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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19년 10월 04일 08시 54분 입력

예수는 이천 년 전 우리에게 해방을 가르쳤지만 우리는 이천 년째 예수에게 욕망을 요구하고 있다. - 김규항 -

민 족 주 의 와 교 회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민족이나 사람은 불순하지 않지만 민족주의는 대개가 불순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민족주의라는 것이 인간의 모든 선량한 정신들을 민족 단위로 한정하는 것일텐데 역사 속에 나타난 해로운 것들이 대개 민족주의와 관계가 깊은 이유는 민족적 이기심이 들어차 있기 때문이라는것도. 민족주의가 불순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가 민족 단위로 일어날 때 착취를 당하는 이들의 민족주의일 것이다.

▲탁지원 소장
본지 발행인

  

그것은 민족적 이기심이 아니라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를 타파하는 가치를 갖는다. 그러기에 100년 전, 그리고 지금의 일본에 대항하는 운동이 타당하다고 믿는다. 다만 그것이 또 다른 민족주의에 기인한 우리의 이기심만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민족주의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본래 매우 비합리주의적이고 다의적인 개념이 있기에 보편적인 정의를 내리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나와 있다.

 

민족주의가 성립하는 데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첫째, 세계가 하나라고 하는 이상과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세워진 세계제국이 무너지고 많은 독립 국가가 나타나, 종래의 보편적인 종교 · 문화를 대신하는 새로운 민족적인 종교 · 문화를 창조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렇게 이룩된 독립 국가를 국민이 ‘우리들의 국가’로서 받아들여 사랑하고 이에 긍지를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첫째 조건은 16세기 이후 그리스도교 세계의 통일이 무너지고 신성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지 않는 많은 독립 국가가 나타남으로써 충족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민족주의는 서구의 것과는 다르게 이기심보다는 피착취 상황에서의 기독교(인)가 주도된 나라의 독립에 대한 열망이 민족과 민족주의가 동일시되는 과정을 이룬 것이라 본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상황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는 늘 신앙과 믿음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살면서 ‘내가, 내지는 우리가 보기에는’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으로 시작되는 믿음과 신앙이 여전히 우리의 삶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흡사 시험을 앞두고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 공부만 죽어라고 한다거나, 또는 기도만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공부하며 더불어 간절한 기도가 함께할 때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국 · 내외적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람의 생각만이 아니라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의 것을 준비, 계획해주는 그분을 의지해야지만 닥쳐진 모든 문제가 지혜롭게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 막냇동생은 일본 자매와 결혼을 했고, 사촌 동생 중 한 명은 중국 자매와 결혼을 했다. 두 동생이 국적을 뛰어넘는 사랑을 했지만, 여태껏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 조국이나 민족은 다르지만, 사랑과 섬김, 그리고 신앙과 배려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 최근 일본동경순복음교회 청년부 강의차 일본을 방문했었다. 특이하게도 그 공동체는 일본인과 한국인이 공존하고 있었다(교회 담임 목사는 일본 사람이지만 사모는 한국 사람이다). 작금의 정치적 상황과는 별개로 모두 하나가 되어 귀한 공동체를 이뤄가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감동이고 도전이었다. 결국 민족과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이루는 것이 우리들 삶의 궁극적인 결론이지 싶다.

「동 아 일 보 」

본지 탁지일 편집장이 언론을 통해 이미 지적했으나 한 번 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월간지 「신동아」가 2019년 6호에 ‘하나님의교회’ 관련 기사를 무려 32페이지에 걸쳐 게재하였으며, 심지어 표지는 ‘하나님의교회’ 총회장 김주철의 사진으로 장식한 사건 말이다. 월간 「신동아」뿐 아니라 지난 3월에는 「동아일보」 지면에 ‘하나님의교회’ 관련 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동아일보」가 올해 들어 6월까지 ‘하나님의교회’로부터 받은 액수는 총 12억여 원이라고 하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다.

민주주의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존중한다. 여러 다른 의견 간의 공정한 경쟁을 통해 최선의 사회적 합의를 얻는다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동아일보」는 의견 존중의 면이 상식적인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단에게는 더욱더. 언론의 입장으로 보나 종교적으로나 참담한 지경에까지 이르러 있다.

 

1920년 창간 이후 최초로 순직자를 내기도 했던 언론이고, 1936년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에서의 마라톤 우승을 보도하면서 가슴에 그려진 일장기를 말소시킨 사진을 실었다가 정간당한 유명한 사건의 언론이었으며, 자유 언론 실천에 앞장서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다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정부가 각 기업체와 기관에 광고 해약 압력을 가했던 사건의 주역이었던 이 언론이 정말 「동아일보」가 맞는가 싶다.

 

수년 전 해당 신문에 ‘하나님의교회’에 관한 비판기사가 게재되자마자 ‘하나님의교회’는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오랜 기간 시위를 했더랬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당시 담당 기자는 “언론에 재갈 물리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앞으로는 우리도 이단 문제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이다”라고 말해 역시 「동아일보」는 다르구나 싶었는데, 이후 신문은 역사적인 자긍과 언론의 자존심 대신 이단들과의 공존과 공생을 선택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그 같은 「동아일보」의 ‘하나님의교회’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성 기사를 게재하며 지면을 제공한 행위에 대해 독자들이 언론에 대해 갖고 있는 신뢰를 저버린 심각한 ‘독자 기만행위’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안타까운 일은 그 신문이 아직 이 나라에서 적지 않은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 기사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언론과 이단의 상생이 비단 「동아일보」뿐만이 아니라 여러 주류언론과 더불어 지방 신문도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신천지 이만희씨의 인터뷰가 게재된 「경기일보」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하여 교회와 교계 언론만이라도 이단 대처에 최선을 다해줬으면 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교계 언론 중 적지 않은 언론이 앞의 언론들과 마찬가지로 이단을 옹호하는데 열심인 상황이니 부디 지금이라도 언론의 자존심을 지켜가든지, 내지는 폐간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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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관련 뉴스를 보며 몹쓸 정치인들을 뽑은 것이 바로 우리라는 사실에 자괴감이 든다. 게다가 이단 문제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최고치인데 한, 일간의 엇갈린 행보까지 겹쳐지니 그저 풍성한 가을 하늘로라도 위로를 받았으면, 짧은 연휴가 조금이나마 다른 걱정 모두를 불식시킬 수 있는 격려가 됐으면 싶다.

그래도 욕망과 더불어 소명이라도 조금 남아 있다면 다행이겠으나 그것도 없고, 직업의식이라도 있어야 할텐데 그조차 없으니 욕심외에 무엇이 남아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