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 작게보기
페이스북
오래 되었지만 영원한 길 3대가 함께 부르는 찬송으로
민호기 목사 mrmmad@hdjongkyo.co.kr
2018년 12월 28일 09시 07분 입력

사람의 마음속에는 저마다 음악을 담는 그릇이 있어 그 그릇이 다 차 버리면 아무리 좋은 음악을 갖다 부어도 담기지 않고 흘러 내려 버리는 것 같다. 미친 듯이 내 마음속 그릇에 음악을 길어와 쏟아붓던 시절이 있었다. 어떤 음악이든, 새로운 스타일과 장르에 열광하며 마구 흡수하던 음악 포식자이던 시절 말이다.

▲민호기 목사
찬미워십 대표
소망의 바다
대신대학교 교회음악교수

  

자연스레 ‘새로운 것은 곧 좋은 것’이란 등식이 내 안에 생겼고, 때문에 ‘오래된 것은 낡고 나쁜 것’이란 성급한 귀결에 이르기도 했었다. 음악적 도전과 시도를 미덕으로 삼는 이에겐 머물러 있는 것은 다 따분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시간이 많이 지나 중년이 된 현재도 음악을 만드는 직업의 특성상 늘 새로운 음악을 공급받아야 하고, 젊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병행하다 보니 트렌드에 뒤쳐져서는 안 된다는 의무감을 안고 살고 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느끼는 이 피로감의 정체가 뭘까 궁금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리 좋은 음악을 들어도 내 마음의 그릇에 담기지가 않고 흘러내려 버리는 거다. 제이슨 므라즈와 마룬5를, 아델과 브루노 마스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과 놀라움에 비해 이들의 앨범을 듣는 횟수는 현저히 낮을뿐 더러 심지어 가사를 외우는 노래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이는 비교하자면, ‘주찬양 선교단’과 ‘전하세 예수’의 전 앨범을 달달 외우는 내가 ‘제이어스’의 새 노래는 악보를 봐가며 배워야 하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즐거워서 외워진 노래와 의무감으로 외워야 하는 차이랄까. 내 음악의 그릇은 이미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즈음 다 차 버렸고 그 이후의 음악은 찰랑이는 그릇의 표면만 적시고 있다. 예전엔 가요무대와 전국노래자랑만 보시는 부모님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요즘 90년대 음악만 듣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흠칫 놀란다.

심지어 그 시절엔 그렇게 경멸하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HOT, 젝스키스의 노래마저도 추억이란 옷을 입고 감동으로 다가올 때면 내가 왜 이러나 싶다. 음악이 우리에게 온다는 건, 말하자면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 그걸 듣고 부르며 살아온 지난 시간 전체를 포함하는 것일 수도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시대에 공명하기 마련이다. 음악이란, 그속성상 입력된 대로 작용한다. 음악의 힘이란 실로 강력해서 그 음악들이 들려진 시대의 공기와 냄새와 색깔까지 고스란히 누군가에게 입력되어 그를 지배한다. 옛 노래를 듣는 이들은 단순히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난 인생 그 자체를 소환해 내는 것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가끔 노래란 것이 양보할 수 없는 가치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근래 찬양 인도자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토로는, 선곡 문제 때문에 장로님, 권사님들께 불평을 많이 듣는다는 것이다. 이를 개인적으로 ‘금요철야 세대갈등’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찬양예배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시간에 젊은 예배인도자들은 새 노래들을 많이 부르고 싶어 하고, 어른 세대는 익숙한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한다. ‘내가 금요철야 은혜받으러 왔지 새 노래 배우러 왔냐’고 어른들은 항변하고, ‘이렇게 좋은 최신 곡들이 많은데 왜 자꾸 구닥다리만 고집하냐’고 젊은이들은 맞받아친다.

어느 순간 한국교회는 고령화되어가고 있고 세대 간의 간극은 날로 커져만 간다. 어른 예배 따로, 아이들 예배 따로 드리는 것이 당연해 지다보니 예배 가운데 여러 가지 문화적 단절 현상도 심각하다. 교회 공동체와 예배에서 성도를 하나로 만드는 음악이 오히려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And Rule)’로 작용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교회 안에서 세대 구분은 성경 해석이나 사역방향 등이아니라 음악으로 인해 더욱 명확해진다. 이건 단순히 볼륨의 크기나 악기의 종류, 연주 방식, 음악 장르의 문제가 아니다. 장르 논쟁은 오히려 이에 비하면 소홀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렇기에 선곡은, 단순한 노래를 넘어 자신의 인생과 신앙 전체가걸린 일에 다름 아니라고 하면 과장된 해석일까.

성도 각자는, 본인들이 하나님을 만난 은혜를 경험하고 뜨겁게 헌신하던 시절의 기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노래들에 애착한다. 나에게 그 노래가 ‘그 이름’이라면, 장로님들께는 ‘세상에서 방황할 때’이고, 그 위로 올라가면 ‘내일 일은 난 몰라요’고, 또 그 위로 올라가면 ‘천부여 의지 없어서’이다. 그에 반해지금의 젊은 세대는 ‘Love Never Fails’인 것이다.

장로님, 권사님들께도 청춘의 시절이 있었고, 그 즈음에 교회에서 듣고 부른 노래가그들의 안을 이미 가득 채우고 있어 여간해서는 다른 새 노래들이 부어지지가 않는 것이다. 그 노래들이 곧 본인의 신앙 고백이요 지나온 믿음의 여정 그 자체이기도 한 것이다. 그 노래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에게 있어서는 예배 안에서 은혜를 증폭시키는 가장 중요한 매개가 되어 그 노래를 부르는 순간 고된 세상살이에 굳게 잠긴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주지만, 낯선 노래들은 맞지 않는 열쇠처럼 도무지 열리지가 않는 것이다.

세대 간에 느끼는 음악적 벽은 성경 해석, 나이, 기호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경험치의 문제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 노래에 자신의 경험이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가가 기준이 되어 호불호를 좌우한다. 예상 외로 음악예능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서 요즘 가수가 부르는 옛날 노래를 어른 세대가 거부감 없이 좋아한다는 사실은, 문제는 ‘장르’가 아니라 ‘선곡’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부르냐보다 ‘바로 그 노래’라는 사실이 사람들에겐 더 중요하다. 예를 들자면, 클래시컬한 분위기의 최신 곡보다 락으로 편곡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어른 세대는 더 편안하게 느낀다.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가장 두려운 것 중의 하나는 찬송가가 사라지고있다는 점이다.

성경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된 은혜라면, 찬송가는 믿음의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최고의 신앙 유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에게 찬송가는 그저 낡은 노래에 불과했다. 찬송가야말로 세대를 아우르는 예배의 가장 중요한 매개라고 나는 믿는다. 최소한 가사를 외우고있고 익숙한 찬송가라면 어느 정도의 음악적 변형에도 금방 적응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를 다시 말하자면, 적정선에서 편곡만 잘하면 양쪽을 다 잡을 가능성이 열린다. 한국교회의 전문 찬양 사역 팀들과 교회의 예배 팀들은 이 부분에 있어 더 성실해질 필요가 있다. 원래의 형태와 메시지를지나치게 손상하지 않는 선에서 오래된 옛 찬송들에 새 숨결을 불어넣고 현대적인 옷으로 갈아입히는 일을 연구해야 한다.

어른 세대에게는 익숙함을 주지만, 젊은 세대에게도 낡아 보이지 않는 접점을 찾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예배에는 새 노래가 계속 공급되어야 한다. 지혜롭게 새 노래를 성도들에게 연착륙시켜야 한다. 새로운 노래들을 부르되 조급하지 말라. 정말 좋은 노래라면 시간이 좀 걸리지만, 성도들에게 익숙해질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부르라.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에 비해서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감안하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새 노래를 쏟아내는 대신 천천히 한 곡씩 흘려보내라.

실제적인 조언을 덧붙이자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3대가 함께 드리는 세대통합 찬양예배를 기획하고 시도하기를 권한다. 이 필요성을 절감한 필자도 몇 해 전부터는 초청받은 교회의 주일 오후예배나 금요철야 같이 전 성도가 모이기 좋은 시간에 세대통합 찬양예배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데, 감히 단언하건대 예배와 찬양의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다.

3대가 함께 하는 찬송가 예배를 인도하며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새롭게 편곡된 찬송가를 들은 중고등학생들이 신곡이냐며 물어볼 때다. 동시에, 찬송가를 별로 안 좋아하고 안 부를 거라 생각했던 청소년, 청년들이 오래된 옛 찬송을 부르며 은혜받는 모습을 보는 장로님, 권사님의표정을 확인할 때다. 고마움과 안도감에 은혜는 증폭된다. 이건 반대로 젊은 세대가 OneWay와 Nothing Is Impossible을 부를 때 청바지를 입은 장로님이 함께 뛰며 찬양하는 모습을 봤을 때의 감동과 정확히 등치된다.

세대와 세대가 서로의 찬송을 배우며 우리의 교회는 성장한다. 세월은 흐르고 지금의 새 노래도 낡은 노래가 될 것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나이를 먹어 어른 세대가 떠난 자리를 채우게 될 것이다. 유행도, 트렌드도,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 영원하신 하나님, 그분의 영원한 말씀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또한, 오래되었지만 영원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죽어도 남아 계속될 노래, 이 세상에서 저천국까지 부를 노래 말이다. 그 영원한 노래가 당신의 교회와 예배 공동체에, 가정과 삶구석구석에서 맑은 가락으로 울려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