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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명환 소장 다시 읽기 『저 들녘에 이름없는 들풀처럼』
탁지일 편집장 jiiltark@hanmail.net
2017년 12월 29일 15시 28분 입력
탁명환 소장이 하나님의 품에 안긴 지 벌써 24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탁 소장의 삶과 사역을 폄하하려는 이들이 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앞장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아가며 일하는 선각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 뒤를 쫓으며 끊임없이 평가하고 비판하는 평론가들이다. 탁명환 소장은 선각자였다. 선각자의 삶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만약 뜻을 이루지 못한다면, 다른 이들을 위해 실패할 경우의 수를 하나 줄여주었으니 성공적이고, 뜻을 이룬다면 다른 이들이 그 길을 따라올 것이니 역시 성공적이다. 탁명환 소장과 현대종교에 대한 이단들과 이단옹호자들의 비난이 사후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계속된다는 것은, 아직도 탁 소장과 현대종교의 사명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탁명환 소장 다시 읽기”를 통해, 오늘날 사회와 교회가 씨름하는 이단사이비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얻고자 한다.

 

 

 

▲탁지일 교수
  본지 이사장 겸 편집장
  부산장신대학교 교회사

사람은 저마다 자기가 걸어온 길을 한 번쯤은 글로 남겨 두고 싶어 한다.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일지라도 자기 생애를 남기고 싶어 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평범하지 못하게 산 사람, 역경의 가시밭길을 걸어온 사람, 인생길에 실패의 쓴잔을 마시다가 성공한 사람은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 두기를 원한다. 나 같은 사람은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하다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고 사탄이나 마귀로 몰아붙이면서 죽어 없어져야 된다고 저주하는 이단자들도 있다. 


내가 걷는 길이 칭찬과 비난이 엇갈린 험한 길이지만 나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평가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언젠가 내가 죽은 후 내가 한 일들이 정당하게 평가될 날이 올 것을 믿는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고 평가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사니깐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서 좋다. 내가 하는 일이 칭찬도, 오해도 받을 소지가 있는 일이다. 그러나 누가 나를 칭찬한다고 우쭐거리지도 않고 나를 오해하고 모략한다고 해서 낙심하지도 않는다.
 

직업은 자기가 싫으면 바꿀 수 있지만 사명은 싫어도 죽기까지 해야 한다. “사명자는 결코 죽지 않는다. 그 사명 다하기까지는 ···”이란 유명한 말을 남긴 리빙스턴 선교사가 생각이 난다. 새벽이 가까울수록 칠흑같이 더 어두운 법이다. 암흑기의 신화처럼 이단자들이 득세하고 진리에 속한 사람들이 수난을 당하는 시대이다. 그러기에 이 수난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 세상 종말이 오는 그 시간까지 말이다. 혹자는 1992년이 종말이라 떠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께서만 아신다”는 성경말씀을 믿고 나갈 뿐이다.

설사 이 글을 써 나가다가 갑자기 주님이 오시면 미완성의 글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완성된 글이 될 것이다. 아무래도 좋다. “내일 비록 세상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대로 살고 싶다. 이 기록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어떻게 나로 하여금 한국교회를 위해 일하도록 하셨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언젠가는 내가 쓴 글들과 연구실적을 참고하지 않고는 한국의 기독교 이단과 신흥종교에 대해서 언급할 수가 없으리라는 것을 믿기에 절망하지 않고,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는 저 들녘의 이름 없는 들풀처럼 강인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 위의 내용은 1993년 말에 발간된 탁명환 소장의 미완의 자서전 『저 들녘에 이름없는 들풀처럼』 머리말의 내용이다. 다사다난했던 그의 사역과 삶에 대한 진솔한 진술은 가족들에게는 유언(遺言)이 되었고, 한국교회에게는 고언(苦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