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 작게보기
페이스북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출20:8)는 계명은 현재도 유효한가요?
현대종교 | 강경구 목사
2024년 01월 31일 08시 50분 입력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왜 안식일을 지키지 않을까요? 성경 속 많은 부분에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20:8)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성경적 안식일은 오늘날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입니다.

그렇다면 현재에도 ‘안식일을 지켜야 하나요?’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습니다. 혹자는 신약시대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영원한 언약이기에 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안식일은 하나님이 친히 돌비에 써주신 십계명(신9:10)으로 ‘영원한 계명’이며 ‘영원한 언약’(출31:16-17)이기에 폐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2. 예수님도 안식일을 규례대로 지키셨(눅4:16)기에 우리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입니다.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 안식일을 규례대로 지키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 본을 따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 마지막으로 초대교회는 안식일을 지켰는데 AD 321년에 로마의 황제인 콘스탄티누스가 일요일 휴업령을 내려서 안식일을 오늘날 일요일로 바꾸어서 교회가 따른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성경의 진리를 구속과 복음적 관점에서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오해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복음과 우리의 구원에 관하여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자로 이해하기보다는 성경의 본질과 진실을 성령의 조명 아래 이해해야 합니다.

첫째로 십계명의 안식일은 ‘영원한 계명’, ‘영원한 언약’이 아닙니다. 십계명을 비롯하여 모세에게 주신 계명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입니다. 할례도 영원한 언약이라고(창17:13)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신 대대로 지켜야 할 계명이었습니다.

안식일의 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이방인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도 심판을 받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을 때는 돌로 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은행에서 대출 계약을 하고 대출을 받은 사람이 대출 상환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지만 타인은 그 계약에서 자유로운 것처럼 언약은 서로 맺은 대상에서 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율법으로 맺은 첫 언약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파기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스라엘과 맺은 모든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폐하시고 도말(엡2:15)하셨습니다. 의문의 율법은 모세를 통해서 주어진 문자로 된 율법입니다. 당연히 십계명은 의문에 속한 율법의 중심에 있습니다.

바울은 정죄하는 십계명의 율법이 아닌 성령으로 복음을 전하는 직분의 영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고후3:7-9)고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의문에 속한 율법은 정죄의 직분이어서 우리를 불리하게 하고 거스르게 하는 직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죄를 속죄하심으로 우리를 정죄하는 의문의 율법을 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율법이 정죄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롬8:1).

그리고 이스라엘과 맺은 의문의 율법을 폐하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을 그리스도의 피로 화목하게(엡2:16) 만드셨습니다. 이제 신약의 성도들은 고린도후서 3장 6-18절의 말씀처럼 돌판에 새겨진 의문의 율법의 영광에서 벗어나 영원한 영광인 복음을 믿고 성령에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는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완전히 드러났고 확증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믿었고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 사랑의 은혜를 알고 받은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는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음 바 되었으니 우리가 성령의 은혜로 사랑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의 삶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닌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기에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성령의 은혜와 힘으로 사랑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예수님이 규례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신 것은 본을 보이신 것이 아니고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미 성경은 ‘의인은 하나도 없다’(롬3:10)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불법으로 죄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4:4-5)고 바울은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자유로우신,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죄인 된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구속하여(딛2:14) 자녀 삼기 위해 유대인으로 율법 아래에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엡2:8).

또한 예수님은 모든 세상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진정한 안식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주 돌아오는 안식일을 지켜도, 가나안 땅에 들어갔어도 안식을 얻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의 평안은 죄가 해결되어야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완전히 속죄하여 주심으로 우리는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히4:3)고 하신 것처럼 평안의 안식 속에 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믿음으로 죄의 정죄로부터 벗어나고 정죄의 심판을 받지 않기에 진정한 안식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구속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안식일은 그림자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2:16-17) 안식일을 비롯하여 모든 절기나 월삭은 예수님께서 이루시기까지 그림자였습니다.

이제 성도들은 안식일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믿는 참된 안식 속에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에 매인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버리고 참된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하기를 ‘안식일을 이유로 성도들을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을 안 지킨다고 비판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AD 321년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초대교회 안에서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과 사도들 사이에 모세의 율법으로 큰 논쟁이 있었고 결국 이방인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올 때 모세의 어떤 율법도 강요하지 말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행15장).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은 여전히 안식일을 비롯하여 모세의 율법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에 모여 성찬식도 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드로아에 도착하여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행20:7)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전16:1-2)고 명하므로 고린도 교회뿐만 아니라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들까지도 매주 첫날에 모여 예배를 드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은 여전히 안식일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AD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하면서 교회는 이제 유대인들의 입지가 약해져 이방인 중심으로 모여졌습니다. 그리고 교부들과 속사도들은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제는 안식일에서 벗어나 주일에 모임을 가질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세기 무렵에 시리아의 안타오키아 교회의 지도자 바르바나는 “초하루 와 안식일과 기타 축일을 우리는 벌써 지키지 않는다 우리는 여덟째 날을 축제일로 하여 기쁘게 지내고 있는데 이날은 예수께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까닭이다”라고 말함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요일이 공휴일이 아니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주일 밤에 모임을 가졌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AD 321년 3월 7일에 정치적인 나라의 통합을 위하여 “모든 재판관과 시민 그리고 기술자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Sunday)에 쉬어야 한다”(『교회사 핸드북』, 생명의 말씀사. 콘스탄틴의 칙령)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이 칙령은 이교도들에게는 태양을 섬기는 날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참된 빚이신 예수님의 부활일을 휴업일로 만들어 줌으로서 교회는 자유롭게 주일에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혹자의 말대로 교회가 안식일을 지켜왔다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칙령으로 강제로 안식일을 주일로 변경한 것이라면 수많은 순교자가 나왔어야 당연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자료를 보면 교회는 순교가 아니라 주일을 휴업일로 만들어 주어서 예배가 보장되고 더욱 부흥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치하에서 기독교의 공인은 몇 가지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콘스탄티누스는 일요일이 로마의 다른 공휴일과 비슷한 공휴일이 되도록 칙령을 내렸다. 이로써 예배는 폭넓게 발전할 수 있었고 교회에는 더 많은 회중이 모일 수 있었다”(『교회사 핸드북』, 생명의말씀사, 144쪽).

이처럼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새 언약 속에 사는 성도들은 안식일의 율법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이제 새로운 주일에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주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의 주제가 부활이었고 성도들은 부활한 매주일 첫째날에 자연스럽게 모여 부활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서 벗어난 성도들은 사도들과 속사도들의 가르침으로 새로운 부활의 복음을 믿고 주일에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주일은 율법적인 안식일 대용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부활을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예배로 정착된 것입니다.
 


- Copyrights ⓒ 월간 「현대종교」 허락없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