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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사이비 헌터, 고 탁명환 소장 살해 사건 재조명
현대종교 | 김정수 기자 rlawjdtn@hanmail.net
2026년 07월 02일 11시 48분 입력

MBC와 웨이브에서 ‘사이비 헌터’라는 제목으로 고 탁명환 소장 살해 사건을 재조명했다. 목숨 걸고 사이비 단체를 폭로하고 수많은 테러를 겪어오다가 결국 이단 신도의 칼에 숨진 탁명환 소장의 활동을 소개했다.

사이비 단체 폭로
 

▲탁명환 소장을 재조명한 사이비 헌터 방송(출처: wavve)

 

‘사이비 헌터’는 여러 이단사이비 단체를 폭로하고 피해자를 도왔던 고 탁명환 소장의 삶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사이비 헌터’는 고 탁명환 소장 가족과 주변 인물들, 당시 수사하던 검사 및 취재 기자, 살인자 임홍천의 누나 등의 증언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전했다.

주변 인물들은 고 탁명환 소장의 당시 취재 활동에 대해 증언했다. “잠입 취재 형태가 많았다. 늘 차 트렁크에 분장 도구를 가지고 다녔다”, “사이비 단체에 직접 가서 교주를 만나고 신도들을 만나고 함께 밥을 먹고 사진을 찍고 녹음하고 피해자들을 위해 공론화를 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피해자들을 위한 도움에도 적극적이었던 고 탁명환 소장의 활동도 다뤘다. 의지할 곳 없는 영생교 피해자들은 탁명환 소장을 찾았고, 그들의 피해를 언론을 통해 알리고,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등 영생교 실체를 폭로했다. 고 탁명환 소장은 영생교 암매장 사건, 1992년 10월 28일 휴거가 온다는 다미선교회, 구원파, 통일교, 평강제일교회 등 수많은 이단사이비 단체를 취재해 폭로했고, 테러의 위험을 감수하며 살았다.

고 탁명환 소장의 죽음과 풀리지 않는 의문
 

▲폭탄 테러 후 탁명환 소장 모습(출처: wavve)

 

고 탁명환 소장은 칼, 폭탄 등 수십 번 이상 테러를 당했다. 결국 탁명환 소장은 이단 신도에 의해 살해당했고, 임홍천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이 났다. 방송에서는 당시 공범이 있을 것이라는 정황과 증언이 등장했다. 고 탁명환 소장이 항상 이단의 위험 속에 있다는 것을 느끼던 가족은 “올 게 왔나 보다”, “항상 가스총과 유서를 가지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고 심경을 전했다.

사이비 헌터는 임홍천이 고 탁명환 소장과 개인적으로 원한 관계가 없던 사람이었는데 살인을 저지른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던졌다. 게다가 임홍천 누나는 “반듯하고 정도 많고 마음이 약했다”며 임홍천의 살인을 이해할 수 없다고 증언했다. 고 박윤식 목사(평강제일교회 설립자)의 운전기사였던 임홍천은 “사탄인 위 피해자(탁명환 소장)도 못 때려잡으면서 영적인 사탄은 어떻게 잡으려고 하느냐”는 비난조의 말을 박윤식 목사에게 듣고 분노가 더욱 깊어져 살해하기로 결정했다고 증언했다. 경찰, 취재 기자 등 여러 사람들은 사주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홍천 구속 다음날 박윤식 목사가 미국으로 출국한 것도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당시 고 탁명환 소장은 박윤식 목사의 외화 밀반출 혐의, 여신도 간음, 재산 탈취, 가정불화, 감금 등의 문제를 제기해 왔고, 특히 박윤식 혼외 자식 문제를 취재 및 보도해 실체를 폭로하던 시기였다.
 

▲임홍천의 탁명환 소장 살해 장면을 묘사한 모습(출처: wavve)

 

임홍천은 충동적으로, 단독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했고, 전문가들은 “단독 범행일 리가 없다”, “누가 봐도 의심스럽다”고 전했다. 사건 당시 세 명이 뒤쪽으로 뛰어내리는 걸 봤다는 목격자들의 증언, 청년 세 명이 시동을 건 채 차를 주차하고 서성거리는 것을 봤다는 목격담, 아파트 출입구가 아닌 반대쪽으로 도주한 임홍천의 납득할 수 없는 행동, 범행을 재연할 때 운전석이 아닌 조수석으로 탔다는 임홍천의 행동, 범행 이후 대성교회(현 평강제일교회)에서 도피 자금을 받고 도피한 정황 등 의심스러운 일들이 다수 발생했다.

또 탁명환 피살 사건 담당 김규헌 검사는 “회계 담당하는 장로가 나를 많이 찾아왔다”며 “제가 쓸 수 있는 돈이 80억 원이 있다”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박 목사를 뒤쫓지 않는다는 조건 딱 한 가지라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독 범행으로 규정해 수사를 일단락지었다. 고 탁명환 소장 차남 탁지원 소장(「현대종교」 발행인)은 “당시 안기부에서 찾아와서 이 사건은 해결하기 어려울 거다”라며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게 될 거다. 유족들 마음 단단히 해라. 미안하다”라고 말한 것이 또렷이 기억난다고 전했다.
 

▲탁명환 소장 장례식 모습(출처: wavve)

 

탁명환 피살 사건을 취재했던 유용화 기자는 고 탁명환 소장에 대해 “군사 독재 정권과 사이비 종교 집단의 유착, 밀착 이런 부분들을 연구하셨던 분”이라며 “탁 소장이 당한 테러에 대해서 명확하게 수사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살인자 임홍천의 행보와 현재
 

▲제작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떠나는 임홍천씨(출처: wavve)

 

살인자 임홍천은 출소 후 미국으로 갔다. 고 박윤식 목사의 지시였다. 살인자에게 비자 발행을 하지 않는 미국에 가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임홍천 누나는 임홍천이 교류가 전혀 없던 사람과 결혼을 할 것이고, 캐나다에서 미국까지 수영을 해서 가야 한다고 들었다고 했다. 제작진은 임홍천이 미국 플로리다에 거주했고, 신발, 핸드백을 수선하는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냈으나 만나지는 못했다. 현재 인천 송도에 50평짜리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임홍천 누나는 박윤식 목사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며 박윤식 목사는 육신이 죽어 땅에 묻힐 분이 아니라고 믿었기에 교회가 대혼란에 휩싸였다고 증언했다. 박윤식 목사 사망 이후 임홍천 누나는 동생이 “사실은 목사님이 시켜서 내가 했다”며 “교회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을 진행하겠다. 25억을 청구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제작진은 인천 송도에 거주하는 임홍천과의 접촉에 성공했다. 제작진이 박윤식이 사주했는지 여부를 묻자 임홍천은 “그걸 내가 왜 당신에게 해야 돼요?”라며 끝까지 답을 하지 않았다. 고 탁명환 소장의 장남 탁지일 교수는 “임홍천은 돈이 중요한 거 같다. 유가족들에게 사과를 한다든지 본인이 했던 어떤 일에 대한 사회적인, 도의적인 책임을 느껴서 자백을 한다든지 이미 지난 것은 아닌가”라며 “지금 그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사이비 헌터 총연출을 맡은 서정문 PD(출처: wavve)

 

사이비 헌터 제작을 담당한 서정문 PD는 “탁명환 소장님께서 이단에 의해 피살당하셨는데, 세 아들이 이어서 활동하신다는 것이 놀라워 취재를 시작했다”며 “고 탁명환 소장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할 때 유가족의 내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유가족이 상처받지 않게 만드는 것에 고민이 컸다”고 고백했다. 이어서 “탁명환 소장님이 살아계셨으면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는 통일교, 신천지, 구원파, JMS 문제들이 없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또 “사이비 헌터 방송을 통해 탁명환 소장님을 처음 알게 되었다”, “돌아가셨을 때 너무 마음 아팠는데 다시 제대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등의 댓글에 힘을 얻는다고 전했다. 현재 사이비 헌터 방송으로 방송국과 제작진은 평강제일교회, 고 박윤식 목사 아들, 임홍천 등과의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고 탁명환 소장의 업적과 살해 사건이 방송을 통해 재조명되었다. 이번 방송을 통해 고 탁명환 소장 살해 사건의 진실을 돌아보고, 이 시대에 이단사이비 연구가들에게 남긴 업적을 회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탁지일 교수는 “우리를 보여줄 수 있는 권력이 없다면 우리가 하고 있다는 존재감을 계속 나타내주는 것, 싸움이 꼭 이기는 싸움만 있는 게 아니니까 이슈화를 위해서는 지는 싸움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고 탁명환 소장은 수많은 테러를 당하면서 끊임없이 지는 싸움을 했으나, 이단 연구의 선구자로서 후배 연구가들의 귀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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