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들의 특징은 성경을 전체로 읽지 않고, 부분으로 읽는데 있다. 성경을 부분으로 읽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전후 문맥을 따라서 읽어야 하는데, 자신들이 원하는 특정 성경구절만을 떼어서 읽는다. 이로 인해 생명을 살리는 복음의 말씀이 왜곡되고, 같은 성경구절을 읽더라도 전혀 다른 메시지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래의 성경인 원전(原典)이 장절 구분 없이 기록되어 있었음을 기억하고, 가능하면 통으로 읽기를 즐겨함으로써 아전인수(我田引水)의 그릇된 해석을 피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1. 수혈거부는 생명을 위한 본래의 목적을 왜곡하는 것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피가 상징하는 것이 생명이며,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피를 멀리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수혈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의학적으로도 혈액을 매개로 하는 질환이 수혈을 통해서 전파되고 있고, 수혈을 받지 않은 환자가 수혈을 받은 환자 못지않게 혹은 그보다 더 잘 회복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세계적으로 수많은 의사들이 혈액보존 기법을 사용하여 수혈 없이도 복잡한 수술을 집도하고, 여호와의증인이 아닌 환자들조차 무수혈 치료를 요청하고 있다고 선전한다.2)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왜 피를 먹지 말라거나 피하라고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피는 살아있는 생명을 의미한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셨다. 인간이 임의로 다루면,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된다. 더군다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생명으로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모든 피조물들을 관리하는 존재다. 나아가 하나님처럼 대우를 받아야 할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은 언제나 신성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피를 먹지 않거나 멀리해야 하는 이유는 생명을 보존하거나 살리기 위한 목적에 있지, 이래라 또는 저래라 하는 하나님의 계명 자체에 무게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구약이나 신약이 기록되던 시대에는 의료행위로서의 수혈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현대의학은 피를 많이 흘린 부상환자나 특정 수술을 해야 하는 환자에 대해서 수혈을 실행하고 있다. 수혈이 그 환자의 생명을 보존하거나 살릴 수 있는 기회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수혈이 필요하지 않은 수술이나 치료방식도 있으므로 수혈이 언제나 필수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에게 수혈거부가 문제인 것은 수혈을 하면 분명히 살릴 수 있는 환자인데도 수혈을 거부하는 것에 있다. 그들의 지적대로 헌혈자의 피가 또 다른 감염의 질병을 유발하거나 잘못 보관되어서 적합하게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수혈에 적합하지 않은 피의 문제는 사전에 걸러내면 되는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는 수혈을 해서 살려낼 수 있는 생명이 있다면, 수혈을 하는 것이 “생명을 위하라”는 하나님의 본래적인 의도를 따르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2. 정부를 사탄으로 규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역하는 것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에게 ‘하느님의 왕국’은 하늘에서 다스리는 실제 정부로서 인간의 정부를 대치하며, 인간 정부의 부패를 없애주기 때문에 인류에게 베풀어지는 축복이다. 하느님의 왕국은 하느님의 능력과 관대함으로 국민 모두에게 필요한 것을 풍부하게 공급해주며, 영구적인 통치권이 있으므로 부정선거나 부정투표가 들어설 자리가 없으며, 행동과 동기를 중시하는 하느님 왕국의 법은 인간 정부의 법보다 월등히 뛰어나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탐욕스러운 자나 거짓말쟁이는 하느님의 왕국에 살 자격이 없기 때문에 하느님의 왕국은 인간의 정부와 비교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한편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요한계시록 17장에 나오는 ‘붉은 빛 짐승’을 국제조직인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으로 규정하면서, “하느님께서 오직 그분의 왕국을 통해 이루겠다고 말씀하신 것(평화와 안전)을 자기가 이루어내겠다고 주장함으로써 실제로는 하나님께 불명예를 돌리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4) 물론 죄인인 인간으로 구성되어 있는 정부는 부정부패의 경향이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정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는 않다. 하나님께서는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의 오류를 경고하면서도 왕을 허락하셨고(삼상8:7ff), 인간적인 오류를 범하기도 했던 다윗 왕을 당신의 마음에 합한 왕이라고 인정하기도 하셨다(행13:22f).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권세를 잡은 자들처럼 되지 말고 섬기는 자가 되라(마20:25f)고 말씀하셨지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22:21)고 말씀하심으로써 세상의 권세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셨다. 심지어 빌라도가 무리하게 판결한 십자가의 사형까지 묵묵히 받아들이셨다. 사도 바울은 모든 권세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 선언하면서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선을 베푸는 권세자에게 복종할 것과 선을 행해야 할 것을 권고했다(롬13:1~3; 딛3:1). 한편 종교개혁자 루터는 하나님의 정의로 다스려지는 그리스도의 왕국과 이성적인 정의로 다스려지는 세상왕국,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와 세상정부의 검의 지배를 구분해서 이해했고, 히틀러의 나치정부에 저항했던 본회퍼는 하나님의 현실과 세상의 현실을 두 개의 영역이 아닌 그리스도의 현실이라는 하나의 영역으로 이해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복음을 부정하는 왕과 정부에 대해서는 저항하라고 했지만, 세상의 권세나 정부 자체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정부를 악의 화신인 사탄처럼 취급하거나 부정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사랑과 정의, 평화)의 도구로 삼아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짐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여기에 임하도록 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3. 부정한 짐승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유대교에 머무는 것 우리 기독교는 구약성경만을 경전으로 삼고 있는 유대교와 달리 신구약성경 전체를 경전으로 삼고 있다. 특별히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율법의 규례들에 더 이상 매이지 않고 자유롭다. 우리의 진정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십자가의 제물이 되어서 모든 규례를 폐지하셨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음식과 건강에 관한 모세 이후의 규례들은 물론이고 할례나 제사와 관련된 모세 이전의 규례들조차 종교적인 행위의 범주 안에 두지 않았다. 사도 바울도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라도 믿음으로 자유롭게 먹을 수 있지만, 연약한 신앙의 사람들을 위해서 먹지 말라는 충고만 했을 뿐이다(고전8:9ff, 10:23ff). 그러므로 우리는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해선 사도 바울의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는 결론적인 권면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한편 채식주의는 음식을 먹는 자의 건강상의 문제나 취향에 따라서 결정될 수 있는 사안이지, 어떤 경우에도 구원의 문제와 연결을 지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안식교의 신도들은 육식이 인간의 성질을 야수화하고, 질병을 유발시키며, 하나님께서 인류의 수명을 단축시키고자 허락한 수단이라고 이해하면서 육식을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부정한 고기의 육식을 허용하는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가지 재앙을 받게 될 것이라 주장하며 구원의 문제로 확대 과장하고 있다.6) 그러나 육식은 인간이 임의로 선택한 것이 아니고, 노아의 홍수 사건 이후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축복이었다(창9:1~3). 안식교 신도들은 육식이 인간의 지적이고 도덕적인 특성을 약화시켜서 경건한 생활에 지장을 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노아 시대에 채식만 했던 사람들인데도 그들로 인해서 세상에 죄악이 가득했던 것과 그들의 모든 계획이 악하기만 했다는 증언(창6:5~7)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는 채식주의에 동조하셨을까? 당시 예수님께 ‘먹기를 탐하는 자’라는 별명이 주어졌음을 고려할 때, 예수님께서 채식만 하셨던 분이라고 여기기는 어렵다. 더욱이 그분은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을 베푸셨을 때나, 부활하시고 제자들을 만나고자 디베랴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구웠을 때도, 물고기를 아낌없이 나누어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음식에 대해서 그것이 육식이든 채식이든 구분하기보단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이 어떠한 삶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해, 그 삶을 살고자 매진해야 할 것이다. Soli Deo Gloria! 1) 탁명환, 『기독교이단연구』, (서울: 국종출판사, 1990), p.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