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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정죄한 이단, 사회가 외면한 교회에게 묻다
이단, 한국교회에게 묻다 (6)
탁지일 편집장 jiiltark@hanmail.net
2016년 02월 01일 08시 53분 입력
▲ 탁지일 교수 (이사장 겸 편집장)

사회적 위상과 공신력이 약화된 한국교회의 이단규정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회의 납득할만한 이단규정에 대해, 이단들은 한국교회의 문제점과 이단규정의 공정성을 운운하며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과연 사회가 외면한 교회의 이단규정은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인가? 이단규정 주체인 교회에게 문제가 있다면, 이단규정에도 문제가 있는 것인가?

사실 한국교회를 향한 한국사회의 날카로운 비판에 대해 일면 감출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적어도 무관심의 단계는 아니라는 안도의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교회의 사회적 순기능을 기억하는 한국사회는, 교회에 대해 사회윤리적인 면에서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다. 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을 경우, 사회는 교회를 향해 항상 냉정한 경고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보낸다. 소셜네트워크가 발달한 오늘날은 더욱 그렇다. 교회가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스스로의 개혁으로 응답하지 않으면, 교회는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는 교회사의 변함없는 교훈이다.

이단규정의 ‘주체’인 교회가 사회의 비판에 직면해 있는 반면, 그 ‘대상’인 이단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감춘 채) 친사회적인 봉사활동을 펼치며 사회적 공신력을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이 오늘날의 형세이다. 교회의 이유 있는 이단규정에 대해, 이단들은 상식과 형평성을 내세우며 “너나 잘하세요!”라고 교회를 향해 비아냥거린다.

게다가 다종교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이단들의 사회봉사활동이 진심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 단지 사회봉사라는 행위와 그 결과에 관심을 갖는다. 아마도 종교적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사회의 당연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기독교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영남이나 제주 지역에서의 이단대처는, 주변 사회로부터 교회 내의 밥그릇 싸움 정도로 인식되기도 한다.

아무리 고상한 성경적 가르침이라고 하더라도 행함과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고, 반면 아무리 비성경적인 이단이라고 하더라도 이타적인 봉사활동이 사회에 노출될수록, 주변 사회의 긍정적인 평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사회 정서이다. 교회가 정결한 모습으로 새로워지고 개혁되지 않으면, 이단대처의 명분과 영향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주객전도 현상은 한국교회 이단규정의 영향력, 공신력, 구속력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만약 교회가 ‘이기적’이고 이단이 ‘이타적’이라면, 교회의 이단 규정을 주변사회가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까? 단지 교회의 역사가 더 길고, 양적으로 더 우세하다는 힘의 논리만을 가지고, 교회가 이단을 정죄할 수 있을까?

만약 교회가 정통이라는 우산아래에 몸을 피하고,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정통신앙의 이름으로 합리화 한다면, 이단규정의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를 어려울 수 있다. 빛과 소금의 삶을 사는 교회만이, 종교적 다양성과 관용의 시대에 뿌리내리는 이단들의 도전에 당당하게 응전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이단들의 주장처럼, 한국교회의 이단규정은 정말 불완전하고, 불합리하며, 불공평한 것일까? 그렇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어떤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개인/단체에 대해, 당연히 다른 교단은 이단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이는 이단규정의 문제점이라기보다는, 한국교회의 운명적 성격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이다. 즉 교파주의의 문제이다.

한국선교는 3개 나라(미국, 캐나다, 호주), 6개 교파(미국남장로교, 미국북장로교, 미국남감리교, 미국북감리교, 캐나다장로교, 호주장로교)에 의해 진행되었다. 더욱이 교계예양(敎界禮讓)정책으로 인해 각 선교회별로 6개 지역으로 한반도를 분할해 선교를 진행했다. 해당지역 교회들은 선교회의 정책과 지역 형편에 따라 그 성격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선교초기 6개였던 교파는, 현재 셀 수조차 없는 백 수십 개의 교파 난립현상을 보이며, 교파주의의 부정적인 모습을 노출시키고 있다. 비개신교인들 뿐만 아니라 개신교인들마저도, 한국교회의 무분별한 교파주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한국교회의 운명인 교파주의는 과연 부정적인 면만 있을까? 하지만 긍정적인 면도 많다. 다사다난한 인생길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예정과 인도를 느끼는 사람들이 장로교에 관심을 갖고, 과거의 잘 못된 경험으로부터 강렬한 회심과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이 감리교에 관심을 갖고, 뜨거운 성령체험을 경험한 사람이 오순절 계통의 교회에 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신앙생활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종교개혁으로 인해 시작된 교파주의의 장점이다.

미국의 교파주의를 분석한 리차드 니버(Richard Niebuhr, 1894-1962)는 그의 저서 The Social Sources of Denominationalism에서, 미국 교파주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설명 하면서 교파주의의 필연성과 긍정적인 측면들을 보여준다. 이는 한국교회 교파주의에도 충분히 적용이 가능한 분석이다.

한국 교파주의적 이단규정이 문제라는 이단들의 주장이 합리적이지는 않다. 이단들은 한국교회 이단규정의 불완전성에 대해 문제제기 할 수 있지만, 오류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교파주의를 운명으로 하는 한국교회가 그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으로, 기독교의 본질을 훼손하고 가정과 사회에 피해를 주는 이단을 대처하기 위해 최선을 노력을 경주해 온 사실을 한국교회사가 증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파주의 이단규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이단대처 방안은 무엇일까? 첫째, 만약 어떤 개인/단체의 이단성에 궁금한 점이 있다면, 여러 교단들의 이단규정 현황을 먼저 참조해야 한다. 현대종교 홈페이지(m.hdjk.co.kr)의 “교단결의” 항목에는 국내 각 개신교단들의 이단규정 현황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본인이 소속한 교단뿐만 아니라, 타교단의 이단규정 현황을 참조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만약 다수의 교단이 이단규정을 하고 있다면,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며 예의주시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담당 목회자에게 이단관련 문제들에 대해 문의해야 한다. 자신이 속한 교회, 자신이 속한 교단에서 그 개인/단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야 한다. 담당 목회자를 통해서, 자신이 속한 교단이 염려하는 이유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얻을 알 수 있다. 이단문제에 대한 궁금함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것이 개인과 가정의 영적건강과 문제해결에 도움이 된다.

셋째,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고자 할 경우에는, 공신력 있는 사이트를 통해야 한다. 인터넷 사이버 공간에는 정확한 정보들뿐만 아니라, 부정확하거나 잘못된 정보들도 많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만약 잘못된 정보에 기초해서 이단운운 한다면 이는 마녀사냥과 다를 바 없으며, 때로는 법적인 책임을 져야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공신력 있는 정보는 이단대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현대종교(02.439.4391~4)와 같은 전문기관을 통해 관련 정보를 얻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연합이 아니라, 교권과 사리사욕을 위한 야합에 집착하는 교파주의적 이단규정이 한국교회 이단대처의 공신력에 상처를 준다. 이러한 행태가 한국교회의 이단규정에 대한 한국사회의 냉소와 이단들의 반발을 야기한다. 주변 사회가 상식적으로 공감하는 이단연구만이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다종교 한국사회에 순기능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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