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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저주론은 무엇이 문제인가?
허호익 교수 mrmad@hdjongkyo.co.kr
2016년 06월 17일 18시 42분 입력
▲ 허호익 교수
본지 편집자문위원
대전신학대학교 조직신학
www.theolgia.kr

2006년 예장통합 총회는 “이윤호 목사와 메릴린 히키의 가계저주론의 신관, 기독론 및 구원론, 귀신신앙, 축사기도문, 운명론의 문제점 등을 살펴 볼 때 성서의 가르침과 교회의 신앙과 신학에 위배됨이 현저하고 사이비성이 농후하므로 이들의 책을 읽거나 가르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금해야 한다”고 결의하였다. 이 연구보고서를 중심으로 가계저주론의 신학적 문제점들을 살펴본다.

1. 가계저주론의 배경
가계저주론은 1972년 케니스 맥콜이란 미국의 정신과 의사가 처음 주장했으며, 1986년 제이 헴프쉬에 의해 신학적 이론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메릴린 히키(『가계의 흐르는 저주를 끊어라』, 베다니출판사, 1997)와 이윤호 목사의 저서(『가계에 흐르는 저주 이렇게 끊어라』, 베다니출판사, 1999)가 출판되어 국내에 널리 알려졌고 1997년 이후 『빛과소금』, 『목회와 신학』, 「교회와 신앙」을 통해 가계저주론에 대한 수많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2. 신관의 문제
가계저주론은 하나님의 심판을 저주로 오해하고, 저주를 저주로 끊는 흑주술(黑呪術)을 주장한다. 이윤호 목사는 “하나님은 유전적인 복과 저주의 법칙을 선포”(『가계에 흐르는 저주 이렇게 끊어라』, 92쪽)하였으나 가계의 축복보다 가계의 저주가 더 강하다고 주장한다. 성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저주는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으로서 아버지가 자녀의 잘못을 채찍 하는 사랑의 징계이다. 이를 통해 회개를 촉구하는 또 다른 구원과 은혜의 방편임에도 불구하고 성서를 인용하되 삼사 대의 저주만을 굵은 활자로 강조하고 수천대의 은혜는 약화시키며(출20:4~6 등)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을 저주의 하나님으로 왜곡시킨다.

그리고 조상들의 죄가 저주가 되어 후손에게 대물림된다는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하나님의 영적 원리”(92쪽)로서 “하나님 자신도 자신이 정한 법칙을 지킬 수밖에 없다”(108쪽)고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자신이 정한 우주의 법칙에서 자유하신 분이다. 그래서 태양을 멈추게 하시고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다. 자신이 정한 율법에서 자유하므로 율법을 범한 자일지라도 무조건 용서하시는 절대 자유하신 분이시다.

가계저주론은 자신이 자신에 대한 무의식적인 저주나, “부모가 자녀들에게 무심코 한 말은 자녀를 통해 저주의 효력을 나타낼 수 있다”(104쪽)고 한다. 그리고 메릴린 히키는 마귀와 마귀의 역사를 저주하고, 포르노를 저주하고, 근친상간을 저주하라고 가르친다(159쪽).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저주로 끊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리요”(민23:8)라는 말씀처럼 하나님만이 인간의 범죄에 대한 심판의 방법으로 저주하실 수 있는 분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저주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대로 실행되지 않는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행한 저주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가계의 저주로 실행된다거나, 저주를 저주로 끊을 수 있다는 주장은 인간도 하나님처럼 저주의 능력을 행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는 전형적인 흑 샤만(black Shaman)의 흑주술(black magic)로서 비성서적이고 비기독교적이며 위험한 사상이다.

3. 기독론 및 구원론의 문제
가계저주론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불완전한 영적 구원으로 제한하고 왜곡한다.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았다고 해서 모든 저주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다”(151쪽)고 한다. 신자가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은 영이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요 “조상의 죄 및 저주에서 우리의 혼과 몸은 완전히 해방된 것이 아니다”(132쪽)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혼과 육신은 세상과 사탄의 공격 및 조상의 죄로 인하여 대물림된 저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할 필요”(131쪽)가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롬8:1~2)이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가계저주론은 사죄의 확신과 구원의 기쁨과 천국의 소망을 약화시키고, 그리스도 안에서 옛 사람은 죽고 날마다 새사람으로 사는 복음적인 신앙의 도리를 가계의 저주를 끊는 일시적이고 편협하고 도구적인 미신으로 전락시킨다.

예수를 믿어도 구원을 받을 수 없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직통 계시를 받거나(신천지), 안식일을 지키거나(안식교), 유월절을 지키거나(하나님의교회), 죄사함의 비밀을 깨닫거나(구원파), 재영접을 해야 한다(다락방)는 등 다른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전형적인 구원론적 이단이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가계의 저주를 끊어야 한다는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는 것 역시 이러한 구원론적 이단이다.

4. 귀신신앙의 문제
가계저주론은 영적 미혹과 귀신 신앙을 부추긴다. “가계 영들은 세대를 걸쳐 한 가계에 비슷한 감정적 문제, 뇌, 질병 혹은 중독증 등의 문제를 야기”(118쪽)시키는 ‘영적 쓰레기’라고 한다. 가계의 영은 가문의 영, 성씨의 영 또는 가문귀신 또는, 성씨 귀신(185쪽)으로도 불리며, 가계에 흐르는 ‘영적 쓰레기’가 이러한 영들을 불러들이면 모이므로 이를 제거하면 악한 영은 무력해진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러한 ‘가문의 영이나 성씨의 영’ 외에도 공유의 영, 복수의 영, 마약의 영, 죽음의 영, 슬픔의 영 등 잡다한 영들의 존재 역시 성경에도 없는 비기독교 주장이며 이러한 귀신 신앙을 신자들로 하여금 영적인 불안감과 영적 미혹에 빠지게 한다.

심지어 개인상담과 기도를 통해 5대 조상의 유배로 인한 복수의 영이 가계에 흐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28쪽)고 하는데, 본인도 모르는 다른 사람의 5대조 조상의 문제를 알아내는 것은 점쟁이나 복술가의 행동이며,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자들을 가증하게 여긴다고(신18:9~14) 가르친다.

5. 축사기도문의 문제
가계저주론은 영적 미혹과 귀신신앙을 부추긴다. ‘가문 귀신이나 성씨 귀신’은 성서에 없는 표현이며, 이러한 귀신을 저주하고 쫓아내야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무당적인 조상귀신 신앙을 부추겨 복음적인 신앙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가계저주론의 축사방법이나 축사기도문은 주술적 유사 주문(呪文)으로 보인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는 방법으로 조상들의 모든 죄를 공개적으로 대신 회개하거나, 동서남북을 향해 ‘저주받은 귀신아 물러가라’고 축사하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가계에 흐르는 그 많은 저주 목록들이 단지 ‘저주받은 귀신아 물러가라’고 인간이 외친다고 그 모든 저주가 실제로 끊어져서 모든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의지하기 보다는 ‘귀신아 물러가라’는 무력한 인간적인 외침에 의존하게 만든다.

가계저주를 끊는 처방으로 제시된 여러 기도문에는 성씨 귀신 등을 ‘대적하노라, 선포하노라, 추방하노라, 금하노라, 명령하노라’(185쪽) 등의 명령형의 유사 주문(呪文)이 뒤섞여있다. 하나님 아버지와 동시에 ‘사단과 귀신의 세력들’ 그리고 여러 종류의 악령들이 기도의 대상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하나님 신앙과 귀신신앙을 혼돈하도록 만들고 하나님의 절대성에 대한 확신 보다는 비정상적인 영적 두려움과 미신적 귀신신앙으로 미혹할 우려가 있다.

6. 운명론의 문제
가계저주론은 인간의 모든 질병과 고통 등을 조상의 탓으로 돌리고, 성서가 가르치는 유익한 고통도 부정하는 운명론이다. 이윤호 목사가 제시하는 가계저주의 목록에는 육체적 정신적 질병, 가난, 실패, 불임, 유산, 가정불화,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 문제, 각종 사고, 주술적인 행위, 모든 종류의 중독, 거식과 폭식, 과소비와 낭비벽, 성격장애 등이 포함된다. 메릴린 히키는 안경을 쓴 것(110쪽)과 딸만 낳는 것도 조상의 저주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인간의 여러 고통에는 유전적 기질적 요인과 가정 환경적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모두 조상들의 죄의 결과인 저주라고 단순화할 수 없다. 자연 생태적 환경적 요인과 사회 정치 환경적 요인도 허다하다. 무엇보다도 개개인의 잘못이나 범죄(犯罪)로 인한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가계저주론은 자신의 잘못을 조상의 탓으로 돌리는 운명론을 부추기며, 자신의 죄책을 회피하여 예수께서 요구하신 ‘회개’를 거부하고 오히려 죄악 된 생활에 빠진 것을 운명으로 체념하게 만든다.

성서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고 하였음으로 불구하고 가계저주론은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앙인도 과거의 죄, 그것도 조상의 죄에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갇혀 있다고 주장한다. 가정의 대물림된 문제가 현재의 삶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모든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총의 섭리는 운명을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체의 운명론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예상치 못하는 은총의 섭리를 부정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운명에 맡겨 사는 그 생활 아니요”라는 찬송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계저주론은 모든 고통을 가계의 저주로 돌리고 성서가 가르치는 유익한 고통, 자기 십자가를 지는 고통조차 부정한다. 예수는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에 대해 조상의 죄나 자신의 죄 때문이냐는 바리새파의 저주론을 거부하고, 그 소경된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다고 가르쳤다(요9:2~3). 가계저주론에 의하면 무수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헬렌 켈러는 저주 중의 저주를 받은 자이겠지만, 헬렌 켈러는 자신의 장애를 통해 그 누구보다도 크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이다. 이처럼 성서는 가계저주론과 다르게 고난은 모두 저주가 아니며, 믿음 안에서는 현재의 고난이 장차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롬8:18)고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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