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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이단(異端)과 이설(異說) (2)
현대종교 | 이상규 교수
2022년 04월 26일 08시 40분 입력

2. 유대주의적 이단: 에비온파 (Ebionites)

기독교의 발전 과정에서 교회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유대교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기독교와 유대교는 구약이라는 공통의 경전을 지니고 있고, 기독교는 유대교적 배경에서 태동되었고 유대교로부터 네 가지 근본적 개념을 계승했다.

첫째가 유일신론이었다. 고대 종교의 특징은 다신교였다. 고대 종교에서 유일신 사상을 가르친 종교는 유대교와 기독교뿐이었다. 바로 이런 유일신관 때문에 초기 기독교는 무신론자(ἄθεοι, 이 단어는 신약에서 오직 한번 에베소서 2장 12절에 나온다)라고 비난받았다. 둘째는 하나님의 인격성이었다. 하나님을 경배의 대상으로 여겼고 하나님은 무인격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셋째는 축자적 계시개념이었다. 유대교는 구약을 하나님의 축자적인 계시로 받아들이는데 기독교도 구약과 신약을 축자적 계시로 받아들인다. 넷째는 인간사에 섭리하시는 하나님, 곧 인간 역사에서의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와 섭리를 믿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유대교와 함께할 수 없는 교리적 차이를 지니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유대교는 모세가 가르친 율법의 준수를 구원의 길로 인식하며, 예수를 그들이 대망하던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복음에 대한 해명과 기독교 복음의 전파과정에서 유대교와의 결별은 불가피했다. 유대교는 근본적으로 민족종교였고 민족주의적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이방인들의 유대교로의 개종이 없지는 않았으나 유대교는 유대민족이라는 한계 안에 있었다.

유대 선민사상과 함께 유대교의 종교적 전통은 이런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강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사렛에서 출발한 기독교는 사도바울의 전도여행을 통해 이방 세계로 전파됨으로써 사회계층을 뛰어넘고 인종적 혹은 민족주의적인 한계를 넘어섰다.

특히 바울의 1차 전도여행(행13-14) 이후 기독교회는 유대주의의 벽을 넘어 탈민족적인 보편종교로의 정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안디옥에 세워진 교회(행11:19-26)는 이방지역 최초의 교회이자 이방지역 전도의 전초기지였다.

1차 전도여행의 결과로 할례받지 않는 이방인의 구원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모였던 최초의 교회회의가 49년에 소집된 예루살렘교회 회의였다. 이 회의는 기독교의 전파과정에서 유대교적 전통의 효용성을 검토하는 회의였다. 이 회의에서는 이방인에게 유대 율법의 의무를 부과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방인에게 할례를 요구할 수 없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유대적 배경의 구성원들과의 조화를 위해 피 흘린 것을 멀리할 것 등 유대교적 전통의 준수를 권장하는 선에서 화해를 도모하였다.

이 결정은 사실상 유대교와의 일정한 선을 긋는 것으로서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유대교와는 다르다는 선언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기초한 기독교회는 이스라엘 공동체와는 다르며, 교회, 곧 에클레시아(έκκλησία)는 유대인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성전이나 회당과는 달리 누구든 모일 수 있는 ‘모임’(meeting)임을 보여주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러 폴리스에서 개최된 시민총회(民會)를 의미했지만, 이 단어는 기존의 유대교의 회당 및 종교적 모임을 칭하는 시나고그에 대응하는 단어였다. 교회는 유대민족만을 위한 집회소가 아니었다.

49년에 소집된 예루살렘교회 회의는 이방인들에 대한 적극적 선교를 강화하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방인에게로 나가는 장애물을 제거했기 때문이었다. 선교 초기에는 회당이 복음전도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으나 60년대를 거쳐 가면서 기독교와 유대교는 점진적으로 결별하게 된다. 그렇게 됨으로써 기독교가 유대교와 다르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는데, 예루살렘교회 회의는 이런 분리의 분수령이 된다.

그런데 이런 결정에 반대하면서 초기 기독교회 안에서도 유대적 전통의 고수를 주장하는 의견들이 대두되었다. 이들은 여전히 모세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들의 주장은 기독교의 유대주의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집단이 바로 에비온파(Ebionites)였다. 에비온이라는 말은 ‘가난’(poor, 눅6:20 참고)이라는 히브리어(אביונים , haebyonim)에서 유래하였다.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들은 주님의 참 제자로서 주를 위해 가난한 삶을 이상으로 살아가는 무리라고 자처했기 때문이었다.

에비온파라고 불린 이들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대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모세의 율법을 강조하고, 안식일 제도, 할례 의식, 레위기에 나타난 음식 규례를 여전히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유일신 사상에 근거하여 독특한 기독론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 이외의 어떤 존재에도 신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독특한 기독론을 주창하였다. 이들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신성을 부인하고 예수를 신이 아닌 단순한 인간으로 인식한다.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출생했을 뿐이지만 그가 세례를 받은 후 성령이 임할 때 하나님의 양자로 택정되었다고 주장한다. 셋째, 정경관의 문제인데, 이들은 바울서신을 부인하였다. 또 마태복음 외의 다른 복음서들을 부인하거나 경시했다. 이들은 『히브리인들에 의한 복음서』(Gospel According to the Hebrews)라는 책자를 편집하여 주된 경전으로 삼았다. 이 책이 요단강 서편지역과 이집트에서 널리 보급되었다. 넷째, 이들은 엄격한 금욕을 강조하여 금욕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어떤 학자들은 에비온파와 에세네파와의 관련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 에비온파가 바로 유대교적 배경에서 유래한 이단이었다. 이들은 예수의 메시야성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예수의 신성은 부인하였다. 에비온파가 큰 세력을 형성한 것은 아니었지만 교회 내의 분열을 초래하였고, 기독교의 전파 과정에서 혼란을 초래하였다.

그러나 60년 이후 기독교 복음의 이방 세계 진출로 이방인 수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자 자연히 소멸되었다. 에비온파 외에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펴는 나사렛파(Nasarenes), 엘 케사이파(El Kesaites)가 있었다. 나사렛파는 에비온파와 다른 집단이라기보다는 다른 지역에서 불린 별칭으로 보기도 한다. 엘 케사이파는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방사상을 혼합한 엘 카이(El Kai)를 따르는 집단을 의미하는데 이 역시 유대주의적 성격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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