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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툴리안, 한국이단을 만나다! (下)
탁지일 편집장 jiiltark@hanmail.net
2018년 08월 31일 17시 37분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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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지일 교수
  본지 이사장 겸 편집장
  부산장신대학교 교회사

3. 위장의 기술

이단은 파괴본능을 가지고 있다. 복음은 사람과 세상을 세우지만, 이단은 가정과 교회를 무너뜨린다. 이러한 파괴본능을 숨기기 위한 이단들의 위장술은 상상을 초월한다. 거짓말을 합리화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만하며, 양의 옷을 입고 활보하며 불신과 분열을 조장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최근 이단들의 특징은 사회봉사활동이다. 터툴리안은 이러한 이단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1)
 

이단들은 불신자를 전도하는 것보다, 신앙인을 미혹하는 일에 집중한다. 이러한 목회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단들은 넘어진 자들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서 있는 자들을 넘어뜨린다. 이단들은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파괴하고 교회를 무너뜨리려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 이단들은 무너진 건물을 세우는 일보다, 서 있는 집들을 무너뜨리는 일을 더 쉽게 한다. 이를 위해 이단들이 겸손하고, 예의 바른 것처럼 행동한다.2)
 

해외에서도 이러한 이단들의 위장 기술은 탁월하게 사용된다. 한류바람을 타고 이단들은 성공적으로 세계화하고 있다. 이단 대처 없는 세계 선교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각 대륙에 거점을 확보한 한국 이단들의 활동은 복음 전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미 한국 이단들의 활동으로 인한 외교적 ·선교적 차원의 폐해(弊害)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 27일 남북한 정상들의 판문점 만남과 선언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북한과 동북 3성에 진출해 있는 한국 이단들의 영향력 확대를 생각할 때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그 어떤 기업과 종교보다 북한에 깊숙이 진출해 있는 통일교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고, 중국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동북 3성에 충분히 마련하고 있는 신천지와 하나님의교회를 비롯한 한국 이단들의 영향력도 넓어질 것이며, 국내 거주 새터민에 대해 적극적인 포교활동을 펼쳐온 이단들의 활동도 가시화될 것이다. 남북한 평화의 시기는, 이단문제의 새로운 위기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사회적 위상과 공신력이 약화된 한국교회의 이단 대처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회의 납득할 만한 이단 규정에 대해 이단들은 한국교회의 문제점과 이단 규정의 공정성을 운운하며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단 규정의 ‘주체’인 교회가 사회의 비판에 직면해 있는 반면, 그 ‘대상’인 이단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감춘 채) 친사회적인 봉사활동을 펼치며 사회적 공신력을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이 오늘날의 형세다. 교회의 이유 있는 이단 규정에 대해 이단들은 상식과 형평성을 내세우며 교회의 문제점들을 노출시키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사실은, 이단 대처의 구심적 역할을 해야 할 기독교 연합기관들의 난립현상이다. ‘그리스도를 위한 연합’이 아니라 ‘사리사욕을 위한 야합’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만 하다. 이단 대처에 있어서 연합적 대처는 가장 효과적이다. 개인이나 개교회 차원의 이단 대처는 고립적이고 수세적일 수 있지만, 연합적 이단 대처 활동은 효과적이고 영향력이 있다. 만약 여기에 주변사회가 쉽게 공감할 수 있고, 교회의 힘을 결집시킬 수 있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이단 대처 전략이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는 강력한 이단 대처의 조건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최근 교회의 연합활동이 오히려 이단 대처 현장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현재 한국교회 연합활동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러한 연합기관의 난립으로 인한 분열의 짐을 기독교인들이 떠안게 되고, 교권정치에 몰두한 연합기관이 회원 교단들에게 외면을 받는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3) 연합기관이 이단 대처의 중심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불건전한 개인과 단체들이 신분을 세탁하고 면죄부를 받는 장소로 악용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리사욕을 위한 야합’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연합’이 절실하다. 이단 대처 현장은 반드시 교단정치의 청정지역이 되어야 한다. 이단 대처는 ‘정적제거와 교권장악을 위한 마녀사냥’이 아니라, ‘교회와 복음을 정결하게 수호하기 위한 선한 싸움’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이단들의 사회봉사활동이 진심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 단지 사회봉사라는 행위와 그 결과에만 관심을 갖는다. 아마도 종교적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 사회의 당연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기독교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영남이나 제주 지역에서의 이단 대처는, 주변 사회로부터 교회 내의 밥그릇 싸움 정도로 인식되기도 한다. 아무리 고상한 성경적 가르침이라 하더라도 행함과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반면 아무리 비성경적인 이단이라 하더라도 이타적인 봉사활동이 사회에 노출될수록 주변 사회의 긍정적인 평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정서다. 교회가 정결한 모습으로 새로워지고 개혁되지 않으면 이단 대처의 명분과 영향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주객전도 현상은 한국교회 이단 규정의 영향력, 공신력, 구속력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지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만약 교회가 ‘이기적’이고 이단이 ‘이타적’이라면 교회의 이단 규정을 주변 사회가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는 ‘착한 이단’과 ‘나쁜 교회’중 어느 곳을 더 선호할까? 단지 교회의 역사가 더 길고 양적으로 우세하다는 힘의 논리만을 가지고 교회가 이단을 정죄할 수 있을까? 만약 교회가 정통이라는 우산 아래 몸을 피한 채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정통 신앙의 이름으로 합리화한다면 이단 규정의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빛과 소금의 삶을 사는 교회만이 종교적 다양성과 관용의 시대에 뿌리내리는 이단들의 도전에 당당하게 응전할 수 있는 것이다.


4. 교회의 갱신

이단의 발흥은 성서의 예언이다. 제자들이 예수께, 주님 다시 오실 때와 세상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해 물었을 때, 예수는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경고한다(마24:3~5). 이단의 발흥원인이 문제가 아니라, 이단에 대한 대처 방안이 교회의 관심이 되어야 한다. 이단의 도전이 거세지만, 최후의 승리는 교회의 것이다. 교회는 마침내 이긴다. 터툴리안은 이단의 발흥과 신앙인의 자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단의 출현과 활동에 놀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단의 발흥과 교회에 대한 도전은 이미 예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단들의 존재 이유는 우리의 신앙을 시험하고 확증하기 위함이다. 이단들의 활동이 왕성하다고 염려하는 것은 전혀 근거 없고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다. 이단이 없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단이 존재한다면, 반드시 그 존재 이유가 있다.4)


신천지라는 이단 단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신천지로 인한 가정과 교회 안의 불신과 분열이 무서운 것이다. 변함없는 사실은, 신천지의 몰락은 필연적이라는 것이다.5) 이단문제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단 문제가 일어났을 때, ‘왜’이런 일이 나와 우리 가족에게 생겼는지를 걱정하는 것보다, ‘어떻게’이 문제를 해결해 나아갈지를 고민해야 한다. 물론 시간은 걸리겠지만,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치유되고 회복되리라는 소망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한 가족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다른 이들은 지쳐 이단 피해자의 손을 놓을지 모르지만, 사랑하는 가족은 그 손을 결코 놓을 수가 없다. 이단이 문제이면, 가족이 정답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족의 노력은 이단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 이단 피해자 가족모임의 노력은 그렇기에 가장 적극적이고 효과적이다.
 

무엇보다도 잊어서는 안 되는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즉 우리의 이단 대처의 목적은 ‘정죄와 분리’가 아니라 ‘치유와 회복’이라는 것이다. 이단이라는 괴물을 대처하기 위한 명분으로, 우리의 모습이 괴물로 변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이 이단들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힘들겠지만 이단과의 영적 싸움 과정에서의 명분과 방법은 충분히 신앙적이어야 한다.

이단 연구를 하면서 생긴 버릇이 하나 있다. 연구의 결론 과정에 이르게 되면, 연구대상인 이단단체의 자리에 교회를, 교주의 자리에 목회자를 대입해보는 습관이다. 그 순간 교회에도 일어나는 보편적인 현상을, 단지 이단이라는 전제와 선입관으로 인해 비판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조심스럽게 점검하게 된다. 이단 연구를 통해 교회의 본질을 알게 되고, 교회를 이해하면 이단의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 역사적 이단 연구는, 동시대 교회가 잃어버렸던 정체성이 무엇이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그렇기에 이단들은 어김없이, 자신들이 타락한 교회의 대안이라고 주장하며, 세력을 확대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교회의 신학은 곧 세상을 향한 교회의 변증이며, 이는 이단들과의 투쟁을 통해 공고해졌다.

이단 교주의 신격화를 비판하면서, 일부 목회자의 비윤리적 행태에 눈감을 수 없다. 이단 교주는 이단이기 때문에 정죄하고, 비윤리적 목회자는 교회에 속하기 때문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것이다. 건강한 교회가 이단에게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교회 개혁과 이단 대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단이 문제인가, 아니면 이단 규정의 주체인 교회가 문제인가? 교회는 개혁의 주체인가, 아니면 개혁의 대상인가? 이러한 도발적인 질문에 당당하게 답변할 수 있는 교회만이, 현대 이단들의 파상공세에 당당하게 응전할 수 있다. 이단 문제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의 난제로 남아있다.

기독교 역사 이천 년 동안 이단은 쉼 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했지만, 교회는 영원하고 늘 승리해왔다. 비록 한국교회를 향한 사회의 날카로운 비판이 있지만, 오히려 감사하다. 이는 한국교회를 향한 사회의 마지막 남은 기대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을 귀담아 듣는다면 한국교회는 500년 전처럼 다시 한번 ‘개혁의 주체’로 우뚝 서는 것이고, 만약 이를 흘려듣는다면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고난은 충분히 ‘예견(豫見)’된 것이다. 하지만 교회의 회복 또한 의심할 여지없이 ‘예정(豫定)’된 것이다. 교회는 불멸(不滅)하나, 이단은 필멸(必滅)한다. 최후 승리의 그 날까지 ‘교회를 위한 참된 신학’정립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끝)

1) 이 글은 2018년 5월 12일에 개최된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의 기조강연 내용이다.
2) “Prescription against Heretics,”제42장.
3) “교회연합운동 2.0시대를 열자”「국민일보」 (2018.4.26, 4.27).
4) “Prescription against Heretics,”제1장.
5) 해마다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신천지에게서도 몰락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종교 사회학적으로 신흥종교운동의 쇠퇴기에 나타나는 현상들이 최근 신천지 동향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난다. 몰락기를 맞는 신흥종교운동의 경우 스스로 소멸의 길을 걷거나, 혹은 극단적인 반사회적 모습을 일반적으로 노출하게 된다. 신천지는 후자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첫 번째 몰락의 징조는, 불안정한 신천지 후계구도의 문제이다. 물론 “영생불사”를 주장하는 이만희가 후계자에 관심을 갖는 것부터가 이율배반적이지만, 신천지 조직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후계자로 등장했던 김남희가 최근 퇴출되면서, “예수의 영”이 함께 한다는 이만희의 지도력에 균열이 생겼다. 이제는 누가 후계자가 되더라도, 이만희에 버금가는 상징성을 갖기는 어려우며, 신천지 몰락 혹은 분열의 과정을 한시적으로 관리한 인물이 등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교 사회학적으로 후계자의 안정적 등장은 신흥종교운동의 사회적 정착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2세대 교주로 넘어가면서 성장한 단체는 하나님의교회가 유일하다. 하나님의교회를 주목해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후계구도의 불안정성’은 신천지 몰락의 첫 번째 징후이다. 두 번째 몰락의 징조는, 신천지 아류 혹은 분파의 등장이다. 최근 흥미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신천지 과천장년섭외부 명으로 보내진 문자에 따르면, 신천지 안에 ‘새천지’가 등장했으며, “신천지 vs. 새천지 교리비교”를 내세워 신천지 신도들에게 문자발송을 통해 접근하니 주의하라는 내용이었다. 신천지의 여러 아류 분파들의 등장은, 신흥종교운동 몰락기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들 중의 하나이다. 이는 이만희 사후에 더욱 본격화될 것이고, (유재열이 박태선에게, 그리고 이만희가 유재열에게 했던 것처럼) 분파 형성을 위한 이만희에 대한 교리적 폄하도 함께 진행될 것이다. 다수의 분파가 등장할 것이고, 세력에 따라 이합집산 할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신천지 신도들의 분파도 함께 진행될 것이다. 분파 형성은 몰락기의 신천지가 반드시 조우해야 할 운명이다. 세 번째 신천지 몰락의 징조는, 주변 교회와 사회와의 의도적 갈등구도의 조장이다. 최근 신천지가 신도들을 내세워 대규모 집회를 열거나 대형버스 등을 이용해 공개적인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정체를 감추고 소위 모략으로 포교하던 신천지의 전형적인 모습에서 벗어나는 행동들이다. 이는 신천지 후계구도의 불안정성과 분파의 우려 등으로 인한 신도들의 동요를 막고, 지속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전형적인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쇠퇴기의 신흥종교운동들은 신도들에 대한 효율적인 통제를 위해, 외부와의 충돌을 야기해왔는데, 신천지도 예외는 아니다. 헌신이라는 미명 하에 신도들을 거리로 내몰아, 신천지의 문제점들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향후 수년 동안 신천지 동향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극단적이고 반사회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교회와 사회가 견제해야 한다. 네 번째 몰락의 징조는, 부동산에 대한 집착이다. 모든 신흥종교운동들의 종착지는 거점 확보이다. 안정적 거점 확보의 유무는 신흥종교운동의 존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신흥종교운동들은 사업적 성격을 드러내며, 부동산 확보와 투자에 열을 올린다. 성지개발 등의 명목으로 진행되는 이러한 행위는 교리적 합리화를 필수적으로 동반한다.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신천지의 부동산 투자는 신천지 집회시설, 이만희 거주시설, 그리고 최근 청평의 예처럼 박물관 등의 기관시설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흔들리는 지도력을 유지하고 분파를 막기 위한, 돈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2017년 기준 5600여억 원에 이르는 자산은 일시적으로 신천지 몰락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돈과 권력을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전쟁을 치루고 있는 통일교 문선명의 아내와 아들들처럼) 돈으로 시작된 ‘조직유지’는, 결국 돈으로 인한 ‘조직와해’로 이어질 것이다. 신흥종교운동의 쇠퇴기와 몰락기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들이 최근 신천지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신천지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만희 사후를 전제한 후계구도 구축의 시도, 예상되는 신천지 아류 분파의 등장, 그리고 외부와의 대치 국면 조장을 통한 신도들 통제가 점점 강화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신천지 이탈 신도들의 회복 및 치유 구조를 마련하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인 문제 발생이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신천지의 안정적인 몰락과 소멸을 유도해 나아가야 한다. 탁지일, “신천지의 몰락”「현대종교」 (2018.5), 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