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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녀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권오희 목사
2019년 08월 26일 14시 16분 입력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덴마크’를 아시나요? ‘덴마크’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바로 ‘교육’일 것입니다. 교육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덴마크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라는 타이틀을 얻기까지 100년 전부터 진행된 그들의 건강한 교육 방식 때문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그에 비해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는 최하위입니다).

▲권오희 목사
제주어깨동무학교 교목

  

덴마크 교육을 알리는 데 힘쓰는 오연호 대표의 저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서는 덴마크인들이 행복지수 1위라는 부동의 위치를 선점한 이유에 대해서 여섯 가지 키워드로 말하고 있습니다.

자유 : 스스로 행복하니 즐겁다
안정 : 사회가 나를 보호해준다
평등 : 남이 부럽지 않다
신뢰 : 세금이 아깝지 않다
이웃 : 의지할 수 있는 동네 친구가 있다
환경 : 직장인의 35%가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전 여섯 가지 모두가 일리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첫번째로 나오는 ‘자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스스로 행복하니 즐겁다’는 저자의 말처럼, 아이들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대한국민에 ‘자기주도학습’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져나가고, ‘자기주도학습’센터까지 생겨난 것만 보아도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이슈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들을 깊이 들여다보면, ‘자기주도학습’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부모주도학습’, ‘부모주도 삶’이 되어있습니다. 더 나아가면 ‘학원주도학습’이 됩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진도를 빠짐없이 나가고 학원을 바쁘게 다녀야 뒤처지지 않게 무엇인가를 많이 배워간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삶을 자신이 선택하고 자신이 책임지는 법을 배워야 함에도, 부모들이 대부분의 일을 나서서 해결합니다. 사소한 일이라도 ‘슈퍼 맘’이 되어서 일을 더 크게 만들기도 합니다. 또한 부모가 선택한 것을 자녀들에게 강요합니다. 심지어 자녀의 미래 계획까지 경험에 따라 멋지게 설계합니다. 과연 그렇게 자라는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얼마 전 제주에서 한 여행객을 만났습니다. 20살의 청년이었습니다. 학기 중일텐데 어떻게 왔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여행객이 말하기를, 자신은 ‘공무원’에 합격하여 지금은 시간이 있다는 겁니다. 다들 수능을 준비할 때 자신은 ‘공무원’을 준비한 것입니다.

요즘처럼 대학을 4년 잘 다니다가 공무원 준비로 열을 내는 수많은 사람들에비하면 시기가 빠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때 질문을 했습니다. “왜 공무원이 되려고 했어요?” 질문하고나서도 왠지 다음 답을 알 것 같았습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그건 엄마가 하라고 해서”였습니다. 마음이 아팠지만 내색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 이렇게 여행도 하고 시간의 여유가 많으니 이제부터 자신의 삶에 대해 더 고민해보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대화를 마쳤습니다.

우리는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찼었지만, 사실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우리 자녀에게 선택권을 빼앗고 살고 있지는 않는가? 서울대 의대는 일찍 포기했지만, 사실은 부모가 원하는 학교? 부모가 원하는 삶? 부모가 원하는 계획(?)에 내 자녀를 몰아 세우지 않는가?

자신이 선택하지 않는 인생은 아무리 세상적으로 좋아 보이는 직장이라도, 아무리 대우를 받고 고수입이 있는 직장일지라도 행복한 인생을 살기 어렵습니다. 만약 부모가 일방적으로 정해주었다고 해서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한다면 얼마나 불쌍한 인생이며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은 ‘존엄한 인간’에 대한 예의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자녀를 맡기실 때, ‘청지기’로 맡기셨지 ‘지배자’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결국 그 아이는 때가 되면 자신의 새로운 가정을 위해서 떠나보내야 하는 시기가 옵니다. 지금 ‘스스로 결정하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개척하기 어려워집니다.

먼 미래까지 볼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당신의 자녀가 행복한 어린이, 청소년시기를 보내게 하고 싶다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그것은 동시에 성공의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실패의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기회도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거리를 두고 지켜보다가 벅차 보일 때 도움을 주십시오. 자신이 가장 필요로 할 때, 부모가 도움을 줄 때,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신뢰감도 높아질것이며, 정말 행복한 마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주지 못하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 분명한 한 가지는 ‘불안함’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다칠까 봐? 기회를 놓칠까 봐? 내가 그렇게 후회했으니까. 여러 이유 속에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내 자녀가 나보다는 더 멋진 인생을 살아야하는데 그렇지 못할까 봐. 선한 마음으로, 부모의 마음으로(?) 돕고 싶은 마음인 것입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누구도 삶의 베테랑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경험이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 경험도 제한적입니다. 물론 자녀들보다는 훨씬 넓은 시야를 소유하고, 자녀들을 누구보다 잘 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도 자신의 경험을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제한된 시각을 소유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통제하면 통제할수록 아이들을 향해 하나님이 일하실 자리를 대신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매 자라게 하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고린도전서 3장 6절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심고, 물을 주는 정도인데 자꾸 자신이 아이를 자라게 해야 하는 사람처럼 욕심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령께서 그들의 삶을 인도해 가신다는 전적인 신뢰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방치가 아닙니다. 지켜보고 기도하며 성령의 힘으로 힘입어 아이들과 대화해야 합니다. 성령의 지혜 없이 자신의 경험으로만 아이들과 대화하려고 하니 자녀들과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심었다면 누군가를 통해서, 삶의 만남과 삶의 역경, 여러 가지 교육을 통해, 자신의 삶에 풍성한 물이 부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하나님께서 자라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들이여! 교회학교 교사들이여!

먼저! 믿음을 가지라!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자녀의 미래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지십시오. 우리도 우리아이들의 삶에도 ‘행복’이 있도록 선택할 기회를 많이 주십시오. 지금까지 제주어깨동무학교 권오희 목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