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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단의 세례요한 이해: 기독교복음선교회(JMS)와 신천지의 교리와 계보를 중심으로 (2)
탁지일 편집장 jiiltark@hanmail.net
2018년 02월 28일 13시 59분 입력

한국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발흥하기 시작한 기독교계 이단들은 한국 중심적 특징들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재림 그리스도와 그를 선포한 세례요한은 한국인(韓國人)이고, 새로운 계시의 말씀도 한국어(韓國語)로 기록되어 있으며, 구원받을 144,000명 대부분도 한국인(韓國人)들이고, 자신들이 주인 되는 지상천국도 한국(韓國) 땅에 세워진다는 것이 이들의 일반적인 주장이다. 특히 이단 지도자들과 관련된 내용이 주목된다. 즉 첫째, 재림 그리스도로 자신을 신격화한 이단 지도자는 대부분 자신이 메시아임을 증명해줄 세례요한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재림 그리스도가 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자신의 등장을 앞서 준비한 세례요한을 통해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둘째, 재림 그리스도로 추앙받던 이단 지도자들은 후계자에 의해 세례요한으로 폄하되고, 후계자가 새로운 재림 그리스도로 등장하기도 한다. 후계자를 꿈꾸는 추종자에게는 자신의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다. 통일교 문선명에게서 JMS 정명석이, 그리고 장막성전 유재열에게서 신천지 이만희가 등장하게 되는 것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 결과이다. 이만희는 유재열을 배도한 세례요한으로, 그리고 정명석은 문선명을 실패한 세례요한으로 재해석한다. 한국 이단들의 교리에 나타난 세례요한에 대한 연구는 한국 이단들의 비성경적 교리의 근원적 상호연관성과 그 문제점을 드러나도록 도와준다. 본 연구의 목적은, 기독교복음선교회(JMS)와 신천지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 이단 교리에 나타난 세례요한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한국교회 이단 교리의 뿌리와 그 계보를 분석하고, 이에 대한 교리적 변증의 기초를 구축하는 것이다. 

 

IV. 실패자 세례요한과 재림 그리스도: 문선명(통일교)과 정명석(JMS)의 해석

 

  

▲탁지일 교수
  본지 이사장 겸 편집장
  부산장신대학교 교회사

  

정명석은 30개론을 통해 세례요한이 누구인지를 설명한다. 30개론 고급편의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관계사명”이란 항목에서, “아담 이후 4000년 동안 유대인들은 오직 메시아를 기다렸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메시아보다 더 기다린 자가 있었으니 바로 엘리야”라고 주장하면서, “하나님께서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 즉, 메시아를 보내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먼저 보내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1) 그리고 말라기 4장 5절의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는 내용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주목할 점은 정명석은 예수와 세례요한의 관계를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아니라 갈등과 긴장 관계로 바라본다는 사실이다. 즉 예수와 세례요한이 동시에 활동을 시작하자 “그 조그만 나라에 두 사람이나 나타나 외치는 바람에 유대인들은 그만 혼란”에 빠졌고, 그래서 제사장들이 이들 “두 사람의 신상과 배경을 조사”했는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간판 좋고 배경 좋은 각광받는 선생이었다. 게다가 존경받던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로 어머니는 엘리사벳이었고, 태어날 때 신기한 기사와 이적이 있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도 했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구약 율법에 뛰어난 자였다. 신앙적으로 볼지라도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독실한 수도생활을 마친 대단한 경력의 소유자였다.2) 


반면 예수님은 세례요한과 비교해볼 때 별로 내세울 만한 간판이 없었다. 시골 나사렛의 가난한 목수 요셉의 아들로 어머니는 마리아이고,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너무나도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다. 경력도 크게 드러난 것이 없는 무명의 시골 청년일 뿐만 아니라 생활 처지를 볼지라도 어부, 창녀, 세리들과 같이 먹고 마시면서 어울려 다녔다. 그리고 신앙적으로 보면 유대인의 눈에 예수는 안식일을 범하는가(마12:1-7)하면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요14:9)고까지 하니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3) 

 

조사를 마친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을 찾아가 엘리야냐고 물었을 때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는데, 이로 인해 세례요한의 사역은 실패했다는 것이다. 즉 그가 자신을 엘리야라고 말하고, 예수가 메시아인 것을 밝혔다면 모두가 예수님을 따랐을 것인데, “그러나 요한은 유대인들이 예수님 앞으로 갈 수 없게 만들고 또한 섭리역사도 깨지게 하고 만 것이다. 게다가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엘리야라고 했는데 정작 세례요한은 아니라고 했으니 예수님이 얼마나 우스운 꼴이 되어버린 것인가”라고 해석하면서, “결국 세례요한은 주님 증거도 하지 못하고 정치 이야기나 하다가 헤롯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만다”고 결론짓는다.4)

 

정명석은 나아가 세례요한이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한다. 세례요한이 예수가 메시아인 것을 알고도 부인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요한복음 1장 33~34절과 마태복음 3장 11~17절을 제시한다.5) 정명석은 “그는 메시아를 따르지 않았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따르지 못하고 자기는 자기 나름대로 제자를 양성하며 따로 놀았다”고 비난한다.6) 또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3:30)는 세례요한의 말에도 어폐가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자의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둘[예수와 세례요한]이 혼연일체 되어 둘 다 성해야 하는 게 아닌가. 남편과 부인이 있는데 남편은 잘되고 부인은 망하면 되겠는가. 둘 중 하나가 망하면 둘 다 망하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높이는 듯 말했으나 결국은 아첨 떠는 말이었다. 이렇게 세례요한은 잘못된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사고(思考)가 잘못되면 사고(事故)가 난다.7)

 

정명석은 마태복음 11장 11절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는 구절을 해석하면서, 세례요한이 “가장 큰 자가 될 수 있었는데 메시아를 증거하는 책임분담을 하지 못했기에 가장 작은 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하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8) 그래서 이때로부터 천국이 침노당하기 시작했는데, 결국 이로 인해 세례요한은 예수의 수제자가 되는 자격을 베드로에게 빼앗겼다는 것이다. 정명석은 예수와 세례요한의 관계에 대해,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제대로 몰랐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기를 몰랐다. 세례요한이 대답을 잘못함으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예수님도 세례요한도 짓밟히기 시작했고 결국 그는 죽음의 길을 가게 된다”고 결론 내린다.9)

 

정명석은 예수와 세례요한을 “두 감람나무”(슥4:11)와 “두 증인”(계11:3)으로 이해한다.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두 감람나무 즉, 두 사람을 세워서 섭리하셨는데 보다 영적인 지도자와 보다 육적인 지도자, 이렇게 둘씩 세우셨다”고 설명하면서, “두 감람나무 두 증인은 서로 짝이기에 절대적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 하나 될 때 모든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어있다”고 주장한다.10) 물론 정명석도 이 시대의 두 감람나무 중 하나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또 다른 감람나무는 누구일까? 만약 정명석이 예수라면 세례요한은 누구일까?

정명석은 통일교 신도였다. 1975년 3월 20일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장에게 제출한 자필 입회원서에 따르면, 정명석은 충남 금산 통일교 진산교회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1974년 11월 15일에 통일교에 입교했다고 되어 있다. 자신의 신앙경력에 대해서는 장로교에서 20년 동안 집사로 있었으며, 직업은 “복음전파”라고 적고 있다.11) 정명석의 『선생님의 생애와 사상』에 기록된 연표에 따르면, 1975년 6월 8일 통일교 세계구국대성회에 참석해서 사명 징조를 받았다고 한다.12) 정명석은 통일교와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처음에 통일교에 갔을 때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원리 말씀이 있다!”고 하도 그러기에 굉장히 얼었다. 그런데 수련회에 가서 보니까 너무너무 설명을 못하더라는 것이다. … 결국 깨달은 것은 선생님[정명석]이 가르쳐 주었으면 주었지 도대체 그 밑에서 공부를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 “아니 저 말씀을 가지고 세상에 다라고 생각할까? 내 말씀을 들으면 과연 어떤 현상이 일어날 것인가”하고 선생님이 말씀을 좀 가르쳤더니 휙휙 돌아갔다. 그때부터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말씀을 가르쳤더니만 깜짝 놀라더라. “아하, 세상을 흔들고 돌아다닌다는 통일교의 말씀보다 나에게 훨씬 높은 말씀을 주셨구나! 주님이 그러한 가르침을 주셨구나!”이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13)

 

1979년 통일교를 떠나기까지, 정명석은 통일교 강사로 적극적인 활동을 한다.14) 정명석은 “금산 통일교회 부흥집회, 선생님의 소문이 금산까지 나서 금산통일교회에서 부흥집회를 하게 되었다. 11일 동안 밥도 안 먹고 물 한번 안마시면서 단식하여 부흥집회를 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왔었다”고 기록한다.15) 한편 이 시기 통일교 세계평화교수아카데미 교수들을 상대로도 집중강의를 했는데, 바로 이때부터 대학생들에 대한 포교활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16)

 

정명석은 통일교의 교리적 영향을 받는다. 정명석은 “여러 곳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그래도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곳은 통일교회였다”고 밝힌다.17) 통일교 문선명의 『원리강론』에 나오는 “엘리야의 재림과 세례요한”을 보면, 문선명의 주장이 정명석의 30개론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선명은 『원리강론』에서 예수와 세례요한의 갈등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선지자들의 예언을 믿고 있던 「유대」인들의 간곡한 소망은 물론 「메시아」의 강림이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유대」인들이 갈망해 왔던 것은, 「엘리야」의 재림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 그런데 선지자 「말라기」의 예언대로, 「엘리야」가 왔다는 소식은 없고 예수님께서 느닷없이 「메시아」를 자처하고 나섰을 때, 「예루살렘」은 일대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 예수님은 바로 세례 「요한」이 그들이 고대하고 있는 「엘리야」라고 대답해 주셨다. … [그러나]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이 「엘리야」라고 하신 예수님의 증언을 더욱 믿을 수 없었던 것은, 「요한」복음 1장 21절의 기록이 보이는바, 이미 세례 「요한」 자신이 자기는 「엘리야」가 아니라고 명백히 부인한 뒤의 일이었기 때문이다.18)

 

문선명의 주장이 정명석을 통해 확대되고 수정 ·보완된 것을 알 수 있다. 문선명은 유대인들은 예수가 아니라 세례요한을 더 믿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를 유대인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데, 정명석의 주장에도 글 순서만 바뀐 채 그대로 나타난다. 

 

예수님은 빈천한 목수의 가정에서 생장한, 하나의 배우지 못한 청년이었다. 이러한 청년이 이름 없이 일어나, 스스로 안식일의 주인이라 칭하면서, 「유대」인들이 생명과 같이 여기는 안식일을 범하였다(마태복음 12장 1~8절).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대」인의 구원의 푯대인, 율법을 폐하는 사람으로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마태복음 5장 17절). 따라서 예수님은 「유대」인의 지도자들에게 몰린 바 되어, 하는 수 없이 어부를 불러 제자를 삼았으며,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함께 먹고 마셨다.19)

 

세례 「요한」은 당시의 명문가인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로 태어났다(누가복음 1장 13절). 그의 부친이 지성소에서 분향할 때에, 그 아내가 아들을 잉태하리라는 천사의 말을 곧이듣지 아니함으로써 벙어리가 되었다가, 「요한」이 출생하자마자 그 입이 열린 기사이적 등으로 인하여, 온 「유대」 고을 사람들이 크게 놀랐던 것이다(누가복음 1장 9~66절). 뿐만 아니라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으로 연명하면서 수도하던 그의 빛나는 신앙생활을 보고, 일반 「유대」인들은 물론 제사장들까지도 그에게 혹 당신이 「메시아」가 아닌가 하고 물어볼 정도로, 그는 「유대」인들에게 훌륭하게 보였던 것이다(누가복음 3장 15절, 요한복음 1장 20절).20)

 

『원리강론』에 따르면, 유대인들이 예수보다 세례요한을 더 신뢰했기 때문에, 예수는 “망언자”로 몰리게 되었고, 결국 유대인들은 예수를 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21) 결국 세례요한이 자신을 엘리야라고 선포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따르지 않게 된 것이라고 세례요한을 비판한다.22)

 

또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요3:30)는 구절을 예로 들면서, “그 [세례요한]는 예수님과 흥망성쇠의 운명을 같이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한편, “그[세례요한]는 무지로 인하여 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고, 마침내는 예수님을 위하여 바쳐야 할 그의 목숨마저 별로 가치도 없는 일에 희생하고 말았던 것이다”라고 세례요한의 실패를 강조한다.23) 정명석 교리의 근원이 문선명의 주장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선명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마11:11)는 성경말씀에 대해, “천국에서는 아무리 작은 자라도 이미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고 모시고 있는데, 누구보다도 「메시아」를 가까이 모셔야 할 자리에 부름을 받은 세례 「요한」은(눅1:75), 도리어 예수님과 엇갈린 길을 걷고 있었으니, 이로써 그는 천국의 지극히 작은 자보다도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24) 또한, 정명석의 주장에 드러난 것처럼, 이로 인해 세례요한으로부터 천국이 침노 당하기 시작했고, 수제자의 자리를 베드로에게 빼앗겼다고 주장한다.25)

 

문선명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길을 가게 된 큰 요인이 세례 「요한」에게 있었다”고 결론짓는다.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무지와 불신은 「유대」인들의 불신을 초래하였고, 「유대」인들의 불신은 마침내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을 가시게 하였다”는 것이다.26)

 

정명석의 30개론이 문선명의 『원리강론』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문선명의 세례요한 이해는 정명석에게서 그대로 반복된다. 차이점이 있다면, 문선명에게 세례요한은 그에게 교리적 영향을 준 김백문이었고, 정명석에게는 문선명이었다는 사실인 것을 알 수 있다.27)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중 한 사람이 세례요한이 되어야, 다른 한 사람이 재림 그리스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 계속)

 

1) 정명석, 『30개론 강의안』 (서울: 도서출판 명, 2002), 173.

2) 정명석, ibid., 174.

3) 정명석, ibid..

4) 정명석, ibid., 175-176.

5) 정명석, ibid., 176.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요1:33~34)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 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3:11~17)

6) 정명석, ibid..

7) 정명석, ibid., 177.

8) 정명석, ibid., 178.

9) 정명석, ibid., 179. 세례요한의 죽음 원인에 대해, 정명석은 “종교인이면 종교 일에나 열심을 낼 것이지 정치에 관여하고 왕의 사랑 문제를 건드리다가 목이 잘려 죽었다. 세례요한은 순교한 것이 아니다. 주님을 제대로 증거하지 못하고 자기 제자나 양서하면서 따로 놀다가 실로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당한 것이다.”라고 비난한다.

10) 정명석, ibid., 180-184.

11) 정명석의 통일교 입회원서.

12) 정명석, 『선생님의 생애와 사상』 (서울: 세계청년대학생MS연맹, 1995), 375-376.

13) 정명석, ibid., 166-167. JMS에서는 정명석을 “선생님”혹은 Rabbi의 머리글자를 따서 “R”이라고 지칭한다.

14) 정명석, ibid., 375-376.

15) 정명석, ibid., 275-276.

16) 정명석, ibid., 289.

17) 정명석, ibid., 276.

18) 문선명, 『원리강론』 (서울: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1980), 160-161.

19) 문선명, ibid., 162.

20) 문선명, ibid., 163.

21) 문선명, ibid., 163-164.

22) 문선명, ibid., 164.

23) 문선명, ibid., 166.

24) 문선명, ibid., 169.

25) 문선명, ibid., 169.

26) 문선명, ibid., 170-171.

27) 김백문은 세례요한에 대해, “洗禮 요한과 예수께서 처음으로 福音宣布에 開天的場面”을 보인 것으로 설명하면서 그 사역의 유사성에 집중한다. 김백문, 『성신신학』 (서울: 평문사, 1954), 3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