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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과 소명도 아니라면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18년 10월 05일 16시 52분 입력

주신 사명 제대로 감당하며 살면 좋겠으나 꼭 거창한 사명이 아닌, 작은 삶의 소명만이라도 잘 감당하며 살 수 있길 소망한다. 

 

▲탁지원 소장 본지 발행인

  

누군가 말했다. 존경하던 사람을 더 이상 존경할 수 없게 된다는 건 슬픈 일이라고. 정치인 중에, 그리고 지인이거나 존경했던 교역자 중에 그러한 일들이 적지 않았기에 그간 슬픔이 많았었나 보다. 더 아픈 것은 그 같은 상황을 주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거나 당사자조차 그 사실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지 못할 때다. 팔은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때로는 억지로라도 밖으로 굽게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흥하게 하는 것임을 믿으며, 작심하고 담아 본다.

상담 사역자들

상담 편지

안녕하세요! 얼마 전 제 사촌 조카가 이단 교회에 다니고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연락을 드렸습니다. 엄마가 사촌 언니의 초대로 그쪽 수련회를 가셨다면서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느낌이 안 좋아 검색을 해보니 이단 교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현재 첫째가 제일 열심히 다니고 있고, 사촌 언니랑 둘째 조카는 그다지 빠져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직 잘 모르겠고, 그냥 좋아서 다니고 있는 것 같네요. 저도 그곳이 어떤 단체인지 모르고 있어 먼저 그 교회의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자신들에 대한 변호에만 혈안이 되어있더군요. 현대종교 사이트를 통해 자료를 찾아보니 이단임이 분명하기에 어떻게든 빼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1. 그 교회 이단결의에 대한 근거자료

2. 상담소로 연결하기까지 설득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나 주의사항

3. 그 교회 피해자들이 회심한 케이스 등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이단상담소

더불어 개인적으로 작지 않은 문제라 생각하기에 한 가지 더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모 이단상담소에 관한 부분입니다. 먼저 현대종교에 도움을 요청하니, 현대종교는 언론사라서 직접적인 도움을 주긴 어렵고, 상담이 필요하면 탁 소장께 메일을 보내거나 회복상담이 필요하다면 가까운 지역으로 연결해주시겠다고 하셔서 모 상담소에 연락하게 됐답니다. 먼저 상담자에게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에 대해 자초지종 설명해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담당자가 가라앉은 목소리였는데 누가 다니고 있는지 확인하고, 상담소로 데리고 올 수 있겠냐고 물으시더군요. 그런데 제가 처음 접하는 일이고, 이단에서 빼내 올 때 먼저 개인적으로 설명을 해주는 건지, 아니면 자세히 얘기하지 않고 무조건 상담소에 데려와야 하는지 어떤 것이 성공률이 높은지 전혀 알지 못하는데 당장 ‘데려올 자신이 있냐는 식’으로 물으시니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상담으로 바로 연결하는 것이 효과적이어서 그런가보다 싶어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설득을 하거나 상담소로 연결을 하든지 간에 설득하려면 그 교회에 대해 어느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아 혹시 자료를 받아볼 수 있는지 여쭤봤습니다. 그랬더니 귀찮다는 듯이 “그 자료는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많이 나와요!”라고 하시는 겁니다. 저는 이 답변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검색을 안 해봐서 그런 것도 아니고, 이단들이 자기들 변호하려고 올린 자료들이 많아서 그랬던 거고, 또 인터넷 자료가 틀린 자료도 많을테니 공신력 있는 곳에서 제공된 자료를 봐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하니 담당자는 제 말을 끊고 공신력이 뭐냐고 묻기에 지금 상담하시는 분이 혹시 목사님이신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의와 배려, 섬김의 부재

그다음부터는 말싸움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친절하거나 온유하지도 않았고,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분의 전화응대에 그래도 참아가며 여쭤보고 대화를 이어간 건데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시며 이젠 혼까지 내시더군요. 우선은 누구신지 너무 궁금해서 목사님인지, 성함이 어떻게 되는지 등 여쭤봤더니 저부터 말하라고 해서 제 이름을 말씀드렸습니다만 본인은 누구인지 밝히지를 않으셨습니다(이단 사역의 특성상 그 부분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저는 그분을 해하려 한 것이 아니라 그분 한 분 때문에 저 같은 사람이 상처를 받고 도움의 의지를 꺾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알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계속 언성을 높이고, 그쪽이 먼저 처음부터 따지고 들어오지 않았느냐고 하시더군요.

제가 도대체 무엇을 따졌다고 하시는 걸까요? 그러면 이단 상담하는 사람은 다 어수룩해야 하고 하라는 대로 다 하고 질문도 하면 안 되는 건지, 제가 그 목사님 앞에서 이단에 대해서 아는 척을 한 것도 아니고, 잘 모르니 자료가 있으면 좀 받고 싶다고 한 것뿐인데. “자료는 인터넷에서 직접 찾아봐라. 당신이 뭔데 공신력을 운운하냐?”이런 태도였습니다. 너무 실망스럽고 속도 상하고 기분이 참 좋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이, 그것도 이단 상담하시는 분이 그 같은 인격으로 무슨 상담을 하시나 하는 의문까지 들었습니다. 더 이상 대화도 안 되고 역정만 내셔서, 알겠다고 현대종교와 다시 통화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가슴이 너무 두근거리고 눈물만 뚝뚝 흐르더군요.

변명과 변호

다시 생각해봐도 제가 무슨 잘못을 한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다시 현대종교에 전화하니 상담자가 전화를 받아주셨어요. 지금까지의 상황을 이야기 드렸더니, 잘 들어주시고 그분 입장에서 변호를 해주셨어요.

- 이단 사역을 하다 보면 이단 측에서 장난전화를 많이 하기 때문에 예민해 있을 수 있다.

- 그분이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을 수 있다(솔직히 이건 좀 이유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회심시키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하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바로 상담으로 연결하라고 하는 거다(제가 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마음이 상한 것은 아닙니다.).

상담하시는 분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다 이해가 가고 어느 정도는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앞선 상담자와는 태도가 달랐으니까요.

소장님! 전 정말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소장님 포함해서 이단 사역하시는 분들이 목숨 걸고 주를 위해 헌신하신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도움을 요청하고자 문을 두드리는 사람마저 편견을 갖고 또는 조금 꼼꼼하게 상담하고 싶어 조금 더 질문을 한다고 해서 이단이라고까지 생각하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대하시고 따지는 사람으로만 취급하면 상담 사역이 어떻게 진행이 될 수 있을까요? 직원 말씀으로는 현대종교와 각 이단상담소가 협력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연결해주는 거라 하시더군요.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마음이 답답해졌어요. 그렇지만 그 직원 분께 다시 한 번 말씀드렸습니다.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고. 개인적으로 그 목사님께서 힘든 일이 있을 수도 있고, 이 사역으로 지쳐있을 수도 있지만, 오늘의 일은 그냥 끝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녹취된 것이 있다면 들어보셔도 됩니다. 그리고 제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저도 고치겠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계속 상담소에서 그렇게 계속해서 응대하고 상담한다면, 지금껏 힘들게 사역해 오신 분들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이고,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내치는 일밖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소장님이 여력이 되신다면 그런 부분에 대해서 한번 말씀이라도 나눠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직원분께서 그쪽 센터에 전화해 본다고는 하셨지만, 상담소에서 누가 통화했는지 모른다고 하면 그만일 것입니다.

회의감과 절망

저도 사람 대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일 년에 한두 번 눈물이 나고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고 손에 힘이 빠지는 스트레스를 경험하곤 합니다. 그런데 오늘이 딱 그랬습니다. 그분의 사역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저에게 투사했다고 생각하면 되려나요? 더 이상 쓰면 하소연 밖에 안 될 것 같아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제 마음 상한거야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고, 사촌 조카를 구하는 일이 그것보다 몇 천배는 중요하니 마음 잘 지키고 사촌 조카를 구하는 일에 노력하겠습니다.

✽ 본지의 하루 상담 수는 이메일과 전화, 문자 등을 포함해 매일 수십여 통이 족히 넘는다. 그러나 하루 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다고 해서 상담의 질을 떨어뜨리는 변명으로 삼고 싶지는 않다. 매일 상담으로 인해 힘들다고 넋두리는 할 수 있겠으나 내담자들은 그 상담이 처음이자 마지막 상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위의 편지를 굳이 잡지에까지 오픈하는 이유에 대해 오해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게재키로 했다. 위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여러 번 들어왔고, 또한 이단들이 비난하는 재료로 사용할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단 사역자들이 처음 사역했던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주의 일을 하는 데 귀한 경각으로 작용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편지를 보낸 이에게도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순서는 사역자들부터이다. 최근 물질 문제로 투명하지 않은 상담소도 있고, 사이비 상담소들까지 생겨나고 있으니 차제에 이단 사역을 하는 기관들이 건강한 재정비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역자들 이건 피해자들이건 사역의 장이 나뉘고 찢어지고, 때로는 분열되기도 하나 그럼에도 ‘모두가 길은 조금씩 달라도 한 길에 하나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달려가야 하는 것’만큼은 자명하고 분명한 일이지 싶다.

편지를 읽는 내내 본지 또한 그 같은 문제 제기에 자유로울 수 없기에 상담 등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내담자들 또한 날마다 상담 등으로 고생하는 사역자들을 생각하며 예의와 배려의 마음으로 연락을 주셨으면 한다. 가끔 직원들끼리 일정 금액의 상담료를 받고 상담을 했다면 빌딩 한 채는 쉽게 살 수 있었지 않았겠냐고 우스개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러나 사역하는 동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독자 제현들께서 더 잘 아실 것이다. 무튼 교회들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사역자들의 변화와 각성이 이단들을 퇴치하는 데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사역자들의 오만함과 끼리끼리의 정치, 이단 일을 하고 있다 해서 자신만 옳다 생각하는 아집들, 그리고 명예욕과 물욕 등 이 모든 것들을 털어버리고 남은 사역 잘 감당할 수 있길 소망한다.

특정인의 언론, 그리고 교회

1. 교계 정보를 얻기 위해 신문들을 대할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늘고 있다. 적지 않은 언론들이 특정인 소유의 신문이거나 대기업의 사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주 대형교회 S 목사의 기고하는 글과 관련된 기사들, 그리고 게재하지 않아도 될 그의 소소한 행보들과 출판 기념회 같은 내용들로 지면을 채우고 있어서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매일 그 같은 내용을 접하게 되니 이제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본지도 언론사이니 후원과 광고 등의 수입과 커넥션들의 문제를 이해 못하는 바 아니지만 해도 너무하지 싶다. 이젠 그 행보에 가장 앞장서있는 모 교단지의 정체성까지 의심이 들 지경이다. 적지 않은 광고비 등은 모두 교인들의 헌금으로 마련했을 텐데 이렇게 마구잡이식으로 사용해도 괜찮은지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다.


2. 갑작스레 예전 K일보의 기억이 떠올랐다. 통일교가 창간했던 일간지에 대항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성도들의 헌금과 후원으로 창간한 언론이었으나 창간의 정신은 쉬이 잊히고 이단의 기사와 광고, 그리고 일반 언론들보다 더한 선정적 색채들과 소유주의 문제적 행보들로 인해 온갖 비난을 뒤집어썼던(지금도 가끔 그 언론에서 연락이 오곤 한다. 이단의 광고는 이제 거의 사라졌으나 이번엔 기사의 문제다. 기사는 써놓았으니 이름만 빌리자던 기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더할 수 없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 기자는 이러한 취재원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 신문 말이다. 또 다른 언론들은 어떠한가. 그간 몇몇 언론들이 자료의 제공처를 숨긴 채 본지의 자료들을 부지기수로 사용했던 일과 더 나아가 그들 취재의 결과물로 둔갑시키는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니 그 몹쓸 버릇들, 어찌하면 좋을까.

3. 몇몇 교단과 교회, 목회자들도 이와 다르진 않다. 이단인 줄 알면서도 그들에게 교회를 매각했던 감리교(기감) 관계자들이나, 교회를 사유물로 여겨 교계와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명성교회 사건과 총신대 사태 등을 바라보며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엔 고신 측의 존경 받는한 이가 교단에서 참여 금지를 선언한 인터콥 강사로 나섰을 때 그 단체에 대해 오랜 기간 눈물로 연구하고 싸웠던 이들의 절망감은 얼마나 깊었을까.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싶은 생각들이 하루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이단 사역자이든 교계 언론이든, 또는 교회나 목회자이든 간에 사역과 업무의 특수성과 독자성이 존중받고 지켜져야 하는, 그래야 의미와 가치가 사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존중을 받는 것과 자기들 사역에 대한 자긍과 하나님의 뜻이라 여겨지는 것들이 상대방과 성도나 대중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지 못했거나 하나님의 뜻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또한 최소한의 직업의식과 목회 윤리, 그리고 교회의 역할로도 합치되지 못하는 일들이라면 그것을 어찌 사역이라, 또 교회 공동체라 할 수 있겠나? 사역과 소명이 아니라면 최소한의 직업의식이라도 갖고 살아야 할 텐데 시정잡배보다 못한 일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뜻이라 일컫고들 있으니 구역질이 난다.

그리고 현대종교

이리 쓰다 보니 본지 혼자서만 (이단)사역 잘 감당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이나 물론 그렇진 않다. 본지와 필자도 실수와 한계가 적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저 연약한 사람들끼리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가고 건강한 비판들을 통해 문제점들을 찾고 또 해결해 나가려는 의지와 더불어 실천을 말하고 싶었던 게다. 이러한 일들이 더욱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또한 귀한 신앙과 믿음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임을 믿으며 살고 싶다. 본지의 감사 제목 중 하나는 눈물과 기도로 한 달을 고생해서 만든 월간지의 모든 기사를 꼼꼼히 읽고 오자 등의 문제도 지적해주고, 또 내용의 문제점들이나 본지에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들, 특히 잘못할 때는 호되게 혼내주기도 하는 이들이 늘 함께하고 있어서다.

지난번 평신도이단대책협의회의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게시판에 본지를 쳐다보기도 싫다던 누군가의 항변의 이유가 단지 본지가 그간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루지 않아서라 하는 이야기와는 비교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생떼 섞인 비판 말고 좀 더 건강한 비판으로 본지의 맘을 움직이고, 또 근사한 동역자들이 조금씩 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님 보시기에 티끌만도 못한 부족한 이들의 사역들이긴 하나 여전히 변치 않는 첫 마음을 안고 열심과 최선을 다한다면 그 모습 하나만으로도 은혜가 되지 않겠나.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영화 <베테랑>의 대사를 떠올리며 하나님 빽 믿고 폼 나게 살아보련다.

소명도 아니라면 직업의식이라도 갖고 살아야 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