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다 닳아도 고칠 것은 고쳐야지. 틀린 것 눈감아 주면 오답이 판칠게야. 괜찮아 목숨이 짧아지는 건. 올곧게 살아야지. - 나순옥 - 언론(과 종교)의 역할
보수로부터 진보에 이르기까지 여러 매체를 구독 중이다. 그중 「한겨레」 신문은 어려운 시대, 정직하고 올바른 정론지를 표방하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창간했기에 애착이 크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최근 이단들에 휘둘리고 있는 보수 메이저 언론들보다는 낫지 싶다. 그러나 흔들릴 것 같지 않던 「한겨레」도 최근 몇몇 정치적 사건과 사고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더니만 종교 문제에 있어서도 잘못된 종지부를 여럿 찍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제라든지, 난민(전능신교)관련 문제들에 있어서 본질이 아닌 인권의 잣대로만 문제를 바라보다 보니 핵심을 잃고 말았다. 대개의 보수는 근본적인 문제를 지키려다 보수를 위한 보수가 되는 경우가 많고, 진보 역시 역사와 사회적 의식은 풍부하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문제의 본질을 잃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디 그동안의 명예가 실추되지 않도록, 그리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다각도의 시선을 안고 문제를 바라보며 진일보할 수 있는 언론의 역할을 기대한다.
본지도 최근 언론중재위원회에 여러 번 출석하면서 고민이 하나 생겼다. 언론의 역할에 더 충실해야 하는가? 또는 종교문제에 우선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할 수 있는 선에서 종교와 언론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도록 지혜의 충만을 기대하나 쉽지는 않다. 한 우물이라도 잘 파야 하는 건지, 아니면 어렵더라도 모든 일을 잘 감당토록 계속해서 노력해야 하는 건지? 인생은 어려운 질문의 연속이다.
강의 사역 1
도망갈 곳도 없고, 숨을 곳도 없다. 해가 스무 번이 넘게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쉽진 않다. 노쇠해져서인지, 또는 겪고 있는 증상 때문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전하는 말씀과 삶이 일치되지 못하는 연약한 이의 반성 탓이거나 첫 마음을 회복시키려 하는 하나님의 뜻인지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최근 사투를 벌이며, 사생결단의 마음으로까지 강단에 서고 있다. 말을 한다는 것이 이리 힘들고, 또 역으로 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힘든 일들과 친구가 되고자 애쓰는 일과 믿음과 응원에 기대는 것뿐이지만 그럼에도 다시 예전처럼 힘차게 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강의 사역 2
강의를 말끔히 끝내고 박수를 받으며 멋지게 강단을 내려오고 싶으나 강의 후에 늘 구차하게(?) 후원과 도서에 대해 이야기를 전해야만 한다. 강의 때의 자긍이 왠지 한순간에 내려앉는다. 본지가 강의를 통해 동기부여를 하지 않더라도 회원과 독자 등이 한결같으면 좋으련만(예전 강의사역을 잠시 멈췄을 때 독자들의 수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보며), 그렇지 않음을 볼 때 그리 건강한 시스템이진 않다. 간절한 호소가 독자와 회원으로 이어지는 것도 좋지만 교회와 성도들의 당연한 필요로 이 귀한 나눔이 이어질 수 있길, 잠시 쉬어가게 되 더라도 독자나 회원이 그대로이거나 더 늘게 되는 기적을 맛보길 소망해 마지 않는다.
✽ 건강상의 문제를 겪으며 확인하게 된 것이 하나 있다.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한 이들보다 남이라 생각했던 이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격려해주기에 몸은 힘들어도 맘만은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응원에 힘입어 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 더욱 건강하게 사역 잘 감당하고 싶다. 연약한 사람임을 깨닫게 해준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한, 미, 중
선교의 지경도 좀 더 넓어질 수 있길.
✽ 한국에서는 다음 세대의 이단 예방교육이 수련회를 중심으로 한창 진행 중이다. 문제의 해결점이 다음 세대를 통해 이뤄질 것이라 예상되니 이단 예방교육을 어른들로 한정 짓지 않길 바란다.
승소
중요한 기도 제목 중 하나였던 소송이 승소의 소식을 안겨줬다. 이단 옹호 언론인 황규학씨와의 1심 판결을 뒤집은 2심 승소의 소식과 더불어 유병언 구원파와의 교리적 다툼에서의 승리는 작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재판장 되어주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변호사들과 그간 기도해준 여러분들의 승리임을 다시금 지면을 통해 고백 드린다.
✽ 관련 기사를 통해 더 자세히 참고 바란다. 그런데 글을 끝마치기도 전에 유병언 구원파와 박옥수 구원파 유관기관 의혹 단체가 사이좋게 각각 항소장과 언중위에 문제 제기를 해왔다. 2라운드가 시작됐다.
DRAMA
드라마조차 이단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대를 살고있다. 세상 문화라고 모두 불경스럽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난번 방영됐던 <구해줘!>는 사이비종교를 소재로 기독교인들에게도 신선한 경각을 안겨줬으며, <응답하라>시리즈 같은 경우는 바삐 지내며 잊고 살았던 지난날의 기억과 추억을 소환하며 힐링 드라마로 자리매김하며 많은 이들을 위로했기에 세상 문화 콘텐츠라고 함부로 욕할수는 없다. 최근에 방영됐던 <미스 함무라비>는 현직 부장 판사가 작가로 나선 최초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소송에 대해, 그리고 법원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내어 호평을 받기도 했다. 특히 법관들은 세상사 모든 시시비비를 판단
해야 하는 일들로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그들도 똑같은 고뇌와 고민, 그리고 실수와 한계들도 안고 사는 보통사람들임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동안 수없이 법원을 오가면서도 잘 몰랐던 법과 그 세계에 대해 쉽게 이해되었기에 세상 어느 것이든 받아들이기에 따라 귀한 지혜가 될 수도 있음을 반 백 세를 넘어서야 깨닫고 있다. 또한 각 사람의 생각과 내면까지 관찰할 수 있는 드라마처럼 사람을 대할 때 그의 살아온 여정을 다 알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 인생, 함부로 평가하고 폄하하진 말아야 할 테다. 사람을 사람답게 사랑하고 아껴줄 수 있는 현실에서의 착한 드라마를 열심히 써 내려가고, 또 진실 되게 연기할 수 있다면 그것이 삶의 승리지 싶다.
이해관계
오랜만에 연락 온 주일학교 선배 A씨, 근 40년 만이다. 이따금씩 연락을 주던 B 목사, 이번엔 직접 본지를 찾았다. 고 탁 소장과 오랫동안 교분을 나눴다는 C 목사(이름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은 없지만), 그리고 평소에는 만나기 어려운 교계 중진인 D 목사까지 그래도 모두들 감사한 연락이지 싶어 반갑게 맞이하고 또 연락을 나눴다. 그러나 여전히 반전(?)이 존재한다. 본지에 게재됐던 이단 내지는 말 많은 단체들의 삭제를 정중하게(?) 요청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상황을 이해 못 하는바 아니지만 그럼에도 한국교회가 결의한 사항에 대해 이해관계에 맞물려, 또 다른 이해관계에 기대어 문제를 풀고자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단 피해자들이 이단에 속고 이단에 빠진 가족들에게조차 속아 다시는 사람은 믿지 않겠다고 한 것처럼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신뢰의 대상이 아님은 분명하다.
‘지우개 같은 삶’과 더불어 고 탁 소장의 ‘빗자루와 걸레가 되는 삶’의 이야기도 떠올려본다. 교회 안팎을 깨끗하고 말끔히 씻어낼 수 있는 일에 아무런 조건 없이 나서는 이들이 더욱 많아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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