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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지원 소장 takjiwon@hdjongkyo.co.kr
2019년 11월 01일 09시 47분 입력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 전도서 4장 9~10절 -

자 괴 감

‘명성교회 관련 방송을 보고 부끄럽고 자괴감이 들어 며칠째 꼼짝을 할 수가 없다. 제기된 의혹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동안 본지의 행보와 생각들을 다시 재정리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도대체 누가 이단이고 사이비이며, 정통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도 없겠고.최근 터진 유치원들의 비리가 한두 곳이 아니기에 국민의 충격이 더해지는 가운데 이번 문제도 명성교회만의 문제는 아니지 싶다. 한국교회의 철저한 반성과 회개를 촉구한다’

작년 이맘때쯤 썼던 칼럼이다. 1년이 지나 다시 봐도 달라진 것이 없다. 예상대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가 명성교회의 세습을 허용한 것만 빼고.세습 문제에 대해서는 독자 제현의 생각들이 제각기 다를 수 있기에 더 깊게 말하진 않으련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떠나 긴시간 화가 가라앉지 않는 것은 세습 허용 이후에 벌어진 교회의 또 다른 꼼수가 드러나서이고, 아울러 아무리 급해도 자신들이 속한 교단에서 이단 옹호 언론으로 규정된 이의 도움을 굳이 받아야만 했는가의 문제다. 이렇듯 세습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많은 것이 작금의 명성교회 문제이지 싶다.

▲탁지원 소장
본지 발행인

  

경 외 감 , 의 심, 공 포 - 영 화 ‘애드 아 스 트 라 ’ -

미 육군 소령 ‘로이 맥브라이드’(브래드 피트)는 우주의 지적생명체를 찾기 위한 ‘리마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실종된 아버지를 영웅이라 믿으며 우주 비행사의 꿈을 키웠다. 어느 날, ‘로이’는 이상 현상으로 우주 안테나에서 지구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하고 인류를 위협할 전류 급증 현상인 ‘써지’ 사태가 아버지가 벌인 위험한 실험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과 함께 믿고 있는 모든 것이 흔들리며 그를 막아야 한다는 임무를 맡게 된 ‘로이’는 우주로 향한다. 배우 ‘브래드 피트’의 인생 최고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애드 아스트라>라는 영화의 내용 중 일부이다. 영화에서 인간에 대한 주인공의 환멸과 분노는 결국 모든 이들이 전설로 여기는 우주 탐험가였던 아버지에 대한 경외감까지 의심으로 바뀌고 걷잡을 수 없는 공포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아버지는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인간의 멸종을 바라고 있었던 건가? 사람들을 멀리하고자 하는 주인공 역시 그 같은 생각과 다르지 않은,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아버지를 닮아갈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일까? 아버지와 같은 숙명을 품고 있는지에 대한 주인공의 생각이 깊어져만 간다.

연약한 인간의 욕심과 광활한 우주의 대비를 통해 영화는 반성도 성찰도 없는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문명에 대한 탐욕에 대해 다루고 싶었던 것 같다. 아울러 탐욕과 패권의 전쟁터인 지구와 그 지구를 떠나서도 여전히 같은 문제의 연장 선상에 놓여 있는 인간에 대한 분노까지도. 주인공은 그 분노를 아버지에게서 보게 되고, 결국 자신도 다르지 않음을 고민하게 된다.

최근 경외감으로 바라봤던 이들이 많은 이들을 의심케 하고, 결국엔 공포로까지 이어지게 된 사건들이 몇 있었다. 그것은 늘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지 싶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부재한 시대,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 사고들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지?’의 고민과 더불어 과학의 발전으로 모든것이 변해가도 신앙만큼은 제대로 지켜갈 수 있는지를 깊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그 살벌함 속에서 버티게 해야 할지도. 그저 아름다운 세상, 멋진 미래라는 슬로우건과는 다른 황폐하고 무미건조한 세상을 마주쳐야 할지도 모르는 마지막 때가 다 됐기 때문이다.

✽ 영화를 보며 선친과 필자에 대해서, 그리고 요즘 쟁점이 된 명성교회 부자간의 삶을 한 번 더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한 편 편히 보기가 왜 이리도 어려운지.

굳 은 살

피해자 코스프레는 이단들의 전유물이지 싶다. 특히 소송 중엔 더욱 그러하다. 윤리, 도덕적인 문제들은 감춰두고 신자들의 노력으로 받은 수많은 상패와 표창장 등을 전면에 내세우며, 각 언론사를 구워삶아 관련 홍보 기사까지 제출하면 금상첨화가 된다. 그러니 종교적 문제의 사실과 진실을 구분하기 어려운 세상 법정은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내릴 때가 종종 있을 수밖에. 법조팀, 언론팀 등과 더불어 재력까지 뒷받침되는 그들에게 불가능은 없다.

이후 그 결과물을 통해 포교와 미혹의 외연을 확대해 나가는 일이 계속되는데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최근엔 세상 언론 중 일부가 아예 그들 편에 서서 일하고 있으나 아주 가끔 정의감 넘치는 언론의 비판이 있을 때면 그들 주특기인 여러 압박들을 통해 쉬이 정정과 반론을 끌어낸다. 정정 보도 하나면 게임 끝이다.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 이미 얻어낸 정정 보도의 무기로 ‘백기 투항’을 집요하게 요청하면 대부분 언론은 손을 들고 만다. 제대로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정정과 반론을 남발하니 다음 소송의 당사자는 버겁게 싸움을 벌여갈 수밖에 없다. 일이 이쯤 되니 ‘누군가는 끝까지 한 번 덤벼줘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하는 마음과 더불어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모 영화 대사의 심정을 안고 끝없이 이어지는 소송에 25년간 최선을 다해왔다.

이제 어느것도 익숙하지 않은 것이 없고, 굳은살이 촘촘히 박였으나 어찌 된 것이 소송만큼은 굳은살이 배기질 않는다. 하나가 끝나면 또 하나가 시작되고, 또 하나가 끝나면 다시 하나가 시작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탓이다. 그럼에도 최근 독자들의 기도로 말미암아 6건의 소송이 모두 ‘승소’ 내지는 ‘혐의없음’으로 끝난 것을 보며, 굳은살이 아직 배기지 않은 이유가 본지와 독자로 하여금 기도를 멈추지 않게 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 하나님 다음으로 귀한 빽인 우리 독자 제현들께 이번 달도 변함없이 기도 요청을 드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진 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이 특정되면서 피해자 가족들과 당시 경찰들이 느끼는 심정까지는 아니겠지만 뜨거운 만감이 교차했다. 선친의 사건 역시 언젠간 그 진실이 밝혀질 것이기 때문이겠고,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릴 수 없다’라던 선친의 이야기 때문이다.

현종 공동체에 귀하게 해당되는 말씀. 언제, 어디서든 한 사람의 열걸음보다는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중요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