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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면
권오희 목사
2019년 12월 27일 08시 53분 입력

아프리카 부족에 대해 연구 중이던 인류학자가 한 부족 아이들을 모아놓고 게임 하나를 제안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보기 드문, 싱싱하고 달콤한 과일을 바구니에 담아두고는 “자! 누구든 먼저 바구니까지 뛰어간 아이에게 과일을 모두 주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권오희 목사
제주어깨동무학교 교목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학생들이 일제히 뛸 거라고 예상했는데, 인류학자의 예상과는 달리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손을 잡았고, 함께 달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바구니에 다다르자 모두 함께 둘러앉아 서로를 바라고 키득거리며 과일을 나누어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 상황을 당황스러워하던 인류학자는 아이들에게 질문했습니다.

“누구든 일등으로 간 사람에게 모든 과일을 주려 했는데 왜 손을 잡고 같이 달렸니?” 그러자 아이들의 입에선 “UBUNTU!(우분투)”라는 단어가 합창하듯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한 아이가 이렇게 덧붙였지요. “나머지 다른 아이들이 다 슬픈데, 어떻게 나만 행복할 수가 있는 거죠?” 우분투란, ‘네가 있기에 내가 있고,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을 가진 아프리카 반투족 언어라고 합니다.

아프리카 정신의 기초이기도 한 우분투는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넬슨 만델라가 강조하면서 널리 알려진 개념이기도 하답니다. 가슴을 울리는 한 마디.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are)’ 이 가슴 뛰는 이야기는 아프리카에서만 가능한 것일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조국 대한민국에서도 함께 손을 부여잡고 “I am because you are!”라고 외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러나 현실은 냉혹합니다. 따돌림과 폭력, 경쟁으로 인한 비교, 허세와 분노가 가득한 교육 현장에서 ‘우리’라는 말은 사치스럽기도 합니다. 부모들의 못다 한 꿈을 이루기 위하여 혹은 인간 구실을 하기 위하여 그들은 ‘입시’라는 거대한 ‘신’과의 조우를 위하여 앞만 보고 달려야 합니다.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옆 아이보다 잘하는 것’이 됩니다. 그들에게 친구는 경쟁자로 전락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의해서 학교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함께’의 가치를 실현하는 학교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교회 안에서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지난 15년간 교회에서 전도사에서 목사로 있으면서 평일에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고, 학원에도 쫓아다녔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다음세대 교육은 전인격적 교육이 되어야 하는데, 인성교육을 잃어버린 학교 교육은 실상은 모든 것을 잃은 것이고, 신앙교육만을 책임지는 교회 교육도 사실은 반쪽짜리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물론 그것마저도 거의 실패입니다). 유일한 대안이 되는 가정이 가능한가요?

현대 시대의 가정들은 너무나 바쁘기 때문에, 부모들이 그런 교육을 받아 보지도 할 수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 보고자 했습니다. 가정과 학교와 교회가 함께 해야만 ‘다음세대 교육’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작은 희망에서 시작했던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장소를 찾게 되었고, 학교에 보내겠다는 부모가 있었습니다. 그 한 명으로 인해서 작은 학교 제주 어깨동무학교는 탄생된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주 어깨동무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는 ‘더불어 교육’입니다. 효율과 경쟁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구조와 교육 구조 속에서 ‘더불어’를 주장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경쟁하지 않기 위하여, 무학년제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초등 4학년부터 고등학생

까지 있으니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습니다. 아이들의 나이 격차가 많아질수록 교과과정을 수정, 보완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무학년제의 최고의 장점으로는 서로 경쟁이 적어진다는 것입니다. 서로 학년이 다르기 때문에 경쟁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점수를 매기는 시험도 별로 없기에 서로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서로 협력을 해야 하는 수업 덕분에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평소 거친 언행과 행동을 보이던 학생들도, 저학년이 올수록 아이들은 말과 행동을 가려서 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저학년과 함께할 때는 그들의 눈높이에서 노력하는 흔적들을 찾게 됩니다. 또한 자신보다 어린 동생들의 여러 가지 질문에 답하고 그들의 필요에 도움을 주며 자연스러운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어깨동무’는 키가 큰 사람이 키가 작은 사람에게 맞춰 주어야만 가능한 것처럼 키가 큰 고학년은 저학년과의 어깨동무를 위해 기다림과 공감을 배우게 됩니다.

이미 메리고든이라는 캐나다의 유치원 교사로 시작되었던 갓난아이와 초 · 중등학교에 초대해, 한 1년 동안 성장 과정을 지켜보게 했을 때, 아이들의 폭력적 성향과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이 90%가 줄어들었다는 마법과 같은 결과에서 우리는 ‘공감’의 힘을 배우게 됩니다.

물론, 갓난아이와 함께 하는 것도 아니며, 여러 가지 다르게 고려할 부분도 있으나 여러 나이대가 함께 하는 공동체의 시간은 아이들의 인성에 깊은 영향을 준다는 것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습니다. 사실 인성뿐만이 아닙니다. 바른 공감력을 지닌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형상에는 타인을 향한 공감성과 자신에 대한 공감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기에 자기 절제력이나 자기 집중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육체적 나이보다 정신연령은 더 어려 보이고 사춘기를 겪는 오빠들 때문에 힘겨워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이 곧 나갈 세상의 모습입니다. 잘 맞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을 피해버리고 모른 척하고 산다면,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쳇바퀴 돌 듯 우리는 또 피해야 할 사람을 만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작은 대안학교에서는 피하기 어렵습니다.

함께 해야 할 시간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죠. 쉽지 않지만, 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은 ‘우리’라는 키워드와 ‘더불어’라는 키워드를 또 배우게 됩니다. 전 할머니 집에서 외동으로 키워졌습니다. 참 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가정에서 홀로 신앙생활하며 아무것도 흥미가 없던 저는 교회에 심취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아이들과 어울려 놀며, 예배도 하고 수련회도 참여하며 자연스럽게 교회 공동체가 너무나 소중한 공동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협력해야만 하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 공동체의 힘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현실에서 다음세대 아이들이 학교, 학원과 입시 때문에, 교회 구성원들과 찐한 시간을 보내기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학교를 그런 공동체로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주일학교와 같은 학교 말입니다.

말이 길었습니다. 오늘은 현대종교에 마지막으로 기고하는 날이라, 학교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은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공감하는 능력을 배우게 하십시오. 그 능력으로 인해서 자기 절제력과 통제력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우분투” 부모의 삶에서 부모가 속한 공동체에서 우분투를 외칠 수 있으며 ‘네가 있기에 내가 있고,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고백이 보편적인 고백이 되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 지금까지 제주어깨동무학교 권오희 목사였습니다.