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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는 짝이 있다?
이덕술 목사 mrmad@hdjongkyo.co.kr
2016년 04월 20일 10시 38분 입력
▲ 이덕술 목사
본지 편집자문위원
예수님사랑교회 담임
에제르상담소장

이단들은 성경풀이를 할 때 말씀의 짝을 찾아 연결하며 해석한다. 다른 이단들에 비하여 신천지는 그 증상이 더 심한데, 그들은 성경이 비유로 봉함되어 있다며 비유를 암호처럼 대입하여 말씀 짝 풀이 형식으로 해석한다. 그 때문에 이단들의 성경해석은 많은 부분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들은 왜 말씀의 짝 풀이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하려 하는 것일까? 이유는 첫째로 교주를 신격화하기 위함이며, 둘째는 자신들의 집단을 성경적인 공동체로 위장하기 위함이며, 셋째는 그들의 거짓된 핵심교리들을 논리적으로 체계화하여 진리로 가장하기 위해서다.

1. 이단들의 말씀의 짝 풀이 근거
하나님의교회 1대 교주 안상홍은 성경에 대한 문제를 더욱 분명하게 알아보려면 구약성경에서 연결되어 있는 짝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 구절을 제시하기를 “기록된 바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읽어 보라 이것들 중에 하나도 빠짐이 없고 그 짝이 없는 것이 없나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명하시고 그 신이 모으심이라(사34:16) 하시었다”라고 하였다(안상홍, 『라오디게아교회에 보내는 기별』, p.35).

신천지도 초등과정 성경론 제3과에서 ‘성경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다루면서 이사야 34장 16절을 근거로 제시한다. 성경책은 빠진 것이 없고, 다 짝이 있다며 비유의 짝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비유론 제1과 ‘성경과 비유’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기존신학의 비판을 의식한 듯 ‘비유의 짝을 풀면 그러한 이치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매도하는 자가 있다’며 ‘짚신도 짝이 있다’는 속담까지 인용한다. 이런 성경풀이가 아니면 저들은 설 자리가 없다.

2. 이단들의 말씀의 짝 풀이 또는 비유풀이 성경해석의 목적
1) 교주를 신격화하기 위해

안증회 진리발표 5단계 제9장에는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나온다. 여기서 마태복음 24장 32~33절과 예레미야 24장 5절의 말씀을 짝으로 연결하여 안상홍을 재림 예수로 신격화 하고 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마24:32~33)한 말씀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대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보아 좋게 할 것이라”(렘24:5)한 말씀의 연결이다. 이 두 말씀을 가지고 연결하여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이며 무화과나무가 싹이 난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의미한다고 한다. 곧 이스라엘의 독립한 1948년에 안상홍이 침례를 받고 초림 예수처럼 공생애를 시작했으니 재림 예수라는 것이다.

예레미야 24장 5절에서 무화과나무를 이스라엘로 비유한 것은 맞지만, 마태복음 24장 32~33절에서 무화과나무의 싹이 나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이 아니다. 33절에서 말하는 “이 모든 일을 보거든”은 마태복음 24장 3절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두 가지를 질문하고 있는데 그 중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라고 했다. 예수께서 그 징조들을 5절부터 31절까지 대답하셨다. 바로 그 징조들이 일어나는 것을 무화과나무의 싹이 나는 것으로 비유한 것이지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 때에 안상홍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안증회 진리발표 1단계 제4장 예루살렘 어머니에 대한 주제가 나온다. 여기서 요한계시록 21장 9~10절을 갈라디아서 4장 26절과 말씀의 짝으로 연결시켜 장길자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신격화시키고 있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올라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계21:9~10)라는 말씀과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갈4:26)한 말씀의 연결이다. 요한계시록 21장 9~10절에서 마지막 때에 등장하여 내려오는 어린양의 아내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곧 갈라디아서 4장 26절의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으로서 우리 어머니 하나님 장길자라고 하며 신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구절의 예루살렘은 각각 다른 것을 비유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21장 9~10절의 예루살렘은 어린양의 아내로서 하늘에 있는 천상교회를 비유하고 있는 것이며, 갈라디아서 4장 26절의 예루살렘은 문맥에 따라 파악해 볼 때 지상의 예루살렘과 천상의 예루살렘의 대조를 설명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가족사에 사라를 통하여 이삭이 태어나고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이 태어났는데 여기서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고 하갈은 지상에 있는 예루살렘이라 한다. 그러면서 이것은 비유니 두 여자는 두 언약이라고 하였다(24절). 즉 옛 언약 율법과 예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 피로 세우신 새 언약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위 두 구절의 예루살렘은 장길자를 어머니 하나님으로 신격화하는 말씀이 아니라 요한계시록 21장 9~10절은 어린양의 아내인 천상교회를 갈라디아서 4장 26절은 피로 세우신 새 언약을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신천지는 초등과정 비유론 14과에서 비유한 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출애굽기 31장 18절과 히브리서 9장 4, 9절을 말씀의 짝으로 연결시켜서 이만희를 예수님과 같은 수준의 자리로 승격시킨다. “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출31:18)라는 말씀과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 이 장막은 현재까지 비유니 ··· ”(히9:4, 9)라는 말씀의 연결이다. 성경에서 비유한 돌은 목자인데 모세가 받은 언약궤 속에 들어있는 두 돌판은 초림 때의 예수와 재림 때의 ‘이긴자’인 이만희를 비유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천지의 교리를 도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출애굽기 31장 18절의 모세가 받은 두 돌판은 율법(십계명)일 뿐이며 두 목자를 비유한 것이 아니다. 히브리서 9장 9절의 ‘이 장막은 현재까지 비유’라고 한 것은 두 돌판이 두 목자라고 비유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첫 장막(성소)과 둘째 장막(지성소)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으로써, 첫 장막은 육체의 예법만 되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드리는 구약에서부터 드려왔던 지상의 예물과 제사를 의미한다. 둘째 장막은 개혁된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들어가신 하늘 지성소를 의미한다.

2) 이단 집단을 성경적인 공동체로 위장하기 위해
신천지 초등과정 비유론 2과에서는 비유한 씨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예레미야 31장 27절과 마태복음 13장 24~25절을 말씀의 짝으로 연결시켜 신천지가 이 시대의 가장 성경적인 약속의 장소요 공동체로 위장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렘31:27)라는 말씀과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는 덧뿌리고 갔더니”(마13:24~25)라는 말씀과의 연결이다.

신천지는 누가복음 8장 11절의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를 근거로 위 두 구절의 씨를 말씀으로 전제한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31장 27절의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는 마태복음 13장 24~25절의 인자 즉 예수께서 뿌리신 좋은 씨로서 하나님의 씨인 진리와 원수 사탄의 씨인 비진리로 성경풀이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밭은 예수님의 밭인 기독교 세상이라는 것이다. 구약에는 씨 뿌릴 것을 예언했고 신약에서는 씨가 뿌려짐으로 예언 성취가 되었으며, 지금은 재림시대 추수기인데 일반 기독교에서 알곡이 추수되어 신천지라는 곡간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천지가 이 시대의 구원의 장소요 신천지 집단만이 유일한 구원의 공동체라는 것이다. 이렇게 이단은 자신들을 가장 성경적인 공동체로 위장하고 있다.

그러나 예레미야 31장 27절의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는 진리와 비진리를 비유한 것이 아니다. 만일 그러한 해석이 맞다면 하나님은 진리와 비진리를 동시에 뿌리시는 하나님이 된다. 또한 예레미야 31장 27절에서 두 가지 뿌리는 주체는 한 분 하나님이신데 마태복음 13장 24~25절에서 두 가지 씨를 뿌리는 주체는 인자와 원수 둘이다. 그러므로 이 두 구절은 말씀의 짝이 될 수 없다. 예레미야 31장 27절의 예언 성취의 때는 초림 때가 아니고 예레미야 31장 23절에 언급된 대로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때이다. 실제로 예언은 느혜미야 7장 5~6절에서 성취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느혜미야 7장 66~69절에 보면 사로잡혀 간지 70년 만에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과 짐승들의 통계가 나타나있다. 즉 이 사람들과 짐승들이 돌아와 이스라엘과 유다 집에 씨가 되어 뿌려지게 된 것이다. 초림 때 예언 성취가 아니라 구약 때에 예언 성취가 된 것이다.

한편 신천지의 이러한 말씀의 짝 풀이식의 성경풀이를 하게 되면 신천지는 자신들의 집단이 알곡이 모인 구원의 공동체가 아니라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신천지는 밭을 기독교라고 했으니 기독교에서 알곡이 나오려면 기독교는 저들이 주장하는 비진리만 있는 바벨론교회가 될 수 없으며, 반드시 기독교는 참 진리가 뿌려지고 있는 공동체이여야만 한다. 마태복음 13장 30절에 근거하면 추수 때에 추수는 “가리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라고 예언되었으니, 신천지로 먼저 추수되어가는 자들은 가라지이며 기독교 세상에 남아 있는 자들이 알곡이 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단들은 말씀의 짝 풀이식의 비유풀이로 교주를 신격화하고 자신들의 집단을 가장 성경적인 공동체로 위장시키고 있지만, 오히려 교주와 자신들의 집단이 양의 탈을 쓴 이리와 가라지 집단임을 방증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