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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M이라 명명(命名)하다
민호기 목사 mrmad@hdjongkyo.co.kr
2018년 03월 30일 11시 58분 입력

  

▲민호기 목사 
  찬미워십 대표 
  소망의 바다 
  대신대학교 교회음악교수

  

현대교회의 문화적 이슈 중 음악만큼이나 민감하고도 논쟁적인 주제는 없는 것 같다. 그중 CCM은 지난 30여 년간 단연 그 모든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고, 관심도, 애정도, 비판도, 정죄도 한 몸에 받아야 했다. 정확한 개념화도 부족했고, 현장에서의 정당한 평가도 미진했다. 때로는 과장된 기대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CCM이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나 불신 또한 만만치 않았다. 실제로 본 고장인 미국에서조차 CCM은 그리 일반화된 용어로 불리지 못했다.(미국에서 더 많이 쓰이는 용어는 ‘Gospel Music’이다) 교회가 보는 CCM, 세상이 보는 CCM, 우리 스스로가 보는 CCM 등 다양한 관점이 존재했고, 해석이 다양한 만큼 왜곡의 위험성 또한 컸다. 

 

이런 내외적 장단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CCM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어떤 단어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각도의 해석과 논의가 가능하다는 점뿐 아니라, 지난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이 단어에 집중하며 달려온 개인적 감회 또한 남다르기 때문이다. 먼저 CCM의 위치와 개념을 분명히 하고, 현재의 진단과 미래에의 전망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순서라 여겨진다. 때문에 이 연재글의 제목을 으로 정했다. 한국의 CCM이 놓여있는 지점, 그 현실과 현상 ‘너머’에 있는 본질을 들여다본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CCM이 얽매여 있는 여타의 한계상황들을 뛰어 ‘넘어’보자는 의지를 중의적 의미로 담았다. 

 

몇 가지 미리 밝혀두는 것은, 이 글에서 CCM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시대에 통용되는 모든 기독교 음악’을 포괄하는 의미로서의 ‘광의의 CCM’이 아니라 현대적인 음악과 스타일을 기반으로 성도의 신앙을 북돋을 뿐 아니라 세상과의 소통 가능성을 모색하는 가사와 음악과 메시지를 담은 ‘협의의 CCM’에 한정하려 한다. ‘찬양’과 ‘음악’은 분명히 다른 것이고, ‘찬양사역’보다는 ‘음악사역’이 보다 정확한 용어다. 하지만 관용적 표현으로 이 둘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 역시 이 글에서는 중요시하지 않겠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CCM 가수, 찬양사역자, 예배인도자 등의 구분은 이어지는 연재에서 더 구체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나아가 근래의 실제적 교회음악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경배와 찬양, 모던 워십, CWM(Contemporary Worship Music) 등으로 불리는 ‘현대예배음악’역시 비중을 두고 논의할 생각이다. 더불어 당부 드리는 점은 필자가 서 있는 특수한 위치가 충분히 편협할 수 있는 이 글을 읽는데 중요한 참고요소라는 점이다. 스무 살에 ‘찬미 선교단’에서 사역을 시작해 CCM 가수 ‘소망의 바다’로 데뷔해 활동했다. 지금은 선교단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을 버리고 예배사역에 좀 더 집중하기로 한 ‘찬미워십’의 예배인도자로 섬기고 있다. 그 사이 목사가 되었고, 후진을 양성하는 교수가 되었으며, 세상을 향해 부르는 ‘크로스오버’앨범도 발표하며 대중가수로 데뷔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위에 열거한 일들이 벌어진 25년의 개인사는 한국 음악사역의 현대사를 압축한다는 점이다. 교회마다 너나없이 ‘선교단’을 조직해 악기를 사고 찬양집회를 열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을 지나며, 새로운 교회음악인 CCM의 등장으로 한국에서의 찬양사역은 더욱 탄력을 받고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좋은 앨범과 사역자들도 많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 대부분은 대중적인 음악과 메시지로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문을 두드렸다. 물론 그들이 서는 대부분의 무대는 교회였다. 그들의 음반 역시 교회 내부에서 소비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작으나마 그 영향력이 세상을 향하기를 꿈꿨다. 그러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며 워십이 주류가 되며 ‘CCM 가수’들이 하루아침에 ‘예배인도자’로 변신했다. ‘선교단’은 ‘워십팀’이라는 좀 더 글로벌한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선교단’이란 이름의 사명감으로 나가던 노방찬양, 미션스쿨 채플, 군부대집회 등은 점차 사라지고, ‘워십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철저히 “교회내수용”으로 활동하게 된다. 근래 들어 이런 워십 편향성에 염증을 느낀 음악사역자들이 다시 세상과의 소통을 고민하는 움직임이 있기는 하나 미미하다.

 

찬양문화가 본격적으로 교회에 유입되던 시기인 1990년대를 지나며, CCM에 대한 교회의 인식이나 기대는 엔터테인먼트,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대다수의 목회자들 역시 이 새로운 찬양들을 진정한 신앙의 요소로 인식하기보다 ‘교회부흥의 도구’정도의 하위개념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음악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사역자들의 부푼 꿈은 현실적 한계 앞에 신기루처럼 스러져갔다. 새로운 찬양예배 문화는 한국교회 안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나 오히려 음악사역 자체는 현저히 위축되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 분이 음악을 창조하셨고, 그 일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우리 인간에게 맡겨주셨다. 

 

 

▲그림1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의 범죄로 음악 또한 여러 층위로 나누어진다. 큰 틀에서 ‘기독교 음악’과 ‘세속 음악’으로 나눠지게 된 것은 가장 큰 손실이지만, 기독교 음악 안에서조차 여러 층위가 존재한다(성과 속 또는 특별은총과 일반은총의 이원론 문제 또한 논외로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독교 음악’이라 함은 정확한 의미에서 CCM(광의의 CCM)과 동의어로 보아도 무방하다. CCM의 정확한 의미는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즉 ‘동시대의 기독교 음악’으로 찬송가, 복음성가, 경배와 찬양, 클래식 성가 등 우리 시대에 통용되는 모든 기독교 음악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음악’안에 ‘교회 음악’, 그 안에 ‘예배 음악’의 순으로 표시했으되, 이것이 결코 상하의 개념이나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순이 아님을 전제로 해야 한다. 문제는 큰 집합으로 나눴으되 더 세분할 수 있는 음악들, 혹은 음악 장르를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데서 논란의 여지가 발생한다. 가령 가장 바깥에 속한 ‘교회 음악 밖 기독교 음악’의 경우, 정통 가톨릭은 배제하더라도 성공회나 떼제 공동체 등 개신교 성향의 가톨릭 계열의 음악, 심지어 무교회주의자나 유형의 교회를 이루지 못하는 박해받는 공동체들의 노래와 같은 ‘개신교회 밖 기독교 음악’등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논란이 더욱 분분한 쪽은 역시 ‘교회 음악’과 ‘예배 음악’의 경계다. 어떤 음악들은 예배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과 예배란 그 모든 음악적 다양성마저 포용하는 것이란 주장이 맞선다. 여기에 ‘협의의 CCM’이 개입되면 역학관계는 매우 복잡해진다. 극단적인 이들은 ‘협의의 CCM’의 위치를 ‘교회 음악 밖 기독교 음악’에 한정하고 싶어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최소한 ‘예배 음악 밖 교회 음악’정도에라도 두려고 할 것이다. 반대로 ‘협의의 CCM’을 ‘예배 음악’안에 두고 싶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를 교집합으로 보느냐, 합집합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교회 내에서의 CCM의 위상이나 중요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현저히 달라질 것이다.

 

 

         ▲그림2                         그림3                              그림4

 

 

가령 CCM의 위치를 2, 3, 4번의 경우처럼 제한하지 않고, 5, 6, 7번과 같이 유연성을 가지게 한다면 음악사역을 통해서 우리가 헌신할, 가능성 또한 풍성해진다. 새신자 초청 예배나 구도자 예배Seekers Service 때 종종 유명한 대중가요가 연주되는 걸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런 노래들을 대체할 수 있는 좋은 CCM이 필요하다(물론 ‘구도자 예배’가 온전한 예배인가 아닌가의 논란 역시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그림5                        그림6                           그림7

 

 

5번의 경우처럼 기독교 신앙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이야기를 하지만 넌 크리스천들에게 들려지고 불려질 수 있는 착한 노래들이 필요하다. 7번의 경우처럼 크리스천의 일상의 고백이지만 예배 때, 공동체 전체의 고백으로 사용될 수 있는 노래들도 필요하다. 이에 대한 논의를 좀 더 명확케 하기 위해 다음 호에서는 CCM의 정의를 다시 한 번 정리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