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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진화, 퇴화)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18년 02월 02일 13시 58분 입력

 

▲탁지원 소장 
  본지 발행인

1. 이단 사역을 한다고 해서 이단문제에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몇몇 교회들의 못된, 내지는 못난 속내를 앞에서 바라봐야만 하는 고충을 떠안기도 해야 하며, 겉으론 정의와 사랑을 외치나 자신의 잇속을 채우는데 더 익숙한 이들과의 만남도 피할 수 없을 때 많다. 예나 지금이나 예수의 길을 열심히 좇으며 사는 근사한 이들이 적진 않지만,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그것이 제대로 된 신앙인 양 착각하며 사는 이들 역시 늘어만 가고 있다.

 

2. 오랜 기간의 사역 동안 이단만큼 중요히 여기게 된 것 중 하나가 ‘예의’와 ‘배려’의 문제다. 집회지를 오가고 상담을 하면서,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며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것들이다. 우리 모두 연약한 사람들이긴 하나 ‘예의’와 ‘배려’만큼은 잃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을까? 손님을 초청해놓고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로 만드는 강의 현장은 이제 익숙하다 못해 무감각한 지경이 됐으며, 상담 때는 인사와 소개는 당연 생략,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지지만 도통 듣는 데엔 관심이 없다. 답변이 맘에 안 들거나 기대에 부응치 못한다 싶을 땐 공격적으로 돌아서기도 한다. 도움 요청에 응답한 이후 (물론 그러려고 사역하는 것은 아니지만) 감사인사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래도 이해하려 노력은 한다. 그 아픔을 어느 곳에도 하소연하기 어려워 이곳을 찾은 것, 잘 알고 있으니.

 

3. 그러나 부디 본지의 땀과 눈물의 결과물인 귀한 자료와 정보들을 출처 없이 사용하는 것만큼은 지양해주길, 언제든지 자료가 필요할 때마다 나누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렇다고 그 자료들을 가볍게 여기거나 언제든지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치부하지 말고 간절한 마음으로 받아 주길(한 땀 한 땀 흘려가며 소중히 일궈낸 자료들이기에), 사역을 하면서 도움의 요청에 웬만해선 거절치 않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막상 본지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면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부디 거절하더라도 기도의 제목과 더불어 십시일반의 마음 만큼은 남겨 놔주길 소망한다.

 

4. 끝으로 이단 대처를 소명으로 삼은 이들은 부디 사심은 거둬주길, 또한 정치력에 기대어 무리하게 칼자루를 쥐락펴락하진 않았으면 한다. 아울러 적절치 못한 주제들을 이단 연구의 도마 위에 올려놓지 않길 바란다. 이단에서 돌아온 이들의 회복을 개인의 혁혁한 공으로만 돌리는 이들과 피해자들의 회복사역에 물질을 개입시키는 것 역시 그간 수고해온 사역자들을 도매 급으로 욕 먹이는 일이니 부디 자중해주길 바란다.


5. 평소 때보다 도입 글이 길어졌다. 년 초에 하고 싶었던 말들을 끼적이다보니 순식간에 두 페이지 가까이 채워졌다. 그럼 이젠 우리 차례, 남들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대지 말고 본지도 가끔은 냉철하게 스스로를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변화 1

이단에 속한 연예인들의 이야기를 나눌라치면 졸던 아이들까지 급 관심을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좋아하는 연예인들이 자주 바뀐다. 시기가 점점 짧아지는 것만 다를 뿐. 처음엔 죽어 못살 것처럼 굴다가도 좀 더 맘에 드는 스타가 나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갈아타고 마는(?) 요즘 아이들의 스타 사랑법을 질책할 필요는 없겠지만 가끔 무슨 사랑이 이리 쉽게 바뀌느냐며 그 사랑, 교역자들이나 선생님들께 베풀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그 관심이 비단 연예인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진 않다. 이단 문제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특정 이단에만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본지는 작년 말 올해의 가장 큰 이슈가 될 이단으로 JMS와 동방번개를 꼽았더랬다. 중국의 이단이기에 별 걱정하지 않았던 일명 ‘동방번개’는 늘어나는 피해들로 인해 관심 또한 늘고 있다. JMS 역시 교주인 정명석씨의 2월 출소를 앞두고 그 보폭이 빨라지고 있다. 피해 사례도 계속 접수되고 있다. 그동안 계속 언급했던 것처럼 특정 이단에만 관심 갖지 않고, 더 넓고 깊게 이단의 문제를 바라봐야 할 변화가 필요하다.

 

변화 2

그간의 수많았던 재판들 중 가장 뼈아픈 사건을 하나 꼽으라면 10여 년 전 하나님의교회 신자들과의 재판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교주를 찬양하는 아이들의 동영상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았던 점과 아이들에 대한 발언들이 모욕이라 판단되어 적지 않은 금액의 배상 판결이 내려졌더랬다. 그러나 그 결정과는 다르게 아직도 인정할 수 없는 것은 그때의 발언들이 아이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모욕하고자 함이 아닌, 선택의 여지없이 잘못된 부모의 신앙을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 대한 안타깝고 간절한 마음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이단 관련 최근의 판결들을 보면 법원의 이단 비판 자유의 폭이 넓어졌음을 알 수 있다. 시대에 따라 판결도 달라지는가 보다. 최근의 판결들 중 ‘하나님의교회와 북한의 통치 방법이 거의 흡사해 보인다’거나 ‘영혼들을 짓밟은 사악한 악령들’이라는 표현조차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는다 하니(예전 재판 결과와 비교해볼 때)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종교의 자유에 사이비 종교의 자유도 포함되는 나라에서 살고 있으니 ‘비판의 자유’역시 앞으로는 좀더 넓게 적용될 수 있는 변화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변화 3 - 영화 1987 -

 

작년의 인생영화가 공영방송을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싸워온 구성원들의 9년 동안의 기록을 담은 <공범자들>이란 영화였다면 올해는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지나지 않았으나 영화 <1987>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사의 오류를 바로잡고자 끝내 포기치 않고 싸웠던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자신들 삶의 원칙에 충실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30년 만에 스크린으로 다시 보게 되니 더할 나위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영화 제목과 같은 학번의 첫 시작은 모든 것이 녹록치 않았다. 시대가 아팠던만큼 고민도 많았던 시절, 인생에 있어 가장 역동적이었던 때이기도 했으나 극중 여대생의 말처럼 “그렇게 한다고 세상이 바뀌어지나?”라는 생각도 많았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고, 앞으로도 우리의 노력과 헌신을 통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더욱 잘 가꿔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게 된 것도 그때였으니 영화가 주는 감동이 더할 수밖에 없다. 그 감동이 계속해서 현실에서의 삶이되길 원한다면 세상을 바꾸려했던 두 청년의 죽음과 지금도 세상을 변화시켜나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을 잊지 않는 것부터가 그 순서일 테다. 


진화와 퇴화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가 문득 손가락이 퇴화되고 있음을 느낀다.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 등으로 인한 머리의 자연스러운 둔화도 그렇고. 몸과 머리를 쓰지 않으니 퇴화되는 것들이 늘고 있다. 통신수단은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현대인들의 외로움은 커져만 가고, 교회의 건물과 수는 날로 높아지고, 또 많아지지만 우리의 믿음과 신앙은 그만큼 굳세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삶은 진화하고 있는가? 또한 퇴화되고 있는 건가?

 

✽정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농심’이나 ‘김밥천국’등이 이단 사업체인가의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적이 있었다. 그것도 수년 동안이나. 결국 본지의 취재 결과 모두 해프닝으로 밝혀졌음에도 아직도 이단 제품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작년에 ‘애터미’가, 올해는 청자다방(p.36 참고)이 그렇다. ‘그러카더라!’는 점점 진화하고 있는데 반해 퇴보 상태인 정보의 무력함에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정확한 정보를 안고 사는 것도 건강한 이단 대처방법 중 하나라 믿는다.

그러나 살펴보기도 전에 이미 반성해야 할 일들이 적지가 않다. 차차 진행하되 우선은 앞서 언급한 것들을 다시금 되새겨보며 더 열심히 사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이 필요하지 싶다. 엊그제 시작한 정유년이 무술년에게 당연히 자리를 내주었듯 퇴화는 근사한 진화로, 침묵과 미동 없음은 멋진 변화로 이어지길 바라며.


✽지난번 칼럼에서 독자제현들의 존함들을 써 내려갔더랬다. 그런데 한분의 존함이 빠졌기에 송구한 맘을 전한다. 오랜 기간 본지를 사랑하고 아껴준 민기식 원로목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