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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과 거짓의 사람들을 분별하고 가지치기하는 법
이상갑목사
2019년 04월 26일 05시 15분 입력

Q 이단과 사이비 같은 어둠의 사람들이 판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찌해야 할지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이들이 계속 잘될 때 신앙적인 회의와 의심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불의와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심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더구나 거짓의 사람들로부터 음해와 비난과 공격을 받게 되거나 미혹을 받으면 난처해지기도 합니다. 어둠과 거짓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지혜일까요?
 

▲이상갑 목사 
산본교회 담임 
청년사역연구소 대표

A 이 문제는 느헤미야 6장을 묵상하면서 풀어보고자 합니다. 지금 고민하시는 문제는 느헤미야의 성벽재건 과정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느헤미야의 성벽재건은 그냥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악한 산발랏은 느헤미야를 제거하기 위하여 음모술수를 꾸미고 끈질기게 괴롭게 했습니다. 그는 느헤미야가 총독이기에 무력으로 이길 수 없음을 알고 그들은 거짓과 모략을 일삼습니다. 거짓의 아비 마귀를 닮은 것입니다.

느헤미야 6장 본문에는 먼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만나자는 유인책을 사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악한 산발랏의 제안에 대해서 느헤미야는 어떻게 대응합니까?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분별”의 과정을 철저하게 거칩니다. 그는 어둠의 사람들에 대해서 경계심을 늦추지 않습니다. 거짓의 사람들을 철저히 분별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거짓의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속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분별하고 가지치기를 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산발랏의 제안을 두고 분별합니다. 그 이후에 그 제안이 실상은 느헤미야를 해하고자 함임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입니다. 우리도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명철을 통해서 “분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산발랏은 네 번이나 사람을 보내어 계속 고민하고 고뇌하게 합니다. 그에 대해 느헤미야는 시종일관 거절합니다. 선한 데는 지혜롭고, 악한 데는 미련할 정도로 우직하게 나가야 합니다. 한 번쯤 타협했다면 느헤미야는 암살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성벽재건은 무산되었을 것입니다. 마귀는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사람들을 공격하여 무너뜨리려 합니다. 중요한 것은 유혹과 시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느헤미야의 태도는 악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정확하게 거절합니다. 애매모호하면 위험해집니다. 회색지대에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죄와 악에 대해서 NO라고 분명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머뭇거리면 머뭇거릴수록 거짓과 모략에 속기 쉽습니다. 간과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악의 끈질김입니다. 거짓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까지 쉬지 않습니다.

산발랏을 보십시오. 그는 다섯 번째 시도를 합니다. 이번에는 봉하지 않는 편지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하여”(느6:6 상반절) 성벽재건이 왕에 대한 반역행위라고 공격합니다. 심지어는 “네가 왕이 되려 하는도다”(느6:6절 하반절)라고 악의적인 거짓말로 대역죄로 몰아가는 음모로 가득한 거짓된 편지를 보냅니다. 더 나아가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느6:7)라고 협박합니다. 이렇게 속이는 것입니다.

“왕이 들었으니 그대로 있으면 너는 죽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도와주겠다” 그 이후에 이렇게 미혹합니다. “오라 나와 함께 의논하자” 이 제안은 느헤미야를 위하는 척, 돕는 척 하지만 모두 속임수입니다. 악한 모략입니다. 이단과 사이비의 모략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들의 거짓과 미혹에 속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혜를 기도와 간구 가운데 계속해서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정확하게 분별력을 발휘합니다.

“이는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그들의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중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느6:9) 느헤미야는 정확하게 꿰뚫어 봅니다. 불의와 불법의 사람들은 끈질김이 있습니다. 그들은 포기할 줄 모릅니다. 계속해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도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돈에 매수당한 선지자 스마야의 악행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팔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직위, 직분, 직책을 사용하면서 돈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것이 스마야 시대만의 일일까요? 현실에서도 그와 같은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돈에 매수되어 움직이는 이들은 거짓의 사람입니다.

문제는 ‘나’입니다. 내가 어떠한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흉보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흉보면서 자신을 경계하고 주의하지 않으면 똑같이 닮아갑니다. 그것이 죄성이 있는 인간의 실존입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 물들지 않을 것 입니다. 느헤미야는 스마야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흉내만 내는 거짓의 사람임을 알아차립니다. “깨달은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느6:12) 이러한 깨달음과 선한 분별력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스마야의 거짓 예언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이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느6:13) 사실 외소는 제사장 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들어가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그 순간부터는 느헤미야의 위상이 추락할 것입니다. 온갖 비난, 비판을 받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사리사욕을 위하여 정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두렵게 함, 범죄케 함, 비방하려 함의 목적을 숨기고 유혹했지만 속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강력하게 기도합니다. “그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느6:14)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소행을 기억하십니다. 내가 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악행을 멈추게 하십시오. 내 능력 밖의 일이라면 때가 차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대에 악인을 맡기십시오. 오늘 우리 시대는 이단이 참 많습니다. 거짓 선지자 스마야 부류입니다. 그들을 주의해야 하고 분별해야 합니다. 그들은 수많은 방법으로 거짓과 미혹을 일삼습니다. 특히 교회 속에 들어와서 미혹하는 추수꾼으로 활동하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맑고 밝고 깨끗한 정도를 가야 합니다. 은밀하게 성경공부를 빙자하여 사람들을 속이고 미혹하는 행위는 스마야의 악행과 같습니다.

모든 이단과 사이비는 성경공부를 빙자하여 세뇌하는 작업을 합니다. 짝퉁에 주의해야 합니다. 속지 않으려면 정확하게 확인 점검을 해야 합니다. 수시로 영적인 분별과 체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어떤 방식으로든지 성경공부를 하고 있다면 소속된 교회의 목회자에게 여러 번 반복적인 점검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영적으로 혼탁한 시대일수록 분별력은 필수입니다. 이단과 온갖 거짓과 미혹을 분별하고 가지치기하십시오. 그것이 영적입니다. 악에게 속거나 지지 마십시오. 분별하고 가지치기하고 악을 이기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는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