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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끝자락에 그를 만나다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16년 12월 02일 15시 14분 입력

당분간 선친은 지면보다는 다시 만날 소망으로만 기억하려 했는데 시대가 그렇게 놔두질 않는다. 선친이기 전에 귀한 선배로 다시금 그를 떠올려본다.

그와 …
1. 자료, 그리고 언론

내 사랑하는 조국의 소용돌이치는 혼란스러움을 보니 (아니! 온몸으로 겪고 나니) ‘이게 국가냐?’라는 구호가 깊이 와 닿는다. 종교인과 언론인이기 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분노와 상실, 허탈함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늘 위기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살지만 이번엔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질 않는다. 어찌하랴? 내 조국! 대한민국!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 시국에 그나마 본지의 오래전 자료(최태민 관련 자료)가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작은 창구 역할이라도 마련했으니 그것이 위로라면 위로겠다. 3~40년 전 자료가 시대를 관통하는 귀한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음을 경험하며, 선친의 통찰력과 더불어 언론인의 소명에 대한 진중한 생각을 갖게 됐다(자료 하나가 이리도 중요하니 50년 가까이 모아 놓은 수많은 본지 자료들의 보존과 정보의 ‘데이터베이스화’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무튼 정치, 종교 등의 부분에서 어떤 것 하나도 빠짐없이 국정농단과 국기 문란의 어처구니없는 책임의 문책이 반드시 있어야겠고, 이와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종교 문제에 있어서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대처를 멈춰야 할 것이다. 종교의 자유에 ‘사이비 종교의 자유’가 포함된 그 범위를 심사숙고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지금보다 더한 일들을 수없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2년 6개월 만에 또다시 수많은 국내외 언론들의 연락을 받으며, 그 호들갑들과 끈질김이 특종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진실을 찾고자 하는 간절함에 따른 진정성 있는 보도이길 기대하고 또 기대했다. 세월호 사건 보도 관련 소송들에서 다른 노력 없이 (최소한의 다툼 없이) 지레 정정보도와 반론보도를 게재하는 모습들을 보며 언론이라는 것이 얼마나 속절없는가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또 하나 최초 보도한 언론을 인용하지 않고 자체 취재한 것처럼 보도하는 언론의 그릇된 행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뉴스타파’의 최승호 피디는 “작은 언론일수록 피해가 크다. 다른 언론이 영상을 가져가면서 로고를 인용하지 않거나 팩트를 가져가 자기들이 취재한 것처럼 보도해 허탈한 경우가 많았다. 인용 보도하면 권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언론이 많은데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또다시 여러 언론사의 볼썽사나운 모습들을 보며 언론의 역할을 다시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2. 언론인들
지난 세월호 사건 때 일면식도 없었으나 선친 부재에 대한 아쉬움을 떠올린 이가 많았는데 이번에도 수많은 언론이 선친과 그의 업적을 다루고, 선친에 대한 특집기사를 편성하기도 했다. 그 중 「국민일보」의 정진영 논설위원은,

최순실 게이트가 확산되는 가운데 낯선 이름 하나가 최근 급격히 떠올랐다. ‘탁명환’. 다수의 국민들은 처음 듣겠지만 종교계에선 널리 알려진 이단∙사이비 등 신흥종교 전문가다. 이 분야에 관한 한 국내 어느 누구보다 정통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가 남긴 자료 등을 통해 최태민씨가 무속인이라는 결정적 사실들이 재확인됐다. 최씨가 무당들도 무서워했던 ‘큰 무당’이었다는 새로운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최씨 부녀가 박근혜 대통령을 수 십 년간 움직일 수 있었던 배경에 무속적 영향력이 작용한 것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제기되면서 이들의 종교적 실체에 관심이 쏠렸다. 탁씨는 앉아서 탐구하는 학자라기보다 신흥종교의 반사회성에 몸으로 맞선 행동가였다. 다수의 이단 및 사이비들이 종교의 이름을 앞세워 교주를 신격화하며 사기, 폭력, 성폭행, 살인 등 범죄를 일삼는 집단이란 실상을 폭로하는데 앞장섰다. 이런 까닭에 늘 고소와 고발, 폭력에 노출됐으며 급기야 1994년 한 종교단체 신도의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그의 나이 57세였다.

 

1972년 출간된 그의 첫 저서 ‘한국의 신흥종교’는 이 땅에서 명멸했던 신흥종교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묘사해 큰 인기를 얻었다. 출간 1년 만에 4쇄를 찍을 정도였다. 나는 80년대 초반 우연찮게 이 책을 읽었다. 그때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많은 유사종교들이 상상 이상의 엄청난 비리에 연관됐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탁씨의 자료에는 최태민씨가 구국선교단을 운영하며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시절 그에게 동조했던 목회자들이 적지 않았다는 내용도 있다고 CBS가 최근 보도했다. 돈 몇 푼 받고 가짜 목사 직위를 줬거나 최씨가 주최한 행사에서 기도 등 순서를 맡았던 유명 목회자들의 이름이 거명돼 있다. 그는 본인이 발행한 잡지 현대종교 1988년 6월호 기사 ‘부끄러운 권력의 시녀 목사들’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히고 “기독교계의 물을 흐려놓은 장본인들이 일언반구 회개조차 없다”고 개탄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우연찮게 드러낸 한국교계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라고 선친을 회상했다.

3. 이단옹호언론들
그렇게 선친에 대해 말 많던 이단옹호언론들은 이번 사태의 중심에 서서 구체적인 역할을 감당한 일에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 본지의 자료를 말없이 사용하거나 아니면 여전히 ‘비방과 음해’를 일삼고 있다. 아무리 이단옹호언론이라 해도 비판할 때는 비판하고, 잘한 일들에는 객관적으로 보도해주고 다뤄준다면 이리 안쓰럽진 않을 텐데 어떻게든 물고 뜯을 생각뿐이니 애처롭기만 하다. 그들 역시 이번 국정 논란의 사태에 자유로울 수 없는 이단옹호언론들이니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지 싶다.

4. 옥한흠과 이동휘, 그리고 동역자들
영화 ‘제자 옥한흠’의 은혜가 옥한흠 목사의 제자 훈련과 제자도의 본질을 다룬 ‘제자 옥한흠2: 제자도’로 이어지고 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던 목사 옥한흠. 고 탁 소장과 막역한 사이로 귀한 동역을 함께 이뤄가진 못했지만 탁 소장이 맘 편히 이 사역에 매진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게 함께 해준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간절한 마음으로 뜻을 함께하고자 하는 이들은 주변을 기웃거리고, 앞, 뒤 재가며 동역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있더라도 늘 기도와 마음을 한데 모으는 역할을 잊지 않는다. 그러한 태도와 마음을 고 옥 목사를 통해 배웠다. 지금도 사람들과 교제할 때 “내가 예전에 탁 소장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보다는 어느 곳에 있든지 간에 함께 마음을 모으는 이들이 진정 귀한 동역자라고 믿는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고 탁 소장의 동문이자 귀한 친구였던 바울선교회 이동휘 목사. 그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크다. 사람들 때문에 힘든 고 탁 소장의 일생이었지만 반대로 사람들 때문에 행복했던 그이지 않나 싶다. 하나님 나라에서 기쁘게 만나고, 또 만날 귀한 친구들과 동역자들이 있었으니 그도 행복할 테지.

그에 반해 고 탁 소장이 “기독교계의 물을 흐려놓은 장본인들이 일언반구 회개조차 없다”고 개탄한 이들은 현재에도 숨 쉬며 잘들 살고 있다.

5. 성도들
이번 명성교회에서 시행한 2016 교회교육엑스포 부스에서 뵈었던 ○○교회 ○○○전도사라고 합니다. 잠시나마 현대종교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을 뵙고 인사드리게 되어 너무나 기쁩니다. 또한, 제가 사역하고 있는 교회에서 나눌 수 있도록 자료까지 직접 받을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제 기억으로 1988년 여름 오산리 기도원에서 교회학교 여름 수련회에 찾아온 어린이들에게 이단에 현혹되어 가는 성도들을 위해 순교의 각오로 밤낮으로 사역하셨던 고 탁명환 소장님의 말씀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서원을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여 년이 흘렀네요.

멀리서나마 빛나는 사역을 하고 계시는 현대종교 관계자 여러분에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내드립니다. 앞으로도 고 탁 소장님께서 갖고 계셨던 교회수호의 정신을 저 역시 잊지 않고 지키도록 노력하고 혹시라도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는 현대종교의 문을 두드리겠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십시오.

* 사역하며 숱한 만남과 편지를 받을 때마다 선친의 추억과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가 많은데 최근에 받은 편지다. 이러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고 싶다.

6. 다시 만날 가족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 노력했지만 선친은 늘 상황이(몇 주일, 또는 몇 달씩의 출장이 잦아) 쉽지 않음을 아쉬워했었다. 지금의 형제들이 가족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함께하려 노력하는데 그때 선친과의 그 같은 추억들이 많이 없어서이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다른 방법으로 가족에게 최선을 다한 그이기에 따뜻했던 기억만큼은 지금도 쉬이 잊히질 않는다. 선친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땅의 공의를 위해 살아가고자 했다. 한국교회가 하지 못했던 일들을 혼자 감당하셨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기억나는 일화는, 그는 집회를 다녀올 때마다 늘 그 지방의 특산물을 사 오시곤 했다. 호두과자를 사오시면 천안 일정이 있었던 거고, 굴비라도 사오시면 전남 영광에 갔다 온 게다. 선물만 보고도 어느 곳에 다녀왔는지를 알 수 있었으니 생각해보면 재밌었다. 외국에라도 가면 현지에서 엽서를 보내주곤 했다.

특히 초지일관, 한 번 일을 하고자 하면 멈추는 법 없이 저돌적으로 기도와 더불어 바로 행동으로 옮기곤 했다. 강의, 원고, 취재, 법적 소송, 경영 등 1인 10역의 역할을 감당한 것이 지금껏 놀라울 뿐이다. 10분의 1만이라도 닮고 싶은 부분이다. 낮은 곳과 소외된 곳을 향한 마음도 따뜻했다. 익산의 모 교회에 강의 차 갔다가 그곳 장애인들의 교통수단이 없다는 것을 알고, 타고 갔던 승합차를 기증하고 오기도 했다. 일반교회는 말이 너무 많다며 농아인 등 장애인들을 섬기며 그곳 교회에서 마지막 사역을 했던 것도 기억에 선하다.

이제 곧 그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또 믿고 있다. 가족들이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간절히 꿈꾸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 끝으로 고 탁 소장의 소천 이후 입사한 이들이 대부분인데도 나름의 자긍을 갖고 열심을 다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고 탁 소장을 대신해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정국의 대혼란 속에서도 2016년은 빛의 속도로 저물고 있다. 2017년엔 희망을 품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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