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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옥주의 부속품이었다
은혜로교회 탈퇴자 인터뷰
현대종교 | 조민기 기자 5b2f90@naver.com
2023년 02월 15일 09시 33분 입력

■ 대기근과 가난 끊기 위한 선교 위해 피지로 가자고 권유한 은혜로교회 

■ 요식업 운영 등 수익 생기면서부터 업무 강도 높아져, 힘든 내색할 경우 폭행 

■ 전 재산 헌납 등으로 한국 다시 돌아온다 하더라도 어려움 많아, 근본적 대처 필요 

 

유튜브로 신옥주를 접했다. 알고리즘으로 올라온 추천 영상. 스쳐 지나가듯 시청했는데, 한두 번 듣다 보니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한국교회를 비판했고, 때로는 한국교회가 가르치는 신학 사상을 일갈했다. 아리송할 때도 있었지만,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으로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올바르기 때문에 큰소리치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그렇게 점점 은혜로교회에 빠져들었고, 나도 모르게 저들이 낙토라 주장하는 피지에 와있었다.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은혜로교회 유튜브 채널

 

시작은 아내였다. 말씀을 사모했고, 더욱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유튜브에 접속해 각종 설교 영상을 시청했다. 그러다가 알고리즘 추천으로 은혜로교회를 만나게 되었다. 만나지 말아야 할 곳이었지만, 유튜브에서 이단을 걸러주지 않기 때문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좋은 말씀이겠거니’라는 생각에 한두 번 듣게 되었고, 나중엔 찾아 듣게 되었다. 아내는 남편 A씨에게도 함께 들어볼 것을 권했다. 귀동냥으로 몇 번 듣던 것이 반복되다 보니 은혜로교회 담임 신옥주의 설교에 빠져들게 되었다. 한국교회를 강하게 비판했고, 때로는 삼위일체를 부정하기도 했다.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잘못된 교리를 가르친다기보다는 현상을 소개하고 비판했기에 동의하며 듣게 되었다. 아리송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는 이미 마음의 문을 많이 연 상태였다. 

 

건설업자 신분 밝히자 화색 

 

▲피지 난디 지역에 건축 중인 아파트

 

좋은 말씀을 온라인으로만 듣기엔 아쉬움이 남았다. 아내와 상의 후 과천에 위치한 은혜로교회 본부에서 진행되는 집회에 참석했다. 차로 약 4시간 거리이긴 했지만,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참석했다. 시작이 반이었다. 장거리이긴 했지만, 틈날 때마다 집회 현장에 찾아갔다. 자연스럽게 은혜로교회 측 고위 간부들과 안면을 트게 되었다. 친분이 생기자 간부들은 A씨에게 접근했고, 건축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색이 돌더니 그 이후로 평소보다 더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이후 본색이 드러났다. 간부들은 남태평양 피지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곳에 농업을 발전시켜 가난과 기근을 막는 일을 하려고 하는데, 건축일을 하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시 은혜로교회를 긍정적으로 생각했고, 선교 역시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해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선한 일이라 생각해 피지 정착 사업에 헌신 

 

▲수바 지역에 건축 중인 은혜로교회 숙소

 

하나라도 아쉬운 사람이 붙잡기 마련이다. 은혜로교회 측은 계속해서 A씨를 설득했다. 황무지를 개척해 낙토로 만들어보자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뿐만 아니라 피지에 가는 비행기 삯 수백만 원과, 비자 발급을 위해 드는 비용 3000만 원을 교회에서 제공하겠다며 다독였다. 가족들과 생이별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민되기도 했지만, 차차 피지에 들어올 것을 약속받고 수락했다. 큰마음을 먹고 들어간 피지였던 터라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입국하자마자 농막과 교회를 건축했다. 이뿐만 아니라 은혜로교회 숙원 사업이던 농사일을 할 수 있도록 땅을 일구었다. 말 그대로 눈부신 성장이었다. 자리가 잡혀감에 따라 하나둘 한국의 신도들이 입국하기 시작했다. A씨 가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소가 협소해 성별로 나누어 숙소 생활을 해야 했지만, 점점 발전하는 게 보여 보람을 느꼈다. 농사일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니 내부적으로 사업을 확장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은혜로교회 역시 발 빠르게 움직였고, 피지의 수도인 “수바”지역에서 요식업을 시작했다. 소위 대박이 났다. 막대한 수익이 생겼고 여세를 몰아 국제 공항이 있는 “난디”지역에 사업을 확장했다. 

 

헌신했더니 헌신짝 취급 

 

▲은혜로교회 관련 건축 현장들

  

초기 피지에서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고 그렇게 서로를 격려하며 기쁘게 생활했다. 그러나 사업이 확장되면서 신옥주의 태도가 돌변하기 시작했다. 이뿐만 아니라 신옥주와 늘 동행하는 아들 김정용 역시 변해갔다. 선교보다는 사업에 치우치는 모습을 보였다. 막대한 노동으로 신도들이 힘든 내색을 하면, 그날 밤 ‘타작마당’이라는 이유로 구타했다. 죄를 씻는다는 명목이었다.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라 할 수 있는 의식주 문제도 심각했다. 먹는 것이야 요식업을 하면서 해결한다고 하지만, 계속된 숙소 생활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없었다. 여벌 옷은 생각하기 힘들었고 시장에서 덤핑세일 하는 옷을 가져오면 분배해서 가져갔다. 의식주 문제부터 어렵다 보니 자녀들 교육은 상상도 못 했다. 피지 입국 초기 신도들의 자녀를 학교에 보내었으나, 재정적 문제를 운운하며 철회했다. 그러면서 신옥주씨는 본인의 설교만 잘 들어도,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어 잘 먹고 잘살 수 있다고 설파했다. A씨는 “북한 주민의 삶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수준”이었다고 회고했다. 

 

사랑 없는 집단에 충성할 이유 없어 

 

▲은혜로교회 관련 건축 현장들

 

회의감이 들었다. 건축일이 필요하다며 통사정해서 모셔 올 땐 언제고, 잇속을 챙기고 나니 태도가 돌변했다. 상대적으로 큰 수익을 안겨다 주는 A씨에게도 타작마당을 실시하려 했다. 다른 신도들의 사정과 심정은 불 보듯 뻔했다.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가 된 기분이었다. 때로는 신옥주의 부속품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충성스럽게 건설일을 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음에도 타작마당을 실시하려는 이 집단이 싫어졌다. 그렇게 A씨는 탈퇴를 결심했고, 야반도주했다. 

 

▲은혜로교회 관련 건축 현장들

 

A씨는 건축업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막대한 비용을 들여 피지에 입국하진 않았다. 그 덕분에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다시 시작할 힘이 있었기에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일반 신도들에겐 작정한 헌금의 일부를 감춘 벌로 급사한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비유로 들며 전 재산을 바치게 한다. 그렇게 피지에 들어오면 통제가 더욱 강해진다. 우선 여권을 걷는다. 이곳에서 평생 함께할 것이니 보관하겠다는 취지지만 감금과 다름없다. 이와 같은 문제로 신옥주가 수감생활을 하게 되면서, 다시금 여권을 분출한 상태다. 그러나 더 이상 한국에서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창살 없는 감옥이다. 

 

A씨는 은혜로교회 문제가 한 번의 이슈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근본적 대책 마련으로 이어지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감사한 것은 이러한 피해자를 돕기 위한 은혜로교회 대책위원회(대표 이윤재, 은대위)가 설립된 점이다. 지난해 11월 21일 발족된 은대위는 은혜로교회 피해 가족들로 구성되어있다. 은대위 측은 피해자들의 탈퇴를 도울 뿐만 아니라 다시 한국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자금을 모으고 있다. 이 외에도 기업체 설립도 추진 중이다. 은혜로교회의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보가 하루속히 끊어질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의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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