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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17년 05월 04일 09시 49분 입력

▲탁지원 소장
  본지 발행인

모두가 기뻐할 때 누군가는 혹여 서운해 하지 않을까 싶어 주변을 살피는 습관은 오래 전 비슷한 상처로 시작됐다. 그래서 더욱 최선을 다해 섬기려 노력하지만 매번 역부족의 한계를 느끼곤 한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관계를 맺고 살면서 그동안 견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진심이 오해, 폄훼되고 있는 것 같아 힘겹다.


관계로 인한 상처가 기쁨보다 커지지 않길 바라며.

 

501호
본지의 500호 행사는 많은 이들의 염려와 기도 덕분에 잘 마쳤다. 이번행사를 마무리하며 드는 두 가지 생각은, 우선 행사에 참여했던 모든 분들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행사를 빛내준 사람들로 인해 앞으로 더욱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과 더불어 ‘행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어렵사리 행사에 와주셨음에도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하고, 섬겨드리지 못한 분들껜 앞의 글과 같이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부디 행사의 취지를 생각하셔서 조금 서운한 부분이 있었다 해도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많은 이들이 온 맘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한 행사였다. 그러니 최선의 축하까지는 아니더라도 생각날 때마다 기도해주시고, 앞으로도 여전한 응원을 부탁드린다. 당분간 행사 등의 계획은 없다. 하루 행복했으니 이제 마음을 다잡고 501호를 준비하고자 한다.

 

(집회지의) 나비효과
집회현장의 이모저모를 칼럼으로 소개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오랜 만에 써본 <집회현장에서>가 어색하기만 하다. 여전히 무겁고 긍정적이지 못한 글이긴 하나 한 번쯤 깊이 공감해주셨으면 한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강사들은 강의를 마치고 어떤 생각을 하며 돌아설까 하는. 그저 ‘모든 것 하나님께 영광!’이라고만 할 것 같지는 않다. 생각이 두 갈래로 나뉘지 않을까 싶다. 하나는 은혜를 끼치러 갔다가 도리어 은혜를 받고 오게 되는 교회, 살가운 맞이함과 섬김으로 인해 집회 내내 기쁨과 미소가 사라지지 않아 이곳에 온 것을 참 감사하는 마음이겠고, 또 하나는 손님을 초청했음에도 매몰차고 오만한 교회의 모습에 당황스러움과 당혹감을 갖는 경우일 것이다. 특히 두 번째 경우는 강사가 섬김을 누리고자 사역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 초청했다면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 섬김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지 않은 만남은 깊은 자괴감이 든다. 초청 손님에 대한 예의가 이 정도라면 이웃들, 그리고 새신자들은 얼마나 힘들어할까? 그 오만함은 특히 영상 담당자들에게서 자주 엿볼 수 있다(물론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니 영상과 음향을 담당하는 분들이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부디 노여워하시거나 오해치 말길 바란다.). 때로는 그들이 담임 교역자보다 어려울 때가 많다. 자신들만의 특화된 전문적인 지식과 그에 따른 자존심 때문인지 집회 준비의 소통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로인해 집회가 잘 풀려지지 않았던 때가 적지 않았다. 오죽 상처가 많았으면 영상 관계자들을 만날 때면 지레 고개부터 숙인 채 “오늘은 제발 잘 준비할 수 있기를” 하며 간절히 바랬을까. 겸손히 서로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과 논의를 더하여 예배를 준비하면 되지 않나 싶지만 그 간단한 일이 생각보다 녹록치는 않다.

압권은 지난겨울 전라도 익산의 한 교회에서 있었다. 영상관계자는 처음부터 시비조로 손님을 대했다. 도대체 이해가 안됐지만 ‘무슨 일이 있었나보다’, 내지는 ‘행사를 준비하며 목회자들과 조금 마찰이 있었겠지’싶어 조심스레 말을 걸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지나쳐도 한참은 지나친 모습이었고, 흡사 ‘당신과 이 세미나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강사를 압박했다. 무엇을 물어도 ‘마음대로 하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데 결국 참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참고 또 참았다. 이 일로 인해 집회에 영향이 있어서는 안 되었기에 최대한 화를 누르려 애쓰며 세미나를 진행했다. 쉽지 않았던 강의였지만 교회에서는 그 같은 사실을 알고 있진 않은 듯했다. 그동안 이곳에 초청받은 강사들은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었다.

집회 전부터 기쁨을 안고 시작했다면 몇 배 이상 서로가 귀한 은혜를 안고 마무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남긴 채 교회를 떠나는데 이번엔 그 누구하나 배웅해주지 않았고, 수고했다는 말조차 건네주지 않았다. 상담을 나눈 몇몇 성도만이 관심을 갖고 격려해줬을 뿐이다. 상담 때도 마찬가지다. 교회의 성도들이 이단의 문제로 어떠한 아픔을 겪고 있는지 옆에서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대부분 상담은 강사만의 몫이다. 지난 동안교회의 집회 때는 그 긴 상담 시간 내내 목회자 한 이가 옆에서 성도들의 상황을 메모하고 파악하는데 (그것이 기본임에도)그 같은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감동으로 다가왔다. 기본적인 예의와 배려, 섬김과 나눔이 부재한 가운데 우리만의 믿음에 익숙해져 살아왔던 것은 아닌지, 이단들은 세상으로 나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려 애쓰는데 우리는 교회 안에서, 그것도 끼리끼리의 모임으로 우리만의 평안한 삶에 적응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무튼 앞서 언급한 교회가 이전의 교회를 이단에게 매매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집회 전부터 실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만회되길 기대했는데 속상한 마음만 안고 교회를 나서게 되니 하나님의 계획이 뭔가 싶은 생각이 지금껏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래도 그런 마음을 아는지 정성껏 손님을 맞아주고 반겨주는 교회도 있으니 그 살가움의 기쁨 때문에 강의 사역은 아직까지 할만하다.

✽차제에 최근 다녀온 춘천중앙성결교회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직전 총회장을 지낸 ‘어르신’으로 불리는 이가 집회 전, 후로 강사의 곁에 서서 마음을 다해 살갑게 섬겨주는데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이렇듯 서로가 누구이든 간에 진심을 다해 함께 해주는 이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더욱 열심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싶다. 물론 사람을 보고 집회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 때문에 집회의 질과 양적인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숱하게 경험해왔기에 앞으로는 초청하는 자나 초청 받는 자 모두가 최선을 다할 수 있길 바란다.


골든타임
서울신학대학교의 이단 대책은 남다른 편이다. 강의하고 있는 학교의 홍보를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그만의 특수성이 있기에 가끔 소개할 뿐이다. 현재 이단 문제로 기독교 대학의 상황이 녹록치가 않다. 학교 안이 아닌 밖에서의 포교는 더욱 그 대처가 어렵다. 그러나 최선의 방어가 최대의 공격이 되기도 하니 끊임없는 경계와 예방의 마음으로 학교 등의 공동체를 제대로 지켜줄 수 있었으면 한다(기독교 학교뿐만 아니라 일반 학교도 예외는 없다. 전라도 광주 쪽은 다른 곳보다 더욱 문제가 심각하여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와 포교로 활동하고 있다 하니 어느 곳이든 예방과 기본적인 대처, 그리고 연합의 필요성을 다시금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서울신대는 학생들에게 이단 포교의 현장을 그냥 지나치지 않도록 매번 권면하고 채플 때 광고 등을 통해 알리고 있다. 때마다 이단 경계주간을 갖고, 또 채플을 통한 이단 전문 강사들의 강의가 매 학기 계속되고 있다. 수업이나 모임을 통해서도 이단의 경각을 계속해서 나누고 있기에 무교인 학생들까지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우선 학교 주변의 이단들의 포교를 학교 쪽에 알리게 되면 교역처, 학생처, 총학생회와 이단대책팀이 공유하게 되고, 바로 학생들에게 경계의 문자를 보낸다(졸업생들에게까지 보낸다.). 이렇게 전교생이 경계 문자를 받는데 한 달 전 8분 정도가 걸린다고 해서 119 만큼이나 빠르다 생각했는데 그 다음 주는 2분으로 시간을 줄였다. (그것도 길다며) 학교 관계자들은 앞으로 경계 문자를 돌리는데 1분으로 줄여보도록 노력하겠다고 하니 그 시간이면 예방에 있어 영적인 골든타임으로 적절하지 않나 싶다. 시간 강사로만 힘들게 20년 가까이 섬기고 있는 학교이긴 하지만 이런 일들을 보면 감사가 절로 든다. 다른 학교들의 샘플링 내지는 벤치마킹을 기대해마지 않는다.

오랫동안 함께 한 이가 있었다. 장점은 많았으나 늘 자신을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자긍이 지나쳐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도 많아 못내 아쉬운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단점과 문제점을 당사자만 모르는 어설픈 관계로 힘들기도 했지만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건으로 인해 구성원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가해자가 돼 버렸고, 그는 피해자 코스프레로 사람들의 관심을 청했다.

결국 한 순간이었다. 불특정다수와의 관계이거나 물보다 진한 피 같은 관계일지라도 한 순간에 엎어지고 틀어지고 마는 일이. 가까이 있다고 생각한 이들이 한없이 멀게 느껴지고, 멀게만 여겼던 이들이 생각지도 못한 힘을 발휘하는 상황을 몇 번 경험하게 되니 감사의 맘도 크지만 더불어 두려움도 함께 커져 가고 있다. 동지라 불린 이들이 이단보다 더 맘 고생시키기도 한다는 것, 관계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더불어 우리가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밖에 없음을 다시금 고백하며 이제 다시는 시행착오의 늪에 빠지지 않기를 소망하고 또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