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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선생들’에 대한 경고
하경택 교수 mrmad@hdjongkyo.co.kr
2017년 03월 17일 20시 59분 입력

▲하경택 교수
본지 편집자문위원
장로회신학대학교 구약학

성경에서 ‘이단’에 대한 교훈을 주는 대표적인 책으로 유다서를 꼽을 수 있다. 유다서는 한 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책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이단 교설로 교인들을 미혹하고 교회에 혼란과 분열을 가져다주는 ‘거짓 선생들’에 대한 경고와 교훈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유다서의 저자는 야고보의 형제 ‘유다’(1:1)라고 소개된다. 이러한 언급은 예수님의 형제로서 야고보, 유다, 요셉, 시몬을 말하고 있는 마가복음 6장 3절에 근거하여, 유다서의 저자가 예수님의 형제 유다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에 반해 유다서의 수신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유다서는 ‘교회에 은밀히 들어온 자들’에 관하여 경고하고 있지만(1:4), 이 편지의 수신 교회가 어디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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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를 쓰게 된 동기는 분명하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교회 안에 은밀히 들어온 ‘거짓 선생들’ 때문이다. 유다는 자신의 편지에서 ‘거짓 선생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단지 몇 사람이라고만 지칭한다. 하지만 유다서 본문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베드로후서 2장 1절에는 ‘거짓 선생들’이라고 명명되어 있으며, 그들을 가리켜 ‘멸망하게 할 이단(異端)을 가만히 끌어들인’ 자들이라고 책망한다. 그러므로 유다서에서 말하는 은밀히 들어와 잘못된 가르침을 펼치는 자들을 ‘거짓 선생들’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존재가 얼마나 심각하고 긴박한 문제였는지, 유다서의 저자는 보통 편지글에서 인사 다음에 나타나는 ‘감사의 말씀’도 생략한 채 자신이 편지를 쓰고 있는 동기를 밝히고 있다(3~4절). 유다서에서 지적하는 ‘거짓 선생들’에 대한 언급은 오늘날 교회를 위협하고 혼란에 빠뜨리는 ‘이단’에 대한 좋은 교훈이 된다. 유다서의 내용을 통해, 오늘날 한국교회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이단들의 주장과 특징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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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단들의 대표적인 특징은 ‘삼위일체 신학’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늘날 대부분의 이단은 실제적으로는 ‘삼위일체 신학’을 부정한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세 위격으로 존재하며 동시에 한 분 하나님이심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초대교회 시대로부터 큰 논란거리였다. 성경 안에서 삼위일체의 근거들을 찾을 수는 있으나 명시적으로 ‘삼위일체’(Trinity)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삼위일체’ 교리는 다양한 논쟁을 통해서 기독교가 인정하는 핵심 교리가 되었었다. 그리스도 교회는 아리우스 기독론 논쟁에서 촉발되어 삼위일체 교리를 정립한 니케아 신조(325년)를 통해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 하나님과 ‘본질이 동일하신 분’(homoousios)”으로 고백했다.

콘스탄티노플 신조(381년)를 통해서는 니케아 신조가 성자를 성부와 ‘본질에서 같다’고 말한 데서 나아가 ‘성부와 일체’라고 고백하고, 성령의 위치와 존재를 확대 설명하였다(“성령님은 아버지 및 아들과 더불어 동일하게 예배와 영광을 받으시는 분”). 그리고 칼케돈 신조(451년)를 통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하나님 되심과 참 사람 되심을 고백하여 기독론 논쟁을 마무리하였다. 이 가운데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381년)는 5세기 시리아 성전 전례에서 도입된 후 서방교회에 전해졌고, 현재는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성공회의 전례용 신앙 고백문이 되었으며, 루터교 등 대부분의 개신교에서도 받아들이고 있는 신앙고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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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다서에 나타난 ‘거짓 선생들’은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한다(4절; 벧후2:1 참조). 예수 그리스도의 주재(despo,thj, Lord/Master), 즉 주되심을 부인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이며 그것은 삼위일체 신학에 대한 부정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래서 한국의 신흥종교들은 삼위일체 신학을 부정하는 갖가지 주장을 다 내놓는다. 통일교의 문선명은 자신이 다시 오실 ‘재림주’라고 말하기도 하였고, 신천지 이만희는 자신을 ‘진리의 성령 보혜사’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교회 장길자는 자신이 ‘하나님 어머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이단들은 건강한 ‘삼위일체 신학’의 부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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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단들은 잘못된 구원관을 주장한다. 유다서에 등장하는 ‘거짓 선생들’은 영지주의(Gnosticism)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영지주의의 근저에는 물질세계와 영적 세계를 극단적으로 분리하는 이분법적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은 물질세계를 악한 것으로 보고, 세상을 창조한 구약성경의 야훼 하나님과 그의 조력자들을 악하고 열등한 것으로 평가절하 한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본래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종류의 존재인지도 깨닫지 못하여, 빛의 나라에서 온 심부름꾼이 와서 인간을 망각의 잠에서 깨우고 인간 존재에 대한 참다운 ‘지식’(헬라말로 ‘그노시스’. 여기에서 영지주의라는 말이 유래하였다.)을 전해주어야 구원의 길이 열린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말하는 구원은 영을 물질세계에서 끄집어내어 참된 ‘지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원은 이 나쁜 물질적 세상으로부터 영이 해방 받는 것, 곧 이 세상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이러한 구원관은 신자들에게 죄 용서나 몸의 부활 사상 같은 것은 의미가 없게 만들고, 신자들로 하여금 현세의 생활에 관심을 두지 않게 만든다. 영지주의자들의 잘못된 구원관에서 보았듯이, 대부분의 이단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올바른 구원관을 비틀거나 부정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으며,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죄 용서함을 받고 의롭게 되며 하나님의 자녀요 구원의 백성으로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요3:16; 14:6; 행4:12; 롬1:16~17; 3:21~24; 엡2:8~9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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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이단들은 잘못된 현실관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영지주의자들은 영의 ‘해방’을 주장하며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주장하기 때문에 물질세계를 깔보고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모든 책임을 회피한다. 이러한 사상은 현실관의 측면에서 두 가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 한편으로는 영지주의자들은 방종한 생활을 합리화하고 촉진한다. 육체의 삶은 영적인 삶에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도 좋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정욕대로 행하며’ ‘호색을 일삼으며’ ‘탐심’에 사로잡힌 삶을 산다(유1:8, 18~19; 벧후2:2~3; 12~14). 다른 한편으로 영지주의자들은 세상과 몸을 멸시하기 때문에 엄격한 금욕생활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들은 혼인과 성을 적대시하고 건전한 가정생활을 거부한다(딤전4:1~5 참조). 이 모든 것이 성경의 가르침과는 배치되는 잘못된 현실관이다. 성경은 영의 부활만을 말하지 않는다. 장차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을 말한다(고전15:49~53). 성경은 현세의 삶을 경시하지도 않는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하기를 말씀하셨고,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다(마5:13~16). 따라서 우리의 삶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가 되어야 한다(롬12:1).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마6:10) 그것을 위해 힘써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바른 현실관이요 윤리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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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도 이단들의 활동은 여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다서는 이단들의 존재를 아래와 같이 갈파한다. 현대종교 독자들은 이러한 이단들에 더 이상 현혹되거나 흔들리지 않고 바른 신앙과 삶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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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에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유1: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