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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매체와 실제 사이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16년 04월 01일 17시 02분 입력

머릿속으로만 고민치 말고 날마다 충실히 사는 법을 배우며 그 법대로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영화, <스포트라이트>
아이들과 관람한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둘째 녀석의 취향은 아니었는지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와 다르게 첫째는 진지하게 몰입하기에 그나마 잘한 선택이지 싶었다. 하는 일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언론의 부패한 종교 권력을 밝혀내는 과정이 강렬했다. 본지 직원들과 언론인들에게 추천해 마지 않으며, 칼럼에 담고자 하는 마음 역시 굳혀졌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 영화가 작품상을 거머쥐며 일순 게재하고자 했던 계획을 철회할까 잠시 망설였다. 흥행은 실패했으나 수상으로 인해 세상에 크게 알려질테니 왠지 내 손을 떠난 것 같은 느낌이랄까? 혼자 알고, 혼자 즐기다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 다른 경로를 통해 모두가 알게 될 때 느껴지는, 소수의 사람만이 즐기던 동네 맛집이 매스컴을 타자 인산인해를 이룰 때의 심정과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그러나 결국 게재키로 했다. 마감이 코앞인지라^^).

스포트라이트의 뜻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무대 · 영화 등의 연출에서 윤곽을 뚜렷하게 해야 하는 곳에 집중 조명을 비추는 장치를 말한다. 신문사 등 언론사에선 집중 취재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영화에서는 미국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내 팀 이름으로 사용됐다.

‘스포트라이트’팀은 매일 벌어지는 일들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중요 사건을 몇 달씩 파고드는데 팀이 겪었던 일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영화는 이뤄졌으며, 사실에 기반을 두었다. 가톨릭 보스턴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취재하는데 사건을 파헤치려 할수록 더욱 굳건히 닫히는 진실의 장벽 속에 결코 좌절하지 않고, 끈질긴 추적을 멈추지 않은 가운데 마침내 성스러운 이름 속에 감춰졌던 사제들의 얼굴을 드러나게 하고야 만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같은 언론인으로서 만감이 교차했던 것은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팀원 모두에게 직업의식을 넘어선 소명, 내지는 사명을 발견해서다. 언론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었고, 본지에도 종교적 역할을 포함해 되물어야 할 문제 제기들이 적잖이 생겨났다. 또 하나의 만감의 교차는 다수의 영화평에서도 언급됐지만, 영화 초반에 신문사 발행인이 독자의 53%가 가톨릭 신자임에도 교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취재를 허가하는 대목에서 (같은 발행인의 입장에서) 과연 ‘그 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기득권에 사로잡혀 외치고 알려야 할 것들에 혹시 하나님보다 독자의 눈치를 먼저 살폈던 적은 없었는지 모르겠다.

반대로 최근 본지의 후원자이며 독자였던 이가‘참여금지’로 규정된 단체의 본지 게재에 대한 항의 차원으로 후원과 독자 중지를 알려온 것 역시 아쉽기만 하다. ‘내가 보기에는 어떠한가?’보다 ‘그분이 보시기에는 어떠한가?’의 삶을 사는 것이 이토록 어렵고, 언론의 값이 땅에 떨어진 나라에서 분명한 직업의식과 더불어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언론인으로 살아가는 것 역시 쉽진 않지만 언젠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때가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언론에 몸담은 지 이제 겨우 스무 해 갓 넘겼을 뿐이니···.

*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무려 세계 64곳의 영화제에서 215개 부문의 수상 후보에 올랐고, 실제 상도 여럿 탔다고 한다. 그에 반해 우리의 목적은 소명, 내지는 사명의 준행을 통해 얻게 될 하나님 나라의 상급, 그뿐이지 싶다.

드라마, <시그널>
최근 드라마를 통한 힐링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한다. 불경스럽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막장만 아니라면 일부 드라마가 주는 위안과 나눔은 때론 종교의 위로보다 작지 않다. 어디든 기댈 수 없는 아프고 지친 요즘 같은 때에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다룬 작품이 살가운 웃음과 울음을 나눠주고 있다. tvN의 <응답하라! 1988> 등의 드라마들이 그렇다. 더 나아가 이젠 드라마도 진화해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고, 본질적 문제 제기를 던져주기도 하는데 <시그널>이란 드라마도 그중 하나다.

현재의 경찰청 ‘장기미제전담팀’의 프로파일러가 과거의 형사기동대의 한 형사와 무전을 나누면서 오래된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구도로 짜인 이 드라마는 적지 않은 팬층을 형성했다. 내용 중에 과거의 형사가 “과거는 되돌릴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간 수많이 아팠던 시대의 사건, 사고들을 돌아보며 후회스러움과 아쉬움을 뒤집고 싶은 간절한 열망 가득한 무언가로 읽혀진다. 그간 대부분의 사건, 사고는 천재보다 인재로 인한 문제들이 많았기에 더욱 그러하다.

예를 들면 세월호 사건과 성수대교 붕괴사건들, 그리고 수많았던 이단들로 인한 사건들과 선친의 사건 등이 그러하다. 아닌 게 아니라 극 중에서 형사 하나가 장기미제 사건 중 ‘오대양 사건’을 꼭 다뤄야 한다는 주장에 잠시 놀랐더랬다. 드라마에서 ‘오대양 사건’의 언급이라니. 이후에도 몇 번씩 그 사건을 다뤄야 한다는 이야기에 (그 형사는 인터넷상에서 ‘오대양 형사’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작가의 의도를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여나 ‘오대양 사건이 잘 해결되었다면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었을까?’라는 가정 아래 그 내용을 담은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러한 의도가 있었다면 이젠 현실에서보다 영향력있는 사회적 의견이 미디어 등을 통해 충실히 견지, 반영되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거기까지일 수밖에 없다. 그 이상의 것들은 기실 미디어의 감동 또한 사람으로부터 만들어지고 이뤄지는 것이기에 위의 고민과 결론 역시 우리의 몫으로 남겨둬야 할 것이다.

“증거도 증인도 저 멀리 하나의 점처럼 감정 섞지 말고 봐야 한다”는 또 다른 형사의 이야기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선 정보의 양이 충분해야 한다는 것을, 결국 그 양이 충분해질 때, 사실들은 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야 만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우리 주변엔 수많은 미제 사건들을 근성 있게 파헤치는 사람들이 있다.

남의 일로 생각지 않고, 나의 일인 양 열심히 하는 의로운 경찰들이 있고, 차가운 바닷속에서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처절히 숨져간 아이들의 억울함을 풀고 진실을 알고자 2년여 동안을 눈물로 살아온 이들이 아직도 거리에 서 있다. 더 나아가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 역사를 바로 세워나가고자 무려 1220번 이상을 모여 정부가 해야 할 일들을 대신 감당한 위안부 할머니들과 시민들을 빼놓을 수 없다.

이단에 빠진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매일 애타게 기도하며 싸우고 있는 이들까지 포함해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우리 가까이에서 눈물과 땀을 쏟아내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과거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역사는 사실들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자들의 것이다. 지우려는 자들이 많으나 기억하는 이들 역시 적지 않기에 최선을 다해 싸워봐야 하지 않겠나.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해 극 중 또 다른 형사는 “미제 사건은 내 가족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니까 잊을 수가 없는 거야. 하루하루가 지옥이지”라고 말한다. 우리가 풀고 해결해야 할 모든 문제가 미제 사건이지 않나 싶다. 문제는 그 문제들을 앞서 풀어야 할 사람들이 드라마의 ‘장기미제전담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그러나 정보와 기록, 그리고 기억만 살아 숨 쉴 수 있다면 반드시 풀어지리라 믿는다. 무엇이든, 어떤 사건이든지 간에.

우리가 걷고 또 걸어가면 길이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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