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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직하고 분노하며 기도하고 사랑하라
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19년 07월 19일 08시 46분 입력

“조국교회가 나서지 않는다면 해외에서나마 동참하고자 합니다”

예 의 와 배 려

2006년에 개봉된 <예의 없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청부살인업자가 주인공인데 자신이 도살자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회의를 느끼게 된 주인공이 “나름의 룰을 정하라”는 누군가의 충고에 ‘이왕 청부 살인하는 것, 불필요한 이들만 골라서 깔끔하게 처리하기’로 규칙을 정하고 도시의 예의 없는 이들을 정리해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면에 담기에 불경스럽긴 하나 여태껏 이 영화를 기억하는 이유는 인간말종들에 대한 속시원한 응징이 현실에 대입이 되고, 당시에 무언가 억눌려 있던 응어리들을 영화로나마 해소할 수 있어서였던 것 같다.  

▲탁지원 소장
본지 발행인

  

더불어 사는 삶에 있어 ‘예의’는 빠져선 안 될 중요한 요소이자 덕목이다. 허나 지나친 예의는 일종의 속임수가 될 수 있고, 부족하다면 결례가 될수 있다. 불행히도(?) 필자는 사람을 대할 때 지나칠 정도로 예의를 갖추는 편이다(그렇다면 마음과 행동이 따로인 속임수를 담고 있는가? 지인인 의사가 말했다.

‘기독교인이자 공인이라 할지라도 착한 사람 코스프레만하며 사는 것은 불행한 일일 수 있다고, 할 수만 있다면 겉과 속 모두 선한 마음을 품고 사는 것도 좋으나 살면서 거룩하게만 살 수는 없으니 화가 날 땐 화도 내고 소리도 지르며 자유롭고 솔직하게 사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정말이지, 이제는 수십 년 동안 벗어버리지 못한 가면을 던져 버리고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상대방에게도 최소한의 예의를 기대하는데 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때부터 시작되는 스트레스와 더 나아가 겉만 보고 사람을 함부로 대한다든지 배려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을 보거나 만날 때면 분노는 최고조에 달한다.

불특정 다수와의 수많은 온, 오프라인 관계로 인해 직원들의 스트레스 수위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배려와 예의의 부재 때문이지 싶다. 어쩌면 애당초 소망하는 기준의 기대치가 허황된 것이었는지도, 그 같은 기대를 안고 사는 것을 아예 포기하는 것이 나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예의’의 부재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나 정치, 또는 종교에서 나타나는 것이라면 문제는 크게 달라진다. 개인적으로야 혼자라는 두려움과 조바심에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자 하는 마지막 수단으로 그것을 저버릴 순 있겠으나 사회와 정치가 민생을 포기한 채 개인과 정당의 이득을 취하는 데만 눈이 멀어져 가거나 기본을 망각하게 된다면 국가적으로 매우 불행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특히 종교적으로는 종교인들이 해야 할 소명들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때 종교를 넘어 사회 전체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연일 상식적이지 못한 몹쓸 언행으로 한국교회가 망신을 당하는 데 일등 공신이 된 한기총의 전광훈 같은 이들이 그 예라 할수 있다. 더 나아가 종교가 그 정체성과 정신을 잃게 될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작금의 여러 가지 문제에 유감이 이젠 분노가 되어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만 가고 있으니 의사의 조언 대로 이젠 작심하고 분노를 드러내며 살아야 할 것같다.

그 첫번째로 ‘한기총 해체’와 더불어 대통령이 하야할 것이 아니라 (전광훈의 말을 빌려) 본인이야말로 연말까지만 목회하고, 누가 뭐라고 하기 전에 스스로 교회에서 나오시라! 그러나 ‘스스로’의 기회를 저버린다면 이같은 분노가 모여 타의에 의해 험한 말로를 맞게 될지도 모르겠다.

상 식 과 기 본

상식이 통하는 세상은 여태껏 오지 않고 있다. 굳이 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을 들먹일 필요 없이 일터에서조차 그 씨름은 버겁기만 하다. 본지에 있어 전화 응대나 상담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더불어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가끔 전화 상담 시 직원들의 소리가 높아질 때나 통화 후에 얼굴이 붉어진 표정을 볼 때면 쉽지 않은 대화가 오고 갔음을 내리 짐작할 수있다.

전화 응대나 사람들의 방문에 있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늘 최선을 다해달라고 부탁하곤 했으니 직원들은 분명 상식으로 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기본을 벗어난 주문을 했거나 상식적인 대화의 선을 넘어섰기에 그리됐을 것이라는 단정이 지금까진 대체로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자긍이 자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에겐 일상의 상담이거나 통화일 수 있지만 상대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의 중요한 사건일 수도 있기에 서로의 노력이 필요함을 잊지 말아야 할 테다. 상식과 기본을 지켜가는것 역시 이단 사역을 포함해 삶의 어떤 곳에서든, 또 어떤 일에서든 지간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덕목이다.

사회, 종교적 시사를 분석하고 대안을 담아야 할 귀중한 지면에 오랜 기간 지극히 개인적인 소망과 넋두리를 중심으로 글을 담아 늘 송구한 마음이 크다. 그러나 이런 기본과 본질적 문제들이 바뀌어야만 또 다른 문제들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제대로 된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지금까지 고집 아닌 고집을 부리고 있다.

✽ 물론 이단과의 관계에서는 다르다. 그들 역시 사람이니 최소한의 배려는 갖추어야 하겠지만 단호하고 담대하게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디도서 3장 10절)”는 말씀만큼은 변함없이 지켜져야 할 것이다. 쭈뼛하거나 나약한 대항은 금물.

섬 김 과 나 눔

자신을 드러내는 섬김은 진부하다. 자신의 만족을 위한 나눔도 마찬가지이고. 넉넉해서가 아니라 십시일반의 마음을 잘 알기에 어려워도 행하는 섬김과 나눔이 아름다운 것이겠고, 같은 처지에서 바라보는 헌신의 나눔이 더 값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소한의 예의와 상식, 당연한 상식과 기본, 진심 어린 섬김과 나눔을 기대하며, 더불어 그 기대에 부응하는 세상을 꿈꿔본다.

소 송 과 기 도

4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작년 말 본지 사무실에 테러를 가했던 ‘박옥수구원파, 온고을인성교육원’ 사건은 현재 전주지방검찰청에서 6가지 죄목으로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페이스북을 통해 고 탁 소장과 탁 교수, 그리고 필자를 비방했던 ‘이판사판’ 사건은 6월 초에 경찰 조사가 본격 시작됐다. 다만 페이스북 등 SNS에서는 피고소인의 특정이 어렵다는 것이 문제인데 페이스북에서 협조를 해주지 않으면 가해자를 찾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 외 월간지 표지 관련해서 ‘JMS’ 신자가 고소를 해왔고 끝으로 최근에 기사화된 ‘그리심산기도원교회’ 측에서는 필자를 포함해 5명의 직원을 고소해서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앞의 두 건은 본지가 소송을 제기했고, 뒤의 두 건은 고소를 당한 사건이다. 이외에도 내용증명과 언론중재위원회 사건은 셀 수 없이 많다.

본지의 법적인 부분은 늘 말씀드려도 부족하리만큼 두 손을 모아주셔야 할 가장 절실한 문제이다. 빚진 마음을 안고 더욱 건강하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모두 바쁜 여름 일정이겠지만 한 번 더 기도의 부탁을 드린다.본지보다 녹록지 않은 해외교회의 후원이 늘고 있다. 기쁘기 보다는 짠하다. “우리는 주님을,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의 구호처럼 “본지는 한국교회를, 한국교회는 본지를 위하여”의 외침이 현실이 될 수있길, 그래서 귀한 영적 시너지로 이어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