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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략과 모함에 익숙한 이단, 모순에 빠진 교회에게 묻다
교회에게 묻다 (10)
탁지일 편집장 jiiltark@hanmail.net
2016년 06월 03일 19시 54분 입력
▲ 탁지일 교수 (이사장 겸 편집장)

신천지는 ‘모략’을 사용한다. 모략의 성서 원어적 의미는 ‘거짓말’이 아니라, ‘충고’라는 뜻이다. 모략을 거짓말로 오역하고, 교회와 사회 곳곳에서 거짓말을 합리화하는 신천지의 모습이 안타깝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신천지 신도들이 결코 144,000에 포함될 수 없다는 성서적 근거들 때문이다. 성서가 증언하는 144,000의 자격은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계14:5)이며,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계21:8)에 던져질 것이고, “거짓말하는 자는”(계21:27) 결코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하며(계21:27), “성 밖”(계22:15)에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거짓말하는 신천지가 144,000에 포함될 수 없는 성서적 반증이다.

아무리 교리적으로 합리화해도, 거짓말은 거짓말일 뿐, 거짓말이 결코 미화될 수는 없는 것이 상식이다. 결국 신천지의 ‘모략’은 신도들을 미혹하고 통제하기 위한 종교적 자기합리화 수단일 뿐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거짓말로 전도하지 않으며, 거짓말로 사랑하는 이들을 속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숨기지도 않으며, 복음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롬1:16).

 

신천지는 또한 반대자들을 ‘모함’한다. “신천지 OUT”으로 적극적인 신천지 대처활동을 해온 CBS를, “거짓보도”와 “인권유린”을 하는 단체라고 모함하고, 자신들이 마녀사냥의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예전에는 신천지가 ‘모략포교’를 진행했다면, 최근에는 ‘모함포교’를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을 비판하는 단체들을 모함하면서, 일종의 소위 물타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최근 신천지의 커밍아웃과 시위가 주목받는다. 교회와 기독교기관 앞에서 시위를 하며,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위의 목적은, 자신들의 무고함이나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이유보다는, 그들만의 숨겨진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첫째, 144,000 교리 실패의 후속대책이다. 144,000 달성 이후의 후속 조치나 대안 마련이 여의치 않자, 신도들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둘째, 포스트 이만희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후계구도 구축과정이 불안해지자, 내부 불안요소를 통제하기 위해 신도들의 동력을 밖으로 집중시키려는 시도이다. 셋째, 약속했던 영생의 날이 점점 요원해지자, 신도들의 불안감과 좌절감을 외부와의 충돌을 통해 감소시키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하지만 시위에 동원하고 긴장을 야기하는 것은 미봉책일 뿐, 결코 장기적인 대책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신천지의 몰락과 분열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신천지의 모략과 모함 포교가 진행되는 동안, 교회는 자체 ‘모순’에 빠져, 이단대처의 동력이 약화되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2014년 2월 발표한 “2013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3년 현재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도는 19.4%인 반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비신뢰도는 44.6%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언행일치가 되지 않아서”(24.8%)였다. 또한 “교회 지도자들이 개선해야 할 점”에도 역시 “언행불일치”(14.2%)가 가장 높았다. 즉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삶이 불일치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개혁주의신앙고백들은 ‘믿음’과 ‘선행’의 중요성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기독교인에게는, 믿음이 없는 선행도, 선행이 없는 믿음도 경계의 대상이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은,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며(칭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거룩하게 살며(성화) 죄를 억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즉 기독교인들의 삶은, 칭의를 통해 죄를 사함 받고, 성화를 통해 죄를 억제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교회에서 손을 들고 눈물 흘리며 거룩한 모습으로 찬양한다고 해도, 사회에서 이웃에게 손가락질 받는 잘못된 삶을 산다면, 올바른 기독교인의 삶이라고 볼 수 없다.

물론 사회자원봉사활동을 한다고 하면서 비성경적인 주장을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하나님의교회나 구원파 등의 이단들도 역시 기독교라고 볼 수 없다. 올바른 믿음은 정결한 삶의 열매로 나타난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이웃에게 칭송 받을 때, 주님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시고 교회를 부흥하게 만드는 것이다(행2:47). 모략(거짓말)과 모함을 일삼는 이단들에게 대처하는 영적 힘은 믿음과 행함이 일치된 정결한 기독교인의 삶으로부터 시작된다. 교회의 이단대처는, 교회의 자체 모순의 극복에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모순에 빠진 한국교회가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한국교회 신뢰도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교회를 향한 비판들 속에서도, 그래도 교회가 신뢰받는 이유는 “정직/양심이 바르기 때문”(18.6%)이고, “봉사를 많이 하기 때문”(17.5%)이라고 나타났다. 한국교회의 양적성장주의, 교파주의, 개교회주의, 지도자의 도덕적 문제들로 인해 교회 안팎의 비판에 직면해 있지만, 그래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며 지켜가고 있는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국내외 곳곳에서 헌신하고 있다. 수많은 작은 신앙공동체들이 도시와 도서산간 지역 곳곳에서 건강한 신앙을 지켜가고 있다.

이해관계에 얽힌 이기적인 교파주의 정치가 판을 쳐도, 지역의 당면과제들을 풀어나가기 위한 이타적이고 효과적인 연합운동이 활발하다. 개교회의 성장을 위해 수평이동도 불사하는 삭막한 목회현장에서, 한 영혼 한 영혼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기며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목회하는 목회자와 그 가족들이 있다. 정치적 야합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교회정치꾼들도 있지만, 침묵 속에 하나님의 품 안에 조용히 거하며, 하나님의 세미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신실한 교회지도자들이 있다. 이들 신실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한국교회의 새로운 모습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에 대한 사회의 비판은, 역으로 사회의 높은 기대치를 반영하고 있다. 구한말 이후 민족과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한국교회에 대한 실망이 날카로운 비판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사회적 순기능을 기억하는 한국사회가 다시 한 번 한국교회의 순기능을 요청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한국교회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에 대한 변명이나, 비판으로 인한 자괴감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미스바(삼상7:3~6)에 모여 하나님과 이웃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새롭게 믿음의 언약을 갱신하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개혁하는 정결한 삶을 모색하는 모습이다. 이단들이 ‘모략’으로 ‘모함’하는 오늘, ‘모순’에 빠진 교회가 새로운 비상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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