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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버리고 남는 것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16년 02월 05일 12시 03분 입력

정치가에게 권력을 빼 보라. 무엇이 남는가. 부자들에게 돈을, 성직자에게 직위를, 지식인에게 명성을 빼 보라. 무엇이 남는가. 빼버리고 남은 그것이 바로 그다. 그리하여 다시 나에게 영혼을, 사랑을, 정의를 빼 보라. 그래도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태연히 내가 살아간다면 나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 박노해, ‘무엇이 남는가 중’-

내부자들? 외부자들!
1. 종횡무진 교계를 혼란케 하는 종교브로커들, 최소한의 상식이나 일말의 믿음 내지는 신앙을 기대하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제 입맛에 맞는 대로 이단이든 정통이든 상관없이 능한 정보력과 정치력으로 커넥션을 이뤄 가는데 주력한다. 이단은 이롭게 교회는 분열로, 사역자들에 대한 비방과 압박은 끊임이 없다. 이들의 활동은 고 탁 소장의 사역 시기와 맥을 같이 해왔다.

대략 기억을 정리해보면 『탁명환! 그는 박수무당인가?』 등의 책을 썼던 김모씨로부터 시작해 어떤 이유도 없이 무작정 선친과 「현대종교」에 대해 비난 기사들을 써댔던 이모씨, 이단을 옹호하며 교계를 어지럽히더니만 결국 그 자신이 이단으로 규정됐던 또 다른 이모씨의 활동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이단옹호언론인 황모씨 등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아! 예장합동 측에 몸담았었던 김모씨를 빠뜨릴 뻔했다. 종교브로커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데 아직 현직에서 활동 중이다. 그 외 일일이 열거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계보를 잇고 있다. 교단 요직에 있기도 하고, 연합 기관과 언론 등에도 몸담고 있다.

그러나 대개의 교회와 성도들은 그 정체를 쉽사리 눈치채기가 어렵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봐서는 도통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거짓 내지는, 또한 사실이더라도 진실일 수 없는 정보들로 언론플레이하는 그 잔재주들로 수십 년간 내공을 쌓아 오니 도리어 지지와 후원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 정체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한들, 수없이 복잡한 이해관계들이 맞물려있기에 본질을 꿰뚫어본다 해도 더 이상 어찌할 방법이 없을 때가 많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단 해제, 교회 분열 등의 아픔을 겪고 나서야 늦게나마 격앙된 감정을 안고 소송 등의 문제 제기를 진행하고 있는 이들이 늘고 있어서다.작금의 한국교회 최대의 적은 이단과 한국교회 중간에서 공생하고 있는 영적인 기생충들이다. 그런데 기실 따지고 보면 그들과 정통이라 불리는 이들의 이단 대책이 ‘얼마나 다른가?’하는 거다.

2. 최근 <내부자들>이란 영화가 감독판까지 가세하여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조폭과 검찰, 언론과 정치, 그리고 재벌들의 커넥션과 내부자의 고발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각계지도층의 비리들을 담았는데 상상하던 작금의 현실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세한 조합과 구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기득권자들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만큼 관객들은 그것이 실체인 양 그 뒷모습을 더 알고 싶어 열광(?)하고 있는 것이 지난 호(2016년 1월) 강진구 교수의 관음증 탓일 수 있다는 글과 일면 배치될 수 있겠으나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부패와 모순을 밝히는데 영화가 조금이나마 일조했다는 평도 적지 않다.

특이한 것은 본 영화에서의 희망적인 결말이 감독 확장판에서는 완전히 뒤바뀌어졌다는 것이다. 새롭게 추가된 결말이 ‘스포일러’일수도 있어 말은 아끼겠지만 그 결말을 보며 소름 끼쳤다는 이들의 이야기에 시대의 절망이 영화이든 현실이든 간에 당분간 현재진행형이 될 것이라는 것을 유추하지 않을 수 없다.

3. 영화를 보는 내내 교계 안의 검은 손과 종교브로커들, 그리고 그들의 정체를 파헤치는 내부자들의 영화가 그려졌다. 순진하게 영화로라도 그 사실들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먼저 등장시켜야 할 캐릭터는 당연 이단옹호언론들이지 싶다.

교단 이단 대책 기구를 전담할 기관장과 총회의 임원에서부터 교단장까지 쥐락펴락할 정도의 약점을 쥐고, 권력에까지 개입하여 인사 문제까지 좌지우지했던 경우들을 그간 여러 차례 봐왔기 때문이다. 그 몹쓸 정보력으로 이해관계 얽매인 사람들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데도 탁월해서 이단옹호언론이라 규정해놓고도 그들 정보에 의존하며, 도움까지 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외 대기업, 깡패 등 영화의 인물들에 견주어 교계 특정 인물들의 싱크로율 90% 정도는 가능할 듯하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 얼굴에 침 뱉기’가 되겠지만 지금 교계의 상황은 아무리 살을 깎고, 도려낸다 한들 개혁과 갱신, 자정이 불가한 상황이기에 무엇인들 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최근에 오랜 기간 기득권 싸움으로 교계를 흙탕물로 뒤덮고 있는 이들의 새로운 소식을 접하게 되어 더욱 그 같은 마음이 든다. 함께 힘을 모아도 부족할 판에 이단옹호언론까지 가세해 아군끼리의 싸움과 배신, 분열을 획책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직접 보니 민망하고, 본지와 공적, 사적인 관계를 이어갔던 이들까지 그 진흙탕 싸움에 가세하는 모습을 보니 황망하기만 하다.

4. 이단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 중에 필자를 포함해 이단 척결의 의지를 빼면 과연 남는 게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 의지조차 혹 가짜는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다분히 구태의연한 정치적 삶이 신앙으로 포장되어 있는 이들을 털고 가야 하는 것도 이단대처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돼버렸다.

작금의 세상 정치 구도와 비교해 봐도 결코 덜하지 않은 정치적 구도와 암투, 구역질 나는 기득권 싸움과 세속에 찌들어가는 일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종교브로커들을 거르는 일들까지···. 해가 지날수록 바빠지는 이유가 늘고 있지만 직무유기하지는 않으련다.

물론 우리만 잘난 싸움을 한다고 생각진 않는다. 모두가 연약한 사람들이니 조금 더 연약한 사람들이 더 연약한 이들을 붙잡아주고, 비판하며 바로 잡아주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우리가 종교브로커들과 달라야 할 점은 그들은 자신의 흥함을 위해서만 일하지만 우린 온전히 하나님의 흥함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 이것이 우리 믿는 이들의 일생에 걸쳐 간직될 수 있는 자긍과 신념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니 소망한다. 사회와 교계 내부의 진실된 소리들이 지속적으로 들려올 수 있기를. 그러나 굳이 안에서가 아니더라도 정직한 목소리와 행동들, 그리고 객관적이고 지속적인 이단에 대한 경계와 주목함이 밖에서도 끊이지 않는다면 비로소 ‘희망’이라는 그 모호한 것이 다시금 ‘믿음’이란 확신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 아울러 22년간 풀리지 않은, 그러나 언젠간 백일하에 드러나고야 말 선친 사건의 내부 고발과 동시에 양심선언의 소리도 들려오길 고대한다.

명예와 권력, 물질과 모든 욕망을 빼고도 남을 그 무언가가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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