net
2018년 09월 20일 10시 12분 입력
▲중국 흑룡강성 아성시 아고진에 위치한 조유산 생가

중국 흑룡강성 아성시에 위치한 전능신교 교주 조유산의 생가를 찾았다. 중국 목단강공항에서 330km를 쉬지 않고 3시간을 달려 도착한 흑룡강성 아성시. 조유산이 떠난지 오래된 생가를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이단사이비 전문가들조차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해 근처 흑룡강성(헤이룽장성) 아성시 아고진(야고우진)에서 다른 연구자를 만나 그를 통해 조유산과 관련된 곳들을 방문할 수 있었다.

기자가 방문한 곳은 조유산의 생가와 조유산이 근무했던 철도역이었다. 수없이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10분 남짓 더 달려서 도착한 조유산 생가 주변은 70년대 한국의 농촌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뿌연 먼지가 풀풀 날리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생가를 방문하는 길에는 새로 지은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와 유치원이 있었고, 조유산이 다닌 소학교는 없어져 볼 수 없었다.

우거진 수풀 사이를 지나, 좌측에 조유산이 일했던 철도와 우측에 옥수수밭을 지나 조유산 생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유산 생가를 들어가는 문은 사람이 다니지 않은지 오래되어 막혀있었다. 조유산 생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옆집에 양해를 구하고 옆집 문으로 들어가야 했고,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조유산 생가를 볼 수 있었다. 함께 방문한 중국 이단사이비 전문가는 처음 조유산이 거주할 당시에는 흙집이었으나, 가족들이 다시 지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유산 가족은 부모와 9남매가 10평 남짓한 비좁은 공간에서 생활했고, 연탄가스 중독으로 부모님을 포함해 가족 세 명이 사망했다. 장남인 조유산은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않고, 집을 나왔고, 가족들이 거주하다가 하나둘 떠나 빈집으로 남게 된 것이다. 창문으로 집 안을 들여다보니 작은 선풍기와 살림살이 등 그 당시 생활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고, 창고에는 마른 옥수숫대가 가득 차 있었다. 조유산 생가 뒤에는 작은 텃밭이 있었는데, 사람이 살지 않아 옆집에서 파 등 소소한 먹을 야채를 재배하고 있었다.

옆집에는 개와 닭들을 키우는 50대 한 여성이 거주하고 있었다. 옆집을 지나 바로 붙어 있는 생가는 현재 소유주가 조유산이지만 10~20년 정도 사람이 거주하지 않았다고 했다. "조유산 가족들이 오느냐", "전능신교 피해에 대해 아느냐"는 등 여러 질문에도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이사 왔을 때부터 빈집이었고, 드나드는 사람이 없어 주민들은 물론 옆집에서도 아무것도 알지 못해 조유산 생가의 철문처럼 입을 굳게 닫을 수밖에 없었다.

▲조유산이 근무했던 철도역

1953년 태어난 조유산은 이곳에서 20년 정도 거주했다. 이단사이비 전문가는 조유산이 아성 철도국 직원인 아버지를 따라 19세부터 야고우역에서 1년 반 정도 철길을 보수하는 일을 했으나, 일을 제대로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철도역에서도 1970년대 조유산의 행적을 기억하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철도역도 새로 지어졌고, 근무자들도 모두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후 호함파를 접촉했던 조유산은 1989년 아성시에 영원교회를 개척해 따르는 자들이 수천 명에 이르렀고, 허가받지 않은 이 교회는 공안국의 처벌을 받았다. 90년대 초에 도망친 조유산은 하남성에서 3년 정도 거주하면서 다시 전능신교를 시작했다. 중국 이단사이비 전문가는 이것이 아성시와 하남성에 전능신교 신도가 많은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서 조유산은 양향빈을 재림예수로 선언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조유산은 중국대학에 떨어져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오락가락하는 양향빈을 이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신도들에게 예수가 처음에는 남자로 왔으니 두 번째는 여자로 온다는 단순한 논리를 펴 신격화했다고 설명했다. 정작 조유산은 미국에서 농업합작 요청이 들어온 것을 이용, 종자회사 사장으로 위장해 2000년대 초반 미국으로 도미했고, 가족들을 한 명씩 불러 미국으로 이주시켰다고 한다.

전문가는 중국 내에는 현재 하남성에 수감 중인 조유산의 오른팔 하씨를 통해 전능신교의 교세가 커졌다고 밝히면서 10여 년 판결을 받았으나 출소 시기가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조유산은 미국에서 여전히 중국 내에 전능신교 간부를 통해 조직을 관리하고 있으며, 많은 신도들이 비교적 입국이 쉬운 제주도에 난민신청을 통해 국내에 들어와 곳곳에 거점을 세워 수천 명의 신도가 거주하며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 (현지 취재 및 글: 김정수 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