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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과 정치
김정수 기자 rlawjdtn@hanmail.net
2016년 04월 11일 15시 54분 입력

돈보다 큰 것이 무엇인가. 권력이다. 권력은 돈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단들은 권력의 힘을 필요로 한다. 이단이라고 비판받기 때문에, 또는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치참여 또는 정치인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노린다. 대한민국은 4·13 총선을 앞두고 있다. 이단들은 정치인들과의 관계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신천지

▲ 서청원 대표 지원을 위해 전화선거운동을 기획한 신천지

정치 참여에 적극적이었던 단체로 신천지를 빼놓을 수 없다. 2003년에는 “서청원 대표 최고의원 경선 시 지원사항 및 향후 계획”이라는 문건을 작성해 전국 약 2500명의 신도들을 동원해 약 50만 명에게 전화선거운동을 하고, 인터넷카페 ‘청원사랑’을 개설해 가입시키기도 했다.
 

2006년 맹형규 의원 출판기념회에 신도들을 동원했고, 맹 의원은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특별히 어려운 걸음을 해주신 이만희 목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라고 밝혔다.
 

▲ 신도들에게 한나라당 당원 가입을 지시하는 신천지 내부 문건

2007년에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특정후보의 유세지원활동을 벌이며 신도들에게 조직적으로 당원으로 가입하라고 지시했다. “신천지 대외활동 협조 안내문”이란 문건을 전국의 12지파에 하달했고, 신도 1만 670명을 한나라당에 특별당원으로 가입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신천지를 탈퇴한 지명한씨전 신천지 강사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선거운동에 신천지 신도들이 동원되었다. 나도 현장에 있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신천지와 정치권의 연결고리를 담당했던 인물은 신천지 전국청년회장이었던 차한선씨다. 과천을 지역구로 한 안상수 의원의 보좌관을 거쳐 한나라당 부대변인까지 지내는 등 여권과의 관계가 깊다. 이렇듯 신천지는 꾸준히 정치권, 특히 여권과의 관계에 부단히 노력해 왔고, 이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신천지의 이단성, 이혼, 가출 등의 사회문제가 알려지면서 정치권에서도 대외적으로 신천지와의 관계를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에서는 신천지와의 관계를 부정하고, 신천지 행사에 참석한 정치인들은 ▲모르고 참석 ▲신천지와 관계없다 ▲참석 당시에는 이단 논쟁이 많지 않았다는 등의 해명을 쏟아냈다.
 

여론에 민감한 정치인들은 〈PD수첩〉등의 보도로 신천지의 사회문제가 드러나고, 이단이라고 낙인찍힌 신천지와의 협력이 밝혀지는 것이 꺼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도 수가 16만을 육박하고, 교주의 말 한마디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신천지가 정치인들에게는 거절할 수 없는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온다.
 

정치의 단맛 쓴맛 경험한 통일교

▲ 평화통일가정당 출정식 (출처: 세계일보)

통일교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이단단체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밀접한 정치적 관계 속에 있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했다. 2003년 3월 천주평화통일가정당(곽정환 총재) 창당대회를 열고, “문선명 선생님이 제창한 하나님 주의를 근간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기치를 세우겠다”고 밝히며 통일교 색깔이 짙은 당임을 알렸다. 정당법상 “최근 4년간 총선인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참여하지 않거나 총선에서 유효 투표 총수의 100분의 2 이상을 득표하지 못한 경우”에 해당되어 2007년 3월 정당등록이 취소되었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가정이 행복한 나라”라는 슬로건을 걸고 평화통일가정당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창당했다. 전국 245개 선거구에 후보를 내고, 전국에서 150~200만 표를 얻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우며 2008년 4월 총선에 박차를 가했으나, 1.05%(18만 857표) 지지를 받는 데에 그쳤다. 이후 평화통일가정당도 정당등록이 취소되었다.
 

▲ 생활정치아카데미 출범식 (출처: 생활정치아카데미 홈페이지)

통일교는 정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물밑작업을 시도했다. 생활정치아카데미를 설립하고, 평화통일가정당 비례대표 2번으로 나왔던 통일교 핵심세력인 황선조씨가 이사장을 맡았다. 2012년 1월 개소해 전국 및 해외에서 세미나를 개최하고, 전·현직 시·도의원들이 각 지역의 회장을 맡아 조직력을 강화하는 등 정치활동의 기초를 튼튼히 다졌다.
 

현재 생활정치아카데미는 홈페이지조차 없어졌고, 그 활동이 사라졌다. 통일교는 두 번의 창당 실패 후 생활정치라는 새로운 접근으로 정치활동에 초석을 마련하려 했으나 그마저 실패로 끝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번 통일교 기원절 행사를 통해 통일교와 정치인들의 관계가 청신호임을 짐작할 수 있다. 기원절 행사에 세계 각 나라와 국내 정치인들이 초청되었다. 세계평화의원연합 창립추진위원회(위원장 댄 버튼 전 미국 하원의원)가 개최한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 지도자 컨퍼런스’에는 정의화 국회의장, 정갑윤 국회부의장, 김을동, 정두언, 안홍준, 이학영 국회의원을 비롯해 40여 개국 현직 국회의원 150여 명, 각 나라 대사, 주한 외교관, 언론인, 종교지도자 등 60여 개국에서 총 450여 명이 참석했다. 단순히 행사를 한다고 초청하면 올 인물들이 아니다.
 

그동안 통일교가 정치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왔는지 알 수 있다. 특히 북한통으로 알려진 통일교는 남북정세가 심상치 않은 이때에 정치인들이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할 존재로 떠오른다. 문선명씨 사망 후 한학자 대표 체제가 견고해지는 요즘 통일교와 정치권과의 관계가 돈독해 보인다.
 

이단과 정치인의 관계로 인한 폐해


이단과 정치인의 긴밀한 관계는 이단연구가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고 탁명환 소장은 통일교의 정치적 유착관계로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통일교와 정치인의 관계는 박정희 정권 시절로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정희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통일교였다. 고 탁명환 소장은 (통일교 이탈 신도들에 의하면) “남산이라고 하는 정보기관의 종교담당자가 (통일교에서) 식구로 여길 만큼 친통일교 인사이거나 통일교의 충실한 하수인들이었다”고 밝혔고, 유신체제가 종식되기 전까지는 통일교에 대해서 침묵을 지켜야만 할 정도로 타락한 정치권력의 외압과 통일교 측의 압력이 심했다고 고백했다.
 

또 평강제일교회 한 신도에 의해 살해당한 고 탁명환 소장. 그 살해를 사주한 혐의를 받았던 고 박윤식씨는 해외로 장기 도피했다가 3년 6개월 후 귀국해 3~4일 만에 조사가 끝나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 당시 정권의 실세였던 정모씨가 평강제일교회 신도라는 것은 ‘박씨의 수사과정이 과연 공정했을까’라는 의문을 던지게 한다.


이단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이단과 정치권과의 유착관계가 더 뜨거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사람이 필요한데, 이단은 교주의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수많은 신도를 거느리고 있으니 감지덕지한 일이다. 하지만 그 관계가 알려지길 원치 않는다. 이단이라는 점이 약점으로 작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신천지 하늘문화예술체전에 참석해 축사를 한 강기갑 의원이 빗발친 비난 여론과 강력한 항의를 받아 해명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분명 이단과 정치인은 서로 도울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어 그 끈을 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4·13 총선에도, 내년에 있을 대선에도 이단과 정치인들의 상생관계가 물밑에서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