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 작게보기
페이스북
비워지고 채워지는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18년 04월 06일 10시 06분 입력

“하나님! 저희 가족은 살면서 이단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 감사를 저희만 만끽하지 않고 더 많은 이들과 나누며 살 수 있길 원합니다.”


이런 감사도 넘쳐나길.

 

감사 

 

▲탁지원 소장 
  본지 발행인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서 그런지 물 문제로 힘들었던 기억은 나질 않는다. 적어도 작년까지는. 추위가 매서웠던 올 초 수도가 얼고, 물 한 방울 애타게 기다리는 상황이 몇 주일 계속됐다. 직원들은 차츰 멘붕 상태가 되어갔고, 누군가는 물을 놓고 간절한 기도까지 했다. 미리 준비할 수 없는 일상의 삐걱거림과 어긋남은 당황함과 당혹감을 한꺼번에 안겨주곤 한다. 물과 공기 같은 것들, 그리고 항상 같이 있을 것만 같던 사람이나 옆에 있다가 가끔씩 사라지는 물건들의 빈자리가 그렇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평소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갖게 되어서다. 감사는 늘 그렇게 찾아오나 보다.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다가도 없으면 허전하고, 또 힘들어지는 것들, 그것이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든 또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이든 간에 모두 그렇다. 아무튼 불편함보다 일상에 대한 감사를 더 크게 느끼게 해준 이번 사건의 결말은? 

 

물이 나오길 애타는 마음으로 기도까지 하는 이가 있는데 물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마음으로 연휴 때 잠시 사무실에 들러 수도꼭지를 틀었더니 물이 콸콸콸 쏟아지는게 아닌가! 할렐루야! 윤성빈 선수의 금메달 소식보다 더욱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간 본지의 소송에 헌신적으로 힘써준 김혜진 변호사가 독립해서 얼마 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빈자리를 통한 아쉬움과 더불어 그간의 수고에 감사를 전하며, 인생의 2막을 열어갈 김 변호사의 사역을 응원하고 축복한다. 부디 초심 잃지 않고 많은 이들의 법률문제를 잘 도울 수 있길 바란다. 독자 제현들 중에서(물론 법적인 문제가 없기를 바라나) 혹시 어려움이 생길 때 교제하게 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본지와의 교제는 당연히 계속될 예정이다


어찌하다 보니 지난 호부터 직원들에 대한 칭찬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예전 모 TV 프로그램 중 하나인 ‘칭찬합시다’가 떠오른다). 이렇게 된바 칭찬하고 싶은 이가 또 있다. 본지 한정희 사목, 고 탁명환 소장 때부터 30여 년 가까이를 업무국 일과 사목, 그리고 지금은 집회 팀으로 최선을 다해 사역하고 있다. 지금껏 박봉 속에서도 한 번도 볼멘소리한 적 없이 그저 순종과 섬김으로 본지와 함께했었기에 사역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에 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몸담았던 동안에 감사했던 일들은 모두 잊고 본지에서 배우고 축적한 것들과 여러 관계들을 마치 개인이 이룬 양 살고 있는 이들과는 비교하지 않으려야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다.

 

Me Too 운동


이제 이단인 성락교회에까지 이르렀다. 나머지 이단들과 한국교회에까지 그 지경이 넓어질 듯하다. 이단 피해자들의 미투 운동도 기대하며.

 

익숙함 1

 

강의 초청에는 분명한 노동의 대가가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CCM 가수 출신의 모 가수 사례(최근 모 교회에서 노래 4곡을 부르고 받은 사례비가 1000만 원쯤 된다고 한다)의 수십 분의 일도 안 되지만 신성한 영, 육 노동의 대가이니 서로가 당당하게, 그리고 정성껏 나누고 섬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자비량 사역에 무게를 실어야 함도 중요하지 싶다.

 

상당수 대형교회들의 변함없는 ‘열정페이’에 반해 어려운 교회들의 귀한 섬김이 늘 비교되고 남다르기에 거룩한 부담감이 쉬이 잊히진 않는다. 섬김이라는 것이 교회의 규모와 반비례되어져 가는 곳들이 늘고 있어 씁쓸하기만 한데 아울러 너무도 당연하고 당당하게 자비량을 말하는 이들 역시 같은 마음을 안겨주곤 한다. 받는 데만 익숙해진 일부 선교지와 몇몇 기독교 학교들의 문제다. 

 

최소한의 성의와 예의를 보여주고 더불어 어려운 부분들은 함께 채워 가면 좋으련만 원칙이랍시고 말하는 그 당당함은 오만에 가까워 보인다.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선교 지역에 있으니, 어려운 학교니까 하는 당위성을 안고 ‘늘 그렇게 하고 있기에’라고 말하는 것은 고리타분하다. 남들에겐 열정과 희생을 강요하면서 반대로 섬김만을 기대하는 이들의 선교가 과연 온당한가 싶다. 받는 만큼 나눠주기도 하면 좋으련만.

 

본지가 받는 데만 익숙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유이다. 거절의 아픔이 워낙 많았던만큼 나누는 것에 있어서 열심을 다하고자 한다. 나눔과 섬김의 익숙함을 기대하며….

 

익숙함 2

 

‘익숙함’은 대체적으로 전문적인 영역에서 사용 가능한 표현이다. 그러나 그 익숙함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거나 의롭게 사용되지 못할 땐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며,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익숙함은 아닌가도 살펴봐야 한다. 시간이 흘러 사역에는 익숙해졌지만 초심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깊어지는 이유다. 어릴 적 부친을 통해서는 정의를, 모친을 통해서는 사랑을 배웠다. 그 배움은 고스란히 형제들의 몸과 맘에 녹아들어 적어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비굴해지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았다. 그러나 기성세대에 안착하면서 그 일이 좀처럼 쉽지 않음을 깨닫고 있다. 

 

이단들보다 못한 교회들을 보면서 쓴소리 한번 제대로 못하고 말씀과 웃음을 팔기도 했고, 관계의 단절이 두려워 외쳐야 할 것들을 외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점점 비굴함을 안고 살게 되면서 남들에게 빌어먹는 사역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그나마 남아 있기에 다행이긴 하지만 그분만 높이고자 했던 초심은 분명 나락 가까이 떨어지고 있다. 늘 말씀 중심에 서서 살고, 또 사역하는것이 우선순위임에도 ‘독자와 회원이 몇 명 떨어졌고, 책을 몇 부 찍어야 하는가? 내지는 어려운 예산 문제’등 본지 존폐의 문제만 걱정하며 주객전도된 사역을 이끌어 온 것 같다. 돌이키기엔 너무 많이 달려왔지만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노심초사한 마음이 새로운 활로로 이어질 수 있길 딱 한 번만 더 소망해 본다.

 

동안교회

 

매년 3월 첫째 주일을 이단경계주일로 지키고 있는 교회를 3년간 섬기며 든 생각들이다.

 

1. 하루 온종일 말씀을 전할 때면 목회자들의 말씀 준비와 전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육체적인 노동보다도 더 버거울 때가 많다. 목회자들의 영적 직무를 쉽게 생각하지 않게 된 이유다. 예배와 설교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해야 함은 설교자와 하나님에 대한 당연한, 그리고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혹 목회자와 성도들의 분란이 있는 곳들이 있다면 서로가 각자의 위치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고 느껴보길 바란다. 쉽게 문제의 해결점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2. 이단경계집회는 이렇게.

이 교회는 매년 1회 이상 전교인을 상대로 이단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1부 예배 때 참여한 모든 목회자들은 강사의 강의를 토대로 주일학교에서 다음 세대들에게 각각의 눈높이에 맞춰 이단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모든 것은 적어도 수개월 전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며 진행되고, 인근 경찰서를 통해 보안 부분조차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준비한다. 또한 이단 관련 소책자를 제작하고, 이단대책부의 활동을 점검하고 실행하는 등 철저한 준비들로 하여금 전혀 손색없는 예배로 드려지고 있다. 이단경계주일을 지키고자 한다면 동안교회만큼만 준비하면 나무랄 데 없을 것 같다. 

 

3. 상담

집회 후 상담이 진행될 때는 그간의 교회와는 다르게 상담 창구에 이단대책부와 목회자들을 배치해 성도들의 문제를 함께 나누고, 또 기도하며 풀어간다. 작년에 만났던 어느 목회자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이렇게 이단 문제로 아픈 줄 몰랐습니다. 앞으로 기도와 더불어 이단대처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교인 수천 명을 품고 있는 교회이긴 하나 한 영혼의 아픔조차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비록 이단 문제로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아 매년 교회 방문 때마다 60~100여 명의 성도들과 상담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도와 관심이 계속 모아지고 있으니 빠른 시간 내에 그 아픔과 절망이 희망과 회복으로 바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4. 사후 대처

하여 동안교회 이단 대처의 기대가 남다르다. 부디 콜라같이 톡 쏘는 관심이 아니라 언제 먹어도 은은한 숭늉과 같은, 여름날의 얼음냉수와 같이 질리지 않는 관심과 실천, 그리고 경계와 예방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 

 

✽ 서울 이문동 동안교회(예장통합 측, 담임 김형준 목사)의 이야기다. 이외에도 최근 북가좌동 충신교회의 <전신갑주> 팀을 비롯해 여러 교회들의 작은 대처들이 신천지 문제 등 실패한 이단 대처의 물꼬를 다시금 터주길 바란다.

 

우리들의 평안과 행복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어 지금도 거리에서 눈물로 기도하며 싸우는 피해자들을 통해 이뤄지고 있음을, 그들이 아프기에 우리가 아플 위험을 면하였음을 알게 하시고, 우리들이 지켜가는 종교의 신념마저 오랜 시간 회복과 치유를 기다리는 이들로 인해 가능함을 알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