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 작게보기
페이스북
킹제임스성경 기준이 아니다
편집부 mrmad@hdjongkyo.co.kr
2016년 10월 19일 09시 53분 입력

나는 킹제임스성경을 몹시 사랑했던 사람이다. 신학 입문 초기에 교수 한 분이 수업 중에 잠깐 킹제임스성경을 언급해, 중고서점에서 500원 주고 구입할 때만 해도 깊은 관심을 두진 않았다. 그러나 말씀보존학회에서 한글로 번역출판 되었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편으로 여러 소책자들과 함께 구입해 읽어 갔지만 그다지 깊게 파고들진 않았다.

그러던 중 ‘그리스도예수 안에서’라는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이른바‘흠정역’을 알고부터 지나칠 만큼 몰입했었다. 종전의 개역성경과 비교하고 그 뚜렷한 차이점을 흡수하면서 나도 모르게 편견이 심해졌다. 장로교 소속이면서 킹제임스성경 모임 속에 적극 뛰어들었다. 모임은 상당히 소규모일 뿐 아니라 소극적이었다. 그저 소그룹으로 뜻 맞는 사람들끼리 소박하게 공부하는 분위기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약 2년간 그 모임에서 총무를 맡으면서 그들 속에 젖어가게 되었다.

사역하던 교회에 2년 동안 성도들을 설득해 사용하는 성경을 바꾸기도 했었다. 마치 나에겐 제2의 복음처럼 인식되어 언제 어디를 가도 킹제임스성경 혹은 흠정역을 알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한글개역과 흠정역을 비교한 소책자를 박스째로 주문해 기회 닿는 대로 배포 했었다. 사람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데 대해 무척 안타깝게 여기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이젠 킹제임스성경이 유일하고 완전한 성경이 아님을 역설하고자 한다.

어렸을 적 우리가 기억하는 치약은 ‘럭키’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집집마다 개인취향대로 치약의 종류가 많다. 그 가운데 절대적으로 모든 가족들에게 특효가 되는 치약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 자체가 우스울 뿐이다. 예컨대 럭키치약 하나만 알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에서 온 ‘해피치약(?)’이란 것이 도입되어 럭키치약은 무익하거나 해로운 것이다, 해피치약만이 치약다운 치약이라고 광고했다면 그런 자들을 어떤 자라고 해야 할까.

신구약성경의 원본 이후에 어떤 사본이나 역본을 두고 완전하다거나 절대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맹신일 것이다. 애초에 잘못된 기준에 대한 인식이라고 본다. 성경은 기준의 책이다. 그 기준의 본질은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다. 개역성경이 그 기준을 나타냄에 하자가 있으며 킹제임스성경만이 절대적 권위역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일까. 개역성경의 장점이 분명히 있음에도 잘못된 것으로 인식할 정도면 얼마나 편견이 심했던 것일까. 내 마음만큼 사람들이 호응하지 않고 수요가 없어 한참 동안 킹제임스성경에 대한 관심이 소원해졌다. 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개역성경을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었으며, 오늘까지 불편 없이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하지만 워낙 깊이 마음에 심어진 킹제임스성경에 대한 인식인지라 그 연민(?)을 잊을 수가 없었다. 여러 매체에서 킹제임스와 관련된 어떤 것만 발견하면 절로 마음이 쏠리게 되었다.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던 킹제임스성경 그룹들끼리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들어보니 더 어이가 없었다. 최종권위역을 가진 자부심에 찬 그들의 모습이 아닌 너무나 하찮은 개인 감정의 충돌이었다.

아울러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의 망상』이란 책이 출간됨도 알게 되었다. 개역성경만이 성경인 줄로 알았던 어린 시절에 킹제임스성경을 알아가면서 충격적으로 몰입되었던 것의 수십 배의 충격이었다. 속으로 내가 이런 책을 쓸 수 있어야 하는데 하고 되뇌면서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나처럼 편견에 빠진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다. 내가 공공연히 드러내 놓고 킹제임스성경을 선전할 때에 많은 사람들은 내게 달갑지 않게 반응을 보였지만, 은밀하게 킹제임스성경을 애용한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다. 망상, 참으로 그것은 망상이었다. 본질적 기준에 대해서 명확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100가지도 넘는 영어 역본들이 있지만 킹제임스성경에 눈이 가려지므로 이미 부정적으로 보는 선입견과 편견이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이런 기회를 통해 기준에 대한 인식을 더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 나아가 신학도들이 자신이 속한 교파와 교단의 신학을 기준으로 굳어져 편견과 선입견을 갖고 신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몹시 안타깝다. 자신 안에서 기준이 명확하면 개역성경이나 킹제임스성경 그 어느 것을 보든지 그리스도와 본질적 복음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더 넓고 깊게 공부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을 통하여 진리에 대해 좀 더 진지한 자세를 가지고, 더 깊은 영성을 갖추어 본질복음에 더 밝아지는 계기로 삼게 되기를 바란다.



< 저작권자 © 현대종교. 무단전재-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