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 작게보기
페이스북
겨울 지나 봄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18년 03월 02일 18시 25분 입력

아이들과 청년들의 열정과 응원 속에 이번 겨울 사역은 큰 어려움 없이 감사하게 끝을 맺고 있다. 겨울 내 만난 모든 이들을 축복하고 지지해마지 않는다.

 

12년 전 일기를 꺼내어 들며 

 

▲탁지원 소장 
  본지 발행인

사무실 정리를 하던 중 예전에 썼던 ‘집회현장에서’란 글을 발견했다. 이번 겨울사역과 맞물린 타이밍이 적절했기에 예전 집회의 모습도 나눌 겸 ‘추억 팔이’한번 하고자 한다. 

 

13년 차 겨울 사역이 종반전에 접어들었습니다. 여전히 올겨울 방학 사역의 첫 번째 기도 제목은 ‘처음처럼!’이었는데 쉽지가 않네요. 주최 측의 배려에 따라 강의의 열정이 결정되고 집회 지까지 가는 시간을 걱정하며, 모이는 인원과 사례, 그리고 먹고 자는 문제 등을 먼저 생각하며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는 사람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 스스로는 사역을 시작했던 첫 마음을 잊지 않고 잘 살아왔다고 믿지만(물론 저만의 생각이겠죠! 그동안 제가 얼마나 교만해졌는가를 생각하니 고개를 들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아무래도 착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밑바닥으로 내려갈 필요성을 분명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 순순했던 시절로 돌아가기를 열망하며 더욱 최선을 다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 자신을 먼저 채찍질해보았으니 이 지면에 13년 동안의 강의 사역을 정리하며 집회 때 아쉬웠던 점 몇 가지를 이야기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요즘 집회현장의 분위기는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격세지감이랄까요! 우선 제일 힘이 부치는 부분은 집회 때 청중들의 반응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반응을 보고 강의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강사도 사람인지라 리액션을 통해 힘을 내곤 하는데 무거운 분위기로 인해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첨가한다거나 우스갯소리를 자주 해야 하는 부담이 생깁니다. 흥미위주의 가벼운 내용으로 이끌어가는 경우도 많고요! 앞으로는 어느 강사가 강의를 하더라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강사는 더 많은 것들을 쏟아내려 노력하지 않을까 싶네요(서운한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지만 집회의 분위기가 무겁기로 소문난 경상북도 같은 경우는 그 지역의 정서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더 분위기 전환을 위해 노력해보면 어떨까요? 앞으로는 기대해 보렵니다.^^).

 

그다음으로는 감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단 관련 일을 하다 보니 진짜인 곳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그러니 모든 것에 감사가 넘쳐나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수련회가 열리는 어느 장소든지 간에 감사하고, 그저 수련회에 참석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이며, 또한 어디든 청소년들이 있는 곳이라면 달려가는 강사들과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청소년들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휴가 등을 내어 참여한 교사들, 그리고 주방에서 며칠씩 불평한마디 없이 식사와 간식을 준비하며 그저 행복한 모습으로 땀 흘리는 성도님들, 그리고 내 사랑하는 동료와 선, 후배들이 있어 행복한 감사들이 넘쳐났으면 좋겠습니다.

 

그 외 청소년들에게서 섬김과 나눔보다는 개인적 성향이 많아진 것도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입니다. 말 그대로 수련회라는 이름으로 왔다면 좀 더 성숙한 신앙의 변화를 기대하며 너무 편한 것만 고집하진 않았으면 합니다. 또 여러 교회가 참여하는 캠프는 사람들이 많아도 교회 간의 선의의 경쟁심이 생겨서 그런지 조직적이고 질서정연하게 은혜를 사모하며 진행이 되는데 개 교회 수련회 같은 경우는 자기 교회라는 마음이 있어서인지 긴장이 다소 풀려지기도 하고,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단점도 있어 보입니다. 앞서 고백한 것처럼 저희들은 최선을 다해 남은 강의 사역부터 앞으로의 사역을 건강하게 제대로 완수할 테니 부족한 사람의 이야기를 잘 참고해주셔서 앞으로 더욱 멋진 수련회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번 겨울 우리의 미래인 다음 세대의 수련회를 위해 수고한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건투를 소망하며….

 

✽예전 본지는 월간지와 더불어 ‘여호와닛시’라는 부록을 발간했었다. 작은 소식지이긴 했으나 월간지를 통해 나누기 어려운 글들을 살갑게 담았더랬다. 소소한 소식들과 집회현장에서, 그리고 독자 편지 등을 담곤 했는데 어느 순간 월간지 하나에만 집중해야 할 필요를 느껴 갑작스레 폐간(?)시켰다. 사무실을 정리하다가 투박하나 살가웠던 소식지를 꺼내어 드니 자연스레 옛 생각이 밀려 왔고, 그때의 집회사역과 이번 겨울 사역을 콜라보레이션해봤다.

 

✽✽그리고 지금도 12년 전의 넋두리와 크게 달라진 점이 없는 것 같아 여전히 수양(?)이 필요함을 깨닫고 있다. 글을 약간 정리한 것 외에는 날 것 그대로 담았으니 조금 투박하고 서투른 감 있다하더라도 편케 읽어주시길. 그래도 그때와 비교해서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름 리액션들이 대체적으로 좋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 경상도 쪽은 예전 전라도 지역의 집회 분위기를 넘어서고 있을 만큼 뜨거워지고 있다. 기대하니 이뤄진 것일까?

무튼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고마운 선생님들과 주방집사님(권사님)들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새 학기, 새 출발에 앞서

 

어쩌면 좋은 대학에 가는 것보다,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만나는 것보다, 좋은 전공을 살려 괜찮은 직장에 가는 것보다, 이단 문제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년 동안 죽어라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갔는데 그때가 가장 이단에 많이 노출되고 빠진다하니 부디 18학번 새내기들이 이단 문제로 어려움 겪는 일이 없었으면 싶다.

 

✽매년 새 학기마다 캠퍼스 특집을 준비하고 있다. 간절한 심정을 안고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열심히들 준비했으니 청년들 역시 간절한 마음으로 기사들을 봐주시고, 또 주변 청년들에게도 나눠주길 바란다.

 

캠퍼스 이단 대처

 

커버스토리 캠퍼스 이단 대처의 글이 조금 아쉬운 감 없지 않아 예전 학원복음화협의회 대처 안에 살을 붙여 조금 더 다뤄봤다.

 

1. 먼저 이단들의 캠퍼스 홍보와 포교를 막기 어려울 때는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며 접근하는, 건전치 못한 단체임을 학교의 관련부서를 통해, 또는 이단으로 규정된 곳이라면 조금 더 강력하게 오픈해서 문제 제기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반드시 주의할 것은 기독교내의 교리다툼이나 종교논쟁으로는 비춰지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지혜가 필요한 부분이다. 믿지 않는 친구들에게는 일반 방송의 이단 비판 드라마나 시사프로그램을 소개하며 문제점을 지적해보는 것도 좋다.

 

2. 기독교학교나 일반학교는 각각의 방식과 상황에 맞춰, 사안마다 대처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학교의 이단 대처의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학생들이나 교직원들 간에 네트워크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3. 당연 기독세력 간의 강한 연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예전 모 선교단체 간사에게 받은 편지가 기억난다. “늘 선교단체들이 각각의 선교단체만 챙겼지, 하나 되질 못했는데 이단과의 사투를 벌이며 힘이 들긴 하나 모두가 하나 되어 함께 기도하고 싸우니 참 좋네요!”라고 적혀있던 편지가 아직까지 힘이 되고 있다.

 

4. 캠퍼스 기독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동아리연합회나 총학생회, 그리고 학내 여러 행사에 참여해야 한다. 예전 모 대학(기연) 초청 집회 때, 이단 동아리 등록 부결을 위한 모임에 참여한다며 강의를 듣지 못해 아쉽다던 형제가 생각난다. 그날 강의도 잘 끝나 감사했지만 더욱 감사한 것은 비슷한 시간 그 형제 등 기독 학생들의 열심으로 이단 동아리 등록이 부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다. 학생들의 선교단체에서의 열심만으로는 캠퍼스를 지켜낼 수 없다는 것을 한 번 더 깨닫게 해준 사건임에 틀림없다. 5. 선교단체와 교회와의 긴밀한 협력과 더불어 사전 교육을 통한 예방과 체계적인 성경공부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만도 못한

 

반려동물들을 키우고 있다. 아들만 둘이 있는지라 모두 암컷들로 들였다. 각각 견과 냥의 이름은 두나와 카노다. 두나는 두 번째 강아지라는 의미로, 카노는 다른 가족이 키우는 고양이의 이름이 ‘카푸치노’에서 뒤 글자를 따 ‘치노’라 지었기에 자연스럽게 ‘아메리카노’의 뒤 글자를 따서 ‘카노’라고 지었다. 지면에 이젠 반려 동물까지 등장시켜 송구한 마음도 들지만 어렸을 적 키웠던 개를 소재로 한 선친의 이야기(의리와 헌신적이고, 책임감을 갖고 사는 것과는 반대로 사람들의 배신과 의리 없음의 이야기들)가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날 때 많기에 한번쯤 반려 동물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장점이 많은 동물임에 틀림없고, 고양이는 그와 반대로 당당한 모습이 매력적이며 자유분방하고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다.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심장건강에도 좋다는 연구결과도 있으며, 우울함을 덜어주는 등 수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이렇듯 동물들조차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건강하도록 도우며 살아가는데 그와는 반대로 사람에 대한 희망 없음은 여전히 깊어지고 있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의지할 분 하나님밖에 없다는 말 대신 오늘은 동물조차 의리를 갖고 사람들을 따르고 사랑하며 사는데 연약한 인간들이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만 말고 찌질한 삶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으면 한다.

 

✽하여 이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서로가 섬겨주고 나눠주는 삶이 그나마 우리의 인간됨을 깊고 넓게 해주는 것일 테니, 동물들이 그들만의 소소한 일상의 삶을 살며 주변 이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처럼 이 세상 살면서 감사와 배려의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으면 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각각의 모습과 더불어 하나됨의 삶으로 더욱 멋지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말 한마디의 격려가 없다 하더라도 따뜻한 눈빛 하나면 충분한 곳들이 우리 주변엔 얼마나 많은가? 그러고 보니 지면을 통해 인사를 전하고 싶은 이가 있다. 오랜 기간 업무보고와 더불어 늘 짤막한 편지로 위로를 나눠준 본지 김정희 총무, 한 주간 수고의 인사를 10여년 이상,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전해준 그 소소한 나눔이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계속 되풀이되는 이 버거운 사역에 힘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지금 당장 주변 사람들부터 비록 작고 소소하지만, 마음을 담은 그 어떤 것이라도 나눌 수 있길 권한다.

 

지난 호에 이어 독자 존함을 한 분 더 추가한다. 아마도 해외 독자였기에 프로그램 상의 문제로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 다시금 송구한 마음이나 이 기회에 독자들 모두를 챙길 수 있게 된 것 같아 감사할 뿐이다. 해외에서까지 본지를 사랑하고 아껴주시는 장태원 목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